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시드니 인문학

제 3강 (어떻게-) 인문학 방법론

Narin Pusil 2022. 10. 27. 18:47

⚫  인문학도  여러가지  학문  중에  하나입니다.  

     인문학은  종교적  수행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 우선  학문이란  무엇입니까? 

 –  학문에  대한  서구의  전통적  이해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그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에  의하면  ‘학문’(academy),  혹은  ‘학문연구’(academic study)란  “자연, 인간, 인간사회에서  나타나거나(현상)  감지되거나(느낌)  

경험(관찰)되거나  생각(사유와  판단)되는  그  어떤  현상,  운동,  행위,  경험,  사유,  판단,  주장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연구,  설명,  증명,  토론,  정리,  정돈,  응용하는  인간의  일체  이성적  행동”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이론적이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논증이  필요합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감정적  설교나 설득,  종교적  명상이나  기도,  혹은  주관적  자기체험을  일반화하거나  객관화  할수  없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학문의  영역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으로  만져지지는  현상계(現象界)입니다.  

 

즉  우리의  오관(五觀)으로 경험되는 세계가  첫  연구의  대상입니다.  이것을  그는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고  했습니다. Physics,  즉  눈  앞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을  다루는  물리학,  수학,  화학,  천문학,  기하학,  지리학,  의학,  농학을  비롯하여  이를  응용한  제반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법학,  등  제반  사회과학을  포함하여  모든  자연현상과  사회 현상을   다루는  학문  일체를  형이하학  이라는 이름으로  묶었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히  물리학과  천문학,  수학과  기하학에서  출발했던  형이하학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세분화 되었습니다.   (의학,  농학,  정치학,  법학  등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서  같은  학문들  사이에서도  서로  소통이  않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최근엔  융합학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으로  감촉되지  않는 세계,  즉  현실적으로  경험되지  않는  분야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전면에  나타나지  않고  뒤에 있는  이면의  세계’를  Metaphysics  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물리학,  즉  physics 뒤에  meta  놓여 있는 학문  철학(philosophy)이  모든  학문의  본질을  다루는  근본학이라고  보았고,  이를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  혹은  ‘제일  철학’ Proto Philosophia  라고  이름했습니다.       

 

 

⚫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은  그  접근하는  방법이  어떻게  다를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1)  2004년  멕시코(Mexico)만에서는  허리케인  찰리(Hurricane  Charlie)가  플로리다    (Florida)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올랜도(Orlando)시에서는  엄청난  폭리가  있었습니다.  2불짜리  ice  bag  하나가 10불로,    40불  짜리  모텔  방  하나가  200불이  되었습니다.  이  경우  미의회와  행정부를 포함한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재난  발생  지역에서의 가격  폭리처벌  특별법’의  제정입니다.  이것이  형이하학의  세계에서  다룰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런데  인문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보면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은  선한가  악한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과연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인간성  속에  있는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있는가?’  (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2)  이명박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거대한  토목공사  사업인  4대강을  개발했습니다.  형이하학적  접근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력의  증가,  실업자의  감소,  산업의  활력,  국토의  개발과  같은  이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이란  한번  파괴하면  다시  복원이  가능한  것인가?’      ‘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은  우리  후손들에게도  물려주어서  고루  함께  써야할  인류  모두의  유산이  아닌가?’  (

 

3)  최근  박근혜 정부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력을  비선  실세와 함께  부당하게  남용하였다는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당하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여러가지  개인적  이해관계나   친소  관계를  따라  촛불이니,  태극기니  하면서  의견을  달리하기도  하면서도  또  법을  지키자,  법질서대로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형이하학적  접근법입니다.  인문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의  목표는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사람은 정직할  수  없는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4)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요즘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에  나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자리  창출,  실업자  구제,  복지수당  증액,  경제  안정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모두  정치에  대한  형이하학적  접근법입니다.  인문학자들은  ‘사람은  과연  밥만  먹고  사는가?’  ‘돼지의  행복도  행복인가?’  ‘진정한  행복과 참된  평등을  이루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가?’  같은  것을  화두로  제시  합니다. –  기타  우리는 Boat people이나  asylum seeker  문제,  혹은  FTA  문제, America First,     Brexit  같은  정치-사회적  잇슈들을  가지고서도  인문학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 모든  학문은  저마다의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에  따라서  세운  가설과 목표를  향하여  연구, 추진하게  됩니다.   방법론은  학문마다  다르기 마련이고  또  같은  학문  사이에서도  여러가지 차이가  있읍니다.  원리는 하나라고  하더라도   방법은  다양합니다.(One  Principle,  Many  Methods)  방법론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첫  출발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이나  동양적  가부장적  사고를  지닌  이들은  여기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 일반적으로  제반  학문의  방법론을  거시적으로  볼  때는  세  가지로  분류  합니다.       

 

첫째는  ‘직관적  방법론’입니다.  ‘감성적  방법론’이라고도  합니다.  Emotional  Methodology,  혹은   Romantic  Methodology  입니다.  

 

    여기서는  직관  Intuition과  감성 Emotion을  학문  연구의  기초적  틀로  사용합니다.  이성이나  과학이  아닌  본능과  감성을  지지합니다.  가슴으로하는  연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는 극단적  합리주의에  대한  반동이기도  하지만  예술이나  문학이  지닌  속성에  기인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윤동주나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이성적으로  분석해야만  하는가?  김소월의  진달래를  수학적으로  풀어  볼  수  있는가?  Kiss  할때  kiss에  대한  생리적,  의학적  분석을  하는가?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가?하는  질문들을  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과학적  방법론’입니다.  

 

분석적이고  이론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론입니다.  Scientific Methodology,  혹은  Analytical Methodology입니다.  

여기에서는  실험과  관찰,  분석과  조사가  연구의  기본적  틀이  됩니다.  이는  당연히  머리로  하는  연구입니다.  

추론,  가설,  실험,  조사,  관찰,  입증,  이론화,  혹은  논리화의  과정이  이어집니다.   (숙제로  주어진  미적분  문제를  앞에  놓고  기도한다고  답이  나온다고  보십니까?  갈릴레오나  케풀러의  천체이론에  대한  예술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뉴톤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도나  시적  상상력을  동원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까요?).       

 

셋째는  ‘합리적  방법론  입니다.  ‘이론적  방법론’  혹은  ‘이성적  방법론’이라고도  말합니다.  

          Logical Methodology,  혹은  Rationalistic Methodology입니다.  이것이  주로  인문학적  방법론입니다.  

 

이 방법론은  위에서  본  두번째  ‘과학적  방법론’과  매우 흡사한  점이  있습니다.  분명  중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에서는  이를  분리하려고  합니다.  인문학은 사회  과학적  방법론은 사용하지만  과학적  기재나  실험적  테크닉을  사용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  전통적으로  서양철학과  인문학에서  사용해  온  ‘합리적  방법론’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연역적  방법론’입니다. Deductive Method입니다.  

 

어떤  가설,  혹은  가설적  진리를  설정한 다음  그  가설에서  개별적  진리,  혹은  결론을  끄집어내는  방법입니다.   Aristoteles가  대표적  주창자입니다.  연역적  방법론에서는  ‘모든  인간에게는  배우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아는  어떤  선험적(先驗的)인  것,  즉  a  priori  한  것이  있다’ 는 것을  전제합니다.  경험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선험적  진리를   가설로  내세웁니다.  

 

예컨데  ‘모든  인간은  죽는다’ ‘살인은  범죄행위다’  같은  가설입니다.  이  경우  죽음이나  살인은  내가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가설은  오랫동안  우리가  살아온  경험을  통하여  획득한  진리입니다.  바로  이  ‘모든  사람은  죽는다’ ‘살인은  죄다’  라고  하는  가설적  진리에  근거하여,  홍길복은  반드시  죽는다,  김동숙도  틀림없이  죽는다,  장담컨데  천옥영도  백퍼센트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반드시  죽는  이유는  한가지인데  그것은  이  셋  모두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연역법적으로  만들어진 방법론에서는  선험적으로 추론한  그  가설을  ‘일반적  진리’  혹은  ‘보편적  진리’로  확정하고  그  가설적  진리를  모든  곳에  대입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로  부터  시작된  ‘삼단론법’  syllogism은  바로  이  연역적  방법론에서  비롯됩니다.  

예컨데  이런  것입니다.        

 A.  –  모든  사람은  죽는다.    B.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C. –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여기서  A와  B는  a  priori한  것입니다.  즉  선험적으로  아는  것  입니다.  그런데  핵심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고  하는  전제  A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라’고  하는  전제  B가  반드시,  틀림없이  맞는 전제여야만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고  하는  C의  결론이  타당성을  지니게  된다는  점  입니다.     

 

(1) A. 신은  존재한다.   B.  모든  존재하는  것은  유한(혹은  무한)하다.  C.  그러므로  신은 유한(무한)하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전제  A와  B가  선험적으로  타당한가  하는것  입니다.   

(2) A. 모든  전쟁은  비극이다. B.  한국은  전쟁이  많은  나라다. C.  그러므로  한국은  불행한  나라다.    

(3) A. 싸우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B.  우리  집은  늘  싸운다. C.  그러므로  우리  집은  불행한  집이다.       

(4) A. 동물들은 늘 먹는 것에만 괸심이 있다. B.우리 남편도 늘 먹는것에만 신경을 쓴다. C.그러므로 우리 남편은 동물이다. 

       –이  모든  예에서  우리가  반드시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은  C라는  결론이 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A와  B가 선험적으로  보편타당성을  지니는  진리인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귀납적  방법론’입니다.  요즘은  ‘실험적  방법론’  혹은  ‘경험적  방법론’이라고도  부릅니다.      

            Inductive  Method,  Experimental  Method  입니다.  

 

이는  ‘개별적  관찰을  통하여  보편적  진리로  나가는  방법’ 입니다.  개별적  사실들을  하나  하나씩  관찰,  조사,  수집,   조직화하여  어떤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진리로  확정하는  방법입니다.  

베이컨(F. Bacon)이나  밀(J .S. Mill)이  대표적 학자  입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1)  자료  수집과  조사  및  관찰의  단계. Investigation & Data     Collection.

(2)  수집된  자료를  조직화하고  어떤  유형이나  pattern을  만드는  단계. Organizations.     

(3)  잠정적인  가설을  만드는  단계. Hypothesis Making.

(4)  증명하는  단계. Verification.  잠정적으로  만든  그  가설을  증명해  냅니다.  물론  그  가설은  확인  할수도  있고  반대로  부정할  수도  있습니다. 

 

 /  이런  귀납적  방법론은 원래  물리학이나  과학에서  사용되던  방법이었습니다만  오늘날은 사회학, 심리학, 각종  통계학은  물론이고  윤리학이나  신학(예수  세미나)을  비롯한  각종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습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트럼프의  취임식  인파  등을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써의  ‘분석적  방법론’  Analytical  Method  입니다.  

 

귀납적  방법론은  실험과 경험의  반복을  통하여,  즉  개별적이고  특수한  현상들의  관찰이나  데이타  수집을  통하여  일반적  명제를  도출해  내는  것  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A.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A.  플라톤도  죽었다.  A.  예수도  죽었다.  A.  공자도  죽었다.    A.  나폴레옹도  죽었다.   A.  김일성도  죽었다.  A.  박정희도  죽었다.  B.  살펴보니  이  모든  이들은  사람이었다.   C.  그런  걸  보니  사람이란  (통계상  거의)  죽는  것이  확실하다.     

 

 

셋째는  ‘변증법적  방법론’입니다. Dialectical Method  입니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때 부터  시작되어 서양  철학사에서  꾸준히  발전되어왔지만  헤겔(Hegel)에  의하여  완성되었습니다.  헤겔에  의하면  역사의  발전은  변증법적으로  진행됩니다.  

 

먼저는  ‘하나의  명제’  즉  Thesis(正)가  만들어  집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그  명제에  대한  ‘반대  명제’  즉  Antithesis(反)가  출현합니다.  처음  출현한  명제와  그  다음에  나온  반대  명제  사이에는  논쟁이  계속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  둘  사이에  타협,  혹은  진보된  ‘종합  명제’  즉  Synthesis(合)가  형성  됩니다.  이  synthesis는  시간에  흐름에  따라  또  하나의  thesis가  되고  그  thesis에  반대하는  다른  antithesis가  나타나  

대립  되다가  마침내는  synthesis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식으로  역사는  thesis,  antithesis,  synthesis를  반복하면서  영원히  순환  발전되어  가는데  헤겔은  이것을  ‘역사의  발전’  Aufheben,  곧  지향(指向)이라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1)  正  –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2)  反  –  아니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다. (3)合  –인간은  이성적이며  동시에  감정적  동물이다.  이런  것이  인간  이해의  발전  단계입니다.  

/  (1)  正  –역사는  전진한다. (2)  反  –  아니다  역사는  퇴보한다. (3)  合  –  역사는  전진과  퇴보를  반복한다.  이런  식으로  역사  이해에  대한  발전단계를  설명  합니다.

/ (1)  正  –  최고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다.  (2)  反  –아니다.  최고로  소중한  것은  물질이다.  (3)  合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신도  물질도  아니고  사람이다.  이는  인문학과  철학의  논리  발전  방식입니다.

(기타  :  사랑은  영원하다. –   아니다.  사랑은  순간적이다. –  사랑에는  순간적인  것도  있고  영원한  것도  있다. /  언론에  나온  것은  사실이다. –  아니다.  언론에는  거짓  보도가  더  많다. –  언론이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재미로  보는  것이다.)       

 

 

⚫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위와  같은  구체적  방법론이  아무리  잘  훈련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구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5 가지  기본적  틀(Five Basic Frameworks)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생각하는  기본  방식이며  접근하는  원칙들 입니다.  일종의  인문학적  근성이라고  보겠습니다.       

 

(1) ‘이것은  논리적이냐?  즉  Logical  하냐?  말이  되는  소리냐?’를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2)  ‘이것은  합리적이고  이유가  타당한가?  즉  Reasonable한가?’를  반드시  따져보는  소질이  있어야  합니다.     

(3) ‘이것은  과학적  근거와  타당성이  있는가?  즉  Scientific하냐?’를  질문할  줄  알아야  합니다.      

(4) ‘이것은  분석  가능한  것인가?  즉  Analytical한가?’를  따져보는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쪼개고 가르고 분석해 보는 태도는 인문학도가 지녀야 할  학문적 기본자세 입니다.       

(5)  ‘통합  가능한  길이  있는가?  Synthetic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  즉  아무리  쪼개고  갈라치고  분리시켜  놓았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이  모든  것을  통전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는가?’를  질문하고  이를  추구해  가려는  자세가  있어야만  한다는  말  입니다.     

 

 

⚫  마지막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개인적이며  인격적  자세  입니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문학을  하는 사람의  기본적 소양,  혹은 기초적  품성(Character)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Rene Descartes

'God'에서 '나'로 I maybe wrong.  의심(사유, 고민)

※1. ▶credo ergo sum(믿으니 존재한다) ▶ homo credente(믿음의 인간) ▶ homo religeous(종교적 인간)

 

2. ▶Dout skeptism (회의론자들의 특징적인 판단 유예, 체계적 의심, 비판의 방법)

                   의심은"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대한 확신 부족"을 의미하는 반면,

                회의론은 결정적인 증거 없이는 믿지 않으려는 것을 의미.

      ▶  dubito ergo sum  :  Descartes was impressed by the Cogito because he had found a belief

                that is certain and so,when believed, cannot be false. He thought that certainty was 

      ▶homo dubitane ergo sum  (의심하는 인간이 되라)

 

 

 

첫째는  그  무엇이든지  의심하고  질문해  보는  자세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받아  들이는 것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회의(懷疑)의  과정을  거치지  아니한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도  그런  모습을  반영합니다.  ‘가능한한  많이  의심하고  자주  의심하는  사람이  진리에  가까이  갑니다’  ‘질문이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둘째는  비판정신입니다(Criticism).  학문은  변합니다.  철저하게  따지고  묻고  저항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인문주의가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인문학에서  비판정신은  생명과  같습니다.  비판하지  않는  인문학자는  이미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인과 지성인은  다릅니다.   Ph.D를  가지고  있다고해서  지성인은  아닙니다.  핵무기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과학자나  불의한 정부에  동조하는 학자나  물질을  추구하며  물질의  많고  적음에  따라  행동하는  교수는  지식은  있어도  지성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통하여  개인적  사리와    

사욕을  챙기고  입신양명  하려는  지식인은  지성인이랄  수  없습니다.  신학적  반성없이  교회를  크게만  만들려고 하는   목사나  승려는  진정한  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자유정신입니다.  인문학의  최종적  목표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을  자유케  하는  데  있습니다.     

인문학자는  그  자신이  우선  일체의  모든  것들로  부터  –  물질,  권력,  명예,  종교,  신,  타인,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으로  부터  까지  –  자유해야  하고  그  자유를  위하여  사유하고  연구하고  말해야  합니다.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실존주의와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정신사는  자유의  저변  확대사입니다(헤겔).  과거  한  사람의  자유로  부터  만인의  자유에  이르도록  인류의  역사는  흘러왔고  또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  갈  것이라는  신념과  철학이  인문학의  기조입니다.  여기에는  기초적  인권으로  부터  시작하여  정치-경제적  자유와  종교-사상적  자유에  이르기  까지  일체의  모든  인간적  자유가  다  포함됩니다.  사르트르의  주장대로  ‘태초에  자유가  있었느니라’를  실현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셋째는  그러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종교적  덕목만이  아니라  종교와  학문과  인류  공동체  모두에게  똑같이  요구되는  기본  덕목중  하나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이고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학문의  목표나  이상도  변하고  그  방법론도  당연히  변합니다.   이성적  방법론이라고해서  절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대학교육의  목표도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모든  학문과  학문의  연구는  특정한  시대,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객관성을  지니지만  그  어떠한  학문도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닙니다.  학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만일  학문을  어떤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이해하고  규정하여  학문의  성격을  획일적으로  정의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학문이란  그  내용, 목적,  방법에  있어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포착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진리를  향한  순례는  끝없이  변하는  지적  여행입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연구를  마치  종교적  신념  처럼  여기고  자신의  주장이나  학설에  대하여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지니게된다면  이는  학문하는  사람의   기본적  자세를  상실하게  됩니다.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인간  지식의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입니다. ‘배움이란  자신의  무지를  확인해  가는  과정  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즐기는  태도  입니다.  호이징가(Johan  Hoizinga)는  homo  ludens를  주장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놀이입니다.  인생살이란  한판의  놀이입니다. ‘우리  한번  놀아나  보세”  다행이  태초부터  인간은  놀이를  추구했고  또  놀이를  창조할  줄  알았습니다.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는일  만이  보람과  성취를  가져옵니다.  억지로하는  일은  결코  성공  할  수  없습니다.  놀이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놀이의  최종적  목표는  모두의  행복입니다.  공자는  옹야편(雍也篇)에서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知之者  不如  好之者  好之자  不如  樂之者’라  했습니다.  인문학의  가장  좋은 방법론은  즐기면서  하는 것이요,  놀면서  하는  것입니다.  시와  노래,  춤과  그림이  곁들여지는  ‘한 바탕의  놀이’와  여유가  바로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  입니다.            

 

⚫  Comments & Questions         

 

풍류(風流자연의 풍취와 함께) :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 풍류를 즐기다. 등으로 쓰인다. 풍취라고도 한다. 풍류는 화랑의 무리들이 도의로써 서로 연마하고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겨서 산과 내를 찾아 노닐며 교화하는 것이라 최치원은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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