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신학 이야기

영지주의와 종교개혁

Narin Pusil 2022. 9. 7. 13:59

유대(교)사회가, 여성들을 독립된 인격으로 보지않고 있을 당시,

   베드로도 역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 다가가는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예수는 기꺼히그녀를 제자로 받아드리는데 주저하지 아니했다.

   로마 가톨릭에 영지주의자들이라고 이단으로 낙인 찍혔던 시대마다의 종교 개혁자들 역시,

   예수와 같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했다는 것이다.


▪︎ 2세기 종교개혁

마르시온 ㅡ "교회가 사도들(*바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폐쇠적이고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유대주의 전통(헤브라이즘)로마의 제국주의(헬라전통)에 물들어 복음을 변질시켜 세속화시켰다"고 해서, 가르침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철저한 금욕생활과 더불어 구약과 복음서를 제외시키고,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정경 작업을 하며 최초의 종교개혁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유대주의와 로마전통에 배치되는 여성리더쉽을 세우는데 앞장서며 대중들의 지지를 받게됩니다. 로마교회의 교리신학의 중추 어거스틴도 한때 마르시온의 사고를 흠모 했었습니다.

 



▪︎12세기 종교개혁


프랑스 중남부 랑그도크 주(州)를 중심으로 탄생한 카타리파(라틴어: Cathari, 프랑스어: Catharisme, 오크어: Catarisme) 또는 알비파(영어: Albigensians), 순수파(라틴어: boni homines)는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 프랑스 남부의 알비와 툴루즈를 중심으로 생겨난 기독교 교파이다. 이들의 교리는 이원론과 영지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1세기에 주로 랑그도크지역에 전파되었으며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 교세를 확장하였다.

 



카타리파는 세상이 선과 악으로 구분된다며, "로마교회가 타락했다"며 등장한다. 기득권 로마교회는 카타리가 마니교와 흡사하다며 이단으로 부르게 되지만, 타락한 로마교회에 비해 금욕적이며 순수함을 지향하던 그들의 모습에 대중들 역시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교황의 명령에 의해 조직된 (알비)십자군에 의해 대략 500.000명 화형에 처해지거나 학살되었다.

 

 

      •왈도파(Waldensians)

 

Waldo 발도파

■ Waldensians의 역사는 박해, 인내,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헌신의 이야기입니다. 거의 800년 된 이 복음주의 기독교 운동은 초기에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로 알려졌습니다. 12세기 이탈리아 알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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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파(독일어: Waldenser)는 12세기 말 리용의 종교개혁가 피터 발도(Petrus Valdes)를 통해 프랑스 남부에 세워진 기독교계 신앙공동체로, 이탈리아와 남아메리카 등지에까지 이르는 개신교의 하나이다. 발도파는 서방교회의 교황으로부터 이단으로 지정받았다. 발도파에 속한 이들은 베스트팔렌(Westfalen), 사보이(Savoy)와 피에몬테(Piemont)의 경계에서 중요한 소수의 공동체였다. 또한 17세기 말같은 곳에서 수천명의 발도파들이 남서독일과 헤센으로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여러번에 걸쳐서 이주(망명)하였다. 이와 연관하여 발도파들은 피에몬테, 사보이, 프랑스, 스위스 그리고 네덜란드 등지에서 이단으로 지정되어 박해 받았다. 이들은 서방교회가 타락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별도의 가르침을 통해 성경대로 살아가려 하였고, 이에 따라 이들을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로 보는 시각이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발도파교회는 98,000 성도로 추산되며, 그 중에 47,500명이 이탈리아에서 그곳의 감리교회와 함께 하나의 교회공동체, Chiesa Evangelica Valdese(영국감리교와 발도파교회)를 이루었다.

 

종교 권력의 hieracky를 부수었던, 예수와 왈도(Ealdo)

예수(Luke 19:45-48, 성전을 엎다)와 왈도(Ealdo) ■ 당시 기성의 종교 권력의 하이라키(Hieracky)를 부수었던 예수(Luke 19:45-48)와 같은 행동을 보였던 왈도(Ealdo), 오늘날에도 그와같은 신념의 사나이가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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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종교개혁

성직자와 교회의 타락으로 개신교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교황은 마르시온과 카타리파 종교개혁과 동일시 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그래서 성직자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관례를 깨고 어느 누구나 읽을 수 있다고 그래서 전통적인 교회계층질서(church Hierachy)를 유지하던 사제들만이 지녔던 성서해석권을 무너뜨려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 시작한 이 신흥종교들을 카톨릭 정통에 도전하는 영지주의 분파로 여겼습니다.

예수 가르침을 따라 세상 욕심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던 금욕의 영지주의가, 과연 (세속화로 부와 권력에 도취되어 거짓과 교만으로 타락했던) 로마 카톨릭 교회를 흔들던 천사의 탈을 쓴 악마들이었을까요?
종교개혁은 기존의 하이어라키 수호의 희생양 그리고 종교이시셔티브 싸움이 되었다.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삼은것 자체가 종교계층질서(church Hierachy)의 중심에 놓기 위한것은 아닐까....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라 불리우는 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은 영지주의 영감을 받아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고 했습니다.  과연 무엇이 잔실일까?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

일반적으로 1세기 후반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종파 사이 시작된 종교적 사상 및 체계를 말한다. 여기에 속한 다양한 집단이 존재하였으며 이들은 교회의 정통 가르침, 전통, 권위에 대항한 개인적인 영적 지식을 강조했다.

헬레니즘 문화에서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 사상이 조화되어 나타난 이원론적 사상 운동으로 오래된 유대 신비주의교 카발라와 연관이 있으며, 이 사상 운동을 밑에 나오는 기독교 이단으로서의 영지주의와 구분하여 전-영지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지주의의 골자는 신의 피조물인 영혼이 악마의 창조물인 물질(육체)에 갇혀 고통받고 있으므로, 구원에 대한 영적인 앎(gnosis. '지식'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을 통해서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왠지 가상현실, 감옥우주 음모론, 같지만 놀랍게도 플라톤의 이데아(인식론) 사상에 나오는 개념이다.

 

 

 

 

 

예일대 신학부 교수인, 롤란드 베인턴(Roland H. Bainton)는 영지주의를 이렇게 인식했다. 

영지주의에는 매우 다양한 체계와 사상이 있지만, 영지주의 신화의 핵심은 이와 같았다. 즉, 궁극적인 것은 부정적인 점들로만 (알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셀 수 없는 것, 헤아릴 수 없는 것) 묘사할 수 있는 존재의 거대한 심연이다.

이 심연은 역동적이고, 그 충만(플레로마) 속에서 발출(emanation)에 의해 상이한 것들이 발생한다. 그 발출된 것 중 하나가 지혜(wisdom)이다. 지혜는 플레로마의 비밀을 알려는 과도한 호기심에 잔뜩 사로잡혀 있다가 고통 속에서 물질을 발산했는데, 이 물질이 데미우르고스(demiurge)의 도움으로 이 가시적인 세계로 조성되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창조관과 정 반대된다.

 

영지주의는 일관된 하나의 체계가 아니라, 당시 기독교가 퍼진 여러 지역에서 이원론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 다르게 해석한 것을 모두 싸잡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영지주의 연구의 핵심은 '공통분모를 찾아 정리하는 것'이라고 단언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 영지주의의 분파는 매우 다양하고, 그 교설들이 서로 다르며 복잡하기 때문에 영지주의를 명확히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영지주의자들의 교설을 말해 주는 본인들의 저서가 대부분 전해 오지 않고 보편교회(Ecclesia Catholica) 편에서 쓴 이단 반박 저서들에 인용되어 단편적으로 전해져 오기 때문에 그들의 교설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영지주의는 나스티시즘(영어: Gnosticism)을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음을 따라 그노시스파 또는 그노시즘이라고도 한다. '영지주의자' · '영지주의파' 또는 '영지주의적'이라고 번역되는 나스틱(Gnostic)이라는 낱말은 그리스어로 '신비적이고 계시적이며 밀교적인 지식 또는 깨달음'을 뜻하는 그노시스(γνῶσις gnosis[*])로부터 따온 것으로, 이 낱말은 고대의 영지주의 종교 운동의 반대자들이 이 운동에 속하는 사람 또는 단체를 지칭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당시에 이 종교 운동의 분파들 중 기독교 계통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단순히 기독교인이라 불렀다. "나스티시즘(Gnosticism)"이라는 낱말은 고대에 존재하였던 이 종교 운동을 특별히 가리키기 위해 현대 학자들이 '나스틱(Gnostic)'이라는 낱말로부터 만든 말이다. 한글 번역어인 '영지주의(靈知主義)'라는 낱말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영지(靈知)'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영적 지식', '영적인 앎' 또는 '영 즉 프네우마(Divine Spirit)를 아는 것'이다. 

 

유대(교)사회가 여성들을 독립된 인격으로 보지않고 있을 당시, 베드로도 역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 다가가는것을 꺼려했으나 예수는 기꺼히 제자로 받아드리는데 주저하지 아니했다. 로마 가톨릭에 이단으로 낙인 찍혔던 영지주의적 종교 개혁자들 역시 예수와 같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