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성서를 진지하게, 그러나 문자적이 아닌........

■예수의 죽음

Narin Pusil 2022. 5. 18. 23:36

 

 

 

■예수의 죽음

 

1. 빈곤의 상징, 나사렛에서 자라나 거의 30년간의 전생애를 갈릴리 땅에서 보냈던 예수 ...

그래서 갈릴리 사람 나사렛 예수로 불리웠다.

그런데 고라신, 벳사이다, 가버나움등에 살고 있었던

예수를 배척하던 그의 친척들 (relatives)에게  독사의 자식이라는 쌍스러운 말로 분노를 표출했던 예수.
(...그것은 자신의 가르침을 이해 못하는 예수의 안타까움이다.

마치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했듯이...)

다른이를 까닭없이 비판하는 자들에게 지옥불에 들어 가리라고 저주했다.(마 5:22).



2. 배우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예수를

어렸을때부터 예수를 일일이 보아왔고 부딧치며 살아온 그들은

예수를 별볼일 없게 여겼던 것이었고

특히 예수의 친척들에게는, 그런 예수의 아는척에 대해 엮겨움이 솟아났을 것이다.


3. 말하자면 예루살렘 헤롯성전세력에게 권위를 부여 받지 못했다는 이유였을 겁니다.

곧, 가르치는 자격(권위)을 받지 못했다는 맥락과 같다는 것입니다.


4. 하지만, 그의 이적과 함께 유대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며 가르치는 소리가

귀에 와다음을 느낀 많은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새 세상(신세계NewWorld, 새하늘 새땅)을 듣고 보는것이었을 것입니다.


5. 그의 motherland인 갈릴리를 떠나 사마리아 땅을 거쳐

당시 시대정신을 좌지우지하던 성전(聖殿)과 그것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종교세력이 있던 유대땅에 예수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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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것은 마치 조선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영남-기호학파들이 있던 조정에 주목을 받는 것과 같았다.

마치 함경도 사람 홍경래나 서얼의 희생양 동학(東學)의 수운 최제우

혹은 양반을 혼내주던 기인 전우치등과 같은 취급을 받는것처럼,

예수는 별 볼일 없는 갈릴리 뜨내기로 유대땅 유대인들 특히 헤롯성전세력은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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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결국 예루살렘의 종교세력들은,

헤롯성전의 자금줄인 이방인 코트(the Court of the Gentiles)에서 취했던

이른바 성전정화라는 훼파적 행동과,

생명처럼 여겨야 할 제4계명을 맘대로 가르치는 파격행위등으로

헤롯성전의 종교권력에게 여간 눈꼴 사나운 일이 되어 버렸다.



8. 당시 유대독립운동가 바라바 대신에 예수는

종교권력에 대항하던 마치 국가변란을 도모했다는 죄목으로..

조선의 홍경래가 죽어 갔듯이, 수운이 참형을 받았던 것처럼 ...

인혁당 사건을 저지른 박정희 정치권력에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이 조작되어 학살되었던 것처럼,

유대전통사회에 변란(變亂)을 일으킨 (종교)정치범과 같이

예수는 십자가상의 고통속에 죽어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