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시드니 인문학

메디치와 메디치 시대의 사건과 인물

Narin Pusil 2023. 9. 2. 19:26


(시드니 인문학 교실 학술여행 과제  #23, #24)

■메디치 가문의 태동시기의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 ....

 

▪︎①종교개혁: (신흥카톨릭 탄생: 16세기 시작) 카톨릭종교제국의 황제 교황에 구데타로 새로운 율법신흥 카톨릭 국가(신교)를 만들다.  ㅡ 그런데 종교개혁이란 말은 있었지만, 결코 종교를 개혁한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종교의 세속적 교리적 권력을 주도하겠다는, 기독교인들끼리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를 살육했던 권력 쟁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ㅡ 더구나 카톨릭 교황제국의 타락을 비난하고, 신흥카톨릭교회(=개 신교)를 세웠으나, 여전히 비리, 부패, 교만행위로 신흥 카톨릭 교회의 타락도 계속되어 오고 있었으니까 .. 오죽했으면, "신은 죽었다."고 '니체'는 외쳤을까...... ㅡ 예수 가르침대로, 소위 종교지도자라는 사람들부터 낮은자로 내려오지 않는 한, 종교개혁이란 말은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비리, 부패, 교만행위로 인한, 교회의 타락이라는 기독교회 통전성(統全性)이 전승되어 지녀왔고 또 지녀갈 것이기 때문이다.

▪︎②얀 후스(Jan Hus, 1372년? ~ 1415년 7. 6)는 체코의 카톨릭 신학자이며, 1415년 5월 4일 교황의 파문에 따른,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7월 6일 화형에 처해졌다.

▪︎③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 ∼ 1498 5. 23)는  도미니크회 수도사·설교가·종교개혁가로 한때 메디치를 물리치고 피렌체를 성시화시켜 신비적으로 지배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부도덕을 비난하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이탈리아가 벌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교황의 사주를 받은 피렌체시 당국에 의해 교회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화형당했다.

▪︎④루터(Martin Luther, 1483 ~1546)  독일의 종교개혁가. 당시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사로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가 회개가 없는 용서, 거짓 평안이라고 비판했으며, 믿음을 통해 의롭다함을 얻는 이신칭의를 주장했다. 또한 그 시대 사회 분위기도 그랬지만, 대서양 물이 서쪽끝 낭떠러지로 떨어져 Hades(Pluto)가 지배하는 지하세계로 흘러 들어 간다고 루터(칼벵등)는 믿고 있는 가운데 신학을 하고 있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ㅡ> 에라스무스(Erasmus)

 
▪︎⑤콜럼부스 항해가 시작된 1492년에 끝난, 에스파냐의 레콩키스타(Reconquista,영어 reconquest)는 718년부터 시작된 이베리아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반도 정복이 끝났다.

▪︎⑥칼벵(Jean Calvin, 1509년 ~ 1564) 카톨릭 신부와 학자, 모두를 쫓아내고 제네바 실권은 쥔, 그러나 정치적 종교적 감각이 전무했던 파렐은 그곳에 와있던 정치 감각과 20대에 기독교강요를 쓸 정도의 종교적 지식이 풍부했던 칼벵을 제네바의 전권을 쥔, 시의회 비상대책위원장에 옹립시킨다. 제네바 성시화로 칼벵의 새로운 율법속에서 많은 사람이 카톨릭이 저질렀던 교수형, 화형으로 죽어갔다. 그중에 세르베투스도 있다. 1553년 10월 27일 제네바에서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가 화형 당했다. 당시 그의 죄목은 삼위일체와 유아세례를 부인했다는 것이었다.

       ( = '슈테판 츠바이크' 저서 "다른의견을 가질 권리" = 종교적 광기와 독재의 폭력이 지배하던 시대, “정신적 독재자이자 광신적인 주지주의자”였던 칼뱅과 그에 맞서는 ‘다른 의견’을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걸고 단호하게 맞섰던 프랑스의 설교자이자 신학자이자 위대한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 1515 - 1563). 그는 종교적 관용,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주장한 최초의 개혁자이다.

▪︎⑦대항해시대(15세기 ~ 17세기) : 카톨릭 신을 앞세워 약소민족들을 정복하여 식민지라는 말이 생겨난 시대로  포루투칼에서 시작된다. 시대사적으로 근세에 해당하며, 기술사적으로는 범선 시대와 거의 겹친다.

▪︎⑧르네상스(Renaissance 14세기- 16세기): 메디치의 피렌체로 들어온 이슬람(오스만 투르크)의 서적들, 발명품들 ..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서적으로 유럽사의  문예 부흥 또는 문화 혁신 운동이 전개된다. 과학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다. 


천여년만에 서구에, 그리고 천오백년이 지난 조선에, 다시 등장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천여년 동안 학문은 오직 '신학' 하나뿐이었는데 ...
 어떻게 철학이 살아남아 다시 등장할 수 있었을까요

▪︎동방과 서방 교부들은 대부분 플라톤철학 (퇴계사상)을 모방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고봉 기대승 사상)이 이단시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없거나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십자군 전쟁이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서구에 다시 등장하였다는 말입니다. 당시(14C경)이슬람 철학자들에 의해 서지요.

▪︎지리적인 여건도 있었지만 서방교회에 비해 동방교회는 훨씬 더 이슬람과 접촉을 갖고 있었다고 .. 그래서 동벙기독교 철학 개념은 플라톤 이분법 사상에서 먼저 벗어나 있었을지도 .... 적어도 16세기까지 수학, 과학, 천문학, 지리학, 그리고 인권을 포함한 법학 등등 이슬람권이 서구를 훨씬 앞서 있었다면 믿으시겠읍니까? ...

▪︎중세에는 신학밖에 없었다는 말은 철학등의 학문들이 있었으나 신학의 범주에서만 인정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의 학문들과 이때 이단시 여겼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슬람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메디치가의 무역과 함께 메디치의 피렌체 학자들에게 전해져 서구 르네상스의 문예부흥이 시작되었다는 것도요 ....


■메디치 가문은 네 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비오 4세, 레오 11세)과 토스카나 대공등의 피렌체의 통치자를 배출하였다. 중세 이탈리아에는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과 스포르차 가문, 페라라의 에스테 가문, 만토바의 곤차가문 등 여러 유력한 귀족 명문가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내는 큰 역할을 하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가문은 단연 메디치였다. 예술과 인문주의가 융성한 환경으로 만들었다. 그 가운데서도 코시모는 예술과 인문주의가 융성한 환경으로 만들었다.  그의 손자 로렌초-메디치는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로 메디치 가문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나중에는 혼인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 왕실의 일원까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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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 문예부흥 => 종교개혁]  '메디치'와 '갈릴레오' 그리고 마키아벨리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 ㅡ 나는 생각하고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루터-칼벵 이후 한세기가 지난후에 활약한 법관귀족 가문에 '라 플레쉬 콜레주'(Collège la Flèche)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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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와 갈릴레오

▪︎피렌체 메디치(Medici, 약'을 만들어 팔았던 집안)가문, 피렌체의 실질적 지배자가 된, 코시모와 로렌조 시대를 함께 살아갔던, 갈릴레오(Galileo Galilei).  변방의 평민으로부터 시작되어, 엄청난 부'로, 교황에 의해 토스카나(Toscana) 대공(Grand Duke, Prince) 귀족가문으로 변모하게 이르렀던 메디치, 하지만 갈릴레오는 몰락한 귀족집안 출신이다.

■성가족(Sagrada Familia)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1475~1564)는 로렌초에 의해 메디치 가문에 입양되었기에 형제처럼 자란 로렌초의 친아들과 조카가 추기경, 교황이 되었다.  카톨릭 교리에 가스라이팅 되어 있던 미켈란젤로. 그들과 하이어라키 차이에 욱하는 성질이 심해져 갔다.  로렌초의 눈밖에 나자 로렌초에 의해 밀라노의 스포르차의 후원도 받게 되었던, (미켈란젤로 아저씨뻘 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는 미켈란젤로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따라서 성가족(Saint family)의 개념이 아래와 같이 다르다.


 

 

■'메디치 Medici' 가문 (Cosimo de' Medic, Lorenzo de' Medici)

https://youtu.be/p0KQ7h6WV_Y 메디치 – 마스터즈 오브 플로렌스, 더 매그니피션트메디치Medici는 이탈리아-영국 합작 드라마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 대한 역사 드라마이다. 피렌체 여행을 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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