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Herakleitos, Heraclitus of Ephesus, BC 535 ~ 475)
- 만물은 유전流轉한다.(만물은 변화한다.)
- You cannot step twice into the same river,
for other waters are continually flowing on it.
There is nothing permanent except change.
Nothing endures but change.
우리는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물들이 그 위에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변화 이외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 이외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1) 세상을 구성하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원질)이 '불'이라고 주장
(2)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3) 경험세계에 대한 형식적 통일에 대해 우려
(4) 감각을 완전히 무시는 안했지만 그것을 신중히 써야한다.
(5) 평형은 대립적인 요소가 서로 투쟁하여 균형을 유지
1.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 헬: Ἡράκλειτος ὁ Ἐφέσιος, 기원전 535년 ~ 기원전 475년)는 고대 그리스의 이른바 전-소크라테스 철학자이다.
2.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에페소스의 왕실계의 귀족 출신이었다. 일반 귀족이 아닌 구 왕족 집안의 장남이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동생에게 지위를 넘겨주고, 그는 홀로 공부하고 스스로를 탐구해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크세노파네스 (Ξενοφάνης ὁ Κολοφώνιος)의 제자였다는 설도 있으나 불분명하다.
3. 아르케를 ‘불’이라고 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인품과 학식을 갖췄으며, 원칙과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와 기개를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별칭으로 스코티노스 (어두운 사람)로 불려 지기도 했지만 다른 모습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무례한 행동과 알기 어려운 글, 읽을 수 없도록 쓴 글씨로 인해, 당시 에페소스 시민, 호메로스, 피타고라스, 시인·철학자들에 의해 비판 받았다.
4.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발을 한번 담근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 ‘만물은 유전한다. (Panta rei - All things are flowing: 無常, 도가도비상도)’과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왕’이라는 말을 남긴다. 여기서 ‘싸움' 이라는 말은 서로 ‘투쟁’을 뜻한다. 즉, 이 싸움속에서 만물은 생겨난다고 헤라클레이토스(←1세기에 활동했던 동명이인)는 보고 있다. 또한 서로 싸우면서 반발하지만, 결국 조화(화합)를 이룬다는 ‘반발조화’ (反撥調和)로 설명된다. 이 생각은 서로 싸우며 ‘투쟁’하는 것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로고스 (이법, 理法)으로 정의된다. 후대 사람들을 ‘헤라클레이토스 학파’라 칭함
5. 60세에 사망한 헤라클레이토스는 고독을 즐겼으며 선대 사상가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과 수수께끼 같은 심오한 말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로부터 ‘스코테이노스’ (σκοτεινός, 어두운 사람), ‘수수께끼를 내는 자’ (리들러)라 불렸다.
6. 전해지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들을 보면, 많이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자신이 통찰한 형이상학적 원리에 대한 인식 없이 그저 많이 알기만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7. 한편 디오게네스의 진술에는 아테네의 그리스 철학자 안티스테네스 (Ἀντισθένης)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동생에게 가문을 물려준 것을 들어 그를 매우 고매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책을 한 권 썼다고 하는데 전문은 전해지지 않으며, 단편이 전해진다. 그 단편들도 내용을 단정짓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고대의 철학자들도 그의 사상을 여러 가지고 해석했다.
8. 플라톤은 만물유전설을 중점적으로 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불을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한 일원론자라고 여겼다. 스토아 학파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자신들의 선구자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스토아 학파는 불, 우주, 로고스, 신 등이 고차적인 원리라고 생각하는데 이 기원을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밀레토스 학파는 아르케를 물질인 물과 공기라고 했다. 그 외에도 기독교 제국이 된 로마의 어떤 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이단의 시초로 보기도 했다. 기독교 철학자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기독교 정신과 연관된 최초의 이교도로 생각해 로고스를 신의 말씀, 불을 최후의 심판 등으로 연결해 보려고도 했다.
9.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아르케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본 이유는 불은 많은 것들을 먹어치우듯 태워버리고, 불 그 자체인 자신의 몸으로 변화시킨다. 하지만 불에 탈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지면 자신도 사라지고 만다. 때문에 ‘불’을 만물의 본질로 본 것이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것은 세계를‘영원히 타는 불 (ever-living fire)’로 보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영원히 타면서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불의 변화과정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나뉘어 구체적으로 설명 된다.
불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 의해 우주는 존재하게 된다. 불이 꺼지고 뜨거운 기운이 사라지면 응결되어 습기가 만들어지고, 습기를 압축하면 습기는 물로 변한다. 이 물은 다시 흙으로 변하는데 이 과정을 내리막길 (下行 길)이라 한다. 한편 흙은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녹아내려 물이 된다. 이 물로부터 다른 물질 형태인 불로 환원되는 것을 오르막길 (上行 길)이라 한다.
○ 헤라클레이토스 사상(思想)
1.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에 의해 해석된 것이 오랜 시간 동안 철학계의 주류로 받아들여졌다. 플라톤 계열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의 핵심사상은 “모든 것은 흐른다” (판타레이, Πάντα ῥεῖ, panta rhei)가 될 것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 본인의 저작 중에 비슷한 언급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어쨌거나 플라톤 계열의 이런 해석과 더불어 다른 엘레아 학파들이 헤라클레이토스를 공격한 영향에 의해 헤라클레이토스는 파르메니데스의 대립항으로 여겨졌다.
2. 헤라클레이토스는 전문이 전해지지 않는데다가,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이 단락적으로 전해져서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종래의 견해를 따를 때,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의 주안점은 변화에 있다. 자연의 기본특성을 지속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헤라클레이스토스는 파르메니데스보다는 감각적인 표현을 더 신뢰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모든 것은 운동 가까이에 있으며 어떤 것도 영원히 존속하지 않는다고 믿었으며 그런 까닭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는데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두번째로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아까와 같은 바로 그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두 번째에선 강물도 나도 변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변화함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변화란 오늘날 일반적이고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대상의 형태나 성질 등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4. 그는 대립 속에서 만물을 이해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사물들은, 양자의 대립, 예를 들면 뜨거움과 차가움, 밝음과 어두움, 선과 악, 있음과 없음 등의 대립 속에서 인식된다. 대립이 사물을 만드는 것이다. 즉 대립하는 두 항의 어느 한 쪽이 없다면, 예를 들어 뜨거움만 있고 차가움은 없다면, 그것은 더이상 우리가 아는 뜨거움으로 인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는 항상 수많은 양자들이 대립하고 있는 대립 상태인데, 이 대립들이 모여 통일된 세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 Everything flows and nothing abides, everything gives way and nothing stays fixed. God is day and night, winter and summer, war and peace, surfeit and hunger. / 만물은 유전하고 머무르지 않는다. 만물은 없어지게 마련이고 고정된 채 남는 것은 없다. 신은 낮과 밤이며, 겨울과 여름이고 전쟁과 평화다. 그리고 배부름(포만)과 배고픔이다.
5.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개념을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과 활시위에 비유했다. 활시위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을 때 화살은 정지해 있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가려는 힘을 가진 채 활시위와 겨루고 있는데, 이것이 활의 모습이다. 그는 이 무한한 대립의 법칙을 가리켜 로고스 (Logos)라고 제시한다. 로고스 하에서 세계는 대립을 통한 통일상태를 이루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대립과 통일의 두 개념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 이해한 것이다.
즉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말로, 그 어떤 것도 안정되거나 머물러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성, 변화"를 중요시한 철학자라고 볼 수 있다.
6. 그는 "이 세계는 신이 만든 것도 아니며 어떠한 인간이 만든 것 또한 아니다. 언제나 살아 있는 불로서 정해진 만큼 연소되고 정해진 만큼 꺼지면서 언제나 있었고 또 있으며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다"라면서 세계의 원질을 불에 비유하였다. 또한 "만물은 움직이고 있어서 무릇 모든 것이 머물러 있지 않는다. 사람도 두번 다시 같은 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만물이 유전(流轉)한다고 주장하였다.
7. 그는 "선(善)도 악(惡)도 하나인 것이다. 위로 향하는 길이나 아래로 가는 길도 다 같이 하나인 것이다. 우리 가운데에 있는 생(生)과 사(死), 각성(覺醒)과 수면(睡眠), 젊음과 늙음의 양상(樣狀)도 모두 같은 것이다. "이것이 전화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전화하여 이것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면서 생성의 원리로서 "대립" 또는 "다툼"을 제시하였다. 그는 "여기에 말해 둔 것은 항상 그대로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모르고 지나쳐 버린다. 비로소 그것이 들려와도 들리지 않던 전과 다름이 없다. 만물의 생성이 여기에 말해 둔 대로 행해지고 있는데도 그들은 그런 범례 (範例)를 모르는 듯하다. 그러나 말에도 행동에도 그런 범례는 마땅히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로고스 (logos)의 개념을 제시하여 감관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8. 헤겔 이후 재조명 받았고 흔히 '존재에서 생성으로' 라고 일컬어지는 현대철학의 전회에 따라 영향권이 확장되고 있다. 니체, 베르그송, 들뢰즈 등 현대의 거장들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현저하다. 또한 운동 / 생성에 대한 고찰이 유사한, 노장철학과 중국철학과의 연관성으로 동양철학에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9.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철학에 대해서도 언급했고, 신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며, 사후세계나 인간의 혼과 그 혼이 가진 능력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고, 종교 제의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으며, 법질서나 체제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런 비꼬기나 바른 삶에 대한 요구는, 그가 비판하는 그 전세대 현자들보다는 체계가 있는 구석이 있다. 천체, 인간, 자연, 동물 등등이 변화나 투쟁이라는 원리 안에 하나로 묶여 있다고 표현한 것이 그렇다. 거기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좋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변화나 투쟁 등의 이치를 꿰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는 아마 당연한 것이었을 텐데, 왜냐하면 사물이나 일의 이치를 깊게 파악하지 않고서는 좋은 일을 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그의 말은 호메로스나 7현인 등의 윤리적 가르침이 운동을 잘하거나 보증을 서지 말라는 상당히 단순한 종류였던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통일된 세계관과 그에 따른 삶의 자세 등을 천명한 것 등은 피타고라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피타고라스를 비난했다.
- Immortal mortals, mortal immortals, one living the others death and dying the others life. Sleepers are workers. / 죽는 것들은 결코 죽지 않는 것이며 죽지 않는 것은 죽는 것이다. 하나가 살아 있다는 것은 다른 것의 죽음이며, 또한 죽는 것은 다른 것의 삶이다. 잠을 자는 것은 일하는 것이다.
- 변증법 (辨證法)
변증법은 대화와 문답 기술을 뜻하며 상대방 주장에서 모순된 결론을 이끌어내는 기술이다. 이러한 방식은 파르메니데스 제자 제논이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소크라테스에 의해 변증법은 상대방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 모순을 찾아내 '진정한 지식'을 이끌어 내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변증법에서 중요한 것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닌 물음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의 힘으로 진정한 지식에 이르게 하는데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의 만들어짐과 변화는 서로 다투는 모순 대립의 산물이요,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만이 생명과 운동을 가진다고 하여, 피타고라스의 조화된 완전한 상태를 죽음 상태라 보고 이를 거부하였다. 그는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왕이다’고 하였다.
‘소년이 있다’는 말은 불가능한 이치이다. 소년은 소년으로 멈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청년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이 아니고 청년으로 변해가나 아직 청년은 아니다.
청년으로 변해가는 소년은 청년이 되려고 하는 힘과 그것을 막으려는 힘의 대립으로 인해 청년과 소년의 중간지점에 서면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대립과 투쟁이 없다면 만물은 있을 수 없으며, 대립과 투쟁은 만들어짐으로 가득 차 있고, 생산하는 힘이라고 봤다.
또한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현상은 ‘서로 흩어졌다가 모여든 것’, ‘서로 가까워졌다가 서로 멀어진 것’이다. 또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깨어 있는 자와 자고 있는 자, 젊은이와 늙은이는 항상 한 가지이며 같은 것이다. 밤과 낮, 겨울과 여름은 같은 것이요, 선과 악은 같은 것이요, 굽은 길과 곧은길은 같은 길이요,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반대의 일치’와 ‘통일 조화’ 사상을 변증법 (dialectic)이라 한다. 헤라클레이토스 변증법은 헤겔에 의해 응용되며 마르크스에 의해 위력을 발휘한다.
- 반대의 일치 (활과 조화), 반발조화
활을 사용하여 화살을 쏠 때 화살은 바깥쪽으로 활시위는 안쪽으로 힘이 가해진다. 활의 예에서 보듯 서로 반대 (대립)되는 성질은 통일 (조화)을 이뤄야지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은 어울리지 않지만 하나이며 여러 가지 음조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만들어지듯 모든 것은 투쟁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이와 같이 봤을 때 서로 같은 것들은 화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최초로 하나가 되는 대립물의 일치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지 같은 것들의 일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도 이것을 명백히 자연의 모방에 의하여 성취한다. 그림은 화폭에 하얀색과 검정색, 노란색과 붉은 색을 섞어야만 얻고자 하는 색이 만들어진다.
음악은 고저장단의 음조가 여러 가지 음성으로 혼합되고 이에 의하여 하나의 통일된 조화가 생긴다. 즉 전체와 전체 아닌 것, 합치와 불합치, 조화와 부조화는 결합하여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물에서 하나가 생기고 하나에서 만물이 생긴다.
그들은 어떠하여 그것이 (一者, 절대자) 서로 반발하면서 일치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 즉 활과 칠현금이 서로 반발하는 일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듯 밤과 낮은 하나이며, 선과 악은 같은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수술하고 또 불로 지지면서 고약하게 아프게 하여 환자에게서 치료비를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비를 청구한다. 왜냐하면 그 두 가지(치료하는 것: 善 / 고통 주는 것: 惡)는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즉, 의사의 선행에 의해서만 모든 질병은 치료될 것이다.)
- 우주의 질서, 로고스 (logos)
로고스 (logos)는 그리스어로 처음에는 단순한 ‘말’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다음에는 ‘합리적 말’이라는 뜻으로 바뀐다. 다시 이것이 이성 일반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된다. 보통 진리, 이성, 말, 실재, 신 등등으로 쓰인다.
철학의 중요한 용어로 로고스는 말 (言語)뿐만 아니라 말 속에 있는 거짓 없고 참됨과 그 거짓 없고 참됨을 나타내는 빛 또는 말을 뜻한다.
이는 우리에게 들려오는 것에 대해 그것이 참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가는 힘(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 또는 신비한 힘 등을 말한다.
즉 철학이란 로고스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인데, 로고스는 사물의 이치를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확실한 힘을 가지게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의 보편적 운동법칙(혹은 우주법칙)을 설명하면서 처음으로 ‘로고스’ (logos)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신에 대한 본래 성질이나 바탕이 되는 불의 본디 성질, 즉 신에 대한 본디 성질은 ‘로고스’이외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헤라클레이토스 생각이다.
그는 쉬지 않는 변화과정 속에서 변하지 않는 법칙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각 개인은 각자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가질 수 있으나 그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하는 제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로고스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야 우주 (Cosmos)와 소통된다. 만물에 똑같이 적용되는 로고스는 누스 (nūs, Nous, 마음 · 정신 · 이성)에 의하여 참이라고 판단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누스에 따라 말하는 사람들은 만물에 공통한 것에 의하며 그 자신을 강하게 한다. 그것은 하나의 도시국가가 법에 의하여 곤고히 강화되는 것과도 흡사하다. 왜냐하면 신성한 법은 그것이 원하는 모든 범위를 지배하여 모든 것을 충족시키고도 넉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연현상의 보편적 법칙인 로고스는 인간사회의 법에 그치지 않고 우주 법칙으로 이해되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을 통하여 우리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 중에서 최초의 포괄적인 철학체계를 만나게 된다.
그리스 철학사상에 있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버금가는 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정의한 로고스 개념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어 사용되었고 ‘반발 조화’는 헤겔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다. 뿐만 아니라 스펜서 (H. Spencer)의 진화론에서도 응용되고 있으며 니체, 다윈까지도 ‘반발 조화’에 관심을 보였다.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은 오늘날에도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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