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신학 이야기

■로잔언약의 실현성

Narin Pusil 2023. 6. 30. 09:39

 



■인권과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시 되던 1970년대의 한국 상황 중에 나온 로잔언약. 
   어제 그 강의(총신대 배춘섭 교수)를 들으면서 느낀점을 말한다.

  (8년전 SCD학부 강의로도 충분했고, 강의가 진부하게 느껴져 도중에 나왔다)


 


▪︎로잔 언약은 1974년 7월에 발표된 종교 선언문으로
그 내용의 핵심은 아래에 포함되어 있다.

▪︎ 왕정시대를 지나, 제국시대의 전도, 선교, 부흥등의 정복개념과
자본주의가 결합된, 기독교의 소위 20세기 복음주의 .. 사회참여, 사회개혁을 말하면서도, 소위 사제들의 무대인 교회라는 매개체를 21세기 오늘날도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주의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사(Church History)가 증명해주고 있지요.
교회안이 아니라, 교회밖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라는 말입니다.

▪︎ 그것은 갈릴리에서 전생애를 살았던 갈릴리 사람 예수가,
로마, 헤롯왕정, 헤롯성전의 종교권력 그리고 그곳 기생충들에게
수탈과 착취로 빼앗겨 비참하게 살아가던, 그래서 또 다시 하비루(Habiru: 하층민)가 되어버린 그의 갈릴리 동포들(Oikos)에게 위로와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그의 나머지 생애를 걸고, 갈릴리 길을 나섰지요. 따라서 그 길 위에서 보여줬던 그분의 마음과 몸을, 기독교 사상과 행동의 기승전결 하나하나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는, Bible, 신학(Theology)보다, 최우선적으로 예수 가르침을 따라야 기독교이기에 그렇습니다. 전도, 선교, 부흥이라는 것들은 물론 사회참여를 위해서도, 기독교인들은 처음부터 그리고 과정 그리고 결론도 예수 가르침과 행위로 귀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 예수당시, 그의 삶 자체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신앙,
그리고 부패한 제사장들에 대한 혁파(=사회개혁), 둘다에 해당 되었는데, 그리고 강의에서도 언급한 제국주의 정복개념의 전도, 선교, 부흥 그리고 자본주의가 결탁된, 20세기의 복음주의는, °부흥만을 위한 선교냐? 아니면, °사회참여에 의한 개혁이냐?  어느 쪽을 중시할지 논쟁해 봐야 ....
그래서 결국, 둘 다 신경쓰자고 결론이 났는데 .. 그 까닭은 여러분들도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 위의 Zoom 강의에서도,
신학교와 목사 안수받은자들의 주무대인 교회라는 매개체를 강조했는데 그렇다면 영원히 주의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교회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17세기에도 언급한 스피노자의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이라는 말입니다.
 
▪︎ 예수시대에는 지금의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후 1500여년동안 진행된 기독교 왕국및 제국 지배하에 있던, 시대적 세계관과 가치관뿐만 아니라, 여전히 문맹자의 시대였기에 전달 매개체로 내려오는 신전의식처럼 강단(교회)이 필요했던 것이지,  이젠 대부분이 고학력을 지닌, 인터넷 공간에서 거의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더구나 시민주권 국가시대가 된, 21세기 오늘날, 교회라는 울타리(Category)에 갇혀 지지고 볶고 할 것이 아니라, 더욱이 교회 밖 공간의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갈릴리 바다 주위로 납달리, 잇사갈, 즈블론등의 비옥한 땅을 빼앗기고, 그 땅에서 또 다시 하비루(Habiru: 하층민)와 같은 노예의 삶으로 돌변했던, 그래서 갈릴리 태반의 하루 전부가 일용할 양식(Daily Bread)에 대한 걱정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던 갈릴리 사람들.... 갈릴리는 예수가 전생애를 살아 갔던 곳입니다. 그렇기에 갈릴리 사람은 예수의 동포였지요. 그런 갈릴리 동포들의 삶을 피폐케 하던, 로마시민들을 비롯한 상층부 그중에서도 특히 종교권력에 대해 분노와 함께 온몸으로 권력에 저항했던 예수 .. 그가 동포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자 갈릴리 길을 나선것을 생각해 보면서, 사회참여를 어찌해야 하는가?  그것을 도출 해내야 할 것입니다.

▪︎손봉호 교수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예수님의 방식을 따르려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 목회자들 부터)
(심령이)먼저 가난해져야 한다. 낮아지고, 검소해야, 남을 더 잘 위로하고 도울 수 있으며, 정의로운 제도와 문화를 조성하는데도 더 효과적일 수 있다."  (2014. 11)
 
제국주의 정복개념의 전도, 선교, 부흥에다, 자본주의가 가미된, 소위 20세기 복음주의 ... 좁은문도, 좁은길도 설교에서 사라진지 .. 아주 오래됐습니다. 이젠 그것에 대해 실종신고 하는 기독교인 조차 없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비롯한 이단을 단죄하고 소위 정통 기독교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기독교회가 채택한 신앙 고백문이다. 낡아빠진 그 옛날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Antique(골동품)으로 가치를 높여, 초기교회 사고와 그 가치관을 이어가겠다는 로잔언약 ..
원시 과학적(?)사고 그리고 상상력에서 출발했던 이스라엘 시원을 알아내는 일이 아니라, 우주의 시원을 밝히려  '보이저' 인공위성 혹은 '제임스-웹' 망원경을 우주 공간에 올려놓은 21세기 오늘날의 과학적 사고는 물론 시대적 세계관을 무시하고 있는 로잔언약 .. 과연 21세기 기독교의 사명을 이끌 수 있을런지 .. 아니 예수 생각, 그 가르침을 실현시킬 수 있을런지 ...
 

ㅡ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하이어라키(hierackey) 우위를 점유하여,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해 나가겠다는 이기심으로 뭉친 인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