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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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6.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해야만 하는가?

5. 바이블에 나타난 차별과 폭력과 갈등 - 1

Narin Pusil 2021. 6. 10. 13:57

자본(주의)의 특성

 

자본주의, 그 이윤추구라는 무서운 특성,  특히 대자본의 약탈적 속성으로 

노동자는 끊임없이 착취를 당하게 되어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제어 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어느체제보다도 잔인하게 나타나게 된다. 

물론 그런 체제하의 종교(정치)도 다르지 않다.

 

바이블에 나타난 차별과 폭력과 갈등 - 1

 

1. 유대문학에서 가난한 자에 대하여 긍정적인 표현으로 직접 언급한 것은 복음서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에 흐르는 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1] 

복음서에서 가난한 자는 경제적으로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확대할 수 있다.[2]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보다 오히려 누가복음은 전통적인 자료를 상당히 많이 전달해 주고 있는데,

그 속에는 사회적인 구분에 의해 창출되는 가난한 자와 부자의 문제가 많이 나와 있다.[3]  

 

 

2.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산상수훈을 통한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과 부자에 대한 저주의 말씀 (6:20-26)과,

특히 19절에서와 같이 전도서에서도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 했는데, 

부자지만 어리석은 농부의 모습(12:16-21),

선한 행위에 대한 내용없이 기록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16:19-31),

세리장인 부자 삭개오와 예수의 저녁식탁의 대화 (19:1-10)

악한 포도원 농부들 이야기(20:9-19)등을 찾을 수 있다. 

 

예수와 가난한 자들의 유대를 누가는 유난히 강조한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이런 누가의 반응은

그가 전달하는 알렉산드리아, 비시디아-안디옥, 에베소, 데살로니카 (예루살렘) 등등의

디아스포라의 공동체의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기록했다고 보인다. 

말하자면 예수 가르침에 대한  누가의 사회적인 평가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질문들에 대해 때때로 타협할 줄 모르는 누가복음서의 표현들은

결국 누가가 사회주의 사상가라는 별명까지 얻게 만들었다.[4]

 

 

3.  특히 부재지주 스토리를 배경으로 하는 악한 포도원의 농부들의 이야기는

예수 당시 로마사회 경제제도를 첨가했던 유대나라에도 흔이 있었던 일이다.

로마식민지인 유대 권력과 부를 지닌층이

갈릴리, 스불론, 납달리, 잇사갈, 갈멜산, 샤론평야 등지의 비옥한 토지와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유대에서 살지도 않고 권력중심인 로마에서 질좋은 생활을 누리면서

때가되면 그들의 종을 보내 소작인들로 부터 꼬박꼬박 세만 받아가던 시대적 배경이 있는 스토리이다.

 

 

4.  또한 부정부패속의 헤롯왕가의 지배를 받는 유대, 민중들은 착취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콘텍스트를 알아야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로마 혹은 분봉왕들에 대한 저항운동에 가담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직업이 없는 사람들, 유랑 노동자들, 절대 빈곤한 자들이었다.

극단적인 가난이 열심당의 반란을 촉진시켰던 요인들 가운데 하나였다.

착취적인 경제구조가 한때 풍요로웠던

그러나 그 풍요를 로마와 헤롯에 빼앗긴 갈릴리에 소요와 불안을 고조시켰다.

 

 

5. 로마의 지배와 이민족의 왕정정치에 대해 유대-민족주의 뿐만 아니라

빈궁한 경제 상황이 특히 갈릴리의 저항운동을 더욱 부추기게 되었다.  

더구나 BC 25 년과 AD 46-48년(행 11:28)에 있었던 두 번의 기근이 그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다.

소통없는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에는 끊임없이 갈등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로마로부터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 지도자들로 부터,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압제를 당한다고 느끼고 있었다.[5]

 

 

6. 그리스-로마 세계 역시 물질적 부는 아주 불공정하게 분배되었으며

극소수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토지와 자원을 독점하였다.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예수의 비유에 생생하게 나타난다.

 

소위 준봉건주의 (quasi-feudal) 계급사회로서

지주, 청지기, 소작농, 일용직 노동자, 종들이 나온다.

자색 옷을 입고 연일 잔치하는 호사스러운 귀족들의 생활이 나온다.

그리고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부자의 재산은 계속 늘어간다.

반면 가난한 자들은 빚과 고리 대금 때문에 노예가 되거나 감옥에 갇힌다.[6]  그

러므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막 10:25, 눅 18:25)은

오늘날에 일반화시켜 이해하기 보다는 당시의 부자들의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된다. 

 

 

7. 그리하여 소유의 집중은 물론 로마 정부와 제사장들이 요구하는

과도한 세금이 서민들을 경제적으로 못 살게 구는 원인이 되었다.

로마의 통치자들에게는 토지세와 인두세로 구성된 공물(직접세)과

연례소출(annona) 그리고 공공세금(publicum)을 내야 했고,

예루살렘 성전과 사제들을 위한 종교세도 내야 했다.

 

갈릴리 민중들은 과중한 세금 부담으로 부채가 없는 소농들이라도

중복과세로 인하여 연간 수확량의 35-40%를 바쳐야 했다.[7]

조세제도와 부채관계는 사회 계층 구조를 양극화하여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져와

상류층과 하류층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8]

 

 

8.  1세기 팔레스타인 사회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2개의 계층만으로 구분되었다.

상류층은 전체 인구의 10% 미만이었는데 이들은 토지 소유자, 전통적인 귀족, 임명된 관료,

선임 제사장, 상인, 정부 관료, 그 밖의 지배계급의 필요에 따라 이들을 섬기던 공복들이었다.

90% 이상을 차지하는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류층을 형성했다.

 

 

9.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비유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라는 두 계층을 전제로 하고 있다.[9]  

당시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경제가 독자적으로 운용되는 때가 아니었다.

정치와 친족(politics & kinship)에 의해 지역 경제가 독점-지배 당하고,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의 축척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다.

 

예수는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았고, 그 가운데서 죽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파괴시키는 가난을 보았고,

소수의 사람들이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것을 무수히 목격했다.

가난한 자는 종교 지도자들로 부터 멸시 당했고,

거룩한 구역에서 축출을 당했고, 율법과 세금에 있어서 과중한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예수 가르침인 말씀의 초점이고 관심의 중심이 된 사람들이었다

 

 

10. 누가는 가난이라는 용어를 예언적인 관점에서 사용한다.

가난은 하나의 악으로 하나님 나라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역사속으로 들어와 이런 인간실존 전체를 변화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팔복의 이유를 좀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정의가 되살아난다는 선포가

불행하고 불운한 삶을 살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나라로 예고되는 새로운 시대에 혜택을 받을 자들이기 때문이다.[10]

 

 


[1] M. Hengel, Property and Riches in the Early Church (London: SCM Press, 1974),17.

[2] Sharon H. Ringe, Jesus, Liberation, and the Biblical Jubile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51.

 

[3] Luise Schottroff, Jesus and Hope of the Poor (Maryknoll, NY: Orbis Books, 1986), 67

[4] R. W. Pohlman, Geschichte der Sozialen Frage und des Sozialismus in der Antiken Welt (Munich, 1925), 470

[5] M. V. Abraham, Good News to the Poor in Luke's Gospel Bangalore Theological Forum, Vol. XIX, No. 1. (April, 1987), 1-2.

[6]스탐바우 발취, 「초기 기독교의 사회 세계」, 윤철원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0), 84.

[7] Bruce J. Malina and Richard L. Rohrbaugh, Social-Scientif ic Commentary on the Synoptic Gospel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92), 332-33

[8]조태연, 갈릴리 경제학 「신약성서의 경제윤리」(신학논단, 4), 86.

[9]도널드 크레이빌, 「돈, 교회, 권력 그리고 하나님 나라」,정영만 (서울: 요단 출판사, 1999), 93.

[10] Gustavo Gutierrez, A Theology of Liberation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73),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