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

■예수의 적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일용할 양식

Narin Pusil 2022. 4. 24. 23:37

 

■과연 .. 예수의 적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일용할 양식



1. 고대 중동지역을 침탈한 로마제국 보다는 ...

로마에 바치기 위해, 특히 갈릴리를 수탈하던 .. 헤롯의 유대왕국 보다는,
로마식민지가 된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의 헤롯성전이라는 곳에서 종교형식을 빌어

갈릴리 동포(오클로스)에 대한 착취행위를 일삼던

유대땅, 예루살렘에 있던 헤롯성전의 종교권력이었다.

3.소위 성전권력자들은 종교체제와 형식을 내세워,

그들의 무력과 함께 그들이 내세우는 권위가 통하던 세력범위내의 사람들을 쥐어 짜내었다.

 


4. 남유다에 비해 훨씬 잘살아 오던 북방 실크로드의 중개자, 북이스라엘 ....,

그후 헬라제국 특히,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자,

위와 같은 연고로, 갈릴리 사람들을 빈곤한 계층(오이코스) 으로 전락시켰다.

고통속에 빠지게된 갈릴리 동포들은 하루끼니 걱정이 하루생활의 전부가 되었다.

그와같은 갈릴리 상황이 예수의 사고 중심이 되었고,

소위 주기도문에도 나오는, 일용한 양식(Daily Bread)이고,

그것은 소위 예수공생애(시민운동)의 기폭제였다.

 

5. 예수의 동포인 Galilean들의 참담한 현실에서 예수의 분노는 시작되어,

그런 잘못된 행위를 지적하고 고치고자 마침내 예수는 목숨을 걸었다.

사마리아 땅을 건너 유대땅, 예루살렘 헤롯성전에서 그 분노는 폭팔하였다.

이를 훗날에 성전정화 사건으로 명명하였다.

6. 그 사건은, 종교적 권위에 있어,

로마의 도시화가 되어가던, 데가볼리나 베뢰아등과 같지않지만,

로마문화를 어느정도 수용해 가던 사마리아나 갈릴리등지에 있던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부하던, 로마문화를 배격하던 유대인들에게 의해,

안식일의 파격행위와 더불어 로마식 형벌인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는 사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