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ic Philosophy는
신념, 가치 및 이해를 식별하고 명확하게 하여,
존재와 실재의 근본적인 본질에 관한 형이상학,
지식과 믿음의 본질을 연구하는 인식론,
도덕적 가치와 관련된 윤리학들을
추론할 수 있는 논리체계를 갖게한다. (JK)
학술(학문)철학(Academic Philosophy)에 관하여 .... Bertrand Russell.
"학술 철학은 주로 다른 철학자들이 말한 내용을 아는 것으로 구성되며,
이에 대해 더 활발한 지지자들은 선택한다면,
이전 철학자들이 다룬 주제와 유사한 주제에 대해 약간의 추측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에 종속될 이유가 없습니다.
규율은 특별히 현명하거나 특별히 고귀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특별히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철학 교사에게 현재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혜나 용기를 기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과목의 교사들에게 기대됩니다.
또한 과거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공무와 관련하여 특별한 소질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는 “만물은 물이다”라는 명제에 그의 명성을 걸었지만,
이는 정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플라톤은 사실상 파시스트였다.
근대철학의 창시자인 데카르트는 정치적인 문제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홉스는 정부에 대한 복종이 일반 시민의 덕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흄은 정치에서 단 두 가지 격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인이 영국인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수당이 휘그당보다 낫다.
헤겔은 절대군주제를 믿었다.
이 위대한 사람들 중 누구도 오늘날에 유용한 사상을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문제에 직면한 현대 철학자는
그의 전임자들의 명령에서 그를 도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위대한 철학자 중에는 로크라는 한 명의 예외가 있습니다.
로크는 영국의 불안과 광신도들의 경쟁으로 인한 내전이 끝날 무렵에 등장했습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사람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의 기질을 구하도록 하였다.
그가 추천한 기질은 관용의 성격이었고,
사회문제에 대한 모든 의견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관용을 추천했다.
그의 가르침은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영국에서 다시는 내전이 없었습니다.
불행히도 프랑스에 있는 그의 제자들은 그의 철학에서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이 시대 철학자의 의무"(1964)
제3대 러셀 백작 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은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 다.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 원리》를 저술하여 수리논리학의 성립에 공헌하였으며,
현대의 주류 철학적 흐름인 분석철학을 창시하였다.
이후 평화주의 운동과 저술활동에 참여하였다.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로크 (John Locke, 1632 - 1704)
근대 자유주의의 시조라 불리우며,
영국의 철학자로 현대인류사회가 탄생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치학자 중 한 사람이다.
영국 경험론의 흐름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이후 이마누엘 칸트가 정립하여 철학사의 한 획을 그은 인식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유명하며,
유명한 철학 저서인 《인간오성론》의 저자.
인간은 아무 것도 각인되지 않은 백지 상태(타뷸라 라사, Tabula Rasa)에서 태어나
경험을 통해 자신을 완성해 간다는 주장을 펼쳤다.
로크는 사회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이는 토머스 홉스가 주창했던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주권재민 사상을 확립시켜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로크는 특히 영국과 미국의 정치사에서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홉스의 사상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보자니,
홉스와 비교해 그의 사상이 부르주아 계급의 입맛에는 맞으나
이론적으로 모순되는 부분이 꽤 있고 정밀하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또 홉스가 가열찬 모두까기 정신으로 현실 정치에서 어느 당파도 홉스 지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홉스 이론과의 맞대결은 슬쩍 피하고 약간 정합성이 떨어지는
팔머의 이론을 까는 데 집중할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다.
로크는 지성과 물질의 두 가지 본질(substance)을 믿었던 형이상학적인 이신론자이다.
그는 인식론의 창시자이며 계몽 철학의 개척자일 뿐 아니라,
그의 정치·교육·종교 등의 사상은 영국과 프랑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처음에는 데카르트 사상에 관심을 가졌으나,
후에는 데카르트의 생득적 관념(innate ideas)을 맹렬히 비판하며,
관념의 경험적 발생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본래 백지와 같은 것으로
어떠한 성분도 생득적 관념(innate ideas)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에게 지식과 추리의 재료인 관념을 주는 것은 경험뿐인데,
경험은, 감각과 반성으로 나뉜다.
우리는 감각에 의해 달다, 짜다, 희다, 둥글다 등의 관념을 가지며
반성에 의해 사유, 의지, 상기 등의 관념을 가진다.
이들은 단순 관념으로서 이들이 복합하여 복합 관념이 생긴다.
이성론에서 말하는 실체도 복합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경험론의 입장을 취하였다.
정치가인 까닭에 그의 사상은 보편적이다가도
서구 유럽 중심적인 사고를 보여주거나,
인류의 권리나 능력의 평등함을 주장하다가 신분제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논의를 펼치는 등
이론 그 자체의 정교함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는 면이 컸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통치론 자체가 왕당파와 휘그파 사이의 팸플릿 전쟁에서
로크가 휘그파의 대표적 이데올로그로서 로버트 필머의 왕권신수설을 반박하기 위해 쓴 것이며,
이렇기에 급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야당 정치가라는 정체성을 빼놓고는
그의 이론을 얘기할 수가 없다는 말도 있다.
정교한 이론을 자랑하던 홉스와 견주어, 혼돈된 사람들의 홉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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