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1. 출애굽 그리고 가나안 정착

참조- 2, [광야의 공포로 부터 나온,야훼신앙] ※침례(세례)의 기원(the Origins of Baptism)

Narin Pusil 2020. 7. 10. 20:44

■광야의 공포가 만들어 준,  신(神, God)→야훼(YHWH)

 

1.

 
역사든 소설이든 간에 Near East(근동)지방에서는, 부족(민족)간에 싸움(전쟁)은
그들의 신들간의 전쟁이라 믿었기에 전쟁에 패한 무리는 승리한 무리의 신을 섬겼다고 ...
그래서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도 ..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바알(Baal), 마르둑 여러신들을 섬겼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특정한 외모의 소를 아피스(Apis)라고 부르며
태양신의 현신(現神, EL's Avatar→ incarnation)으로 숭배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일대 역시 황소(숫소)는 바알이나 최고위 신(God) 엘(EL)의 상징으로
암소는 이슈타르, 인안나(수Inanna, 아Ishtar : 아스타롯)의 상징으로 쓰였다.
고대 그리이스 제우스도 황소로 변신하며,
고대 페르시아 미트라 그리고 힌두신앙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황금으로 만든 소 우상을 만들고
이것을 자신들을 구해준 신이라고 숭배했는데,
당대에 금송아지 상은 보편적인 최고신을 묘사하는 상징이였기에
이들은 당시 이 일대의 관습에 충실했던 것이였지만,
유대교의 율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금기시 되는 우상으로 야훼(황소)를 묘사했을뿐 아니라,
그마저도 유대인들을 구원한 신이 야훼가 아닌 바알로 여긴, 신성모독으로 보았다.

 
 

 

구약의 우상 황소 - 힘, 돈, 성性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구약의 우상?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21세기를 산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시대다. 재물의 힘은 성과 사랑은 물론이고 자연과 생명을 장악했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 전국의 큰 강을

www.catholicnews.co.kr

 
2.
 
바빌론에서 돌아온 후,
바빌론의 이스라엘 상록수들은,
흩어졌던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대동단결시키기 위해,

(사실, 그들이 돌아온 예루살렘에는 이미 기득권이 형성되어 있어,
 야훼의 '거룩'을 앞세워 기득권층을 와해 시켜,
결국 예루살렘을 지배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서구문화가 가장 발달한 바빌론에서 학문을 익힌('바빌론 탈무드'를 완성)
에스라(Ezra)와 같은 학자들은
모세오경(토라TORA)를 비롯한 히브리경전(구약) 타나크(Tanakh)를 집필헸고,
학개 스가랴 같은 제사장 계열들이 주축으로 성전이라는 것을 다시짓고,
야훼를 유일신으로 등극시켰다(BC 6C경).
(삼위일체Trinity라는 것은, 후에 AD 3세기경 아프리카 학파의 터툴리안으로 부터 나옴)


                    

☆Sinai Wilderness (desert)

 

3.

 

바이블 출애굽기를 해석하는 신학자들중에,
수십만에서 약 2백만명이 출애급하였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밥은 그렇다치고,
광야에서 물을 공급을 어찌 받았을런지.......
그렇기에, 제목을 "광야와 물, 그리고 세례"로 정하게 되었다.
 

브엘세바, 네게브 사막지역(아랏), 마라, 르비딤,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
 
*40년의 광야 생활중
4개의 큰 오아시스가 있는 가데스바네아와
바란광야에서 36년 이상을 머물렀다고...
그것은 이집트 군대가 4곳의 넓은 오아시스가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 숙영하며 진陣을 치게되면,
히브리 무리들은 바란광야로 내려와 머물러 있곤 했다.
 
보스라 등등 .. 그곳들에는
이미 *물(오아시스, *Ouyun Musa)과 함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므로

(*모세의 샘이라 불리우는 오아시스들을 출애굽 무리가 가는곳마다 명명했음)

물 때문에 그곳 원주민들과 다툼 일어났고 급기야 전쟁으로 번졌다. 
모세의 무리는 가축들과 함께 이동해야 했기에 남의 물을 탈취할 수 밖에 없었고
희생자도 생겼고, 그래서 무리들의 생활에 굉장한 불편도 있었다.
 

 

 
그들이 출애굽하며 시나이반도 아래 광야를 선택하였던 것은,
지중해 해안따라 펼쳐지는 블레셋 평야, 샤론 평야, 이즈르엘 평야와 같은 비옥한 땅에는
이집트와 애굽의 람세스2세와 싸워 승리한 이미 미탄니 왕국을 멸망시킨 힛타이트 제국이,
그리고 고대 페니키아 해상왕국의 식민지들이 버티고 있었었으므로,

시나이 남쪽 메마른 광야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소위 출애급 당시, 팔레스타인, 갈릴리 지역등은
람세스2세의 이집트 영향력 아래 있었고
수리아는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지방)의 신흥 힛타이트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결국 2나라는 '카데시 전투' 를 치루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말하자면 그 기름진 땅에는 모세의 무리는 단 한 발자국도 들여 놓을 수가 없었고
따라서 광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물을 구하려 찾아 헤멨고
결국 그 공포가, 중동에 산재해 있던 엘(EL)의 아바타(Avata)들
그중에 하나였던 파괴와 전쟁의 신, 야훼를 택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1)  출애급 한 모세와 그의 무리들은 힘이 절대적으로 없었기에
물과 토양이 기름진 곳으로 갈 수 없었고,
2)  광야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유목인 그들과 가축이 찾아 헤멘 것은 바로 물이었고
3)  물이 있는 그곳은 다툼(전쟁)이 필연적으로 수반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4. 세례의 기원 

ㅡOuyun Musa ; The Fountain of Moses in the Wilderness 광야의 모세의 샘

 

출애굽으로, 시나이 광야에서 물(모세의 샘)을 찾아 헤메였던,

광야 생활에서 체득한 물의 소중함이, 세례의 기원이 되었다.

 

After the Exodus, 

the preciousness of water learned 

while wandering in the wilderness of Sinai in search of water (Moses' spring) 

became the origin of baptism.


므리바(meribah)물과 모세의 실수(민수기 20:1-29)

마라의 샘(Well of Marah, Exodus 15,22-25; 민수기 33,8-9)


40년 광야생활중 대락 36년간을 가데스-바네아에 머물러 있던것도
4개의 큰 오아시스 샘이 있었던 까닭이다.
거기서 물을 찾아 헤메는 광야의 공포에서 벗어난 삶을 영위할 수 있기에 그러했다. 

이집트 파라오 군대가 숙영할때는

가데스 바네아를 떠나 '바란광야'로 내려왔다가,
파라오 군대가 떠나면
다시 오아시스의 가데스 바네아로 올라가 사는 삶이,
30여년간의 그들 생활Pattern이었다.

40년광야 생활에서 물은 정결이 요구되는
지성소의 성수로는 물론, 해산한 산모와 아기에게 절실했었을 것이고
육체적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과 몸을 정결케 해주는 맑고 깨끗한 물 ..
그런 물에 대한 인식이 수반되어
물로 세례를 베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주민들과의 계속되는 전쟁 ....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황폐하게 만드는
끝없는 지쳐가는 광야생활속에서
그들을 이끌고 돌보아줄 무언가가 필요치 않았을까요 ..
그래서 그들은 엘(EL)의 아바타,
전쟁과 파괴의 신(god)이었던 "야훼"를 히브리 민족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끓임없이 대적해야할 원주민들을 물리쳐 줄,
"야훼신앙"으로 발전되어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하느님이 되었다.
 
 
 
(유대교의 미크바 mikveh, miqwe의 발전
= 유대교에서 의식적 정결을 회복하기 위해 사람이 목욕하는 자연수로 된 못.)

The Catacombs of San Callisto in AD 3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