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귀향
그리고 시대적 방편, <'거룩'>
히브리어(Hebrew)로 거룩(Kodesh)은
'잘라냄, 분리함'을 의미하며
히브리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더러운 세속과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Initially, around 50,000 Jews made Aliyah to the land of Israel
following the decree of Cyrus as described in Ezra,
whereas most remained in Babylon.
초기에 약 50,000명의 유대인이 에스라에 기술된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이스라엘 땅에 알리야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대부분은 바빌론에 남아 있었습니다.
70여년만에 바빌론에서 돌아와 보니,
예루살렘에는 <페르시아 문화>에 익숙해진 기득권층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장악하기 위해, 기득권층들의 사고방식과 다른 차별의식,
즉, 야훼를 '유일신'으로 내세우며, "거룩"이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천상 높은곳에 있다는 신화적인 <시대적 방편>을 슬로건으로 삼았고,
결국 <예루살렘-주도권>을 장악해 갔다.
"거룩", 역시 "선민의식"과 훗날의 "칭의론"과 같은 <차별성>이 내포된,
당시에 예루살렘 토박이 기존의 세력을 누르고 우위를 점령하기 위한,
스룹바벨, 에스라 그리고 스가랴, 학개와 같은 귀향인들의 <시대적 방편>이었던 것이다. (JK)
Yehud Medinata 예후드 메디나(타)
페르시아 제국의 속주내 도시의 유대인들
예후드 메디나타(아람어) 단순히 예후드(Yehud)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내에 속주(屬州,Provincia)를 말한다.
주로 유대인 출신의 통치자에 의해 지배되는 그 영토는
전대의 유다 왕국 보다 훨씬 더 작고 인구가 훨씬 더 적었다 .
예후드 메디나타 지역은 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
신바빌로니아 제국(기원전 597년)에 형성되었던 이전 바빌로니아 지방(기원전 587년),
실패한 유대 반란을 진압한 후 다시 기원전 586년에 형성된 예후드 지방에 해당한다.
*에베르나리(Eber-Nari)의 페르시아 사트라피의 일부인 예후드 메디나타는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에 이어 헬레니즘 제국에 편입되기까지 2세기 동안 계속 존재했다. (위키)
*(Eber-Nari 바빌로니아 인과 그 동맹국은 결국 이집트인
그리고 아시리아 군대의 남은 자들을 무찌르고 이 지역을 장악했으며
계속해서 에베 르-나리라고 불렀습니다.)
예후드 메디나타
587 BCE | 바빌로니아인에 의한 예루살렘 정복, 두 번째 추방(597년 첫 추방), 미즈바에 총독으로 게달리아 임명. |
582? BCE | 게달리아 암살, 난민은 이집트로 피신, 세 번째 바빌론으로 추방 |
562 BCE | 597년 유다 왕 예호야킨이 바빌로니아로 추방되어 감옥에 갇혔고, 바빌로니아에 남아 있다. |
539 BCE | 키루스 대왕(Cyrus II, 기원전 550–530년)이 바빌론을 정복. |
538 BCE |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용하는 '키루스 선언' |
530 BCE | 캄비세스 2세(기원전 530년–522년)가 키루스의 뒤를 잇다. |
525 BCE | 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 |
522 BCE |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년)가 캄비세스의 뒤를 잇다. |
521 BCE | 다리우스와 추방된 유대인 사이의 바빌론에서의 협상 |
520 BCE[3] |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후드의 총독으로,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으로서 임명. |
520–515 BCE | 제2 예루살렘 성전 건설 |
458? BCE | 에스라 예루살렘 도착 (아닥사스 1세 7년, 기원전 465~424년 왕) |
445/444 BCE |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도착 (아닥사스 1세 재위 20년) |
397? BCE (possible) |
에스라 예루살렘 도착 (아닥사스 2세 재위 7년, 기원전 404년–358년 왕) |
333/332 BCE |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의 지중해 지방을 정복: 헬레니즘 시대의 시작 |
The returnees settled in what became known as Yehud Medinata or Yehud.
Yehud Medinata was a self-governing Jewish province under the rule of the Achaemenid Empire
which even issued their own Yehud coinage inscribed with the three letters Y-H-D.
The autonomy of Yehud Medinata inspired future generations of Jews,
their notion of their own national identity and aspirations,
the need to end 2000 years of exile since the Babylon captivity,
and to continue to make aliyah to the Land of Israel.
The ancient name Yehud Medinata also resembles the name
of modern Hebrew name Medinat Yisrael (the State of Israel).
문서:
예후드 메디나타 귀환한 사람들은
Yehud Medinata 또는 Yehud로 알려지게 된 곳에 정착했습니다.
예후드 메디나타(Yehud Medinata)는 아케메네스 제국(Achaemenid Empire)의 통치하에 있는
자치 유대인 지역으로 Y-H-D 세 글자가 새겨진 자체 예후드 주화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예후드 메디나타의 자치권은 미래의 유대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과 열망, 바빌론 포로 생활 이후 2000년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계속해서 알리야를 이스라엘 땅으로 가야 할 필요성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었습니다.
고대 이름 Yehud Medinata는 현대 히브리어 이름인 Medinat Yisrael(이스라엘 국가)의 이름과 유사합니다.
Sheshbazzar's Aliyah
Cyrus restoring the vessels of the temple, by Gustave Doré
Sheshbazzar's aliyah (those claiming that Zerubbabel and Sheshbazzar were the same person,
associate Sheshbazzar's aliyah with Zerubbabel's Aliyah),
had occurred near after Cyrus's Decree, in 538 BCE.
Approximately 1,000 young Jews made aliya in what became known as Sheshbazzar's Aliyah,
out of the notion to redeem the land of Israel from its ruins and
to re-establish the holy temple on the Temple Mount.
This aliyah was named after its leader Sheshbazzar because most scholars have agreed
that he is a descendant of the house of Jeconiah, king of Judah. The Book of Ezra depicts Sheshbazzar's Aliyah
as a consent and encouragement of the Persian King Cyrus:
셰시바자르의 알리야 구스타브 도레,
신전의 그릇을 복원하는 키루스 대왕의 Sheshbazzar's aliyah
(스룹바벨과 Sheshbazzar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Sheshbazzar의 aliyah를 스룹바벨의 Aliyah와 연관시킴)는
기원전 538년에 Cyrus의 법령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약 1,000명의 젊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폐허가 된 땅에서 머물러
성전 산에 거룩한 성전을 재건하려는 생각에서
Sheshbazzar's Aliyah로 알려지게 된 곳에서 알리야를 만들었습니다.
이 알리야의 이름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가 유다 왕 여고냐의 후손이라는 데 동의했기 때문에
그 지도자 셰스바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에스라서는 셰스바자르의 알리야를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동의와 격려로 묘사합니다.
Return to Babylonian captivity
Aliyah
: immigration to Israel.
: Exalted ; to ascend,
; go up ; Hebrew.
Zerubbabel's Aliyah
: The second wave of aliyah, known as Zerubbabel's Aliyah, was led by Zerubbabel the son of Shealtiel, the grandson of Jeconiah, king of Judah, and a descendant of the house of David as well as Joshua the son of Jehozadak who was appointed as high priest (Kohen Gadol), in 538 BCE.
Ezra's Aliyah
: The third aliyah was led by Ezra the scribe, in 458 BCE. Around 5,000 Jews were in this wave of returnees.
Nehemiah's Aliyah
; The fourth aliyah was led by Nehemiah the son of Hacaliah, in 445 BCE.
▶볼 수도 보이지도 않는, 알 수도 알지도 못하는
돼지를 키울 수 없는, 유목민족의 모세의 히브리족의 하나님...
▶장막으로 가리워서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것으로 카리스마를 유발시켜
사람들을 홀리고 쇄뇌시켜 결국, 종교권력에 복종하게 만드는 (고대)중동의 종교들 ...
▶그것들을 이어받은 현대판 히브리교, 기독교는 .. 그 속성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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