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철학 이야기

왜? 악(惡, evil)이 존재하는가? 신정론 논쟁(Theocratic debate)

Narin Pusil 2022. 8. 31. 05:39

 

 

신정론 논쟁(Theocratic debate)

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악과 고통이 상존하는가?
If there is an almighty and good God, why do evil and suffering exist?


신정론(神正論, 신의론(神義論), 변신론(辯神論), 호신론(護神論), 독일어: Theodizee, 프랑스어: théodicée, 영어: theodicy, 고대 그리스어: θεός theós‚ 신과 δίκη díke‚ 의로움)은 '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이론'을 가리킨다. 이 이론은 신이 전능하면서도 선하다고 한다면 어째서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에게 고통을 막을 수 있는 능력(전능)과 의지(선함)가 있다고 해야할텐데 그럼에도 왜 신이 고통을 허용하는가의 문제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신정론이라는 개념은 초기 계몽주의자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의 저서 '신정론 Theodizee'(원제: Essais de théodicée (1710))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역설(Epicurean paradox)


1.신이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다.
2 신이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선하지 않다.
3. 신이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4. 신이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가 그를 신으로 불러야 하는가?

 

 


흄(David Hume)에게 악의 근본적인 문제

사람들을 해로운 열정과 함께

특정한 섭리의 개념으로 몰아가는

악의 잠재력이었습니다.

The fundamental problem of evil for Hume, was evil's potential to drive people to the notion of a particular providence with its attendant damaging passions.

악의 문제'는 '악함이 가지는 문제'가 아니라 '악의 존재가 야기하는 문제'를 의미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존재하는 유일한 신이 악한 존재라고 말한다면 이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어서 그런 대담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종교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종교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존재하는 유일한 신이 악신이라면 그 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없고 이러면 종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울 테니까. 어쩌면 세상에 악한 유일신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 생각은 "악신론"(dystheism/misotheism)이라고도 불리곤 한다. 만일 악신론이 옳다면, 선은 악의 지속과 번성을 위해 사육되는 일종의 가축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악의 문제의 해결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전제들, "선(善)과 악(惡)은 무엇인가", "신(神)이란 무엇인가", "전지(全知)란 무엇인가", "전능(全能)이란 무엇인가"' 등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명료화된 개념 합의가 어렵다. 따라서 악의 문제에 대한 여러 주장 중 어느 주장이 완벽하게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는 비단 악의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철학에서는 필연적으로 충분히 명료하지 못한 개념들을 두고 논의하게 된다. 그리고 철학의 문제들은 논의하다 보면 결국 당위나 직관, 즉 믿음의 영역에 도달하게 되는데, 특히 도덕철학(윤리학)의 가치 관련 문제의 경우 더욱 그러한 면이 있다. 도덕의 문제들은 허무주의, 회의주의, 상대주의 등에게 그 의미와 존재 여부에 대해 공격받고, 공격자 역시 자체적인 역설 때문에 반격받는 등 인류 역사 내내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낄낄대며 악을 뿌리고 거만하게 을러메며 억누릅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은, "하느님이 어떻게 알랴, 가장 높은 분이라고 세상 일을 다 아느냐?" 그런데 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악인이어도, 몸은 항상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갑니다. 나는 과연 무엇하러 마음을 맑게 가졌으며 깨끗한 손으로 살았사옵니까? 나도 그들처럼 말하며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당신 백성을 배신하는 일이겠기에 혼자 생각하며 깨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눈이 아프도록 고생스러웠습니다.
ㅡ 시편 37:8, 11~13, 15~16 (공동번역 성서)

 

 

 

 


▪︎"천도(天道)는 공평 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한다.[노자 79장] 하지만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인가. 그들은 이와 같이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이렇게 굶어 죽었다. 또한 공자의 고제 칠십인(高弟 七十人) 가운데 중니(仲尼)는 오직 안연(顔淵)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推賞)했다. 그러나 회(回)는 가끔 쌀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일까? 도척(盜跖)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 고기를 회를 쳐서 먹으며, 포악한 짓을 멋대로 저지르고 수천 명의 패거리를 모아 천하를 마구 휘젓고 다녔지만 결과는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이것은 무슨 덕을 따랐단 말인가? 이런 것들은 크게 드러난 예들이다.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素行)이 도(道)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도 종신(終身)토록 일락(逸樂)하여, 부귀가 자손 대대로 끊이지 않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 길을 걸으며 공명 정대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發憤)하지 않고, 시종 근직(謹直)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화(災禍)를 당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의심스럽다. 이른바 천도라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余甚惑焉 儻所謂天道 是邪非邪 여심혹언 당소위천도 시야비야)

ㅡ 《사기 - 백이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