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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애굽 그리고 가나안 정착

아브라함 모세 람세스 2세 카데시 전투 미탄니 왕국

Narin Pusil 2022. 9. 9. 20:34

아브라함         BC2000경       함족    근친결혼/사라   

 

모세              셈족  이방인과 결혼 (켄족, 이드로의 딸 / 십보라)

                     BC1571년 or BC1270년경 카데시 전투 이전에

                     미탄니 왕국이 이집트 북쪽을 지배할때 출애굽

 

람세스 2세(Ramesses II, BC 1303년 ~ 1213년)는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재위:BC 1279년 ~  1213년)이다.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 BC BC1274.  5.)

              람세스 2세  < = > 무와탈리 2세

 

 

투트모세 3세와 카데시 왕의 연합군 사이의 므깃도 전투(Battle of Megiddo, 기원전 15세기). 

비교적 신빙성 있는 디테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기록된 것은 최초의 전투이다. 

전투는 23년 I Shemsu 20일째(또는 21일째)에 발생했습니다. 

 

정확한 연도는 투트모세(Thutmose)가 이집트의 왕위에 오른 연도에 따라 다르며 

학자들 사이에서는 기원전 1479년에서 1504년 사이로 추정합니다. 

기원전 1479년을 사용하여 전투는 기원전 1457년 5월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1451년—James Ussher의 연대기에 따르면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때입니다.    

기원전 1450년 - 미케네인들이 크레테를 공격하고 함락시켜 크노소스를 포함한 많은 왕궁을 파괴함.  

1450-1300 BCE - 미노아 제2궁 시대가 끝나고 후기 미노아/최후궁 문화.

 

 

 

 

미탄니 왕국

 

기원전 1500년경부터 기원전 1270년경 동안 고대 근동의 지금의 시리아 북부 지역과 아나톨리아 남동부 지역(대략 오늘날의 쿠르디스탄 지역에 해당한다.)을 지배하였던 온건성향의 국가이다. 

인도아리아인 지배층이 후르리인 민중을 지배하는 형태로 성립되었으며, 히타이트 제국에 의해 아모리인계의 바빌론(Amorite Babylon)이 멸망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져, 메소포타미아에 권력 공백이 생기자 이를 기회로 지역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초기 미탄니 역사에서 미탄니의 주요 경쟁자는 고대 이집트의 투트모세 왕조,

즉 이집트 제18왕조(1550?~1292? BC)의 파라오들이었다.

 

그러다가 히타이트 제국(18세기~1180 BC, 전성기는 기원전 14세기)이 강성해지면서,

미탄니와 고대 이집트는 히타이트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미래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하였다.

히타이트 제국과 마찬가지로 미탄니의 최절정기도 기원전 14세기였는데,

당시에 미탄니는 카부르 강 상류에 위치한 수도 와슈칸니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군대 주둔 기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미탄니는 히타이트 제국에 굴복당하였으며,

이후 히타이트의 지원을 받은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중기 아시리아 제국의 한 지방으로 전락하였다. ,

 

 

카데시 전투


기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 치세에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히타이트와 세력을 다투었다. 기원전 1274년 람세스 2세는 병사 15만 명을 이끌고 카데시 전투에 직접 출정하여 히타이트의 왕 무와탈리 2세와 전투를 벌였다. 이집트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이 충돌하는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집트는 카데시 전투에서 거짓 정보에 속아서 주력군이 괴멸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후 전투 결과에 대해서는 양측의 기록이 달라 아직까지 논란의 대상이다. 그러나 람세스 2세가 팔레스타인에서 히타이트 세력을 몰아내지 못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양쪽은 서로 상대를 물리치지 못하고, 장기간 전쟁을 계속하던 중 기원전 1258년경에 세계 최초의 문서로 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서로 휴전했다. 조약의 결과,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녀를 왕비로 맞이했다.

이집트 신전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람세스 2세는 카데시 전투에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집트군의 개혁이 지연되면서 다음 왕조인 이집트 제20왕조에서 급격히 약해져 이집트 제21왕조부터는 피정복자로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히타이트 역시 이 전쟁에서 국력을 소모한 이후 급격한 세력 약화로 기원전 1200년경에 멸망했다. 이후 아나톨리아 지방에는 약 1000년 동안 소국들이 난립했다.

 

ㅡ 카데쉬 전투의 람세스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