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3번의 중간기(지방분권시기) 지역
신(라 - 헬리오폴리스 - 제5왕조 )
&
아문(테베=룩소르),
아문-라 =17- 18왕조 절정
6. 이집트 중심의 출애굽 배경
① 신왕국의 파라오
필자는 후기연대설을 따라 에세이 내용을 전개한다.
William F. lbright, B.H. Anderson 추론에 의한 가설에 동감이 가기 때문이다. [1] A’ [2]
#투투모세, #람세스
1인의 파라오가 이집트를 40년 이상 다스린 파라오는 2명이다.
이집트 신왕국의 투트모세 3세와 대략 150년후의 60년간을 통치한 람세스 2세(B.C.1303-1213)이다
1. 투트모세 3세(B.C.1481~1425)
투트모세 3세와 함께 등장하는 하트셉수트(Hatshepsut,B.C.1508년-1458년)
조카 투트모세 3세가 7살이던 기원전 1479년부터
21살이 되는 기원전 1458년에 이르기까지
투트모세 3세의 섭정으로 이집트를 완벽히 통치했다고 기술하였다.
현대 사학자들은 그녀가 왕위 계승을 주장하였고,
기원전 3세기의 역사가 마네토가 기록한 것처럼
21년 9개월 동안 통치하였다고 보고 있다. [3]
Hatshepsut Thutmose III
출애굽을 투투모세 3세때로 보는 학설에 의하면
하트셉수트가 죽은 이후 B.C.1458년
본격적인 친정에 나선 투트모세 3세는
20년간 무려 17차례에 달하는 정복 사업을 펼쳤다고 한다.
먼저 시리아 방면으로 진출하여 무깃도, 카데쉬 등의 도시국가를 정복하고
팔레스타인에 이집트 군을 진주시켰다고 한다.
이후에도 세 차례 가량 시리아-레반트 지역을 정복하여
완전히 이집트 영토로 만들었으며,
(이집트 학자들은 기록을 근거로 볼 때
투트모세 1세가 최대 판도를 넓인 왕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레반트 지역도 청동기 시대였다.)
이러한 투트모세의 위업에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등
중동 지역의 왕국이 선물을 보내왔을 정도로 강국으로 군림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블로스(레바논)까지 이집트의 강역에 편입되면서,
전량 수입으로 충당하던 목재 공급 문제도 해결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리아-레반트 지역은 철제무기를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대로 청동제 무기를 지니고 있었던 때라는 것은 고고학자들의 다수설이다.
(의문 : 철제무기를 지닌군대가 청동기 군대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
어패가 있지 않은가 ...?? ... 아문-라 신의 섭리인가 ....)

2. 람세스2세(Ramesses II, 1303년 ~ 1213년)
In 1274 BCE,
Ramesses II (The Great) of Egypt led his forces against the Hittite army,
under King Muwatalli II, at The Battle of Kadesh.
Both sides claimed victory and the conflict resulted in the world's first peace treaty,
The Treaty of Kadesh, signed in 1258 BCE.

투투모세3세때는 청동기 무기였던 반면에,
철제무기와 전차로 무장한 람세스2세는
시리아를 완전히 정복한 뒤에는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당시 최대의 강국이었던 미탄니 왕국을 공격하여 패배시켰다.
이는 그의 할아버지대인 투트모세 1세가 유프라테스 강에 도달한 이후
다시 이집트 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유역에 진출한 역사적 사건이였다.
람세스는 기원전 1279년 세티 1세가 죽자 왕위에 올랐고
거의 즉시 왕궁을 테베에서 동부 나일 삼각주에 있는 새로운 장소로 옮겼습니다.
Pi-Ramesses라는 겸손한 이름으로 여기에서 꽃을 피운 웅장한 도시는
30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게 될 것입니다.
그는 67년 동안 통치했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가 권력의 절정에 달했을 때 기록된 가장 긴 파라오 통치 기간이었습니다.
그의 땅은 지중해에서 현대 수단의 누비아까지 뻗어 있습니다.
Ramesses ascended the throne when Seti I died in 1279 BC, and almost immediately moved the royal court from Thebes to a new site on the eastern Nile Delta. The magnificent city that blossomed here – with the modest name of Pi-Ramesses – would become home to more than 300,000 people. He would go on to rule for 67 years, the longest documented reign for any pharaoh, at a time when Ancient Egypt was at the peak of its power. His lands stretched from the Mediterranean to Nubia in modern-day Sudan.

채색된 부조, 람세스 2세는 그의 적을 때려눕힌다.
그는 죄수 세 사람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있다.
누비아, 리비아, 시리아. 이집트.
고대 이집트.19왕조 c 1295 1186 BC. 멤피스.
Painted relief, Ramesses II smiting his enemies.
He grasps the tufts of hair of three prisoners,
a Nubian, a Libyan and a Syrian. Egypt.
Ancient Egyptian.19th dynasty c 1295 1186 BC. Memphis.
Cairo Museum
이집트 신왕국 시대, 제19왕조의 제3대 파라오로 황금기 뿐만 아니라
이집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인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파라오 중 한 명이다.
람세스는 그리스식 명칭이고, 이집트의 신성한 상형문자인
‘히에로글리프’의 특성상 모음을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 이집트인들이 불렀던 정확한 발음을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콥트어를 통해 '라메수'가 가장 가깝다고 추정할 뿐이다.
최근에는 프티-모세, 투트-모세, 아흐-모세처럼
<라-모세: “Ra”신께서 영광을 내리셨다.è 람세스>처럼
MOSE라는 단어가 들어간 원-이집트식 이름이다.
바이블 속의 MOSE도 그렇고
그 이름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약의 JESUS처럼 매우 흔한 이름에 하나였다고 한다.
그는 대략 24세에 파라오가 되었고,
그 후 60년여년간 그의 나이 90세까지 이집트를 통치했다.
위대하고 강했던 파라오였으며,
모세의 출애굽을 일으키게 만든 노역지,
- 신도시 피람세스, 아부심벨 대신전- 를 비롯한 대규모 건축물을 만들어 낸 이집트 파라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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