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6.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해야만 하는가?

3. 그렇다면 “빈곤”이란 무엇인가?

Narin Pusil 2021. 6. 10. 12:57

ㅡ지구촌 인구의 절반인 30억명의 남녀노소는 하루 2달러 안되는 돈으로 살아간다.

 

1. Ted에서 Andrew Yoon은 “빈곤”은 미래를 잃게 되는 것이라 말한다.

먹지 못함으로 3명 중 1명의 어린이는 영구적으로 발육이 정지가 된다 말하며,

보건혜택을 받지 못해서 10명 중 5명은 5세 이전 사망하게 되고

오직 4분의 1 정도 되는 아이들만 교육과정을 마치게 된다고 말하며,

이를 ‘극한-가난(extreme poverty)’이라 했다.

이는 그들의 미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했다.

 

 

 

 

2. 우리 주변에서 가난을 돕기위한 그 빈곤을 퇴치하고 있는

여러가지 형태로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we are the world"라는 슬로건 아래 "compassion!!"을

love of mankind(humanity)를 외치며 고통을 나누자는

그러나 돕고 퇴치하자는 여러형태속에 그 운동들은 더욱 더 다양한 사업들로 발전되지만

빈곤은 그치지 않고 가난과 그 운동들은 계속 되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의학의 발달로 그나마 아이 사망율은 많이 줄어 들었지만

빈곤이 인간사회에서 계층별 지역별 인종별로 사라지지 않고 여전하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그리고 어찌해야 we are the world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해야만 하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만의 특징이 있는 걸까?

 

 

 

 

3. 그것은 원천적으로 사무엘 스마일스가 말한 원죄의 결과인

인간 탐욕과 함께 교만 때문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사람 역시 동물인지라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앞에는 사랑이건 이성이건 통하지 않는다.  

가난이 심해지면 살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무엇이든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이다.  

언론에 알려진 흉악범들 중 많은 이들이 빈곤을 범죄의 원인으로 꼽는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빈곤이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박탈감의 의미가 포함된다.

 

 

4. 그러나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많이 다룬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에게 어떠한 잘못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지는 천당가고 부자는 지옥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솔로몬 세대나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게 당시 로마제국과 헤롯왕정 치하였던 그때도

부정부패속에서 가진자의 횡포와 착취가 진행되던 사회였다.

 

거지가 죽어서 아브라함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부러운 모습을 바라보는 죽어 고통중에 있는 부자를 보게된다.

그 일화가 상징하는 것은 천당과 지옥을 말하기 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리적 측면의 업보와 비슷한 예화가 아닐까 한다.

바리새인(부자 혹은 기득권층)에게 권고하기를,

당신들도 “죽고나면 역전될 수도 있다”는

인간의 삶에 대한 윤리 도덕적 교훈의 말씀으로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속에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는

반-복음주의적 인간들에게 주는 그저 복음적 메시지라고 보인다. 

 


5. 폭력에 노출되어 노예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3천5백만명이 있다면 이 사실을 믿을까..?  

이것은 선진국 이야기는 아니다.

아주 못사는 지역들에서 일상적인 폭력에 의해 일어나고 대물림까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빈민의 아이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생기는,

전쟁이나 학살보다 더 두려워하는 ‘성적(性的)폭력’에 고통을 받고 있다.  

 

정치 선진국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특히 사회적 힘이 있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또 약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법치(法治) 부재속에서

정치권력, 경제(재벌)권력, 단체권력, 가정권력, 성적우월권력 등등의

약육강식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가난에서 노예상태와 다름없는 상태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