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시드니 인문학

인문학의 주제 ㅡ 사람 2 (Saram II)

Narin Pusil 2023. 3. 29. 21:31

ㅡ헬레니즘도 헤브라이즘처럼 신화적인 바탕에서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것들을 논리화 시킨것이다.   ㅡ인간은 개인적 Indiv. 독립적 개체다. feeding, fighting, fleeting  개인의 자유로운 행복추구

 

 

⚫  人文學의  핵심이며  제1  주제인  ‘사람’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우리말의 '사람'이라는 말은 우리 고유의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로도 Saram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사람'은 '삶'과 '앎'의 합성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주장입니다. '사람'이란 자신의 '삶'을 인식하고 그 삶의 의미를 '아는' 혹은 '알아가는' 존재라고 봅니다.(Saram - I)

 

종교나  하느님  문제까지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결국  사람  문제로  귀결이  됩니다.  사람이  우리에게  기쁨도  주고  사람이  우리를  슬프게도  합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은  대부분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탄핵된  박근혜  보다는  마약으로  교도소에  있는  우리  아들이  나를  더  불행하게  합니다.  

 

소포클레스의  말대로  ‘이  세상에는  이상한  것이  정말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는  50년을  함께  살아온  우리의  배우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식은  우리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니까  잘  안다고  자신할수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  곁에  앉아있는  ‘인문학의  친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지난  시간엔  주로  서구적  입장에서 보는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오늘은  동양적  사유를  중심한  사람이해에  촛점을  마추어  보고저  합니다.  오늘의  추천  도서는  신영복선생이  성공회  신학대학  인문학  교실에서  한  강의를  책으로  출판한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돌베개  2015)와  그  분의  다른  책인  ‘강의:  나의고전  독법’(돌베개 2004)과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돌베개  1998)  입니다.     

 

 

⚫  들어가는  말  

 

–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는  어떤  ‘인식의  틀’ ‘인식의  도구’(The Frame of  Knowledge, The Structure of Understanding, The Tool of Cognition)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서양,  혹은 서양 사람들은 이 인식의 틀과  도구를  주로  ‘문사철(文史哲)’  –문학과  역사와  철학-  로  여겨 왔습니다.  사람들이  남겨놓은  문학작품들,  역사적   흔적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담은  철학을  추적해 보면  그들의  사상과  인식의  틀이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흔히  ‘이성적  인식  방법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양,  혹은  동양인들은  이  인식의  방법을  ‘시서화(詩書畵)’ –시와  글씨와  그림-  이라고 여겼습니다.  시와  글씨와  그림이라고  했습니다만  이는  시와  그림과  소리를  뜻하는  겁니다.  즉  동양 사람들은 시를 짖고  그림을 그리고 (대부분의  동양화를  보면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에는  시가 깃들입니다)  ‘소리’를  하는  곳에  인간의  온갖  흔적들이  묻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야  말로  ‘감성적 인식  구조’를  여실히  보여  줍니다.  동양에서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를  머리라고  보지않고  가슴이라고  본  것입니다.  동양인들은  말  잘하고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  보다는  마음씨  곱고 인정이  깊고  생각이  바른  사람을  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사철(文史哲)에서  시서화(詩書畵)로  가야한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동양인들이 지닌 사고의  틀이요,  인식의  구조입니다.   오늘의  담론은  ‘동양적  사람  이해’  혹은  ‘동양적  사람  이해의  방식’입니다.     

 

 

(1)  최근의  경향은  많이  변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사람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형태로  출생하여  ‘여기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존재’하면  그것으로서  일단 ‘사람’입니다.  아무리  사람  같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해도  일단  사람의  모양을  갖추고  있으면  그도 여전히  사람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의  모양을  지니고  있기만  하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동등하고  동일한  인권을  갖습니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일찍부터  사람을  관계론적으로  이해하여  왔습니다.  우리  말의  ‘사람’이란  ‘삶’과  ‘앎’의  결합이며  ‘삶을  알므로’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보는  겁니다.  삶이란  무엇인지,  산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동양인들이  자주  ‘사람이면  사람인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나타냅니다.  서양에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사람답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한다고해도  그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서구적  인간이해를  그  바탕에  깔고하는  말입니다.  개인주의와  평등주의적  사상은  이런  서구의  인간이해에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  동양과 서양  사이에 생기는 인간,  인간의 권리, 인간의  자유,  인간의  조건에  대한  여러가지  차이점들이  발견됩니다.     

 

(2)  먼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사람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거나  규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내면적으로  이해합니다.  얼굴은  사람의  탈을  쓰고  있어도  마음과  인격은 마치 짐승과  같은 인면수심형(人面獸心形)의  인간이  있다고 봅니다.  동양에서는  아무리  사람으로  태어났고  또  사람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릇  그의  생각과  삶의  행태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사람으로  등급이  먹여지고  심한  경우에는 아예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양의  고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사람다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규정하고  설명하며  동시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는  책들입니다.  사서(四書)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가리키고  삼경(三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주역周易)”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서삼경  중에서  인간에  대한  동양적  이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간추려  볼  것입니다.  사서삼경을  통한  사람공부라  할수  있겠습니다.     

 

(3)  동양에서의  인간이해는  모든  인간을  상호  ‘관계’  속에서  봅니다.  서양  철학은  인간을  독립적,  주체적으로  봅니다만  동양은  인간을  상호  관계적으로  이해합니다.  서양에서의  인간은  개인입니다. 개인주의적  인간  이해입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집단적,  혹은  공동체적으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동양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결코  독립적이거나  독단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서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자연,  생물과  무생물,  심지어는  존재와  비존재  까지도  포괄하는 일체  모든  것들  속에서  더불어  함께  존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구 문명이 주도하는 사회 구도 속에서  인간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관계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관계의  황폐화  현상’은  개인과  가정,  사회와 각종  공동체,  국가와  지구를  넘어서  전  우주적  현상으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자기만  살려고 하고,  자기  가정만  지킬려고  하고,  자기  회사,  자기  사업,  자기  학교,  자기  교회,  자기  나라만  번성시키려고  안달을  하는  사이에  모두가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가문을 최 우선시)  이런  현상은  아주빠른  속도로,  전 지구적,  전 우주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문학의 정신  중 하나인  동양의  ‘고전’으로  돌아갈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2천  5백여년  전  동양의  성현들이  가르처준  사서삼경(四書三經)중에서  오늘은  사서(四書)에서  몇몇  예문들을  살펴봄으로  ‘관계  속에  있는  사람’에  대    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4)  먼저  핵심  개념부터  한마디씩  정리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대학(大學)의  중심  개념은 덕(德)입니다.  

대학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이란  덕스러운  사람이요  가장  아름다운  인간관계란  후덕한  삶의  태도입니다.

논어(論語)의  핵심은  인(仁)입니다.  

인은, 긍휼과 자비를  포함하는  개인과 개인 사이를  이어주는  인간관계의  핵심 개념입니다.

인생을  어질게  사는 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매끄럽게해  주는  윤활유라고  봅니다.

맹자(孟子)의  중심은  의(義)입니다. 

 의란  정치적  개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인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가는  공동체  개념입니다.  

의롭지  못한  어짐,  어질지  못한 정의는  모두가  잘못된  것입니다. 

중용(中庸)의  핵심은  정의(正道)와  적중(的中)입니다.  

그러나  그 것은  산술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균형을  마추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진리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정의롭고  아름다운  상태를  이릅니다. 

 

바로  이  덕(德)과  인(仁)과  의(義)와  균형(均衡)과  조화(調和)

이  네  가지가  이성(Ratio)을 갖추어야 할 사서(四書)의  중심개념입니다.       

 

(5)  ‘대학(大學)’은  공자의  제자  중  하나인  증자(曾子:  기원전  506-436)가  쓴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증자가  스승인  공자의  말씀을  편찬하고  해설을  덧붙인  것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대학은  유교의 경전  하나입니다.  대학은  그  시작에서  부터  대학의  목적,  유교의  목표,  사람됨의  의미를  이렇게  말합니다.  ‘대학지도는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이라고  했습니다. (주희는  친민:  親民을  신민:  新民으로  고쳤습니다)  이것을  대학의  삼강령(三綱領)이라고  합니다.  대학의  목표는  밝은  덕을  더욱  더  밝게  하는  것이며,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들  사이에  사랑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새 술은 새 부대에)이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최고의  선에  도달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3가지는  결국  ‘평화로운  세상’  ‘평화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려는데  있습니다.  대학은  우리가  이  세가지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팔조목(八條目)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8가지가  포함됩니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입니다.       

 

격물(格物)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찬찬히  살펴보고 사물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자세를  이릅니다.     

치지(致知)란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지혜의  극치에  이르는  단계를  말합니다.  

성의(誠意)란  마음과  생각을  바르게  하고  의지를  굳게하는  단계입니다.  

정심(正心)이란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고  다스리는  단계입니다.  

 

수신(修身)은  글자  그대로  몸가짐  까지도  늘  단정히  함으로  수양을  쌓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齊家)란  가정에 대한  의무를 다하여  식솔들에게 평안과 화목을  주는 것입니다.     

치국(治國)이란  그런 후에  한 지역이나  공동체나  나라  전체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천하(平天下)는  드디어  그가 사는 시대와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결론:  이것이  동양에서  보는  이상적  인간의  모습입니다.  

             더불어  평화를  만들어가고  평화롭게  사는  사람사는  세상입니다.     

 

 

(6)  ‘논어(論語)’는  공자(기원전  551-479)의  어록입니다만  공자가 직접  쓴  책이  아니라  훗날  공자학파:  孔子學派(孔子學團)의  작품입니다.  배경은  BC 5  세기  춘추전국시대입니다.  

 

     흔히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는  하나로  볼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철기문화가  들어서기  시작한  때이며  따라서  농사짖는  방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황무지의  개간,  생산량의  증대,  토지  개념의  변화,  상인들의  등장,  사회적  가치의  붕괴,  부국강병으로  국가의  가치관이  변화되는  시대였습니다.  12개나  되던  제후국들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하여  7개로  정립되었다가  마지막에는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공자학파는  이런  와중에서  생겨난  수많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에  나타난  민간  학파  중  하나였습니다.  

 

‘논어’에서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귀절  몇개를  살펴보겠습니다.         

 

*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悅乎),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면  불역낙호(不亦 樂乎),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논어  학이편:   論語  學而編  첫 귀절,  여기에서  習(습)이란  익히거나  복습이  아니라  실천이다.  /朋(붕)이란친구,  즉  계급사회가  아닌  수평적  인간  관계,  뜻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  증자왈(曾子曰),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위인모이  불충호(爲人謨而  不忠乎)  여붕우교이불    신호(與朋友交而  不信乎),  전불습호(傳不習乎)  (학이편:  學而編,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매일  세번,   혹은  세가지를  나를  돌아보면서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하면서  진심(忠)이  있었는가(不忠),  벗과  사귄다고하면서  신의가  있었는가,  말만하면서  행함이  있었는가)        

 

 *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면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  (위정편:  爲政編,  옛것  곧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더  나아가  새로운  미래까지  깨우치는  자가  스승,  곧  지도자라  할  수  있다.)       

 

*  군자불기(君子不器)  (위정편:  爲政編,  군자,  곧  지도자는  결코  하나의  그릇,  곧  도구가  아니다.     하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않된다.  군자는  일개  기능  보유자가  아니라,  전인(全人)이  되어야만  한다.         

 

*  자왈(子曰)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道之以政  齊之以刑  民    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위정편:  爲政編,  백성을  정치권력이나  형벌로  다스리게    되면  부끄러움을  모르게된다.  오히려  백성들을  덕(德)이나  예(禮)로  다스리면  수치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알게된다.  춘추시대  주나라는  지배계급은  예(禮)로  다스리고  하층민들은  형(刑)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지만  공자는  그  누구든지  다  예(禮)로  다스려야한다는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주장했다.  공자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부끄러움을  아는  데다  두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과  사회는  무너진다고  보았다.         

 

*  자왈(子曰)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하지  아니하고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니라  (자로편:子路編,  군자,  곧  지도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화목하질  못한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며  남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데  소인배는  늘  지배하며  다스릴려고 하니  피차에  공존하질  못한다.  공자의  화동편(和同論)에서  화(和)는  다양성,  관용,  공존을 의미하고  동(同)은  획일적  가치,  통일적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이다.  서구  사상과  식민주의  논리는  이  동(同)의  논리  위에서  진행되어왔다.  나와  다른  것은  늘  지배,  흡수,  합병을  통하여  나와 같게  만들려고  했다.  서구  식민주의  역사와  기독교  선교가  그  대표적이다.  다른  것을  못  보아주고 다른  것에  대하여  참지를  못한다.  나와  똑같이  입고,  먹고,  쓰고,  교회  다니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걸  기독교는  선교라고 했다....  선교인가?  자본주의  식민주의화인가?     화(和)는  논어의  핵심사상  중  하나이다.  모든  다른  것들도  인정하고  함께  평화롭게  공존공생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논어 자로편 제23장에 나오는 고사.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군자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모나게 행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바르지 않은 생각까지 동조하지는 않는다.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는 않는다'는 군자의 마음가짐)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 겉으로는 화합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딴 뜻을 품고 있다는 의미)한다"을 말한다.

 

 *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  

(상서편:  尙書編,  心好  –마음이 좋다, 마음이 착하다,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 이라는 사회학적 개념이다.  백범은  이  귀절을  그의  정치철학의  중심으로했다.)         

 

 

*  무신불립(無信不立) –  신뢰,  곧  믿음이  없으면  결국  무너질수  밖에  없다는  이  말은  안연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공문정,  자왈  족식족병  민신지의,  자공왈  필부득이이거  어사이자하선,  왈거식,  자고개유사  민무신불립(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泌不得己而去  於弃三者何    先,  曰  去兵,  子貢曰,  泌不得己而去  於弃二者何先,  曰去食,  自古階有死  民無信不立.)  여기  이  마지막  말이  바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信이란  사람 人에다  말씀  言이  합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말을  믿는  것이  곧  신뢰다.       

 

 

*  번지  문 인(仁) .. 자왈, 애인, 문지, 자왈지인(樊遲問仁, 子曰愛人, 問知, 子曰知人)  (안연편, 공자의  중심  사상은  仁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  곧  愛人이요,  知란  사람을  아는 것,  곧  知人이다.  사람을 아는 것이 진정한 지식이요,  지혜다.  그리고  知人이란  ‘한  인간에  대한     구체적  이해이며  동시에  그가  살고  있던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된다.  이어지는  그     다음  가르침이  己所不欲  勿施於人이다.)         

 

*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側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側殆)  (위정편,  學하되  思하지  아니하면  어    둡게되고  思하되  學하지  아니하면  위태로워진다.    여기에서  생각할  思란  실천,  경험,  행동을  이    르는  말이다.         *  학즉불고(學側不固:  배운  사람은  결코  완고해지지아니한다.    공부란  머리로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하는  것이다.  공부란  결국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  무사무욕(無私無慾:  내가  없어야  욕심도  없어진다.  내가  욕심이  있는지  아닌지는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잘안다.  타자의  시각이  나보다  더  정확하다.  교단에  서있는  선생  보다는  교단  아래에     있는  학생들이  선생을  더  잘  본다.  설교하는  목사  보다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더  유리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집단적  타자인  대중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겸손해야  할  이유는  바로  ‘나    만  모르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  자공  문왈  향인  개호지  하여,  자왈  미가야라,  불여향인지선자호지  기불선자오지  (子貢問曰  鄕    人啓好之何如,  子曰未可也라,  鄕人啓惡之何如,  子曰未可也라,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    之)  (자로:  子路편,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좋은  사람이라고  할수  없다.  다시  자공이  묻기를  그렇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    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  역시도  좋은  사람은  아니다.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느니라.    만인으로부터  다  호감    을  사거나  만인으로부터  다  미움을  받는  경우는  둘다  좋지  않다.  그런  경우는  위선이나  위악으    로  부터  생겨난다.  양  극단이란  실재하지도  않거니와  있다고해도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사회란     이웃을  내  몸  처럼  사랑  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반대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터도  아니다.     인간  세상이란  사랑과  증오,  모순과  대립이  공존한다.  이런  사실을  은폐하거나  마화  하거나  부정    하려고  해서는  않된다.)         

 

*  자왈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옹    야편,  여기에서  知란  사물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고  好란  그  인식된  사물과  나의  관계이며  樂이    란  그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상태를  말한다.)         *  마구간에  불이났다.  공자가  와서  다친  사람은  없는가고  물었다.    말에  대해서는  묻질  않았다.     두  가지  의견이  있었다.  첫째로  공자는  참으로  인간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주장이었고  다른  하    나는  공자는  생명에  대한  생각이  편협하다는  주장이었다.  어찌  사람의  생명만  생명인가?  공자     당시  말  한마리  값은  노비  세사람  값과  같았다.  비싼  말에  대해서  묻지  아니한  공자는  어떤  생    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있을까?         

 

*  공자가  14년  망명  생활을  하던  때였다.  진과  채  나라  사이에서  여러  날  굶주려  일어날  기력도     없던  때였다.  공자는  그런  와중에도  금琴(거문고)을  켜고  있었다.  자로가  와서  물었다.  ‘군자역유    궁호:  君子亦有窮乎’(군자도  궁  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고궁:  君子固窮’(군자    는  원래부터  궁한  법이라네)  -  지도자,  선비,  교수,  스님,  목사,  신부도  궁  할  때가  있습니까?  그 들은  원래부터  궁한  법이라네.  어쩌다가  가끔  먹을  것이  좀  생길  뿐이지  원래는  늘  굶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라네.         *    결론:  위에서  본  대로  논어에  나타난  군자는  관계속의  인간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이란  인간과 이웃,  사회와  나라를  인애(仁愛)로  대하는  사람으로  보는  겁니다.     

 

 

(7)  맹자(孟子)는  공자가  죽은  후  약  백년  뒤에  태어났습니다.  

공자가 춘추시대 인물이라면,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입니다.  앞에서  본대로  공자의  중심  개념은  仁인데  비하여  맹자의  중심  사상은     義입니다.  공자가  주장한  仁은  개인적  인간관계를  말하고  맹자가  주장하는  義는  사회적  인간관   7 계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총  7편, 261장, 3만  4685자로  된  큰  책입니다.  춘추시    대와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무도(無道)의  시대요,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였습니다.  살해된  임금만     해도  36명이었고  전쟁으로  망한  나라는  무려  52개였다고  전해집니다.         

 

*  맹자견  양혜왕  왕왈수불원천리이래,  역장유이이오국호,  맹자대왈,  왕하필이  역유인의이이의(孟    子見  梁惠王  王曰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己矣)  (양    혜왕편  -  여기서  仁은  공자가  주장한  개인적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義는  맹자가  주장하는     사회적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  여민동락(與民同樂)  (양혜왕편  –  與民,  즉  ‘백성과  더불어,  백성과  함께’라는  말은  맹자의  민본    사상:  民本思想을  드러냅니다.  락(樂)이란  동락(同樂)이지  독락(獨樂)이  아닙니다.  이어서  맹자는     말합니다.  한  나라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다.  그  다음은  사직이고  제일  끝이  임금이다.  임금    과  사직(종교권력,  종교  지도자,  종단)을  두는  이유는  백성의  평안을  위해서이다.  임금은  바꿀수     있다.  사직은  헐어버릴수  있다.  그러나  백성은  그럴수가  없다.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굶어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왕이  이것은  내  탓이  아니라  흉년탓  이라고  한다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  ‘이는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이  칼이  죽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무측은지심  비인야  무소오지심  비인야  무사양지심  비인야  무시비지심  비인야  측은지심  인지단    야  수오지심  의지단야  사양지심  예지단야  시비지심  지지단야  인지유시사단야  (無惻隱之心  非人    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    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측은지심이없으    면  이는  사람이랄수가  없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도  사람일수가  없다.  사양할  줄을  모    른다면  이  또한  사람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가릴수가  없다면  이  역시도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仁의  싹이고  수오지심은  義의  싹이고  사양지심은  禮의  싹이고  시비지심은  智慧의  싹이다.     사람에게  이  네가지  싹이  있다는  것은  마치  사람에게  사지가  있음과  같은  이치이다.)         

 

 

*  행유불득  반유자기(行有不得  反求諸己)  (옳바르게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언제나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서  찿고  자아를  성찰합니다.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는  돌이켜  자기자신을  살펴보아야한다’     –  활을  쏠  때  화살이  正中을  못하게  되면  두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아직도  활쏘기를  궁술(弓術)    이나  궁기(弓技)로  여기는  정도의  사람은  바람이  불어서,  시끄러워서,  활이  안좋아서라고  말하면    서  실패의  원인을  외부나  타인에서  찿습니다.  그러나  궁도(弓道)에  이른  사람은  正中을  못했을     때  ‘아  아직도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구나’  하면서  실패의  원인을  자기자신에게서  찿습니다.)         *    결론:  맹자를  줄여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은  의롭고  바르게  살아야만  인간이랄수  있으며     그런  의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국가와  사회가  이상적  공동체라고  본  것입니다.    

 

 (8)  중용(中庸)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BC  483-402)가  편집했다고  전해지지만  논어,  맹자,  대학과  함께  자사의  스승인  주희가  체계화하였다고  봅니다.  中이란  ‘일체  치우치지  아니함’이요,  庸    이란  ‘일체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주희는  중용을  불편부의  무과불급  이평상지리(不偏不倚  無過不及  而平常之理)  -  치우치지않고     기대하지  않고  지나치지  않고  미치지지  못함도  없는  평상의  도리)라고  했습니다.  중용은  사서  중    에서  가장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책입니다.  실천적이라기  보다는  사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중용은  성(誠)의  개념을  중시합니다.  인간을  대하는  가장  핵심적  개념을  정성(精誠)이라고  봅니다.  중용은  인간의  바탕을  선하다고  여기는  성선설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성리학의  기틀    이  되고  있습니다.       

 

*  시고  군자  계신호기소부도  공구호기소불문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그러    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바를  조심하고  들리지  않는  곳을  두려워해야하느니라)         

 

*  막현호은  막현호미  고  군자신기독야  (莫見乎隱  莫顯乎黴  故  君子愼其獨也)  (숨겨진  것이  제일     잘  드러난다.  작은  것이  제일  잘  눈에  띄는  법이다.  그러니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늘  삼가야한다.)         

 

*  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희    로애락을  쉬이  나타내지  않는  것이  中이다.  또한  그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절    도있게하는  것을  和라고하느니라)         *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中이    란  천하의  근본이요  和란  천하에  이르는  道다.)         

 

*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中과  和에  이르게되면,  하늘과  땅이     모두  제  자리에  있게되고  만물은  그냥  자라나게된다.)                 

 

*  인지위도이원인  불가이위도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사람이  道를  행한다고  하면서도  사    람을  멀리한다면  그것은  道라고  할  수  없느니라)       

 

*  군자지중용야  군자이시중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군자에게  있어서  중용이란  때에  알맞게     행함이다. -  時中  -)       

*  결론:  위에서  살펴본  덕과  인과  의,  이  세가지를  균형있게  이루어가는  인생의  예지가  바로  중    용입니다.     

 

 

(9)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들은, 사람이란  지금  현재의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변과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알아야지  비로소  ‘그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동양인들은  고향이  어디냐,  부모는  누구냐,  어디서  살다가  왔느냐,  공부는  뭘  했느냐,     직업은  뭐냐,  지금  사는  동네는  어디냐,  등등  한  사람을  알기  위한  다양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과거에서  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삶의  일관된  모습과  그  원인들은  물론  지금  살고  있는  환경  까지도  자세히  알아야만  비로소  ‘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피    상적이거나  일시적으로  겉에  나타난  것  몇  가지만  알아가지고서는  다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입    니다.  동양에서는  사람을  그의  지난  날  살아온  역사와  현재  살고  있는  ‘삶의  상황’과  연계하여     이해합니다.       

 

(10)   더  나아가  동양에서는  진정한  ‘앎’이란  내가  그를  안다고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동양인들은     ‘나도  그를  알고  그도  나를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안다’고  합니다.  나는  아는데  그가  나를  모른    다고  하면  그건  아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앎’이란  ‘상호  이해’입니다.  그런데  이  상호이해란  거    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나는  그를  아는데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는  나를  이해하는데     나는  그를  용서하질  못합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란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습니다.  결국  생활    감정의  동질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간  이해의  과정이요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훈련이  인생살    이라  하겠습니다.    비오는  날,  혼자서  쓸쓸히  비를  맞고가는  사람을  보고  가까이  가서  ‘비  맞으    면  감기  걸려요’  하면서  우산을  들어주는  것은  절대로  공감과  연대가  아닙니다.  말없이  가까이     가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말고  같이  비를  맞으면서  함께  걸어가  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요,  이해요,  공감입니다.      

 

 (11)   관계맺기는  공유(共有)입니다.  

 

마음,  생각,  언어,  물건  같은  것을  함께  나누어  쓰는  것이  가족관계,  친구관계,  이웃관계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共有는  아픔의  공유입니다.     본래부터  동양인들은  모든  것이  자연의  것,  하늘의  것,  땅의  것이지  ‘내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    다.  인생이란  세(貰)를  내서  사는  겁니다.  전세(傳貰)나  월세(月貰)  뿐만이  아니라  남편이란  어떤     남자  세내서  살고  아내란  어떤  여자  세내서  살다가  죽으면  헤어지는  것입니다.  온통  세상  살이    란  세내서  살다가  가는  겁니다.  소유욕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흉이고  인간관계를  파국으    로  끌고가는  주범입니다.       선(善)의  본질은  공동선(共同善)입니다.  거북이를  얕잡아보고  잠을  잔  토끼도  나쁘긴  하지만  잠    든  토끼  옆을  살그머니  지나서  1등을  한  거북이도  그러면  않됩니다.  ‘토끼야  일어나!’  잠든  토끼    를  깨워서  함께가는  거북이,  더불어  함께  win-win하는  상호관계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세상입니다.  우리  어린  시절,  동네에서는  구슬치기를  잘해서  친구들  구슬을  싹쓸이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저녁  무렵  구슬을  다  따면  절대로  혼자서  다  가지고  가지  않았습    니다.  개평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딴  구슬의  절반  이상을  친구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갔습니다.  머    리가  좋은  거지요.  자기  혼자서  그  구슬  다  가지고  가면  내일은  구슬치기를  할  수없다는  걸  안     겁니다.  (김현경,  2016.4.19  ‘화물숭배과학,  한겨레)  한국의  부자들과  재벌들은  우리  어렸을  때  동    네  구슬치기  아이들  보다도  더  머리가  나쁩니다.  ‘혼자만  잘  살면  그게  무슨  재미여!’  생활  감정    의  동질성,  함께  비맞으면서  걷는  친구,  공유,  공동선,  공동우승,  나눔과  행복  –  이런  것들이  우    리가  우리  조상들에게서  배워야  할  인생의  지혜입니다.       

 

(12)   동양에서의  인간관계와  사회형태는  순환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가위.  바위.  보’라는  놀이는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사실  가위와  바위만  있거나  가위와  보만  있으면  승패는  늘  한  쪽으로만  쏠리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제3이  있습니다.  가위는  보를  이기고,  보는  바위를  이기고,  바위는  다시     가위를  이깁니다.  꺼꾸로하면,  가위는  바위에게  지고,  바위는  보에게  지고,  보는  다시  가위에게     집니다.  물고  물리고,  돌고  돕니다.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은  이렇게  되어야한다는  논리입니    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전부  아니면,  전무,  완승  아니면  완패로  되어갑니다.  전부도  전무가 되고  전무도  전부가되는  순환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한  5년이나  10년  단위로,  백평  짜리  아파트    와  열평  짜리  아파트를  서로  ‘바꿔살기’하고  만명  모이는  교회  담임목사와  20명  모이는  교회  담임목사를  ‘바꿔  목회하기’함으로  이런  ‘거룩한  가위  바위  보’를  연습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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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주의, 집단주의, 전체주의 와 개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