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6.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해야만 하는가?

4. 종교적 측면

Narin Pusil 2021. 6. 10. 13:45

 

 

 

1.  인간의 1%가 99%를 지배하는 시대에

성서에서 상고할 일 하나는, 이사야 66장 3절과 같이

일반 백성들은 감히 행할 수 없고 권력과 부를 지닌 자들이어야만 행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이사야, 미가, 말라기 등 유대 선지자들은

목숨을 걸고 독을 뿜어가며 그들의 나라 권력자들의 잘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의 하나님인 야훼의 심판을 외쳤었는데,

권력을 가진자들의 참회가 없는 그들 나라는 민심이반으로 결국 망해 버렸다.  

 

솔로몬시대 이후 국가의 부가 바르게 배분되지 않고

국가의 부()가 욕망의 포로가 된 지배 계층들에게 독점됨에 따라

사회계층의 양극화 현상이 시작되어  

먹이사슬 속으로 들어가 없는자들은 채무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내산 언약의 평등주의와 지파간의 형제애를 상실하고,

신자본주의적 성향의 “가나안-페니키아적” 사회원리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전 8세기 예언의 사회학적 이해 - 임상국)

 

 

2. 이런 현실을 보면, 1991년 서울에서 발표된 JPIC문서중 - 확언 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의 편에 서신다는 것을 확언한다."다는

결의제안과 그 내용들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가 하는 우려를 들게 한다. 

 

    날로 심화하는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의에 의해 억압당하는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약자들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고 대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들에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인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자들의 폭력에 의한 환경파괴 첫 번째 희생자가 되고 있는 현실에,

기독교 JPIC운동이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정치권력의 부패가 기생할 수 있는 국가예산의 투명성에 힘을 기울여야 하고,

경제(재벌)권력과 정부(관료)조직이 유착하여 날뛰지 못하도록

강력한 사법제도를 완수하여 이를 제대로 적용 시행하게 하며,

사회폭력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목숨을 걸고 이것들에 강력한 제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잘못이 다시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도 그의 갈릴리 동포들의 빈곤에 분노했기에,

사마리아를 거쳐 유대땅으로 들어가 유대인의 헤롯성전에서 그 분노가 폭팔했던 것이다.

 

 

 

3.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기독교 쪽의 대안인  AGAPE Process를 보자.

 

     공산주의는 특정지역에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지만,

강대국, 특히 미국에 의한 신자유주의는 지구 도처에서 사람들을 빈곤과 싸움을 만들어

죽음을 불러오고 있고 심지어 자연의 동식물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죽음을 조장하고 있다. 

사회주의 특히,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자기기만의 낡은 공산주의를 내세우며 독재왕권 국가를 주적으로 두고 있어

그동안 반공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반공세력들에 의해 자본주의의 약점이나 잘못된 점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장점으로 보완하려는 사람들을

종북이나 빨갱이로 모는 정치후진국의 한국에서는,

특히 자본주의가 마치 왕과 같이 절대적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있는 자본(Mammon)을 신격화하는

신자유주의를 영적 전쟁의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교회는 어떠한가?

수백개의 교단으로 갈라지고 또 그 교단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대형이냐 소형이냐에 따라 목소리가 다른것은 물론이고 틀리고

심지어 서로를 파괴하는 일까지 나타나 신자유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 Agape Process만으로 하나님의 공평함을 이룰수 있겠는가.....

기독교인들이라면 자본주의와 하나님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성경적 진리다. 부패로 타락하여 황폐해진 세상보다,

부패로 타락하여 황폐해진 교회에 대한 문제해결이 에큐메니컬-운동

혹은 Agape Process에 선행(先行)되어져야 하는것이 아닐까 한다.[1]

 

 


[1] 박용권, 생명목회와 에큐메니칼 운동, WCC 사전 워크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