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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푸실 이야기/철학 이야기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 1417년 근대의 탄생

Narin Pusil 2021. 9. 5. 23:42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르네상스, 그 찬란하면서도 퇴폐적인 일탈을 묘사하다.


1.

1417년 겨울, 30대 후반의 한 남자가

남부 독일의 한 수도원의 먼지 덮인 서가에서 옛 필사본 한 권을 발견한다.

그는 르네상스 당대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필사가, 고대 전적의 발견자이자

고대 유물의 수집가로서 탁월한 인문주의자였던 '포조 브라촐리니'였다.

교황의 권위가 붕괴되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포조는 잃어버린 고대의 문헌을 찾아

책 사냥을 떠난 것이었는데, 이 때 발견한 책이 바로 옛 필사본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이다.

 

 

2.

저자 '그린 블랫'은, “책 사냥꾼” 포조의 이와 같은 발견의 전후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르네상스의 태동과 전개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저 깊은 심연에서 “근대의 탄생”을 확인하는

지문(指紋)을 발견하는 위대한 여정이었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당시로서는 가장 위험한 사상들이 숨어 있는 장시(長詩)였다.

그 시 속에는 우주는 신의 도움 없이도 움직이고, 사후세계에 경험하게 된다는 종교적 공포는

인간생활의 적이며, 쾌락과 미덕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뒤엉켜 있다는 불온한 생각이 흘러넘쳤다.

또한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무수한 원자들이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영속적으로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여 “일탈한” 결과로서 물질들을 구성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의 발견은 기독교의 교리에 의해서 인간의 사상과 자유가 속박당했던,

그리고 교회와 봉건적 지배에 의해서 인민이 착취당했던 “암흑”의 중세를 마감하고

“재생”의 르네상스가 태동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3.

특히 저자는 르네상스가 근대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운데에서도

일방적으로 르네상스를 찬양하지 않고 당대의 퇴폐와 오염을 극한 종교와 지배계급과 사회를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단순한 근대주의자가 아닌 것을 보여준다.

르네상스의 화려하지만 퇴폐의 악취가 만연한 시대적인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노라마적으로 펼치는

'그린블랫'의 설득력 있는 묘사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주는 또다른 유혹적인 선물이다.
역사의 저 깊은 심연에서 “근대의 탄생”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ㅡDe rerum natura , 1570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는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서사시이다.

루크레티우스는 높은 긍지를 갖고 있던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미묘한 점에 이르기까지 시(詩)로 재현시키려 하였다. 

로마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시도였다. 그가 취급한 것은 에피쿠로스의 자연학 부분이다. 

라틴역(譯)으로, 그 의미를 본다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고 번역된다. 

 

사물(事物)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일체(一切)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자연학이 주로 되어 있고 에피쿠로스파의 주장이나 

윤리관, 주관적인 것을 간혹 첨가시켜 놓은 데 불과하다. 

그는 자연학을 기술한 후 윤리 방면에도 확대하려 하였다. 

작품 내용의 추이(推移)상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이 작품도 미완성이다. 

 

에피쿠로스는 원자(原子) 상호의 충돌은 

중량의 차에 의한 낙하 속도(落下速度)의 상위(相違)가 원인이라 하고 있다. 

루크레티우스는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경운동(斜傾運動)'을 일으키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인간의 자유의지의 문제도 이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나 그 논지는 애매하고 난해했다.

이 작품은 키케로의 주선으로 출판된 듯하나 대중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일부 사람은 일찍부터 충분히 진가를 인정하고 있었다. 

후배인 베르길리우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시인 오비디우스는 언제인가 대지(大地)가 멸망하는 날이 있다면 

그날이야말로 숭고한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멸실하는 날일 것이라고 하여 

이 작품의 영속성(永續性)을 예언하고 있다. (위키백과)

ㅡ《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강대진 역, 아카넷, 2012.

 

 

 

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입자들로 구성된 세상이라는 ‘이단적’ 사고, 근대를 열다

 


나는 꼭 1년 전,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대해 이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약 24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원자론의 토대 위에 세운 삶과 죽음에 대한 

놀랍도록 ‘근대적’인 세계관을 약 250년 뒤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가 

유려한 장시(長詩)의 형식을 빌려 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저작이다.

글이 나간 뒤, 한 출판사에서 신간 한 권을 보내왔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다양한 책을 써온 이브 파칼레의 에세이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였다. 

루크레티우스의 책이 에피쿠로스에 대한 오마주라면, 

빅뱅부터 현생인류의 출현까지 장대한 시간을 다룬 자연사 같은 이 책은 루크레티우스에 대한 오마주이다. 

 

나는 책을 보내준 이에게 저명한 문학비평가 스티븐 그린블랫의 신간 

“비껴가는 입자: 세계는 어떻게 근대가 되었나”에 대해 얘기했다. 

현대의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주의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였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최근에 나온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까치)이다.
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그린블랫의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나 또한 심정적으로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철학은 일상의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주변을 돌아보라.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지 않은가. 

가 입은 옷은 점점 더 낡게 되며, 쇠로 만든 문손잡이조차도 닳아 간다. 

낡고 닳은 이 물질들은 결국 어떻게 되는가. 

더욱 더 작은 알갱이로 쪼개지다가 종국에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알갱이로 남게 될 텐데, 

이것이 바로 원자/입자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이 입자들의 운동과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입자들은 서로 ‘비껴가다가’ 뭉쳐지고 흩어지며 만물을 생성한다. 

이 과정은 끝없이 계속된다. 현대물리학의 세계관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더 경이로운 것은 물질계에 관한 이러한 추론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의미 있는 철학적 사유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생성소멸의 원리가 이러니 인간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리 없다. 

그의 육체는 물론 영혼조차도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입자의 운동으로 구성된다. 

 

인간도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사는 지구는 특별한가?  아니다!!

우주는 무한하므로 역시 입자의 운동으로 만들어진 다른 생명체가 사는 별도 무수할 것이다. 

그러므로 흔히 상상하는 사후세계란 없다. 

죽음과 탄생은 모두 그 자체로는 우연적 운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신이란 존재도 없다. 설사 신이 있다 해도 이 세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망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바로 여기서 오랫동안 오해를 낳았던 쾌락주의가 나타난다. 

쾌락이란 곧 자신과 친구가 누리는 행복한 삶에 다름 아니다.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욕망을 채우는 행위는 물론이고, 재산을 모으고 명성과 명예를 얻는 일도 별 의미가 없다. 

그런 것들이 주는 쾌락은 짧고 고통은 길기 때문이다. 

인생의 모든 고통과 공포는 전혀 근거 없는 공상과 환상과 미신에서 비롯된다. 

입자 운동의 원리를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에게 주어진 이 유한한 세계에서 큰 욕심 없이 일상의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평정심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에피쿠로스 철학의 요체이다.

그린블랫의 책은, 1417년 당대 최고의 휴머니스트 포초 브라촐리니가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루크레티우스의 필사본을 찾아 세상에 알린 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17세기말 조르다노 브루노를 화형주로 보낸, 이 ‘이단적’인 책은 몰래 필사되고 회람되어야 하는 운명이었지만, 

비유하자면 근대적 세계관을 탄생하게 한 뇌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껴가는 입자들이 우리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곧 루크레티우스가 말하는 ‘사물의 본성’이다.

 (곽차섭 | 부산대 사학과 교수)

 

 

ㅡ르네상스 초기 회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보티첼리의 ‘봄’(1482). 이 책에 따르면 보티첼리는 “봄이 오니, 날개 달린 전령들이 앞서 나와 베누스(Venus)의 입장을 알리고, 어머니 플로라(Flora 꽃의 여신)는 열심히 제피로스(Zephyros서풍의 신, 플로러 남편)의 발꿈치를 따라와 그들의 앞길에 빼어난 색과 향을 풍성하게 흩뿌린다”는 봄에 대한 루크레티우스의 묘사를 충실히 좇고 있다.

 

도서관서 찾아낸 낡은 책 한 권이 '르네상스의 씨앗'
15세기 '책 사냥꾼' 포조 고대 로마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발견
다빈치·갈릴레오·다윈 등 어떻게, 어떤 영향 미쳤는지 히스토리 픽션으로 묘사

 


"점점 어두워져가는 수도원 도서관에서 

수도원장과 사서의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포조는 책의 서두를 읽는 것 이상의 여유는 없었을 수도 있다. 

그는 데리고 온 보조 필사가에게 시를 베끼도록 지시하면서 

이 어두운 도서관으로부터 

그것을 해방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서둘렀다. 

그것은 머지않아 그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를 

해체하는 데에 기여하게 될 운명의 책이었다."(66쪽)

 



서양의 15세기 초는 혼란의 시대로 기록된다. 

혼란이란, 세계사의 커다란 매듭이 으레 그렇듯, 묵은 것이 무너지고 새 것이 솟는 순간의 역동을 의미한다. 

인간의 의지가 신의 오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이 즈음의 역동을 르네상스라 일컫는다.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에 걸쳐 폭발적으로, 인간은 신의 섭리에 짓눌려 있던 스스로의 자유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전환의 기폭(起爆)에 대한 설은 분분하다. 

1417년 독일 헤센주 깊숙한 곳에 있는 수도원의 먼지 쌓인 서가에서 

한 권의 낡은 책이 전직 교황의 비서에게 발견됐다는 사실, 

<1417년, 근대의 탄생>은 그것을 르네상스 발화의 불꽃으로 그려내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추리소설을 연상케 하는 도입부의 인물 묘사와 주변부부터 

조금씩 어둠을 지워가며 배경을 드러내는 기법 덕에 

이 책은 역사에서 뼈대를 발라내 상상의 살을 붙인 히스토리 픽션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꽤 재미있다. 

 

하지만 책에 실린 역사와 그것을 바탕으로 삼은 추론은 모두 객관적 서술로 분류돼야 옳다. 

권말에 실린 32쪽에 달하는 주석과 수백권의 참고문헌 목록이 이 책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하버드대 교수인 지은이 스티븐 그린블랫은 셰익스피어 연구의 권위자다. 

이 책에서 그는 기원전 4세기의 에피쿠로스와 기원전 1세기의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15세기의 포조 브라촐리니의 불가사의한 사상적 만남을 추적, 

르네상스의 태동과 전개를 세련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2011년 전미국도서상과 2012년 퓰리처상의 논픽션 부분 수상작이다.

책의 얼개는 이탈리아의 '책 사냥꾼' 포조가 독일 수도원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라는 서사시를 찾아내 유포하는 과정이다. 

포조는 교황의 명령을 우아한 라틴어 문장에 담아 유럽대륙 전역에 뿌리던 문서 담당 비서였다. 

권력의 지밀(至密)에 있었기에 부와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그의 주인 요한네스 23세 교황은 1415년, 

대륙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포조는, 장기인 라틴어 감식안을 살려 책 사냥꾼이 된다. 

 

약 80년 전 시인 페트라르카가 로마 시대 역사가 리비우스의 기념비적 저작 <로마 건국사>을 비롯해

키케로, 프로페르티우스 등 고대의 걸작을 발견해 집대성한 이래,

묻혀 있는 고전을 찾아내는 일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붐이었다. 당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책 사냥꾼이었다.

책 사냥의 세계에 발을 들인 포조는 이미 털릴 만큼 털린 이탈리아를 떠나 알프스 산맥을 넘는다. 

스위스와 독일의 수도원을 뒤지고 다니던 그는 웨자강 상류 

풀다 수도원의 곰팡내 나는 도서관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를 찾아낸다. 

그리고 1450년 저쪽의 로마, "교황청의 부패와 각종 음모, 정치적 쇠락,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선(腺)페스트에 시름하던" 로마가 아니라

"아직 광장과 원로원이 당당하게 서 있던 시절의 로마,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경탄과 열망을 불어넣던 보석같이 아름다운 라틴어가 넘실대던 고대의 로마"를 발견한다.

 

장시(長詩)의 형식을 취한 이 책 속엔 당시로서는

 

_ 우주는 신의 도움 없이도 움직이고, 사후세계에 경험하게 된다는

종교적 공포는 인간생활의 적이며, 쾌락과 미덕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뒤엉켜 있다는 사실 _

 

위험한 생각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처럼 포조와 루크레티우스의 시대를 초월한 만남에 대한 묘사가 이 책 <1417년, 근대의 탄생>의 전반부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낡은 책 한 권이 바꿔놓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루크레티우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이다. 

원자론은 지금껏 존재한 모든 것과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이 파괴할 수 없는 입자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은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만큼 작으며, 그 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사상이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이나 물가의 날벌레, 해와 달도 모두 원자로 구성된다고 봤다. 

핵심은 원자 간에는 어떤 위계질서도 없고 신성한 존재나 신의 지시도 없다는 것. 

삼라만상을 원자로 환원하고 신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려는 시도,

_ 그 큰 줄기는 후에 과학으로 입증되지만 _

 지옥의 무시무시한 형벌이나 기독교 교리의 압박에 억눌려 있던 15세기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복음으로 충분했다.

 

이 책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가 어떻게 보티첼리와 다 빈치의 예술에 영향을 주고

갈릴레오와 몽테뉴가 대담한 생각을 갖게 했는지,

훗날 프로이트와 다윈, 아인슈타인, 토머스 제퍼슨에게 지침이 됐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지은이는 서문에 책의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진, 어린 시절 그를 숨막히게 한 죽음에 대한 상념을 털어 놓는다. 

그리고 대학시절 영역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를 접한 뒤의 소감을 

"이 땅에 머무는 시간을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채 보내는 것은,

그야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신이나 다른 그 무엇의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이성으로 만물의 본성에 접근하라는 루크레티우스의 목소리가 

르네상스인들을, 그리고 2,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은이를 각성케 한 휴머니즘의 힘일 것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