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역사(신화) 이야기 72

■괴베클리 테페 (Göbekli Tepe) ■Natufian culture

■괴베클리 테페 (Göbekli Tepe)   ■Natufian culture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튀르키예어로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의미의 지명으로, 튀르키예 남동쪽 산맥 능선 꼭대기에 있는 유적지. 북동쪽으로 12 킬로미터 에 있는 석기 시대의 유적을 가리킨다. *유구의 높이는 15m이며 직경은 300m 정도이다. 해발고도는 대략 760m이다.*immovable ruins 움직일 수 없는 유적이 유적은 해발 760미터에 위치한 언덕 정상에 묻혀 있었는데 현지인이 우연히 찾아서 몰래 파 내려가다 발견되었다. 이후 1963년에 미국 시카고 대학교와 튀르키예 이스탄불 대학교가 공동 조사를 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였던 고고학자 클라..

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

■주 - 진 - 한 - 수 - 당 - 송 - 원 - 명 - 청 .. 나라등에, 지금의 중국 한족이라는 순수한 민족은 없었고 주로 동-서 북방 민족들로 지배되었고 구성되어 내려온 것이다. ▪︎ '진시황'은 동이족(선비=> 여진)이고, 그의 동생뻘되는 한고조 '유방'은 그의 방계이므로 '선비족'이었던 것이다. □북경대 화춘구교수(당시62세)는 74년 중국제1의 언론사인 신화사통신 사회부 이귀형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 "진시왕은 동이족이었고, 유적은 모두 동이족 유적임을 확인하였다" 결국 화'교수는 감금되었다가 지방으로 좌천 당했다.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비교언어학으로 밝혀낸 중국북방민족들의 원류) 문성재 역 | 우리역사연구재단 ▪︎ 중국및 한족이라는 Naming은 훗날에, 특히 100..

♤칠천량 대첩(漆川梁 大捷)

《원균을 찬양 고무하는, 학자라는 '백승종'의 글에 빡쳐서 올린 글입니다. 그와 원균 후손이라는 사람의 댓글.. 요상스럽게 올렸네요》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칠천량 대첩을 원균이 안겨줬기에, 또 다시 풍신수길이 대륙침략의 욕망을 감행하게 되었던 것이 정유재란이다. 아래는 일본의 기록이다. ♤漆川梁 大捷(칠천량 대첩) 漆川梁海戰是發生在1597年8月27日万历朝鲜战争期间,巨济岛海域的一場海戰,交戰雙方為日本水軍與朝鮮水師,最後朝鮮水師覆沒。 ■세계 해전사(世界海軍戰士)에 최악의 전략전술을 보여, 칠천량 대첩을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안겨준, 원균을 왜란을 물리친 조선장수로 찬양하는 '백승종'이라는 학자가 있다. ■정유재란 당시 벌어진 칠천량 해전은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일본군에게 대패한 전투로, 한국사 아니 세..

로마군사조직

The Structure of the Roman Army는, A legion이 각각 480명으로 구성된 10개의 코호트 cohorts로 세분되었으며, 각 코호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00명이 아닌 80명으로 구성된 apiece로 세분되었습니다. 로마군은 레기온(legion)이라 불리는 군인들의 집단으로 구성되었다. 한 군단에 5,000명 이상의 군인이 있었습니다. 각 군단에는 자체 번호, 이름, 배지 및 요새가 있습니다. 로마 제국 주변에는 약 30개의 군단이 있었고, 그 중 3개 군단은 영국의 Caerleon, Chester 및 York에 주둔했습니다. 로마 군대의 지휘 계통은 무엇이었습니까? 군단의 공식적인 위계는 세 사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사절단(legatus legionus), ..

카를5세 탄생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1세의 결혼정책. ■헝가리 제국과 결혼정책 카를 5세(Karl V, 1500~1558)는 19세의 나이에 세계제국의 주인이 되었다. 그의 직함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스페인왕, 독일왕, 이탈리아왕, 오스트리아 대공, 네덜란드 영주 등 20여가지였고, 제국에서는 카를 5세, 스페인왕으로는 카를로스 1세(Carlos I)등 20여개의 호칭으로 불리웠다. 카를은 유럽에선 70군데 이상의 영지를 소유한 군주였고, 신대륙에선 뉴스페인(멕시코)와 페루, 실론(스리랑카), 필리핀의 지배자였다. 그의 지배력이 미친 영역은 빅토리아여왕, 엘리자베스 1세 때의 대영제국 전성기에 버금간다. 그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한곳에 머물지 않고 스페인에서 독일로, 이탈리아로 동분서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