▪︎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신학 이야기 121

빌헬름 요제프 폰 셸링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 ~ 1854)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폰 셸링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 ~ 1854)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로 불리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발터 슐쯔). ▪︎출생: 1775년 1월 27일, Leonberg, Germany ▪︎사망: 1854년 8월 20일, Bad Ragaz, Swiss ▪︎직업: 철학자, 대학 교수, 작가 ▪︎언어: 독일어 / 국적: 독일 □학력: 튀빙겐 에버하르트 카를 대학교, 라이프치히 대학교 ▪︎사조: 독일 관념론 ▪︎수상: Pour le Mérite for Sciences and Arts, Bavarian Maximilian Order for Science and Art (1853) ▪︎스승: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Ludwig J..

■The Reason Why Jesus Came To You.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까닭..

#The_Reason_Why_Jesus_Came_To_You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까닭. ■ #Timothy_Keller (Christian Excuser pastor, 기독교 변명가 목사) Jesus cannot simply be liked, you either kill Him or crown Him in your life. 예수님을 단순히 좋아 할 수만 없습니다. 그를 죽이거나 당신 삶 속에서 왕으로 삼아야 합니다. ■ James Kang(필자) But I dont think so, Timothy. As far as I know Jesus came to you to show His Peace, not to try to put a crown on His head sending you to hell. 티..

조로아스터敎의 사상과 유대敎

[편집] ■1. 중보교회의 믿음체계가 교인들에게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심어주는 종말론적 믿음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종말론적 신학의 기원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세계 역사를 구원의 역사 즉 유혹-타락-죄-회개-속량의 구원사를 처음 발전시킨 사람은 분명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선신 아후라 마즈다가 악의 세력과의 긴 전투를 행할 무대로서 이 세계를 창조한 것으로 보았으며, 그의 최후의 승리를 지상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독교 성서는 마치 조로아스터교의 창조 이야기를 그대로 복사한 것처럼 보인다. “최후의 날(Doomsday)들은 늘어나는 사악함과 우주적 재난들에 의해 그 징후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구세주 사오쉬안트:Saosh..

종교 권력의 hieracky를 부수었던, 예수와 왈도(Ealdo)

예수(Luke 19:45-48, 성전을 엎다)와 왈도(Ealdo) ■ 당시 기성의 종교 권력의 하이라키(Hieracky)를 부수었던 예수(Luke 19:45-48)와 같은 행동을 보였던 왈도(Ealdo), 오늘날에도 그와같은 신념의 사나이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 Ealdo, who had acted like Jesus who had broken the hieracky of the established religious power at that time (Luck 19: 45-48), Today's Ealdo that keeps the peace of the people's life must come out. 《"#왈도 를 지지하는 사람들 (The Waldensians)"》 ■ In 1170, Lyon F..

■예수 베들레헴 탄생을 부추기는 호구조사는 없었다. (누가2:1~3)

■"아우구스투스 업적비"내용에 있다는, '바이블아키올로지' 보고서는 가짜뉴스다. [8] (c) 나는 42년 동안 호구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처음) 조사하였을 때는 로마 시민들의 머릿수가 4063000명으로 헤아려졌다. (d) 가이우스 켄소리누스와 가이우스 아시니우스가 집정관이었을 때(= BC 8) 두 번째로 나는 집정관급의 절대 명령권을 통해 호구조사를 실시하여 로마 시민들의 숫자를 4233000명으로 헤아렸다. (e)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섹스투스 압풀레이우스가 집정관이었을 때(= AD 14) 나는 내 아들인 티베리우스 카이사르를 동료로 삼아 집정관급의 절대 명령권을 통해 호구조사를 실시하여 로마 시민들의 숫자를 4937000명으로 헤아렸다. (f) 나의 발의에 의해 새로운 법들이 통과되어 이미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