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4, 신앙과 신학, 그리고 과정신학( Process theology

3. 그렇다면 종교적 믿음으로 문제가 해결됩니까?

Narin Pusil 2021. 1. 28. 20:54

1. 그렇다면 종교적 믿음으로 문제가 해결됩니까?

 

1)   진화 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 과학적 증거와 직접 충돌하는 명제에 대한 특정한 믿음을 일반화함으로써 모든 믿음을 비판한다.[1] 그는 “비 사고의 과정에서 나온 종교적 믿음이 증거없는 믿음이라고 주장하며,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 사고에 근거한 자연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있게 하여 자연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떨어 뜨리는 관행이고 또 자연에 대한 테스트가 필요하지 않은 왜곡된 지각은 능력이 없다면서, 일관된 예측을 하는 그런 능력은 신뢰할 수 없고 검토를 받을 수가 없다”라고 주장합니다.[2]

 

2)   철학 교수Peter Boghossian는, “이성과 증거가 ‘세계에 대한 클레임이 사실일 가능성’을 결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종교적 전통은 다른 종교적 주장을 한다며, 보고시안은  증거 없이 믿음만으로는 이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무슬림들이 632년에 죽은 무함마드가 마지막 선지자였다고 말한것과, 몰몬이 조셉 스미스(1805-?)가 선지자라고 주장한 모순적인 믿음에 대한 예를 제시하고있다. 보고시안은, “믿음에는 내재된 시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그는 지구가 6,000 살이라는 믿음의 예를 보여줍니다. 그는 믿음만 있고 이유나 증거가 없다면 이 주장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 이 주장을 바로 잡을 방법이 없다” 라고 말하며 보고시안 은, “ 믿음‘증거 없는 믿음’ 또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

 

2. 성서에서는 그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욕망의 굴레로 부터 해방

1)    히브리서 11장 첫머리에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the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Hebrews 11:1). 라고 말하고 있다.  삶을 얽매고 우리 안과 밖을 둘러싸고 있는 율법의 굴레로 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평화로움 그 삶의 해방을 맞이하게 될 우리에게 그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야 말로 소망하는 것들에 보증이 되고, 볼 수 없는 것들의 확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절대자를 믿고 따르며 그분의 가르침에 따른 교의(敎義)를 받들어 지키는 일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라 따르고 있어 왔다.

 

2)    신약에서 “믿음”으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 πίστις (pístis)로, “믿음”, “충실함”, “신뢰” 라는 의미다.[4]  신약의 영어 번역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그리스어 명사 πίστις (pistis) 또는 그리스어 동사 πιστεύω (pisteuo)에 해당된다. <신뢰 è 자신감è 신실è 신뢰1, 신뢰2,3,4 è 확신>이라는 순환적 구조로 나타난다. 기독교에는 신앙의 본질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설득되거나 무언가가 참되다’ 라고 확신한다고 생각한다.[5] 

 

3) 미국의 성경 학자인 Archibald Thomas Robertson은 신약에 대한 믿음으로 사용된 그리스어 pistis (200회 이상)는 사도 행전 17:31 (KJV)에서 "보증"으로 번역되었다. 톰 프라이스(Oxford Christian Apologetics Center)는 신약이 믿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 할 때 그리스어 어근 [pistis]에서 유래 한 단어들만 사용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설득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6]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사실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제시될때 무언가를 믿는다.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는 믿음이 단순한 의견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과학에 대한 과도한 의존(è데모효과)과 의견에 대한 과도한 의존 사이의 평균(è플라톤적 의미)이라고 주장했다.[7]

3)    위와같이 학자들 사이에도 믿음의 결과에 관한 수많은 견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참 믿음이 선한 일을 한다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신앙이 영생을 가져 오지만 반드시 좋은 일을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는 것이다.[8]  그리스도인이 취하는 믿음에 대한 어떤 접근 방식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예수의 생애의 이상과 모범과 일치한다는데는 모두 동의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신비와 은혜를 보고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려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은 경건한 가운데서의 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뜻)을 더 배우고 자라게 하는 동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라나면서 얻는 경험에서도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9]

 

4)    위의 히브리 서신의 저자가 히브리인들에게 주는 믿음의 정의는 성경을 신성한 진리의 근원으로 존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히브리서와 바울과 그리고 잠언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킹 제임스 버전(히11:1) (Cf.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게 될 보증이고 또,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한다는 확신감 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요.”(데살로니가 전서 5:21) 그리고. 잠언저자는 “순진하거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듣는 모든 말을 쉽게 오해하고 믿지만, 신중한 사람은 슬기롭고 단호합니다.”(잠언 14:15) 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더 큰 이해를 추구 할 때 변화를 일으킨다. 신앙은 일련의 규칙이나 진술에 대한 경이감 또는 단순한 순종일 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갖기 전에 누구를, 무엇을 믿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믿음에 이를 수 없으며, 이해는 시대와 지역 그리고 인종에 따라 신자들의 공동체, 경전 및 먼저 믿은자들의 경험에 따른 전통이 기초가 되어 신자의 개인적인 신앙도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10]  여기에 덧붙이자면,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는 그의 신학에서, “신앙은 개인적 용어로 사람에 대한 사람을 신뢰하는 약속으로 이해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헌신을 포함되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11]

 

무신론자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증거가 없어도, 맹목적인 신뢰를 보이는 것이 종교적 믿음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옥스퍼드 성공회 신학자 WH Griffith-Thomas (1861 ~ 1924)를 인용한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믿음은 맹목적이 아니라 지적 활동이고, 적절한 증거에 근거한 마음의 확신으로 시작된다 ..."고 했다. 맥그래스는 "믿음은 그 특성의 핵심 요소를 합성하는 선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의로 본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생각되는 믿음과는 매우 다르다”고 주장한다.."[12]  

 

 


      [필자의 견해]

신앙도 선택의 결과다.

 

종교적 믿음이라는 신앙이란 의미를 객관적으로 본다면, “필요한 것을 얻고, 힘의 근원이 되며, 변함이 없고, 가장 신뢰할 수 있으며, 도움 받을 수 있는, 세상을 초월한 어떤 존재, 그 무엇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삶으로 정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이라 명명한 어떤 존재에 대해 그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는 어떤이가 말하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여 종교화 되어 믿음의 특별한 체제를 확신하거나 신뢰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과 같은 숭배의 대상이나 그에 관해 썼다는 경전과 그에 따른 교리, 율법과 같은 종교적 규범, 성지순례라는 특정한 종교적 장소등이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과학(철학)적 사고가 현저히 뒤떨어 졌던 그래서 임신과 출산의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거나 혹은 의학적 기술도 형편이 없어 태어난 아기들이 대부분이 죽어 갔던, 원시(原始)시대, 중세시대 심지어 근세시대에 이르기 까지, 그저 저 하늘에 별들과 같이 많은 자손의 번식으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은 고대(古代)로 부터의 인간들의 첫 번째 소망이었다.  

 

그리하여 그 소망을 이뤄 나가고자 사람들의 관념속에 그 소망을 이루어 내게 도와주는 수호신(Guardian Angel)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들이 어디에 있든, 그 수호신들에 의한 자연의 신비한 힘이 그들에게 토템이 되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  

 

또한, 신앙이란 시대적으로 이미 인정된 것에 대한 확신과 동일하다.  '신앙'이라는 단어 자체는 원칙적으로는 종교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것뿐이 아니라, 니체가 말했듯이 일반적인 믿음이나 신념, 신의를 포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적인 뜻이 담긴 것이 압도적이라는 것이다.[2] 앞서 말했듯이 인생과 같이,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가고, 그 길에서 자신이 누리며, 결국 다른 누구가 아닌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신앙이다.

 


,[1] Alvin Plantinga , Warranted Christian Belief, 2000-1-27, USA: Oxford University Press. 169199

[2] Kenneth Boa, Faith Has Its Reasons: Integrative Approaches to Defending the Christian Faith, 2006-3-1, USA: IVP Books. 25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