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

주기도문의 핵심

Narin Pusil 2022. 6. 2. 11:36

 

■주기도문의 핵심은, 예수가 심히 걱정하고 분노했었던, 비참한 생활속의 갈릴리 동포들 .. 그들이 하고 있었던 하루끼니 걱정, "일용할 양식" 이다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앗시리아-이집트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던, 남유다 백성들에게 이루어지는, "하박국"이 바라던 <하나님의 궁휼(자비)>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처럼 하루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던 비참한 현실에 처했던, 예수의 "갈릴리 동포(오클로스)" 들에게, 그들이 걱정하던 "일용할 양식"이 채워져 나타날, <하나님의 평화>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그 처참한 상황을 초래한 권력들에 예수는 분노했고, 그 분노는 소위 공생애(시민운동)로 그를 내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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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했던 갈릴리 동포들의 "일용할 양식"이, '하나님의 나라'가 필요했던 갈릴리 동포들을 위한, 공생애로 예수를 내몰았다.

"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 라는 예수, 그 가르침대로 그 나라는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예수의 표현은, 아래와 같은 갈릴리 그때의 삶의 상황에 어찌할 수 없었던, 그의 가슴속으로 부터 터져 나왔었던 삶의 소망의 표현이었다.

마치 느코의 애굽(이집트)과 느부갓네살(Nebukad nessar)의 신바빌론의 강대국 사이에서 고통받던, 여호야김(B.C. 609-598)의 남유다를 위해, '하나님의 궁휼(자비)'을 바라던 하박국(Habakkuk)이 떠오른다.


▪︎로마와 헤롯왕정의 수탈과 유대 헤롯성전의 착취에 시달려, 하루끼니 걱정이 삶의 전부였던 비참한 갈릴리의 삶들 .... 그래서 "일용할 양식"의 고통속에서 해방되기를 바랬던, 예수의 동포인 갈릴리 사람들 (오클로스)의 비참함을 보고,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했다.

 



■플라톤의 '이원론'과 같이, 비존재를, 현실적 존재로 주입시켜, 존재성으로 남게했던 행위들은, '하이어라키'를 더욱 사회속에 심화시켰다.


■그리스 신들을 섬겼던 플라톤이 살았던 때도, 어거스틴이 살았던 때도, 칸트가 살았던 때도 ... 그리이스 신화적 분위기가 바탕이 되어, 신정-왕정시대 속에서 탄생한 mythological thinking들 ... 그것이 계승되어 발전(?)해 온 <서양 기독교 철학> ....

■과학적 사고, 과학적 활동이 왕성한 21세기 시민주권국가시대에도, 그 원시적이고 신화적인 사고가 골동품처럼, 고 부가가치의 산물로 남아있다.

■The core of the Lord's Prayer is the Galilean compatriots living in a miserable life, whom Jesus was very worried about and angry with.. The daily worries they were doing, "Daily Bread"

The , which is inextricably linked with reality, is in line with the <God's mercy (mercy)> that Habakkuk wanted, which was achieved for the people of southern Judah, who suffered suffering between the great powers of Assyria and Egypt. together

■The “peace of God” that Jesus’ “Galilean compatriots (oklus)”, who were living in such a miserable reality of living worrying about one day at a time, will be filled with the “daily bread” they were worried about, is the “Kingdom of God” All.

■Jesus was outraged by the powers that caused the disastrous situation, and that anger drove him into a so-called public life (civil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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