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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철학 이야기

근대 형법 사상의 기초를 마련한, "체사레 베카리아" ..사형 제도를 폐지하라

Narin Pusil 2022. 11. 16. 19:32

체사레 베카리아(이탈리아어: Cesare Beccaria, 1738 ~ 1794)

이탈리아의 법학자ㆍ경제학자이다.  이탈리아 계몽사상가로서, 근대 형법 사상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저서에 《범죄와 형벌》(이탈리아어: Dei delitti e delle pene)이 있다.

1764년 '범죄와 형벌'을 발표하여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는 저서에서 종교로부터 법이 해방되어 입법자에 의해 법률로 엄밀히 규정되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를 주장하였고, 공리주의적 차원, 사회계약설적 차원, 인도적 차원에서 고문과 사형제는 일반적으로 부당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죄형법정주의 정립과 고문, 사형 폐지 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다.

베카리아는 공리주의자로서 형벌에서 공공의 선을 증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형보단 더욱 공공선 증진에 효과가 좋은 종신노역형을 최고의 형벌로 쳤다. 더 나아가 응보주의 위주였던 형법학에서 일반 예방주의로 나아가는 토대를 세웠다고도 평가를 받는다.


가명으로 출판된 베스트셀러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률, 나와 부유한 자의 사이에 그토록 큰 간격을 설정하는 이 법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부유한 자는 내가 한 푼만 구걸해도 거절하면서 나더러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윽박지른다. 누가 이따위 법률을 만들었는가? 빈민의 누추한 오두막에 발을 디딘 적도 없고, 배고픔에 우는 무고한 자식과 눈물 젖은 아내와 함께 곰팡내 나는 빵 부스러기를 먹을 필요가 없는 부유층과 권력층이 만든 것 아닌가.... 다수의 생존을 위협하고 오직 소수의 나태한 압제자에게만 이로운 이 굴레를 부수어버리자. 나는 원래의 독립 상태로 돌아가겠다. 내가 슬퍼하고 후회할 날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 동안의 고통은 짧다.

혁명가의 법정 최후진술이 아니다.

베카리아가 《범죄와 형벌》에서 절도범이나 암살범의 범행 동기를 추론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하루 동안의 고통은 짧다’는 사형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베카리아는 사형이 사형수에게 짧은 공포와 고통을 주지만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는 크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베카리아는 사형 제도의 전면 폐지를 주장했다.


베카리아는 ‘서론’에서 《범죄와 형벌》을 쓴 이유를 밝혔다.

인쇄술의 발달로 확산된 철학적 진리는 군주와 그 백성 그리고 여러 국가 사이의 참된 관계를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주었다.

상업이 활기를 띠면서 여러 나라 사이에는 이전의 전쟁보다 훨씬 인도적이고 이성적인 전쟁, 즉 근면성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런 훌륭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 시대의 창조적 계몽정신 때문이다. 그러나 형벌의 잔혹성과 형사 절차의 불규칙성을 연구하고 그것들과 맞서 싸운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잔혹하고 무지한 자와 나태한 부자들에 의해 희생된 약자의 신음 소리, 증거도 없이 혹은 가상적인 범죄를 구실로 잔혹하게 가해지는 고통, 불확실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고문, 한층 악화된 감옥의 더러움과 공포. 이 모든 사항에 대해 법률가들은 주목했어야 했다.

베카리아는 계몽주의 시대의 성과와 부족한 점을 요약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썼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인간 이성에 대한 각성, 주권재민 의식의 발전, 중세 시대에 대한 신랄한 비판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이 널리 선전되었다. 인쇄술의 발달로 수많은 책자, 팸플릿 등이 발간되면서 계몽사상은 급격히 확산되었다. 베카리아는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다. 《범죄와 형벌》 ‘서론’에서 장 자크 루소를 ‘진리의 첫 번째 씨앗을 뿌린 용기 있는 철학자’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베카리아가 볼 때 형벌에 대해 연구하고 싸운 계몽사상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