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4, 신앙과 신학, 그리고 과정신학( Process theology

5. 과정신학 -3. 특징

Narin Pusil 2021. 2. 21. 18:13

3. 과정신학의 특징

 

 

1.    회퍼는 그의 옥중서신에서 '하나님'은 점점 과학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일반에 있어서도 추방되고 근거를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철저하게 무력하고 약한 하나님은 마치 하나님 없이 이 세상을 관리해야 겠다는 현대인의 자율의식과 맞물려 어떤 종류의 초월적 실재관도 거부하는 것이다.

 

      이같은 세속화 신학은 전통적인 신정론(Theodicy)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인간의 창조과정의 책임성 강조와 신의 세계적 초월 혹은 세상적 내재와는 구별된 초월 내재의 창조자를 강조하는 점에서 과정신학의 수용 준비했다. 또한 자연과학에서의 장(場)의 이론, 양자역학의 물리관, 에네르기의 상존설, 진화론 등은 ... 이전의 모든 실재관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뒤바뀌게 하였다.

 

 

2.  일반적으로 전통신학이 소위 존재의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과정신학은 위에서와 같이 화이트헤드의 존재와 생성의 과정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모델로 현대 정황에 맞게 새롭게 신학을 창출해 냈다고 할 수 있다.  과정신학이란 과정, 변화 그리고 진화가 본질이라 보면서, 영원 그리고 항구성이라는 근본적이라는 실재의 견해에 기초한 현대의 신학적 운동을 말한다.  

 

    이 신학적 입장에서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향상적, 창조적 관계를 가지신 하나님 자신을 자발(self-development) 성장과정을 거치는 존재로서 이해한다. 과정신학의 이론적 기초는 화이트 헤드(Alfred N. Whitehead)의 “과정과 실재 (Process and Reality)” 라는 저서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의한 것이다.

 

3. 그리고 은 (로고스적)기독론으로  그의 저서 『Christ in a Pluralistic Age』에서 오늘날 이 시대의 탈 근대적인 다원주의 사회속에서 희미해진 그리스도의 표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존 캅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은 세속적이고 다원적인 의식안으로 들어감을 요구한다는 것과 그리스도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러한 세속적이고 다원적인 상황인데 이러한 그리스도의 일은 우리가 그분을 인식하는데 실패하고 우리의 신앙을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과거의 특수한 표현들에 연관시킴으로 인하여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부연 설명하고 있다.[1]  그 말 역시 과거의 신학으로부터 벗어나 새 시대에 맞는 신학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3. 과정 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과정(혹은, 생성) 개념에 젖어 있는 문화에서

    기독교 신앙의 적실성, 특히 세계와 하나님의 관계라는 것이 적절함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2] 

 

위의 말과 같이 과정 신학은, 하나의 문화신학의 양태일 수 있다. 이러한 궁극적인 목표는 과학과 신학의 조화로 나타나게 된다. 이전 시대에 과학과 신학을 완전 양립하고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 침범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신학은 모든 분야에 대해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과학과 조화를 이루려한다. 그래서 이들은 고전적인 신론을 부정하고 세계와 관련된 자신들만의 만유재신론(panentheism)을 주장하게 된다. 다시 말해 과정 신학자들은 고전적으로 주장되어진 신론이 ‘우주적 도덕가, 불변하며 냉정한 절대자, 통제하는 힘 또는 현 상황’이라고 표현되는 것에 대해서 회의심을 가지고 신을 일시적 과정에 참여하는 자로서 내재성과 초월성의 조화 이루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이들은 신과 세계는 상호 의존적이며, 신의 강압에 의해서 세계는 통치되지 않고 설득을 통해 조화가 이루어지며, 신은 함께 고통 받는 로서 묘사 되어 진다.

 

4.   미국교회는 지금 양진영으로 나뉘어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에 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전통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개념을 정의하고 사회윤리와 사회 가치관에 고귀한 변함없는 전통이란 용어로 현실 세계관에 적용하려 애를쓰고 있는 신학적 보수진영이 그 하나요, 인종, 성(gender), 계급, 정의, 평화, 평등.... 과 같은 현재 지금 당면한 현실적 가치관에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보적 아니 신학적 그리고 현대적 새로운 가치관을 세워가는 또 하나의 진영이 있습니다.

 

     옛것에 끄달려 그것을 반복하는 신학교육은, 현실에서 유리된 신학으로 머리만 남아있는 속 빈 강정일뿐이며 오만과 위선 덩어리의 기억속의 신학으로 초대일뿐이지 인간을 위한 아니 나를 만들어 가는 구체화된 신학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3] 신학함의 성찰을 말해주는<떠오르는 교회와 몸을 입은 신학>에서 저자 더그 패짓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엄청난 변화 가운데 많은이들의 참여가 있어야 신학은, 시대적이고, 고백적이고, 맥락을 갖추어야 하고, 특수함이 있고, 다양성 가운데 일치가 있으면 좋겠고, 이 모든것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기독교 왕국(Christendom, the Kingdom of God) 세우는 것이 아니다.”[4] 

 


[1] John Cobb, Christ in a Pluralistic Age(Philadelphia: The Westmister Press,1975). (CPA, p187)

[2] Stanley J. Grenz and Roger E. Olson, 20-Century Theology, 신재구 , 20세기 신학』, 207

[3] 필립 클레이튼, 신학이 변해야 교회가 산다,(신앙과지성사,2012,서울)124-127

[4] Doug Pagitt,the Emerging church and Embodied Theology(Grand Rapids,Mich:Zondervan,2007)12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