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1. 출애굽 그리고 가나안 정착

5-5. 학계의 출애굽 연대설

Narin Pusil 2020. 4. 23. 19:10

5.5 학계의 출애굽 연대설[1]

 

 

 

 

출애굽년도를,

 

   BC 1446경 으로 보는,

 

(The Pharaoh that was leading Egypt in 1446 BC

would have been Amenhotep II who reigned from 1453 – 1419 BC.

This means that the Exodus would have occurred at the beginning of his reign.

Akhenaton." 1 Adding forty years to these dates to allow for the interval

between the exodus and the fall of Jericho,

the date of the exodus would be between 1440 B.C. and 1415 B.C.,

which is a close approximation to the 1446 B.C. already deduced from other considerations.)

 

Leon Wood/ Andrew Hill/ John Walton등의 ① 초기연대설 

 

 

BC 1250경 으로 보는,

 

 

Traditional date of the beginning of the Trojan War. c. 1250 BC.

The historical period between 1200 and 900 BCE

has been labeled the “Greek Dark Ages”

or (more precisely) the Submycenaean Period.

After the Mycenaean Palaces fell,

because of multiple devastating factors

(such as war, bronze drought, water drought, and the destruction of trade routes),

civilization thinned out.  

미케네 궁전이 함락된 후 전쟁, 청동기 가뭄, 물 가뭄, 무역로 파괴 등 

여러 파괴적인 요인으로 인해 문명이 쇠퇴했습니다.

Upper portion of a granite figure from Thebes, 1250 bc;

in the British Museum.

Ramses II, known as Ramses the Great,

(flourished 13th century bc), King of ancient Egypt, 1279–13 bc.

 

The Sea Peoples

are a hypothesized seafaring confederation that attacked ancient Egypt

and other regions in the East Mediterranean

before and during the Late Bronze Age collapse (1200–900 BCE). 

바다 민족은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200-900년) 붕괴 이전과 도중에 

고대 이집트와 동지중해의 다른 지역을 공격헸다는 가설

 

 

William F. Albright등의 후기연대설 있다.

2가지설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두가지 설이 인용하는 메르넵타-비석(碑文: BC1220)에 대해 이후에 상세히 거론하기로 한다.

(공통적 학설: 석비에 내용같이 가나안지역의 히브리인들을 평정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기원전 1220, 이 시기 보다 먼저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다.)[2]

 

 

 

 

 

   BC 1446년경 초기연대설 

 

 

문자적 해석

  BC 1240년에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 되었고,

여호수아 정복연대를 BC1400-1350년 기간 사이로 보고

사사기11:26에는 입다(등장시기 BC1173-1050)가 등장하기전

이미 요단 동쪽에 거주한지 300년이 되었다고 했고

 

무엇보다도 왕상 6:1에 의거하여 출애굽한지 480년후

솔로몬 왕 시대, 그의 재위4(BC966/960/957)에 성전공사가 시작 한것으로 보아

대략 BC1446으로 본다는 것이다.

모세의 유랑생활 40년을 대입하면,

어쨌든 대략 BC1440-1390년 기간 사이에 일어난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아마르나(팔레스틴, 다윗, 하비루…)

2) 투트모세 3세의 꿈 등 성서고고학 유물

3) 위의 3학자간에도 견해차이가 있다.

 

4) (필자 注) 

당시 철기문화의 병기를 지닌 스키타이 족이 서남아시아 북방에 있었으므로

청동기에 머물고 있던 이집트가 진출하기 어려웠을것이므로

투투모세 3세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BC 1250년경 후기연대설(1290 1280)

 

 

1)    출애굽 1(*라암셋2, 라암셋의 비돔성 건축)

2)    가나안 정복 기록에 언급된 도시들이, BC13세기에 파괴된 증거

3)    요단 동쪽에 중기 및 후기 청동기 유물 출토

 

4)    비로소 이집트왕국이 철기시대에 이르러

세티1세와 람세스2세의 군사원정으로

힛타이트와의 카데시 전투(아래부분에서 설명이 전개된다)를 벌인다.

 

5)    BW 앤더슨 1250년경 라암셋(람세스)2세때 출애굽이 일어났다고 한다.

 

 

 

https://www.tandfonline.com/na101/home/literatum/publisher/tandf/journals/content/ypeq20/1941/ypeq20.v073.i03/peq.1941.73.3.110/20151212/peq.1941.73.3.110.fp.png_v03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은 

기원전 1446년경의 초기 출애굽을 주장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를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출애굽을 기원전 1270년으로 추정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출애굽 날짜와 관계없이 몇 가지 사건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a) BC 966년 솔로몬 성전 건축 날짜. 

b) 사울, 다윗, 솔로몬의 연합 통치 기간 ~120년; 

c) 출애굽 직후 40년 동안의 광야 방랑. 

 

유일한 변수는 여호수아와 사사기의 기간입니다. 

늦은 날짜(BC 1270년)는 람세스의 통치 기간

(40년 이상 통치한 두 파라오 중 한 명 – 모세가 광야 유배 기간)과 

기원전 123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팔레스타인 전투의 증거(여호수아의 정복 이후 광야 방황). 

그러나 후기 출애굽기는 여호수아와 사사기에게 180년을 허용한 반면 

초기 출애굽기는 356년을 허용합니다. 

이전 날짜에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1. 열왕기상 6:1은 출애굽이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시작되기 480년 전에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을 12지파 x 40년의 시련을 의미한다고 영적으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기원전 1270년을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투트모세 3세의 60년 이상의 통치는 

그를 압제의 파라오로서 이상적인 후보로 만들고 

그의 아들 아멘호테프 2세는 출애굽의 파라오.



2. 사사기 11:26에서 입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 300년 동안 그 땅을 소유했다고 말합니다. 

기원전 1270년의 출애굽으로 그는 솔로몬 통치 기간에 그러한 진술을 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 시나리오는 입다가 

솔로몬(또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사울)이 태어나기 오래 전에 살았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습니다.

3. 사사기의 통치가 겹칠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사사기에 명시된 활동과 시간은 180년 기간으로 잘 압축되지 않습니다.

4. Merneptah Stele은 대략 기원전 12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스라엘 국가가 Pharaoh Merneptah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말합니다. 

후기 출애굽으로 인해 여호수아는 메르넵타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때까지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데 20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20년은 군사적으로 정복할 만한 나라를 건설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5. 람세스 2세의 아버지(메르넵타의 할아버지)인 파라오 세티 1세는 

이스라엘의 아셀 지파와 같은 지역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이는

 '아셰르'라고 불리는 일단의 사람들을 언급했습니다. 

이 그룹이 하나이고 동일하다면 이것은 후기 출애굽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6. '하비루'에 대한 아마르나 서판의 언급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영토를 확립하기 위해 싸웠던 동안의 활동과 잘 일치합니다.

7. 이푸워 파피루스는 

열 재앙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사건을 묘사합니다. 

기원전 1600~14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8. 우리는 이집트 역사에서 Amenhotep II가 

Thutmose III의 장남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모든 맏아들이 죽은 열 번째 재앙 동안 그의 생존을 설명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초토화되었고 그 씨앗(혹은 자손)은 사라졌다.”
이스라엘이 민족임을 알려주는 메르넵타 비석의 이집트어,

 

도시나 국가를 지칭는 다른 기호들이 사용됨
이 기념비에 묘사된 원정의 연대는

B.C.1234(레온우드), 1205년(허셜 셍크스)으로 확정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메르넵타에게 정복당했다면

이스라엘은 40년 전에 이집트를 떠난 것과 그들이 서부 팔레스틴의 정착민임을 시사해 준다.

이스라엘이 이 무렵에 가나안에 도착했다면

이집트의 심각한 적수가 되지 못하며, 이스라엘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이스라엘 전체, 즉 12지파 전체를 의미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여리고 함락 연대에 대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리고의 증거가 출애굽의 초기연대를 뒷받침한다고 믿었다.
여리고성은 아멘호텝3세(B.C.1414-1378)의 집권 때에 무너짐,

발견된 거대한 이중 성벽은 대지진과 같은 재난에 의함

 

 

 


[1] 김회권, 모세오경 (복있는사람, 2017) 506-

[2] 김희권, 모세오경 (복있는 사람, 2017) 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