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신학 이야기

■부활절이라는 것 .......

Narin Pusil 2021. 3. 27. 07:52

■부활신앙 .......

 

1) 부활은, 예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사는 생활 속에서 깨닫고 깨달음에 의한 거듭나고 거듭남으로서의 삶의 가치, 즉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의 궁극적인 개념으로 그 승리(선, 영생, 정의...)의 주체는 "하나님과 나"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속에서 나타난다.

2) 부활신앙은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같은 시대에는 없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신(神)이라는 야훼(YHWH)와의 약속으로 선택된
그래서 선민(選民)이라는 기독교의 원조, 유대교에는 없었다는 말이다. 예수시대로 부터 대략 200년전 영혼불멸의 헬라사상으로  정착되었던, 자기탓 없이 그래서 죄없이 죽어간 혹은 학살된 어린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연민과 반성으로 생겨났던 조로아스터의 부활신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성전정화 / 종교권력의 부패 / 시대가 낳은 거라사의 광인 /  아기 하나님 예수 (엄마 마리아, 할머니 안나)

   3) 하늘에는 부활 개념이 없다.  부활이라는 것은 땅에서 이루어 지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 예수가 부활했다는 의미는, 역사에서 선(善)의 편에 서는 사람의 삶은 의미가 또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부활을 외치고자 하는 것이다.  불의에 저항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역사의 희생자들의 편을 들어 준다는 것인데 ... 역사의 대부분은 슬프다. 왜냐하면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가 그처럼 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슬픈이야기다. 그리하여 그날에는, 그날에는 들어 주실것이라는 믿음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4) 부활은, 어둠에서 빛으로, 악함으로부터 선함으로, 불의함으로 부터 의로움으로 .. 의 궁극적인 승리를 바라는 것으로,
<탐욕으로 부터 비움을 말해주는 빈무덤>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 글로버는 그 앞에 나타난 이가 나사렛 예수라 말했듯이 로마, 헤롯의 유대왕정, 헤롯성전의 종교권력의 수탈과 그리고 그들의 수하가 된 기생충들의 착취로 먹고사는 일조차 힘든 예수의 갈릴리 동포들 그리고 가난속에 있던 그들의 삶을 말하는 .. 나사렛, 그때 시대적 상황속에서 보여주시고 행동으로 보여 주었던 갈릴리 나사렛 사람 예수 .... 그의 정신을 오늘날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

 

 

미트라 부활신앙

 

 

고대 인도-이란어족의 계약과 맹세의 신, 광명의 신. 이후 태양신의 신격이 추가되었으며, 고대 로마에 퍼지면서 승리의 신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며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무적의 태양신)라고도 불렸다. 영어 발음을 따라 미스라라고도 표기한다. 미트라의 신명神命 자체가 '계약'이라는 뜻으로 본래 미트라의 역할이 계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친구라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미는 '매다'라는 뜻이고 트라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미트라의 기록 중 제일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1400년경 히타이트와 미탄니(후르) 왕국과의 평화조약으로 반-호수 남동 영역에 비석이 있다. 그곳에서 미트라는 협정의 증인이며 유지자로 기원되는 5신 중의 하나로 그 시절부터 미트라는 꽤 지위가 있는 신이었다.

 

태양신 미트라  Late 4th-century Sasanian relief of Mithra

 

 

"예수 이야기"가 탄생되기 이전에 이미 유대땅에는 그러한 부활신앙과 신(神)에 대한 사상이 차고도 넘쳤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후일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초대 교부중에 한사람인, 테르툴리아누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실을 곡해하는 것을 일삼는 악마는 성사(聖事)의 정확한 전말을 흉내낸다.

        악마는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고, 성수(聖水)로 인해 죄가 용서된다고 약속하며,

        신도들을 "미트라" 의식에 입문시킨다. 그래서 악마는 성찬 봉헌식을 행하며

        부활의 상징을 끌어 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신성한 것들을 흉내내는 악마의 간교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초대 로마교회가 그 권력을 쟁취하고 나서 이교도의 책들을 다 불사르게 된 원인중의 하나가 너무도 이들의 신양이 "예수 이야기"와 흡사하였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Coinage of Kushan ruler Kanishka I with Miiro (Μιιρο), "Mithra". Circa 120-150 CE

 

미트라는 12월 25일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② 그는 위대한 방랑교사였다.

③ 그에게는 열 두 제자가 있었다.

④ 기적을 행했다.

⑤ 미트라는 태양신의 아들로서,

미트라 성 삼위일체설을 형성하였다.

⑥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일어났다.

⑦ 미트라 교도들은 그가 부활한 날에 축제를 베풀었는데,

그 날은 지중해의 여러 나라에서 춘분축제였으며,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이 되었다.

⑧ 사람들은 그를 선한 목자로 불렀다.

⑨ 그는 길이요, 진리요, 빛이요, 구세주 혹은 메시아로 여겨졌다.

⑩ 미트라를 기리는 거룩한 날은

예수가 나기 수 백 년 전부터 이미 sunday 즉 일요일이었으며,

​그 날은 또한 主의 날이기도 했다.

​​

 

Mithra는 또한 빛의 신인 고대 인도-이란 신화에서 Mithras, Sanskrit-Mitra를 철자로 썼는데, 그 숭배는 동쪽의 인도에서 스페인, 영국, 독일까지 컬트가 퍼졌습니다. (미트라교 참조) 베다 미트라에 대한 최초의 서면 언급은 기원전 1400 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의 예배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페르시아인이 패배한 후 페르시아로 퍼져 그리스 세계 전역에 퍼졌습니다. 3 세기와 4 세기에 로마 제국의 군인들이 수행하고 지원하는 미트라 숭배는 새롭게 발전하는 기독교 종교의 주요 경쟁자였습니다. 로마 황제 코모 더스와 줄리안은 미트라교의 입문자였으며 307 년 디오 클레 티아 누스는 다뉴브 강에있는 "제국의 수호자"인 미트라에 사원을 봉헌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미트라는 횃불을 들고 칼로 무장 한 성스러운 시냇물 옆과 성스러운 나무 아래, 땅 자체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곧 생명을주는 우주 황소를 탔다가 죽 였는데, 그 피가 모든 초목을 비옥하게 했습니다. 미트라가 황소를 죽이는 것은 그리스 예술의 인기있는 주제였으며 미트라 컬트에서 황소를 죽이는 의식의 원형이되었습니다. 빛의 신인 Mithra는 그리스 태양신 인 Helios, Roman Sol Invictus와 관련이있었습니다. 그는 종종 비옥한 물의 여신인 아나히타와 짝을 이룹니다.    (←Britan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