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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푸실 이야기/역사(신화) 이야기

① 최초의 역사 수메르 국내 최초 수메르어 점토판 해독본 : 김산해 저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27일

Narin Pusil 2022. 2. 6. 15:33

 

 

수메르라는 이름은 인류의 기억에서 2,000년 이상이나 지워졌었다.”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우리들은 대부분 24시간 전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서
6,000년 전에 대해서는 너무 적은 시간을 쓴다.”

윌 듀란트

 

 

 

 

세상 모든 만물의 시작,  

수메르 모래바람에 뒤덮여 있던, 최초의 역사가 되살아난다.   

8,500년 전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국내 최초 전문 연구자의 수메르문명사

 

 

인류 최초의 문명이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인간 문화의 발원지인 수메르문명. 

바로 이 수메르의 역사를 되살린 한국인 전문 연구자의 책이 출간되었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점토판 원전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직접 해독하여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의 저자 김산해의 신간으로, 

30여 년 동안 수메르문명 연구에 전념하여 일구어낸 또 하나의 성취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 역시 5,000여 년 전에 쓰인 점토판 원문을 

손수 한국어로 해독해가며 수메르의 역사를 추적하고 복원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저작이다.

실제 수메르 문명기 당시에 제작된 수백 장의 점토판과 석판을 샅샅이 톺아보고,

설형문자로 새겨진 일차 사료에서 곧장 건져 올린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8,500년 전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비옥한 대지로 독자를 소환한다.

 

문명사의 흐름을 살린 시간순 서술과 200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사진 자료,

압도적인 전문성을 뽐내는 주석과 캡션은 수메르문명의 발굴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한다.

세상 모든 만물의 시작, 인류 역사의 장엄한 기원, 위대하고 찬란한 초고대 문명 수메르의 숨결이

수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뻔한’ 수메르의 역사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내 앞에 점토판과 석판에 기록된 사료들이 첩첩했다.

나는 설형문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

제대로 된 수메르의 역사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여는 글〉에서 물 흐르듯 읽히는 수메르문명 통사_

역사적 맥락을 선명히 살린 시간순 서술로 박진감 넘치는 수메르의 진면모를 되찾다!

 

수메르는 8,500여 년 전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오늘날의 이라크)에서 발달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다.

악카드·아시리아·바빌로니아 등 메소포타미아 문명 가운데서도

단연 앞서 태동한 문명이 수메르였다.

 

한때 지구상에 미개와 야만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받았던

기원전 6500년경부터 수메르인은 마을을 일구고, 힘을 합쳐 농사를 짓고,

권력과 도시를 창조해내더니 전쟁과 평화의 변주곡 안에서 국가와 문명을 탄생시켰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원(原)수메르인이

유프라테스 강가 오우에일리(Tell el’Oueili)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한 기원전 6500년경부터

우르 3왕조 멸망으로 수메르문명이 지상에서 사라진

기원전 2004년까지 약 4,500년 동안의 이야기를 통째로 건져 올렸다.

 

‘수메르인의 경제-생활-문화’ 식으로 나뉘어 이야기의 흐름이

툭툭 끊기던 기존의 교과서식 주제별 서술에서 탈피해,

역사적 맥락을 선명히 살린 시간순 서술로 박진감 넘치는 수메르의 진면모를 되찾았다.

 

최초의 도시가 발달하고, 대홍수가 대지를 집어삼키고,

영웅-왕 길가메쉬가 등장하고, 비옥토 ‘에덴’을 차지하려는 끝없는 쟁탈전이 벌어지고,

최초의 수메르 제국이 개창하고, 끔찍한 부정부패가 자행되고,

악카드의 사르곤이 쳐들어와 수메르를 점령하고,

수메르 도시국가들이 독립운동을 펼치고, 왕과 신하 간 권력 암투로

문명의 마지막 빛줄기가 꺼져가기까지 피 튀기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

수메르의 대서사를 오롯이 담아냈다.

 

수메르 땅은 에안나툼이 벌인 전쟁의 광기로 피바다가 되었다.

수메르의 평화는 온데간데 없었고 오직 먹고 먹히는 처절한 전쟁만이 있었다.

에안나툼은 눈에 보이는 도시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어느덧 그가 정복할 곳은 더 이상 없었다.

에안나툼은 수메르의 남쪽과 북쪽의 도시를 모두 차지했다.

엘람과 수바르투까지 정복한 그는

모든 수메르 군주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

에안나툼은 명실공히 수메르 ‘최초의 황제’였다.

 

2부 17장 〈최초의 황제, 에안나툼〉에서 키쉬를 통합한 사르곤이 남쪽으로 칼끝을 돌렸다.

그는 아가데(Agade)의 아홉 부대를 이끌고 우루크로 쳐들어갔다.

우루크에서 수메르 황제 루갈자게씨가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

그의 마지막은 끔찍했다.  루갈자게씨의 목은 엔릴 신전의 문설주에 걸렸다.

수메르 황제의 치욕이었다.

 

2부 29장 〈수메르 황제의 치욕〉에서 수메르 독립전쟁이 다시 일어났다.

수메르 도시들은 악카드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

수메르 전역의 도시들이 대대적으로 봉기할 태세였다.

수메르 북쪽과 남쪽 지도자들이 서로 힘을 모아 악카드를 쳐부술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3부 4장 〈나람-씬과 수메르 독립전쟁〉에서

 

 

수메르어―한국어 국내 유일 직접 해독_

전 세계 18개 박물관에서 일일이 발굴해 낸  5,000년 전 수메르어 점토판의 생생한 기록!

수메르 발견은 고고학이 이룬 최대의 성과로 꼽힌다.

150여 년 전부터 오늘날 이라크 땅에서 발굴되기 시작한

수메르문명의 유산들은 5천 년 넘는 시간 동안 사막의 모래 아래 파묻혀 있던

인류 문명의 새벽을 되찾게 해주었다.

 

수메르인들은 이기(利器)를 만들 줄 알았고,

인류 최초의 문자인 설형문자 체계를 정립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점토판에 촘촘히 기록해 두었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바로 이 5,000년 전 제작된

수메르어 점토판이라는 일차 사료에 철저히 근거한다.

전 세계 18개 박물관에 보관된 수백 장의 점토판에서

설형문자 기록들을 일일이 발췌해 오기·오독의 문제 가능성을 엄정히 검토한 뒤,

수메르 역사의 ‘미싱 링크(missing link)’들을 꼼꼼히 깁고 엮어

우리 눈앞에 수천 년 동안 존재해왔으나 여태껏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수메르의 문명사를 짜임새 있게 복원해 냈다.

 

더욱이 영어 중역에 의존하지 않고 수메르어 점토판을 한국어로 바로 해독한 만큼

여타 번역서들은 범접할 수 없는 광범하고도 생생한 수메르 역사 이야기를 선사한다.

 

푸주르-슐기의 편지가 입비-씬에게 도착했다.

푸주르-슐기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 이쉬비-에라가 제 쪽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를 도와줄 사람도 없고, 저와 연대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가 아직 저를 그의 손아귀에 넣지 못했으니,

그가 저를 덮치면 전하께 (도망)가겠습니다. 통촉해주시옵소서!”

(영국박물관 소장 “푸주르-슐기가 입비-씬에게 보낸 편지” 점토판 명문 중)

 

입비-씬이 답신을 보냈다.

왕은 마지막 충신에게 배신자 이쉬비-에라의 실체를 폭로하며 버텨줄 것을 호소했다.

“나에게 오지 마라! 개같은 성향을 지닌 마리 출신의 이놈이 통치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

강토를 되찾으면 정말로 모든 이방의 땅에 우리의 힘을 알리게 된다.

급하다! 모두 포기하지 마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인류고고학박물관 CBS 14224 점토판 명문 18~38행)_

3부 8장 〈배신자, 이쉬비에라〉에서

 

 

30여 년의 연구, 13년의 집필… 생애를 바친 압도적 전문성

200여 장의 현장감 넘치는 시각 자료까지_

기존 수메르 학설의 모순과 오독을 바로잡는 놀랍도록 치밀한 연구!

저자 김산해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신화와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30여 년 동안 수메르의 신화·역사·문명 연구에 전념했고,

수메르어·악카드어 같은 고대어를 해독하며 인류의 ‘최초’를 찾아 나섰다.

특히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2007년 12월부터 2021년 6월까지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용 조사와 자료 수집, 원고 집필에 몰두한 회심의 역작이다.

집필 도중 3번의 시한부 선고를 받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해 병마와 싸워가며 글을 썼고,

마지막 원고를 탈고한 지 4개월여가 흐른 지난 11월,

안타깝게도 출간을 지켜보지 못한 채 영면했다.

 

생애를 바쳐가며 완성해낸 이 책에서 그는 오늘날 수메르학의 교과서로 여겨지는

〈수메르 왕명록〉에만 치중한 기존 수메르 학설의 모순과 오독을 바로잡는다.

인류 최초로 역사를 점토판 위에 남긴 도시국가 ‘라가쉬’ 필경사들의 기록을 찾아내고,

〈수메르 왕명록〉의 의도적인 라가쉬 기록 누락을 증명하는 한편,

200여 장의 현장감 넘치는 시각 자료와 압도적인 전문성을 갖춘

주석·캡션까지 가득 담았으니 깊이 있는 수메르문명 연구에 목말라 하던

마니아 독자들의 묵은 갈증을 해소해줄 만하다.

저자 김산해는 살아생전 수메르학의 토대가 전무한 우리나라 고대 역사 연구의 현실을 늘 애석해했다.

이제 그의 책이 국내 수메르학의 고전이 되어 인류의 최초를 향한

지적 탐험의 정수를 독자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게 선물할 것이다.

 

 

 

https://youtu.be/5qMRPaiLb9A

 

 

수메르는 8천500여 년 전 지금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 발달한 세계 최고(最古) 문명이다.

악카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메소포타미아 문명 가운데서도 가장 앞서 태동했다.

저자 김산해 씨는 B.C 6500년부터 수메르 문명이

멸망한 B.C 2004년까지 약 4천500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8500년전 유프라테스강가 마을부터
최초의 도시문명국·대홍수·전쟁·영웅…
4500년 동안의 장대한 역사 풀어나가

수메르 왕명록에 라가시·움마왕조 누락
역사기록 필경사 의해 역사왜곡 추정

최초의 도시 에리두, 대홍수, 영웅 왕 길가메시의 등장, 수메르 제국 개창,

만연한 부정부패와 악카드의 침략, 수메르 독립운동 등으로 이뤄진 대서사시를 500여 페이지에 담았다.

 

저자는 전 세계 18개 박물관에 보관된 수백 장의 점토판에서

설형문자 기록을 일일이 발췌해 이 같은 수메르의 역사를 복원했다.

 

그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서 신화와 인류학을 공부한 후

지난 30여 년간 수메르 역사에 천착해 왔다.

그간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등

수메르 문명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선보였다.

 

저자는 이번 책을 위해 2007년 12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13년 넘는 세월 동안

내용 조사와 자료 수집, 원고 집필에 몰두했다.

지병인 암이 몸 이곳저곳에 전이 됐는데도 집필에 매진했다.

그는 원고를 탈고한 지 넉 달여 만인 지난달 6일 세상을 떠났다.

출판사 휴머니스트 관계자는 "애초 올해 출간 계획이 없었지만,

저자의 건강이 악화해 돌아가시기 전에 책을 보여드리고 싶어 앞당겨 출간했다"고 설명했다.

 

ㅡ일생을 수메르 연구에 바친 김산해의 유작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모래 사막에 뒤덮여 있던 인류 최초 문명의 시작과 종말을 보여준다. 저자는 수메르어 점토판에 기록된 옛 역사를 직접 해독해 마치 눈앞에서 본 듯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은 왼쪽부터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길가메쉬 석상, 에쉬몰리언박물관에 소장된 수메르 왕명록, 그리고 세계 최초의 법전인 우르 남무 법전 등 수메르 문명 유물. 휴머니스트 제공

 

 

수메르(Sumer). ‘인류 최초의 문명’이란 영예를 지녔지만

아직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 고대 문명이다.

현재 우리나라 세계사 교과서에선 한 페이지 분량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소개에 몇 줄 서술되는 정도다.

아직 세계적으로 정통한 학자도 적고 많은 부분이 신비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초고대문명이다.

수메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1872년 영국 학자 조지 스미스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수천개 점토판 중에서 발견한 인류 최초 서사시

길가메쉬 신화를 해독해 발표하면서다.

이어 1877년 프랑스 외교관 에르네스트 드사르제크가 다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고대 국가 라가시 유적과 6만여개의 수메르어 점토판을 발굴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됐다.

일생을 ‘수메르’ 연구에 바친 우리나라 연구자 김산해는

신간 ‘최초의 역사 수메르’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불과 15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 역사에서 ‘4000년 전’은 원시시대로 취급받았다.

……

그러나 수메르가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르자 서구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수메르가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료를 꼽으라면

‘길가메쉬 서사시’와 ‘수메르 왕명록(에리두로 시작하는 수메르 왕권 기록)’이다.

‘길가메쉬 서사시’가 구약성서 중심의 세계관을 무너뜨렸다면,

‘수메르 왕명록’은 수메르 역사를 세계 역사의 맨 앞자리로 이동시켰다.”



김산해는 길가메쉬 서사시 점토판 원전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직접 해독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발간했던 연구자다.

신간 역시 5000여 년 전에 쓰인 점토판 원문을 손수 한국어로 해독해가며

수메르의 역사를 추적하고 복원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저작이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이지 싶다.

 

수메르 문명기 당시 제작된 수백장의 점토판과 석판을 샅샅이 톺아보고 설

형문자로 새겨진 일차 사료에서 뽑아낸 이야기로

우리를 8500년 전 인류 최초 문명이 꽃피었던 메소포타미아 남부 비옥한 대지로 안내한다.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뻔한 수메르의 역사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내 앞에 점토판과 석판에 기록된 사료들이 첩첩했다.

나는 설형문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

제대로 된 수메르의 역사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1] ˝우루크에서 문자가 출현했고, 문명이 탄생했다. 

우루크 문화가 기어이 문명을 일으켰다. 수메르는 최초의 문명국이었다. 

우루크는 최초의 문명도시였고, 문명의 도가니였다.˝ (68)

    ˝문명의 본향은 수메르였다.˝ (69) - 초란공


    [2] ˝에덴을 끼고 있는 라가쉬와 움마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적수였다. 

에덴전쟁은 물전쟁이었고 식량전쟁이었으며, 영토전쟁이었다. 

수메르에서 벌어진 ‘자본전쟁의 시작’이었다.˝ (110) - 초란공

 


    [3] ˝에안나툼은 평화를 갈구하는 자신의 마음을 엔릴에게 전하고 싶었다. 

왕이 선택한 ‘평화의 전령’은 야생비둘기였다.

 (......) 

왕은 비둘기를 눈화장과 삼나무 진액으로 치장했다. 

삼나무는 수메르에서 구할 수 없는 값비싼 ‘신의 나무’였다.˝ (174-175) - 초란공

 


    [4] ˝‘자유’를 의미하는 설형문자는 ‘아마-기(ama-gi4)’이다. 

‘아마(ama)‘는 ‘어머니’이며, ‘기(gi4)‘는 ‘돌아가다’라는 뜻이다. 

엔메테나가 세상에 내놓은 자유는 

‘어머니에게 돌아가다’에서 탄생한 철학적인 수메르어이다. 

수메르어 ‘아마’의 악카드어는 ‘움무(ummu)‘이다. 

여기서 영어의 ‘마마(mama)’...  - 초란공


    [5] ˝수메르는 ‘적어도’ 8,500년 전에

 ‘(수메르) 남부의 남쪽’ 오우에일리에서 출발했다. 

4,000여 년 도안 이어져온 수메르의 역사는 수메르인의 몫이었다. 

그러나 수메르는 악카드인 사르곤에게 국권을 넘겨주었다.˝ (301) - 초란공



“85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유프라테스 강가에 한 마을이 있었다. 

지금의 오우에일리였다”로 시작하는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원(原)수메르인이 ‘오우에일리’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한 기원전 6500년경부터 

우르 3왕조 멸망으로 수메르문명이 지상에서 사라진 기원전 2004년까지, 

약 4500년 동안의 장대한 역사를 풀어나간다. 

 

“수메르는 가뭄을 이겨낸 최초의 도시문명국이었다”식으로, 

저자는 많이 아는 만큼 쉽게 설명한다. 

최초의 도시가 발달하고, 대홍수가 대지를 집어삼키고, 

영웅이자 제왕 길가메쉬가 등장하고, 

비옥토 ‘에덴’을 차지하려는 끝없는 쟁탈전이 벌어진다. 

특히 수메르 문명의 핵심은 풍요로운 황금 들판으로 실존했던 ‘에덴’ 쟁탈전이다.” 

“ ‘최초의 역사’는 에덴 쟁탈전이었다. 

에덴은 수많은 물길로 연결된 수메르의 들판이었다.

 …...

에덴이 없었다면 문명은 탄생할 수 없었다.”

최초의 수메르 제국이 개창하고, 끔찍한 부정부패가 자행되고, 

악카드의 사르곤이 쳐들어와 수메르를 점령하고, 

수메르 도시국가들이 독립운동을 펼치고, 

왕과 신하 간 권력 암투로 문명의 마지막 빛줄기가 꺼져가기까지 수많은 일이 벌어진다.  

 

 

 

ㅡ수메르어로 ‘수메르’라고 쓴 설형문자.

 

 

2007년 말부터 수메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독보적 통찰은

당대 문자 사료, 즉 라가시에서 발굴된 사료와

수메르 연구의 교과서나 마찬가지인 ‘수메르 왕명록’을 대조하면서

발견한 감춰진 진실에 모아진다.

그토록 상세한 기록을 남긴 ‘수메르 왕명록’은

왜 라가시와 움마 왕조 역사는 쏙 빼놓았는가??

 

저자가 내린 결론은 최초의 역사가로 알려졌던 헤로도토스보다

2000년 이전에 역사를 기록한 이씬 왕조의 필경사 누르-닌슈부르가

조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설명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라가시 유적에서 나온

‘에덴 전쟁사’에 기반한 ‘최초의 역사’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나는 수메르에 정통한 명망가들의 주장을 일부 뒤집었다.

역사는 끊임없이 수정된다.”

이미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청소년을 위한 길가메쉬 서사시’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등을 펴낸 김산해는

일생을 수메르 신화·역사·문명 연구에 전념했다.

수메르어와 악카드어 같은 고대어를 직접 해독하며

초고대 문명의 잊힌 역사를 복원하는 데 집중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신화와 인류학을 공부한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이 집념의 연구자는 집필 도중

3번의 시한부 선고를 받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해 병마와 싸워가며 글을 썼다.

마지막 원고를 탈고한 지 4개월여가 흐른 지난 11월, 안타깝게도 출간을 지켜보지 못한 채 영면했다.

 

‘수메르’에 대한 독보적 지식에도 그는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초고대문명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수메르에 관한 한 최고의 학자는 없다.

다만 학생만 있을 뿐이다.

공부는 끝이 없고, 삶은 너무 짧다.”

※영화 ‘마블’에서 우리나라 배우 마동석이 열연한 길가메쉬는 누구였을까. 저자는 수메르 주도권을 놓고 키쉬와 우루크가 대립하던 시절 우루크 다섯 번째 왕으로 등장한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한다. 그와 키쉬 왕 아가의 전쟁 이야기에 여러 행적이 영웅담으로 더해지면서 신화가 만들어졌다.

박성준 기자
 
 
인류가 기록한 ‘최초의 역사’는 수메르에 있다. 수메르는 8500여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발원했던 문명이다. 이들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대 말기께부터 넓적하게 만든 점토판에 갈대 첨필로 그린 상형문자로 기록되었고, 나중에는 찍어 눌러 기록하는 설형(쐐기)문자로 기록됐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고대어를 깊이 연구해온 한국인 학자 김산해(1959~2021)가 수메르 점토판으로부터 직접 읽어낸 내용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수메르문명의 역사다. 지은이는 앞선 2005년 수메르어 점토판 원문 등을 직접 해독해 수메르의 전설적인 왕에 대한 무훈담 ‘길가메시 서사시’를 소개한 책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펴낸 바 있다.
이번에는 전 세계 18개 박물관에 보관된 수백 장의 점토판을 연구해, 수메르문명을 시간 순서에 따른 통사로 재구성했다. 지난 13년 동안 자료 수집과 원고 집필에 매달린 지은이는 세 차례 시한부 선고를 받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고, 끝내 이 책의 출간을 지켜보지 못하고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는 여는 글에서부터 “역사왜곡으로 잃어버린 수메르 역사를 복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수메르문명의 역사를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료로는 <길가메시 서사시>와 함께 <수메르 왕명록>이 꼽힌다. 기원전 1817년 ‘이씬’ 왕조의 필경사 누르-닌슈부르가 ‘에리두’부터 이씬까지 왕권의 이동을 기록한 <수메르 왕명록>은 수메르 역사를 “세계 역사의 맨 앞자리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지은이는 1877년 프랑스의 에르네스트 드 사르제크가 발굴한 ‘라가시’ 유적에서 나온 점토판들의 내용을 토대로, <수메르 왕명록>은 ‘역사왜곡’의 기록이라고 지적한다. 라가시 점토판은 기원전 2600~2334년 사이 벌어진 라가시와 ‘움마’ 사이의 전쟁을 ‘에덴전쟁사’로 기록하고 있는데, <수메르 왕명록>에는 아예 라가시와 움마의 기록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ㅡ길가메시 석상 [루브르박물관 소장. 휴머니스트 제공

 

ㅡ사르곤의 아카드 건설 과정이 기록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인류고고학박물관에 보관된 점토판. 휴머니스트 제공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시작한 수메르문명은

여러 도시국가가 경합하는 문명으로 발전했는데,

남동쪽에 자리한 라가시와 북서쪽에 있던 움마는

비옥토인 ‘에덴’을 차지하기 위해 250년 동안 전쟁을 벌였다.

 

최후의 승자는 움마였는데,

정작 그 결실은 수메르 전역을 지배하게 된 아카드인 사르곤이 차지했다.

그 뒤 수메르인은 181년 동안 아카드 왕들의 압제에 시달리는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

결국 해방과 통일 과정을 거쳐 우르 3왕조가 이뤄졌으나,

우르 왕들에게 시달리던 ‘자그로스 종족 동맹군’의 공격으로

수메르는 기원전 2004년께 멸망하고 만다.

수메르의 멸망을 재촉했던 아카드인의 이씬 왕조가

수메르 멸망 뒤 우르를 차지했는데, 지은이는 이 이씬 왕조가

거짓 정통성을 만들기 위해 <수메르 왕명록>을 개작하며

라가시 등의 역사를 지우고 우르 3왕조 뒤에 이씬 왕조를 이어붙이는 식의

역사왜곡을 벌였다고 주장한다.

‘과거사 청산’은 ‘최초의 역사’에서부터 결정적인 문제였던 셈이다.

 

 

 

https://youtu.be/lMpoY6VLB9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