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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동 이야기

[인류역사의 시작] 수메르 문명과 인문학 - 2

Narin Pusil 2021. 10. 22. 23:40



인류역사의 시작, 수메르 문명과 인문학 (II)

 



1. 인문학은 인간 본질의 정수를 성찰할 수 있는 문, 사, 철 (문학, 역사, 철학)이 주된 탐구영역인데,

이번 탐구의 주제는 인류초기 문명의 역사를 통해 인간됨의 본질을 성찰해보고자 한다.

2. 인류의 문명은 농경, 정착과 함께 시작되었다

(사실 문화 culture라고 하는 말도 cultivate, 경작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3.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문화와 역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수메르 문명이다 (BC 3700 – BC 2000)

4. 수메르문명을 ‘인류역사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의미는

인류역사가 훨씬 더 오래 되었지만 수메르 전의 인류는 자신들의 문명과 역사를 기록해 놓은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삶과 문화를 기록해 놓은 수메르 문명을 인류역사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5. 수메르 정착 지역에서 발견된 약 30,000점의 쐐기문자 점토판이 19세기 말부터 해독되기 시작하면서 수메르문명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6.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 발굴된 수많은 토기와 유물, 건축물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바로 그 시대의 사람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알게 해주는 점토판, 문자이다.

이것을 통해 인류 최초의 문명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7. 점토판들을 해독하면서 확인된 것은,

현생 인류가 사용하거나 고민하는 내용들이 적어도 이미 5,500년 전부터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기 시작한 인류는 도시문명을 이루고 살면서

인간관계에 필요한 법이나 제도 (*우르남무법전)들을 이미 5,500년 전에 만들어 놓았고,

이는 함무라비 법전보다도 적어도 300년은 앞서는 것이었다.

그 시대에 이미 학교가 있었고, 도서관도 있었으며, 지혜와 우화, 철학과 천문학,

그리고 의학까지 정립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39 가지 분야에서 최초로 시작된 문명이 등장한다.

8. 점토판에서 해독된 내용들 가운데에는 성서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들,

성서의 줄거리와 전개 과정이 비슷하거나 소재가 되는 내용들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여전히 신학계에서 고민하고 논의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일반 지역 교회에서는 아직 이 부분들을 성도들에게 나누지 못하는 고민이 있다.

ㅡ우르남무의 법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법전을 담은 점토판이며 인류 최초의 성문법이다. 그것은 기원전 2100년~기원전 2050년 사이에 수메르어로 기록되었다. 비록 서문이 우르 제3 왕조의 우르남무왕을 직접적으로 지목하지만 약간의 학자들은 그의 아들 슐기에 그 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수메르 문명을 알 수 있는가?

 


인류는 불과 100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고대에 ‘수메르인’들이 존재해 왔었다는 사실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물론 몇 백년 전 고고학자들과 고전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로 알려진 중동의 지방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찾았던 것은 수메르인들이 아니라

아카드인, 바빌로니아인 앗시리아 문명들을 찾고 있었다.

그들이 이 민족들과 그들의 문명에 관하여 가졌던 관심은

그리스인들의 역사기록과 히브리인들의 성서의 정보 때문이었다.

사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메르’와 ‘수메르 민족’에 대하여는 어렴풋한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땅이나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흔적을 담고 있는

어떠한 문헌 자료도 근대의 학자들에게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점토판들이 해독되기 시작되면서,

아카드,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이전에 수메르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수메르 문명을 발굴하는 데 크게 공헌한 학자들은,

문명이 존재했던 역사적 현장들을 발굴 복원하여

당시의 문화를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재현한 고고학자들의 공도 크지만,

수많은 점토판의 문자들을 해독, 해석함으로 당시의 역사적 정황들과 문화를

현재의 언어로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수메르 언어학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쇄기문자체계의 기원과 발전

 

수메르학 전문학자인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는

그의 책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수메르학은 100년 이상 전에 시작된 쐐기문자 (설형문자) 연구의 한 부문이다.

이 세월 속에서 여러 학자들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여를 해왔고,

오늘날의 쐐기문자 연구가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그들의 업적을 활용하고, 그것들을 토대로 연구하고 있다.”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박성식 옮김, 서울: 가람기획, 2020, p.7)

 

ㅡ설형문자 (楔形文字) / 쐐기 문자 (cuneiform) 발굴지


아직도 수메르 지역에서 발견된 점토판들이 해독되고 있다.

이 점토판들은 기원전 1000년대 전반기부터 발견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바그다드에서 160km 떨어진 근방 지역들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특히 수메르의 유적지인 니푸르에서 1889-1900 년대에 많이 발견되었으며,

대부분 현재 필라델피아, 펜실바니아 대학 박물관과 이스탄불의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파편들과 점토판은 대개 발굴보다는 상인들을 통하여 구입하게 되었고

그것들의 대부분은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베를린 박물관 그리고 예일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수메르의 주요도시 니푸르 (Nippur),

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 남동부의 Niffer, Nuffar에 해당된다>

 

ㅡ설형문자 (楔形文字) / 쐐기 문자 (cuneiform)


세상을 바꾼 발명품 쐐기문자
문자는 문명과 같이 발전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불리우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했다.

문자가 정착되기 전 수 천년 전부터 인류는 소나 양 같은 가축과 곡물의 숫자를 기록하는

회계의 목적으로 여러가지 모양의 기호를 점토에 새겼다.

뾰족한 도구로 점토판에 그림을 그린 초기의 표시는 물품의 모양을 따라 그리는 간단한 형태였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는, 뾰족한 도구에서 갈대 첨필로 바뀌면서

더욱 필기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발달하여 나중에는 구체적인 대상의 표현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까지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인류 최초의 태블릿, 점토판에 갈대 첨필로 필기>

<가운데, 기원전 2350 년경 라가시에 살았던 필경사>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상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기호의 조합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입과 빵을 나타내는 기호를 하나로 합쳐 “먹는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같은 소리가 나는 단어에 추상적인 개념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화살’ 기호를 ‘티’로 읽는데, 그 기호에 같은 소리로 발음하는 ‘목숨’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상형문자가 발전했는데

이집트인은 글자를 신이 준 선물로 여겼기 때문에 이 문자를 신성문자라고 불렀다.

이 신성문자는 극히 제한된 신관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이 신관들은 문자를 통해 막강한 권력을 일반시민들에게 행사했다.

이처럼 고대의 문자는 한편으론 권력을 행사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이렇듯 당시의 문자는 한편으론 잉여농산물의 계산과 저장, 그리고 물품의 교환과 계약의 실제적인 필요에 의해서

발달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특정계급의 권력의 강화에도 영향을 끼친 것을 볼 수 있다.

20 세기 초 수메르 문자가 해독되고 수메르 문명이 아카드-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문명의 근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또한 수메르 점토판들이 해독되면서 5500년 전 (기원전 3500년 + 기원후 2000년)

인류의 문명이 현재 인류 문명의 시원이 되었고,

당시의 인류의 본성 (nature)이 현재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수메르 문명을 통해 들여다본 인문학적 질문들


20 세기에 들어오면서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과학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학문의 발달을 재촉했고,

방사선 탄소연대법 같은 기술은 고고학의 정밀성에도 진취적인 공헌을 가져왔다.

이러한 도움들로 인해 수메르 문명의 숨겨진 역사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수많은 점토판들이 해독되면서 당시 인류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5000년 전의 인류의 모습과 인간성은 어떠했을까?

당시 수메르인들의 삶의 모습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수메르 점토판들이 해독되면서,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질문들을 한층 더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은 인류의 큰 의의라 할 수 있다.

수메르 점토판들에는 다양한 내용과 이야기들이 나온다.

가정의 대소사부터, 결혼, 이상적인 어머니, 정부와 정치, 재판과 논쟁, 사회개혁, 농업,

원예학, 의학, 철학, 윤리학, 지혜, 도서관, 종교 등 인간사 (史)의 다양한 부분들이 기록되어 있다.

5000천년 전 최초의 문명을 이루고 살았던 수메르인들의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최초로 기록된 도덕적 이상과 종교적 생각은 무엇인가?

당시 인간의 최고 선은 무엇인가?

당시 가정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또한 그것들의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당시 인간들의 내면은 현재 인류와 어떤 점에서 특징이 있는가? 등

다양한 인문학적 질문들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내용은, 반세기 동안 수메르 점토판들을 해독하면서 발견된 인류의 기록된 역사에서

‘최초의 것들’을 정리한 39 가지 내용중 특히 인문학적 질문과 관련되어 있는 몇 가지만을 소개할 계획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원하는 분들은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의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인간 기록의 최초의 것들


– 최초의 청소년 문제: 청소년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오늘날 청소년문제는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리우는 청소년들은 반항적이고 불안정하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우리 때에는 안그랬든데,..”하며 세대차이를 언급하거나,

지금세대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인터넷 테크놀로지 등 현대문명이 청소년들을 망쳐 놨다고 쉽게 진단하곤 한다.

그러나 고대에도 청소년들의 상황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 위로가 될 것이다.

그때에도 청소년들은 제멋대로였고, 사사건건 반항적이며, 불안정한 존재들로 부모들의 골머리를 썩였다.

그들은 거리를 배회하고, 길모퉁이나 공공장소에서 빈둥거리며,

감독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패거리를 지어 말썽을 일으켰다.

그들은 학교와 교육을 싫어했고, 끊임없는 방황과 불만으로 부모들의 복장을 뒤집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은 수메르 점토판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17개의 점토판은,

점토판을 기록한 필경사와 그의 말썽쟁이 아들에 관한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고 기록하고 있다.

점토판은 부자간의 대화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거리를 방황하지 말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훈계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충고를 강조하기 위해 그의 말을 여러 번 강조한다.

점토판의 내용은 아들을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 아들에게 거리에서 방황하지 말고

학교 선생에게 공손히 대하며, 학교에 가면 예전 사람들의 경험을 잘 듣고 배우라는

일련의 지침 (잔소리?)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어서 말 안 듣는 아들을 향해 혹독한 꾸짖음을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말을 안듣고 끊임없는 방종한 행동으로 인해 죽을 지경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여기에 직역으로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대화를 조금 소개해 본다.

“어디에 갔었느냐”
“아무데도 가지 않았어요”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면, 왜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지?

학교에 가고, 과제물을 암송하고, 너의 책보를 열고,

너의 점토판에 필기를 하고, 너의 과제를 끝내고,

너의 감독관에게 보고한 뒤 나에게 와라.

그리고 거리에서 방황하지 마라. 내가 한말을 알아듣겠느냐?”

“알아요, 나중에 말씀 드릴께요”
“얘야 지금 말해라”
“나중에 말씀 드릴께요”
“어서 지금 말하라니까!”

“학교에 가고, 저의 과제물을 암송하고, 저의 책보를 열고,

저의 점토판에 필기를 하고, 저의 과제와 공부를 끝내고,

저의 감독관에게 보고한 뒤에는 아버지께 와야 합니다.”

 

<청소년 비행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펜실바니아 대학 박물관에 소장된 작은 점토판의 앞면>

아버지는 이제 한참을 혼자서 말한다.

“얘야, 이제 철 좀 들어라. 공공장소에서 서성거리거나 길에서 배회하지 마라.

길을 걸을 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마라.

너의 감독관 앞에서는 겸손하게 굴고, 어려워함을 보여라.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감독관은 너를 좋아할 것이다.

…………… (15행 가량이 파손되었음)

“거리에서 배회하는 네가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느냐?

선조들의 충고를 들어라. 학교에 가라, 너에게 유익할 것이다.

내 아들아, 선인들을 찾아 그들의 조언을 들어라.”

“내가 지켜보는 아들아, 내가 내 아들을 지켜보지 않는다면

나는 인간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그들의 자식들과 비교해 보았다.

그러나 그들 중 너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너를 나무하라고 숲으로 보내지 않았다.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은 나무 하느라 바쁘지만,

나는 너에게 결코 나무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나는 내 짐수레를 끌라고 너에게 시키지 않았다.

나는 밭에서 쟁기를 끌도록 너에게 시키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땅을 개간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가서 일을 해서 나를 먹여 살려라’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

“나를 화나게 만드는 아들아!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너에게 정말로 노할 수밖에 없다.

나는 친척들과 이야기를 했고,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알았다.

너에 관한 소문들은 그들을 근심스럽게 했고, 그들은 너를 주목하고 있다.

제발 너의 형을 본받아라 … (중략), … 나는 밤낮으로 너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너는 밤낮으로 쾌락에 빠져 있다.”

 

(이상,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p.39-41.)

 


위의 내용을 추측해 보건데, 당시의 수메르 청소년들 또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고,

부모의 걱정거리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과 인간 본성에 대해 어떤 인문학적 성찰을 말해주고 있는가?

 


– 최초의 윤리학: 인류의 도덕적 사고

 

 


1951년 니푸르에서 발견된 19점의 점토판과 파편들이 맞추어지자

250행에 이르는 수메르인의 종교적 도덕적 생각들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드러났다.

이 기록에는 지금까지 수메르 기록에서 발견된 가장 명확한 윤리적, 도덕적 보편 진술들이 포함되어 있다.
수메르인들이 섬기는 여신 난셰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부모없는 아이를 아는 이, 미망인을 아는 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억압을 아는 이는 고아의 어머니,
난셰, 미망인을 돌보는 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구하는 이,
피난민을 그녀의 무릎에 앉히는 여왕,
약한 사람들을 위해 안식처를 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서 난셰는 새해 첫날에 인류를 심판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그녀곁에는 글과 계산의 여신인 니다바와 니다바의 남편인 하이아가 수많은 증인들과 함께 한다.
그녀가 불쾌하게 여기는 사악한 인간형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죄악속을 거닐던 사람들이 고귀한 손에 다다랐다, …
세워진 규범을 위반하고, 계약을 깨트린 자,
사악한 장소들을 좋아라 바라보던 자,…
가벼운 것을 무겁게 바꾼 자,
작은 것을 크게 바꾼 자,
다른 사람의 것을 먹고 ‘내가 그것을 먹었다’고 말하지 않는 자,
다른 사람의 것을 마시고 ‘내가 그것을 마셨다’고 말하지 않는 자,
‘금지된 것을 먹겠다’고 말한 자,
‘금지된 것을 마시겠다’고 말한 자.”
또한 이어서 난셰의 사회적 의식은 다음의 행들에서 좀 더 자세히 드러난다.
“고아를 위로하고, 미망인을 없게 하고,
강한 자를 위해 파괴된 장소를 일으켜 세우고,
강한 자를 약한 자에게 넘겨주고, …
난셰는 사람들의 마음을 구한다.”

이상을 통해 볼 때, 당시 수메르인들의

선과 진리, 법과 질서, 정의와 자유, 공평함과 정직함,

자비와 긍휼 등, 사회적, 도덕적 우선 순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구약의 보편 명제인 ‘고아와 과부’에 대한

하나님의 편애와 긍휼이 무려 2000 년 이상 앞선 수메르 점토판에서 콜라보 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르 제 3 왕조, 우르-남무왕이 달의 신 신의 엔시 (대사제)에게 봉토에 대한 지배권을 하사 받는 장면>

 


기원전 2100년경 수메르 우르 제 3왕조의 왕 우르-남무가 반포한 법전과

우르-남무 왕이 행한 일을 그린 점토판을 보면,

그는 만연하던 관료들의 착취를 일소하고,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를 위한 무게와 수치를 정했으며

(공평한 간칭-저울과 명칭-추은 여호와의 것이요 잠 16:11),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자들을 학대와 냉대로 부터 보호했다

(고아와 과부에 대한 배려와 보호는 구약성서에 무려 50회 이상 언급되고 있으며,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고아와 과부에 대한 배려는 구약성서가 추구하는 사회적 정의에 대한 정수이다).

우르-남무왕의 업적과 치세를 보면서

구약성서의 중요주제가 오버랩 되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 주제이다.

 

 

 

 

 

 

ㅡ<터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우르-남무 (Ur-Nammu Law-code)법전>

 


수메르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들에 따르면,

수메르 신들도 부도덕 하고 악한 사람들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메르의 찬미가들을 보면 선과 정의, 진실과 정직의 수호자들과

그러한 것을 추구하는 신들을 찬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내용들을 통해 볼 때, 5000년전의 윤리의식과 현대의 윤리적 잣대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최선의 선은 무엇인가?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적인 덕목과 소양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러한 고민과 성찰들을 나누는 것은 인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최초의 법전: 인류 최초의 문명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

 


1947 년까지 가장 오래된 법전은

기원전 1750 년 구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대왕이 만든 함무라비 법전으로 알려져 있었다.

바빌로니아 언어로 알려진 셈족의 언어가 쐐기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함무라비 법전은

왕 자신을 칭송하는 자화자찬의 서문과 저주가 담긴 후기 사이에 300개에 가까운 법규가 실려 있다.

법규의 구체성과 보존상태로 본다면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휼륭한 고대 법에 대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현재 함무라비 법전은 루부르 박물관에 장엄하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함무라비대왕 오벨리스크, 태양신 샤마쉬가 함무라비왕에게 법전을 하사하는 장면>

 

 


그런데 1952년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교수는 1951년에서 1952년까지

‘풀브라이트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스탄불의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연구교수로 가 있었다.

그곳에서 화란의 F. R. 크라우스교수의 소개로 우르-남무라는 수메르 왕에 의해 공포된

법전의 일부가 새겨져 있는 어느 점토판을 해독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우르-남무 법전은 함무라비 법전보다 최소한 300년은 앞선 법전인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인류 최초의 성문법 (문자로 적어 나타내고, 문서의 형식을 갖춘 법률) 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점토판의 일부는 깨져 있고,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반 이상은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앞면은 본문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부분적으로만 알아볼 수 있는 긴 서문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술된다.

" 세상이 창조되고,

수메르와 우르 (구약성서의 지명, 갈대아 우르)의 운명이 결정된 후에,

수메르 만신전의 최고신들인 안과 엔릴은 달의 신 난나를 우르의 왕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난나는 우르-남무를 택하고 자신의 지상 대리인으로 전 수메르 우르를 지배하게 했다.

새로운 왕은 먼저 우르와 수메르의 정치적, 군사적 안정을 도모해야 했다.

특히 그는 우르를 희생양으로 삼아 팽창하고 있는 이웃 도시국가 라가시와 싸워야만 했다.

그는 라가시의 지배자 남하니를 패배 시킨 후,

‘난나의 권위와 함께 하는 왕의 도시’ 우르의 이전 경계선을 다시 확립시켰다.

이제 사회적, 도덕적 개혁을 통하여 내부의 안정을 꾀할 시간이 되었다.

사기꾼과 부패한 관리들, 법전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백성들의 소, 양, 당나귀를 함부로 빼앗은 ‘강탈자’들을 내쫓았다.

그런 후 그는 공정하고 엄격한 기준을 확립했다.

그것은 ‘고아가 부자의 먹이가 되지 않고, 과부가 강한 자의 먹이가 되지 않고,

1세켈을 가진 자가 1미나 (60세켈) 가진 자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ㅡ수메르 신화에 의하면 최초에 지구에는 바다만 있었다. 광활한 물 위에 떠 있던 바다의 여신은 너무 적적했다. 그녀는 스스로 잉태하여 하늘과 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하늘과 땅도 움직임이 없었기에 지구는 여전히 적적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에 하늘 신과 땅의 신이 결합하여 바람의 신인 '엔릴(Enlil)'을 만들어낸다. 바람의 신은 세계 어디나 돌아다닐 수 있었고, 폭풍과 비를 불러올 수 있었다. 그는 하늘과 땅을 가르고 공기에 의해 나누어진 대기 구조 속에 우주를 만들어 나갔다."나는 아버지인 하늘 신과 어머니인 땅의 신보다 더 위대하고 힘이 세다. 이제 이 세상은 내 힘으로 만들고 통치하겠다."신들의 모임에서 실질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최고신의 역할을 맡게 된 바람의 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해졌다.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었다. 어느 날 바람의 신이 물가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신(닌릴)을 보았다. 그는 한눈에 여신에게 반해 버렸다. 출처 : 충청타임즈(http://www.cctimes.kr)

 

점토판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우르-남무가 공포한 법은 정의를 땅에 세우기 위한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세부 법률들은 점토판 뒷면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부분적 훼손에도 불구하고, 해독된 뒷면의 세부 내용은 5 개의 법규 내용이 어느 정도 복원되어 해독되었다.

“만약 일대일에서 어떤 도구에 의해 그의 발이 잘렸다면,
은 10세켈을 그는 지불해야 한다.”
“만약 일대일에서 어떤 무기에 의해 그의 뼈가 손상되었다면,
은 1미나를 지불해야 한다.”
“만약 일대일에서 게슈푸에 의해 코가 잘렸다면,
은 2/3미나를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법률들은 최초의 인류문명이 어떻게 약자를 보호하고

개인의 갈등에 대해 처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 점토판들은 수메르인들의 계약증서, 유언장, 약속어음, 영수증,

그리고 판례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한 점토판에서 발견된 살인사건에 대한 수메르 법정의 판례는 현재 법률가들이 이 재판을 판단한다 하더라도

똑 같은 평결을 내렸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정교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상을 통해, 최초의 인류 수메르인들의 사회적 갈등과 현대 인간사회의 갈등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류가 갖고 있는 인간 본연의 근본 문제는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 왔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인간사이의 근본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상(교육, 정신)은 있는 것일까? 하는 인문학적 질문을 던져 본다.

 

 


– 최초의 의학서: 인류 최초의 동의보감

 

 


기원전 2000년 말에 살았던 어느 익명의 수메르 의사는

그의 동료들과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의 경험들과 효과를 본 처방들을 모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가로 8.3 X 세로 15.9cm 크기의 점토판을 준비하고,

갈대를 쐐기의 끝모양으로 날카롭게 만든 다음, 당시의 쐐기문자로 그의 12가지 비방들을 기록했다.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이 점토판은 4000 년 이상 니푸르의 유적속에 묻혀
있다가 미국 발굴단에 의해 발견되어, 펜실베니아 대학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ㅡ<인류의 가장 오래된 의학 약방문 점토판, 현재 펜실베니아 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의학 점토판의 내용을 보면, 익명의 의사는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식물, 동물, 광물들을 찾아다닌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제일 선호했던 치료제는 염화나트륨 (소금)과 질산칼륨 (초석)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는 우유, 뱀껍질, 거북이 등딱지 등도 활용했다.

그리고 계피, 은매화, 아위, 백리향, 버드나무, 배나무, 전나무, 무화과나무, 대추야자나무 등도

약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약초들은 씨, 뿌리, 가지, 껍질 그리고 진액들을 고형이나 가루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가 처방하는 요법은 외상에는 연고와 여과액이 쓰였고, 내상에는 물약이 사용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의학 전문 점토판을 볼 때

당시의 수메르인들의 의학수준이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 점토판을 분석해 볼 때 당시 수메르 의사들의 화학적 지식이 경험에 의해 정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여러 처방들에는 분말을 만들기 전 약제들을 ‘정화’하라는 지시가 있는데,

그것은 당시 벌써 위생의 중요성과 화학작용들에 대한 지식을 폭넓게 가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최초의 수메르 의학서를 해독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기원전 2000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의학서에는 수메르의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마법이나 굿등, 사이비 치료행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시대의 다른 점토판의 기록들을 보면 마법이나 신비행위에 대한 언급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수많은 질병들을 병자의 몸에 있는 사악한 영의 탓으로 돌리는 묘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학서 점토판에는

그러한 주술행위들이 의학적 치료행위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위의 내용은 인류가 질병을 대하는 과학적 접근과 종교적 접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약한 심리를 파고드는 사이비 주술행위에 대해서도 인문학적 성찰을 적용해 볼 수 있다.

 

 


나가며

 


이상을 통해, 인류의 기록된 역사가운데, “최초”라는 수식어가 들어가 있는

39가지 수메르 문명중 비교적 쉽게 인문학적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4가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수메르 문명은 인류 역사에서 묻혀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아카드, 바빌로니아 점토판들과 기록들을 통해 수메르 문명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어진 고 고학적 유물들의 발견과 수많은 수메르 점토판들이 해독됨으로

인류 최초의 수메르 문명이 존재해 온 것이 입증되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학적, 역사적, 과학적, 인류학적으로도

수메르 문명의 발견은 인류역사에 커다란 족적과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인간의 최초로 기록된 도덕적 이상과 종교적 생각은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의 정치적, 사회적, 철학적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오천년 전의 윤리의식과 현대의 윤리적 잣대가 어떻게 다른가?”


“오천년 역사를 비교해 볼 때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최선의 선은 무엇인가?”
“최초의 문명시기의 인간의 본성 (nature)과 현대 인류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다른가?”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적인 덕목과 소양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인류가 추구해 온 사회적 정의의 핵심은 현대의 사회적 정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근본 문제는 무엇이며, 해결할 수 있는 이상 (교육, 종교, 정신)이 있는가?”
“인간의 질병과 인간의 약한 심리를 파고드는 사이비 주술행위에 대해서 인류는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 문명을 들여다보며 많은 인문학적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분명 역사는 우리 인간의 심연과 본성을 들여다보게 하는 또 다른 거울임에 틀림없다.

 

 


○ 참고도서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박성식 옮김 (서울: 가람기획, 2020)
제카리아 시친,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이근영 옮김 (서울: 도서출판 AK, 2010)
주동주, 수메르문명과 역사 (서울: 범우, 2020)
조두상, 수메르문자의 생성 발달과 아카디아어 표기에 관한 연구 (코키토,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