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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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역사(신화) 이야기

아우구스투스

Narin Pusil 2022. 9. 23. 22:27

아우구스투스 : 로마 최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를 일컫는 단어

앤서니 에버렛 / 다른세상 / 2008.9.29


 

혼돈의 시대, 그림자처럼 조용히 로마를 바꿔놓은 제국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 

   유약한 소년의 가면 뒤에 숨겨진 교묘하고 끈질긴 정치술의 진면목 .......

 

아우구스투스는 역사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손에 의해 초라한 시골마을의 이름 없는 소년에서 양자로 거듭난 그는 

부패한 공화정을 뒤엎고 질서 잡힌 전제국가로 바꾸어 놓았다. 

유럽을 하나의 지역, 하나의 문화권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인 아우구스투스의 매력적인 전기인 동시에 혼돈의 시대를 지나 

유럽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탄생 이야기를 담은 역사.
아우구스투스 생전에 행했던 업적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많은 인물들들, 장소들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새로운 제국이 탄생되는 순간을 통해 로마사회의 정치와 관습을 엿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생생하고 현장감 있게 흘러가는 새로운 로마 시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어떤 인위적인 추측을 배제하고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서술하여 드라마틱한 역사서를 읽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 목차

머리말
연표

들어가는 말
1.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
2. 종조부 율리우스 카이사르
3. 최고의 정치 수업
4. 끝나지 않은 위업


5. 카이사르의 이름을 물려받은 젊은이
6. 패배로 변한 승리
7. 살육의 벌판
8. 분할된 세계


9. 황금시대
10. 성난 바다의 신
11. 파르티아 원정
12. 동방은 동방, 서방은 서방


13. 가짜 전쟁
14. 결전
15. 긴 작별
16. 권력의 포기


17. 신이 사랑한 남자
18. 달팽이걸음으로 나아가는 개혁가
19. 미덕의 숭배
20. 팔라티누스 언덕에서의 삶


21. 제국의 성장
22. 가족 전쟁
23. 티베리우스의 귀환
24. 비통한 결말


미래로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 저자소개 : 앤서니 에버렛 (Anthony Everitt)

노팅엄 트렌트 대학교 시각 및 공연예술학과의 객원교수인 앤서니 에버렛은 베스트셀러 『키케로Cicero』의 저자로서 

영국 예술협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유럽문화에 관한 광범위한 집필활동과 「가디언」 및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를 꾸준히 해왔다. 현재는 로마에 의해 건설되어 영국 최초의 칙허장을 받은 곳인 콜체스터 근처에 살고 있다.

 

 

 

 

 

아우구스투스 연구 – 로마제국 초대 황제, 그의 시대와 업적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 책과함께 / 2016.5.13

열아홉 나이에 치열한 로마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은 아우구스투스!
로마제국 초대 황제로서 77세에 숨을 거두기까지

격변의 50여 년 동안 아우구스투스가 이룩한 업적들과 당시의 시대상을 만난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서기 14년에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죽음을 맞았다. 

세상을 떠나기 전 아우구스투스는 친구들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그대들 생각에 내가 인생극장에서 내 배역을 적절하게 연기한 듯하지 않소? 

내 역할을 잘 수행했으므로 박수를 보내주오. 그러면 칭찬을 받으며 무대를 내려오게 하오.” 

그리고 원로원은 아우구스투스가 죽은 후 기꺼이 그에게 神격을 부여했다.

양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고 2차 삼두정기와 내전기를 거치면서 

권력의 정점에 오른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뜻)’라는 칭호를 받으며 

로마 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혼란과 무질서를 수습한 뒤 제국 통치라는 막대한 과제를 해결하여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를 이룩하고, 

이후 서쪽에서는 462년, 동쪽에서는 1,439년 동안 이어질 제국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우리가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는 것은 내전에서 승리한 후, 무력이나 경찰력이 아닌 

원로원과 로마시민의 힘을 빌려 지중해 세계에 로마의 평화라는 깃발 아래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힘에 의한 통치는 손쉬운 지배방식이지만 오래갈 수는 없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기에 

아우구스투스의 국가체제 확립 과정은 현대인들에게도 특별하고도 큰 의미를 가진다.

공화정의 자유라는 전통, 원로원의 보수적이고 과두적인 특권 의식을 존중하면서 

로마인과 이탈리아인의 통합, 나아가 속주민들을 하나의 시민단으로 완성하는 작업은, 

길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아우구스투스는 결국 이뤄내었다. 이런 바탕 위에서 로마가 다시 한 번 비약했으니, 

이는 공화정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한 것 못지않게 인류 역사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서거 2천 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이 책은, 아우구스투스의 성취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로마사 전공자들이 인구, 문화정치, 도시 로마의 정비, 재정 등 각자의 시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아우구스투스 연구’는 아우구스투스의 성취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로마사 전공자들이

인구, 문화정치, 도시 로마의 정비, 재정 등 각자의 시각으로 연구한 결과물

 


전체 2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아우구스투스의 시대와 문화’를 주제로 일곱 편의 글을 소개한다

 

1장 ‘아우구스투스 시대 센서스와 시민 수 문제’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인구 문제를 다룬다. 

이전 고대 로마 기원의 6대 왕으로 에트루리아 계의 두번째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 BC 578년 - 535년)가 

처음 시작한 이래로 5년마다 센서스(총조사)를 실시해 시민과 그 재산을 등록하고 과세나 징집의 근거로 활용했다. 

이 장에서는 센서스의 절차와 세부 내용, 아우구스투스 치세기에 행해진 센서스의 수치를 통해 

로마제국의 행정적, 제도적 변화를 추정한다.

 


2부는 ‘아우구스투스의 업적과 평가’를 주제로 여섯 편의 글을 소개한다.

제국 내 모든 이의 동의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5장 디오니시오스의 로마 기원론]은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대표적인 그리스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서 

《로마 고대사》를 저술한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가 제기하는 

그리스 기원설을 소개하면서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해명한다.

아들이 없던 아우구스투스는 무남독녀 율리아를 매개로 체제를 계승시키고자 했고, 

계승 작업은 기원전 25년에 율리아와 자신의 조카 마르켈루스와의 혼인으로 시작되었다.

 [6장 아우구스투스의 계승 계획과 율리아 추방]은 마르켈루스의 병사를 포함한 

잇따른 후계자들의 등장과 퇴장 등 아우구스투스의 계승 계획과 율리아 추방 사건의 정치적 의미를 다룬다.

기원전 18년, 아우구스투스는 타락한 도덕을 개혁하여 국가적 발전을 견고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로마의 상류계층을 제어하고자 간통에 관한 법을 제정하였는데, 이것이 ‘간통에 관한 율리우스법’이다. 

이 법의 주요 골자는 간통을 제3자가 고발할 수 있는 공범죄(公犯罪)로 만든 것인데, 

[7장 아우구스투스의 ‘간통에 관한 율리우스법’과 4~6세기 기독교 시대의 칙법 전통]에서는 

아우구스투스의 간통에 관한 율리우스법, 즉 ‘간통금압법’과 4~6세기 기독교 시대의 칙법 전통을 비교한다. 

아우구스투스가 제정한 간통에 관한 로마법 전통은 큰 변화 없이 오랫동안 유지되다가,

 4~6세기 기독교 로마제국의 시대에 이르러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수정된다. 

이 글을 통해 로마법상 간통죄가 기독교 시대에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탐구해본다.
2부에서는 ‘아우구스투스의 업적과 그에 대한 평가’라는 주제로 여섯 편의 글을 담았다.

[8장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수도 로마]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수도 로마를 어떻게 꾸미려 했는지, 

특히 마르스 평원을 중심으로 수도 로마의 모습을 어떻게 재구조화하려 했고 그 의도는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한다. 

투표소나 개표소 같은 공공건물 건축, 왕조의 존재를 과시하는 기념물 외에 광활한 부지와 자연환경을 활용해 

다중이 향유할 수 있는 위락공간 조성 등 수도 로마 재구조화의 목표는 

제국의 위상에 맞는 수도의 외관을 갖추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 아우구스투스 자신과 율리우스 가문의 명예, 

그리고 왕조적 권력의 이미지를 수도 주민에 부과하고 선전하려는 의지가 줄곧 작용한 것이었다.

[9장 아우구스투스 치세기 신설된 상수도 관리관의 자질과 역할]에서는 

상수도 관리관이었던 프론티누스의 《로마 상수도론》을 바탕으로 

아우구스투스 치세기 신설된 상수도 관리관의 자질과 역할을 논한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로마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였고, 

따라서 특히 로마의 도시 문제 중에서 급선무였던 급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전문 관료가 필요하였다. 

상수도 관리관 직을 신설함으로써 로마시민에게 원활하게 물을 공급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수도 시설의 유지와 관리라는 각별한 임무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아우구스투스의 프린키파투스(원수정) 체제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0장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제단]은 

아우구스투스를 평화의 군주로 선전하는 데 크게 기여한 평화제단의 설립과정과 조각들의 의미를 탐구한다.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제단은 기원전 13년 히스파니아와 갈리아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로마로 귀환한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기 위해 착수되어 기원전 9년에 완공되었다. 

프린키파투스 체제의 성공이 로마의 군사력과 로마인들의 번영과 안정에 뿌리를 두었던 반면,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제단은 이데올로기적인 변화를 완화시키고 율리우스 혈통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차 포에니 전쟁의 승리로 시칠리아를 차지한 뒤부터 이탈리아 반도 밖에 있는 해외 영토의 관리는 

로마 정치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11장 아우구스투스와 에메리타 아우구스타의 건설]에서는 

기원전 26~25년 히스파니아 서북부 정복과 새로운 식민시 에메리타 아우구스타의 건설이라는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탐구하여, 권력과 체제의 확립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우구스투스가 속주에서 실제로 어떠한 정책과 활동들을 펼쳤는지 고찰한다.

[12장 로마 공화정 후기의 재정 의식과 아우구스투스의 재정 운영]은 

아우구스투스가 국가 재정을 세울 수 있었던 배경과 그 세부 시행령을 검토한다. 

아우구스투스는 기존의 세원을 파악하고, 새로운 세금을 신설해 합리적인 국가 재정 운영책을 마련하였다. 

병사들에게 분배할 토지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토지를 구매하고, 국고를 원로원이 관할하게 하고, 

국가 회계자료를 상세히 남기게 하며, 정부의 회계보고를 정례화하는 등, 

아우구스투스는 정치지도자로서뿐 아니라 일종의 최고경영자나 회계책임자로서도 

매우 현대적인 면모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13장 아우구스투스와 율리아누스]

Imperator Caesar Dominus Noster Flavius Claudius Iulianus Augustus (360년) 는 

ㅡ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Flavius Claudius Julianus

제정 후기에 율리아누스 황제가 아우구스투스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리고 두 황제의 공통점은 무엇인지를 규명한다. 

율리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가 정복 사업과 내전 후 국가 정비 등 로마 황제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상당한 업적을 남겼지만, 신들을 모방하기보다 인간들의 장점을 따르려 한 면모를 지적한다. 

두 황제의 공통점으로는 태양신 숭배와 황금시대관을 이야기하는데, 

동서양을 함께 통치하여 새로운 황금시대를 이루려 했던 율리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의 치세기는 하나의 모델이 되었고 율리아누스는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된 것이다.

ㅡIoulianou autokratoros ta sozomena, 1696
ㅡ율리아누스의 기둥 ( 362년 ), 앙카라 방문 기념으로 세움( 터키 , 앙카라 )



○ 책 속으로

연극을 좋아했던 그는 늘 스스로를 연기자라고 여기고, 자신의 인생을 가면놀이쯤으로 생각해왔다. 

실제로 로마의 팔라티누스 언덕 위에 있던 그의 저택에 가보면, 

침실 벽에 극장의 배우들이 쓰는 희극이나 비극의 가면들이 프레스코 화법으로 그려져 있다. 

그의 머릿속에 그 가면들이 떠올랐다. 그는 침상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인생이라는 소극笑劇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잘한 걸까?”

아우구스투스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점점 더 위대한 인물로 성장해갔다. 

그에게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대담함이나 천부적인 정치력은 없었다.

(물론 카이사르를 죽인 것은 바로 자신의 이러한 재능이었다. 이 때문에 훗날 그는 타협 능력을 상실해버렸다.) 

아우구스투스는 선천적으로 겁이 많았지만, 스스로 노력하여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총명하고 성실하며 끈기가 있는 반면, 매우 잔인하고 무자비하기도 했다. 

그는 엄청나게 열심히 일했다. 장기적으로 판단했고, 시행착오를 통해 천천히 목표를 이루어나갔다.

아우구스투스 정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언론의 자유가 존속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통치하에서는 새벽 네 시에 비밀경찰이 반체제 작가 집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정신의 독립은 사실 아우구스투스가 내세우는 로마의 개념에서 핵심적인 것이었다. 

그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면, 로마를 재건했다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그의 통치가 큰 저항에 부딪혔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서평

– 카이사르의 그늘 아래, 스스로 씌운 가면 뒤에 숨어있던 아우구스투스 정치술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한 편의 가면놀이로 여겼던 탓일까. 

벼랑 끝에 몰린 로마 공화정을 견고한 로마 제국으로 재건하고 근대 유럽의 기틀을 다진 위업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투스의 삶은 희대의 천재인 양부 카이사르의 그늘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중요한 전쟁의 목전에서 항상 신경증을 앓았던 유약한 청년의 가면 뒤에서 타고난 전투력이나 

정치력 없이 오로지 은근과 끈기로 로마세계를 뒤집은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말 그대로 연극 같은 정치를 보여준 그야말로 가장 뛰어난 정치가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남긴 유명한 말들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려고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지 않기를 원하는 것들을 본 카이사르는 

결국 원치 않는 진실에 다가가는 그를 두려워한 사람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그 뒤를 이어야 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양부가 이루려던 것과 같은 목표를 두고 다른 방식을 택했다. 

바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도록 두는 것”이다. 

 

카이사르의 죽음과 병으로 인한 수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 그는 과업을 이룰 때까지 

절대 죽거나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카이사르의 지지자들과 숙적들을 모두 포용해야 했다.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그가 향하고자 하는 방향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원하던 세력과 보수적인 원로원들 모두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우구스투스가 끌려오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원치 않는 진실을 다짜고짜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주면서 보고 싶은 진실로 포장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가 알기 위해서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정말로 한 일을 보아야 한다.(본문 21장)”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유명한 말이 카이사르의 정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면, 아우구스투스의 정치는 체스경기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처럼 용맹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매우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했던 것이다. 주사위 게임처럼 극적인 전투 대신 그는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 철저히 계산된 승리의 사다리를 묵묵히 한 단씩 밟아 올라갔다. 어제의 적도 필요하다면 오늘의 동료로 삼고, 전쟁의 지휘권을 스스럼없이 아그리파에게 넘기며, 자신이 구상한 계획이나 질서를 어그러뜨린다면 가족도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었던 그는 빠르고 안전하게 황제의 권한을 티베리우스에게 위임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까지도 계획에 포함시켜둘 정도로 철두철미한 정치가였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행동들, 예컨대 자신은 방종에 가까운 성적 자유를 누리면서도 딸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던 것 역시도 크게 보면 그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우구스투스에게 삶을 되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그가 행했던 업적들을 이야기하면서,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 장소들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약 500페이지에 걸쳐 다루어지는 가면 속 아우구스투스의 삶은 때때로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놀라운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불확실한 사건들에 대해서 어떤 인위적인 추측은 가능한 한 배제하면서, 견고한 증거 위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소생시킴으로써 드라마틱한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와 충실한 역사서를 읽는 뿌듯함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