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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푸실 이야기/역사(신화) 이야기

카를5세 탄생

Narin Pusil 2023. 7. 23. 09:51

 

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1세의 결혼정책.

프랑스와 전쟁을 피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막1세는 딸 마르게리타를 샤를에게 시집 보낸다.
하지만, 부르타뉴에 욕심이 있던 샤를은 막1세와 부르타뉴 상속자 얀과의 대리결혼은 무효라며 마르게리타와 파혼하고, 어린 장모 얀과 결혼을 서두른다.
막1세는 스페인 왕과와 겹사돈을 맺어 프랑스에 위세를 보인다.

 

혼란이 찾아온 스페인 왕가의 상황에 막1세 손자이자 카를5세는 합스부르크 영토를 신성로마제국에다 스페인 영토까지 넓히게 되는 최종 상속자가 된다.


■헝가리 제국과 결혼정책

페르디난트와 안나와, 마리아와 러요시 2세가 결혼하여 겹사돈이 되나, 러요시가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댕에서 전사했기에 자식이 없어 마리아가 헝가리 제국을 얻게된다.
카를5세가 해가 지지않는 합스부르크 제국을 소유한다.



카를 5세(Karl V, 1500~1558)는 19세의 나이에 세계제국의 주인이 되었다. 그의 직함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스페인왕, 독일왕, 이탈리아왕, 오스트리아 대공, 네덜란드 영주 등 20여가지였고, 제국에서는 카를 5세, 스페인왕으로는 카를로스 1세(Carlos I)등 20여개의 호칭으로 불리웠다.

카를은 유럽에선 70군데 이상의 영지를 소유한 군주였고, 신대륙에선 뉴스페인(멕시코)와 페루, 실론(스리랑카), 필리핀의 지배자였다. 그의 지배력이 미친 영역은 빅토리아여왕, 엘리자베스 1세 때의 대영제국 전성기에 버금간다. 그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한곳에 머물지 않고 스페인에서 독일로, 이탈리아로 동분서주하며 전쟁을 벌였다. 카를은 이슬람의 종주국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을 벌였고, 교황과 대치했으며, 독일내 신교도 제후들과 싸웠다.



최고의 자리는 역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할아버지 막시밀리언 1세가 1519년에 죽고, 스페인의 카스티유 왕이던 카를은 당연 제1의 황제 승계자였다. 그런데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François I), 영국왕 헨리 8세, 작센 공작 프리드리히가 경선에 뛰어들었다. 영국왕과 작센 공작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프랑수와는 끝까지 참여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7명의 선제후의 투표로 옹립되고, 대공위시대에 영국과 스페인 왕가에서 대립왕이 나오기도 했다. 전임 황제가 죽고 후임황제가 선출되는 궐위 기간에 황제 후보들은 투표권을 갖는 선제후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주거나 후한 조건을 제시하는 게 관례였다.

출처 : 아틀라스뉴스 =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지배…종교 통합에 실패

 

신성로마제국⑩…합스부르크 전성기, 카를 5세 - 아틀라스뉴스

카를 5세(Karl V, 1500~1558)는 19세의 나이에 세계제국의 주인이 되었다. 그의 직함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스페인왕, 독일왕, 이탈리아왕, 오스트리아 대공, 네덜란드 영주 등 20여가지였고, 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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