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3.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비교

4. 우신예찬

Narin Pusil 2021. 1. 4. 20:31

「우신예찬」(愚神禮讚)(Encomium Moriae)  

 


※ 작품배경

1506~9, 3년간 에라스무스가 이탈리아에 있을적에 전쟁을 즐기며 탐욕과 허영에 가득찬 (에라스무스의 *학교 동창들인 카톨릭 상층권력의) 교황과 추기경과 주교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행동과 직무유기와 타락을 목격했다. (‘대화’, ‘우신예찬’ 57.59,59  ㅡ그것은 로마에서 돈으로 천국을 사는 카톨릭 하층권력들을 보았던 루터와 뉘앙스가 서로가 다른 사고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그러한 바리새주의적인 사제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실-사랑-지성-현명이 아니라 허영-정념-욕망-어리석음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영국으로 돌아온 1509년 여름, 에라스무스는, 위와같이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여행하던 중 동년배 중 매우 현명하고 기지에 찬 친구 토머스 모어를 생각하다가 어리석음과 광기의 여신 모루스(Morus)에서 모리아(痴愚女神)를 연상하고 그녀의 입을 빌려 당시의 어리석은 세상을 풍자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영국의 모어의 집에 도착하자 일주일만에 완성한것이 바로 우신예찬이다.

 

 

*에라스무스는, 교황, 추기경들과 같은 학교 출신의 동창들이다.

  몽테귀 대학 (Collège de Montaigu), 케임브리지 대학 퀸스 컬리지, 토리노 대학교 (신학 박사, 1506년)

 

 

※ 책속의 글과 당시 반응

 

(우신예찬 66, 예수께서 스스로를 어린양이라 말하는 그분의 겸손 함을 배워야 한다. - 에라스무스). 

 

나 모리아(우신)는 말한다. “기독교 국가들, 소크라테스 가르침이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법칙대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27절) 영화속에 사는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자들보다  지식인들은 엄격하게 살아가려 힘쓰지만 자신을 망가뜨려가며 옹색하고 째째하게 살아 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37절. 에라스무스 자신을 말하고 있다.)

에라스무스는 말한다, “어떤 도그마도 우리의 삶보다 우선하지 못한다”고... 에라스무스의  예언대로 <우신예찬>은  금서가 되었고  에라스무스 자신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로마 카톨릭으로 부터 불경스런 이교도라고  정죄당했다.

 

 

※엑기스(위키에서)

 

사람의 세상에는 어리석음(痴愚)이 충만하며, 더욱이 어리석음에 의하여 사람은 도리어 행복해진다고 모리아는 자기예찬의 연설을 한다. 치우는 생명의 근원이며 청춘과 쾌락을 약속하나, 학식은 노쇠의 상징이다. 학자나 현인은 책 이외의 인생에서는 무능하나, 어리석은 자는 현실 경험을 통하여 오히려 진정한 사려분별을 터득하게 된다. 황금시대의 소박한 사람들과 같이 아무런 학예도 없고 자연에만 이끌려 사는 인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리하여 왕후·귀족·부자·기예가·학자·성직자 등 모든 신분 계층의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자찬하는 진짜 바보라고 조소를 받는다.

이와 같이 인생은 치우신(痴愚神)을 방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기독교는 치우신과 혈연관계에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우(愚)를 통해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 하고, 또 그의 경건한 신도들이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찾는 행복이란 일종의 착란광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