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고대중동 이야기

[책] 인류최초의 문명,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Narin Pusil 2021. 9. 15. 21:46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펌)리뷰

올해 초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여 수많은 유물들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

그곳은 바로 인류문명이 최초로 시작된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석유 패권을 위한 전쟁은 무고한 생명을 빼앗아간 것뿐만 아니라

인류전체의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야만이었다.

수메르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건설된 여러 도시국가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쐐기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을 통해 당시의 삶을 전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가 '최초'이다.

 

 


이 최초들을 하나하나 살핀 책이 있는데 바로 수메르 연구의 대가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가 쓴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이다.
이 책은 평이하고 당연한 제목이 색다르게 느껴질 정도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최초의 문명이라면, 고대 문명이라면 그 세계가 야만적인 상태일 것 같다는 오해를 벗겨 버린다.

그 때도 촌지가 있었고, 정부는 양원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라가쉬에서는 잡다한 세금이 많아지자 우르 난셰 왕조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지도자를 추대하면서 자유를 획득하는 사회개혁도 있었다.

법전, 재판, 의학 등 모든 분야의 기록들은 당연히 최초의 것들이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변용되는 여러 이야기들의 원천을 알 수 있는 문학작품들은 독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의 원조가 바로 이것이었군!'하는 감탄과 더불어

하늘 아래 새로울 것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수메르인들의 속담과 격언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해학과 통찰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대사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그 문제의 해답 역시 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많은 은을 가진 자는 행복할 것이다.
많은 보리를 가진 자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자는 발뻗고 잘 수 있다.
(p.173)

쾌락을 위하여: 결혼
사색을 위하여: 이혼
(p.175)

너는 지배자를 가질 수 있고, 왕도 모실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무서워해야 할 것은 세리다!
(p.180)

미국이 자신들의 유물을 파괴할 것을 미리 알았을까? 이 말은 미국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 같다.

네가 가서 적의 땅을 빼앗으면,
적도 와서 너의 땅을 빼앗는다.
(p.180)

최초의 신화는 수메르 문명의 계승자인 바빌론 신화로 이어지고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영웅을 노래한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다보면

우트나피시팀의 홍수 이야기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 사이의 동일함에 놀라게 된다.

성경의 욥, 메시아, 부활, 성모 등의 이미지의 원형들이 고스란히 다 있다.

대부분이 창조신화가 취하고 있는 부부로의 결합 이후 아들의 개입,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으로 인한 탄생의 구조 역시 바로 수메르 신화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면 왜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수메르 시에서 엔티의 병든 신체부위 중 하나는 갈비뼈다.

'갈비뼈'에 해당하는 수메르 단어는 '티(Ti)'이고,

엔키의 갈비뼈를 치유하기 위해 창조된 여신의 이름은

'닌-티(Nin-Ti)' 즉 '갈비뼈의 고귀한 여성'이다.

 

수메르 단어 '티' 또한 '생명을 만드는'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닌- 티'라는 이름은 '갈비뼈의 고귀한 여성'과 '생명을 만드는 고귀한 여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p.p 208~209)

현대 교회에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바이블의 여러 이야기들의 근거가 수메르 문명이라는 강력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수메르인들의 문명을 보게 되면 약 5000년경 전의 사람들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들에게 철 좀 들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세리에 대한 사람들의 미움, 사랑에 대한 찬양, 아이를 재우기 위한 자장가를 부르는 어머니,

세상의 건설자로서의 노동계급의 자각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초판 머리말

 


❏ 과거 26년간 나는 수메르학 안에서도 주로 수메르 문학을 연구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의 결과는 먼저 전문적인 책자로 발간되거나, 

수많은 학술지들에 논문과 논설의 형태로 게재되었다. 

이 책은 그런 수메르 연구와 출판 속에서 구체화 된 몇몇 중요한 결과들을 

일반 독자, 인문학자 그리고 고전 연구자들을 위하여 한데 모은 것이다.

 


❏ 이 책의 공통점은 인류의 기록된 역사상 ‘최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역사적ㆍ문화적 기원으로서의 그 의미가 자못 중대하다고 할 수 있다.


• 이 에세이들의 진짜 목적은 인간에 의해 성립된 가장 최초이고, 

  가장 창조적인 문명에 대한 영적ㆍ문화적 성취들의 단면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 여기에는 정부와 정치, 교육과 문학, 철학과 윤리학, 법과 재판, 

  그리고 농업과 의학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진력해온 모든 주요 분야들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대 기록들 전체, 혹은 중요 부분들이 발췌되어 독자들 앞에 제시되었다.

 


❏ 이 책에 있는 대부분의 자료들은 나의 ‘피와 고통과 눈물과 땀’이 깃들어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많은 부분에는 약간 개인적인 단상들이 들어 있다.


• 대부분의 기록들은 나에 의해 조각이 맞추어지고 번역되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나는 같은 원전에 근거하고 있거나, 

  심지어는 손실이나 파괴의 경우에 대비하여

한 벌 이상의 사본이 준비되었던 점토판들을 확인하였다.

 


❏ 수메르학은 100년 이상 전에 시작된 쐐기문자(설형楔形문자) 연구의 한 부문이다. 

이 세월 속에서 여러 학자들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여를 해왔다.


• 오늘날의 쐐기문자 연구자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그들의 업적을 활용하고, 그것들을 토대로 일하고 있다. (……)

새뮤얼 크레이머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 서문

❏ 수메르 학자란 아주 전문화된 아카데미의 세계에서도 

가장 한정된 전문가 집단들 중의 하나에 끼어 있는 일원을 가리키는 말이며, 

‘가장 적은 것에 관하여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거의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다.


• 수메르 학자는 문명사의 기원이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물음에 

  다른 어떠한 학자나 전문가들보다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 예를 들면 인간의 최초로 기록된 도덕적 이상과 종교적인 생각은 무엇이었는가? 

또한 그것들의 정치적ㆍ사회적ㆍ철학적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최초의 역사, 신화, 서사시, 찬미가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 

최초의 계약서에는 무어라고 씌어져 있었는가? 

누가 최초의 사회개혁가였는가? 언제 최초의 세금 감면이 이루어졌는가? 

누가 최초의 입법자였는가? 언제 최초의 상원과 하원 의회가 만났고, 무슨 목적이었는가? 

인류 최초의 학교는 어떠했으며, 그것의 교과 과정과 기능은 무엇이었고, 어떤 학생들이 공부했는가?


• 이런 것들과 그밖에도 이것들과 흡사한 수많은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것들이 수메르 학자의 ‘사냥감들’이다.
• 수메르 학자들은 문화적 기원에 관한 많은 질문들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줄 수 있다.

❏ 주목할 만한 사실은 100년 전까지만 해도 고대에 수메르인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수메르라는 이름은 인류의 기억에서 2000년 이상이나 지워졌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메르인들은 가장 유명한 고대 근동민족 중의 하나가 되었다.
• 우리는 대단한 숫자에 이르는 수메르의 점토판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에는 수메르의 종교ㆍ윤리학ㆍ철학이 드러나는 문학적 창작품들이 새겨져 있다.
• 수메르인들은 문자 체계를 발명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살아가는 데 

  절대로 필요하고 효율적인 교신의 수단으로 발전시킨 소수의 민족들 가운데 하나이다.

❏ 수메르인들이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필요에 의해 점토에 문자를 새길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인 기원전 3000년대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 그들의 첫 번째 시도는 거칠고 상형문자에 가까웠으며, 

  따라서 매우 단순한 행정기록만을 남길 수 있었다.
• 그러나 이후 수 세기가 지나는 동안 수메르의 서기와 교사들은 

  그들의 문자 체계를 수정하고, 형성해나갔으며, 마침내 수메르 문자는

  상형문자의 성격을 잃어버린 양식화된 순수한 표음문자 체계가 되었다.
• 이리하여 기원전 2500~2000년 사이에 수메르의 문자기술은 

  가장 복잡한 역사적ㆍ문화적 작문도 어렵지 않게 완성하여

  표현할 수 있는 충분한 감각과 유연성을 갖추게 되었다.


‣ 기원전 2000년대가 끝나기 전에 수메르인들이 점토판, 기둥, 원주 등에 

  당시까지는 구전되어 내려오던 문학적 창작물들을 새겼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그러나 현재까지 이 시대로부터 경제적ㆍ행정적 점토판들과 종교적 비문은 

  수없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의 문학적 기록은 고고학적인 우연에 의해 발굴되었을 뿐이다.
‣ 기원전 1000년대 전반기에 이르러 비로소 수메르의 문학작품들이 새겨져 있는 

  수천 개의 점토판과 파편들을 무더기로 발견하게 된다.
• 이것들의 태반은 오늘날의 바그다드에서 100마일 좀 넘게 떨어져 있는 

  고대 수메르의 유적지인 니푸르에서 1889년~1900년에 발견되었으며,

  대부분 현재 필라델피아 박물관과 이스탄불의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다른 점토판과 파편들은 대개 발굴보다는 상인들을 통하여 획득되었으며, 

  지금은 대개가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베를린 박물관 그리고 예일 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 이런 점토판과 파편들에 새겨진 문학작품은 수백 편에 이르며, 그것들의 분량도 50줄에 못 미치는 종교적 찬미가에서 1000줄에 육박하는 신화까지 다양하다.


• 유태인들이 그들의 성경을 쓰고, 그리스인들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만들기 

  1000년도 훨씬 전에 수메르인들은 신화와 서사시, 찬미가와 애도가,

  그리고 수많은 속담, 우화, 에세이들의 모음으로 구성되는 풍부하고 성숙한 문학을 생산하고 있었다.
• 때문에 이 오랫동안 잊혔던 고대문학의 발견과 복원이 

  20세기 인문과학의 주요한 공헌이 되리라는 예측도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History Bigins at Sumer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1. 교육-최초의 학교
‣ 수메르의 학교는 인류문명에 대한 수메르의 가장 중대한 공헌인 

  쐐기문자 체계의 발명과 발전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 그것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우루크라는 이름의 수메르 도시에서 발견되었다.
• 그것은 기원전 3000년까지 올라가는 시점이고, 당시의 몇몇 필경사들은 

  벌써 가르침과 배움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 진보는 그 후의 여러 세기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다. 기원전 2500년경에 이르면 

  수메르 전역에 걸친 상당수의 학교에서 문자가 공식적으로 교육되고 있었다.
• 수메르의 학교 체계가 성숙되고 번창한 것은 기원전 2000년대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 수메르 학교의 원래의 목적은 ‘전문적인 직업인’을 양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나라의 경제적ㆍ행정적 필요, 각별히 신전과 왕궁의 그러한 면들을 충족시키는

  필경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처음 설립되었다.
• 그러나 그 성장과 발전의 과정에서, 특히 교과 과정이 계속 늘어난 결과로 

  학교는 수메르에서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건물 안에서 고대의 인문학자이자 과학자들은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지리학, 수학, 문법, 언어 등 모든 지식을 연구하고 성과를 더해 나갔다.
‣ 기원전 2000년 말기에는 셈족인 아카드인들이 점진적으로 수메르를 정복한 결과로 

  수메르인 교수들에 의한,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전’이 편찬되었다.
• 셈족 정복자들은 수메르 문자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수메르 문학작품들도 아주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수메르 어가 구두언어口頭言語로서 사멸한 지

  오랜 뒤에도 그들은 그것을 공부하고 모방했다. 따라서 단어와 어구를 아카드 어로 번역한

  ‘사전’에 대한 교육적인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2. 학교생활-최초의 촌지


‣ 근동에서 발견된 가장 인간적인 기록은 어느 한 학생의 일상생활을 그린

  수메르의 에세이이다. (21점의 점토판 사본에 의해 복원되었다.)
‣ 에세이는 학생이 학교에 오고 가며 선생님과 대화하는 일과에서 시작해서 

  지각과 함께 경솔한 언행으로 불운한 체벌이 이어지며,

  급기야 필기가 엉망이라고 하면서 매질을 당하게 된다.

  이에 그는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선물로 기분을 바꾸자고 아버지에게 제안한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촌지’다. 글은 계속된다.

“그의 아버지는 신중하게 처리하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집을 방문했고, 

 그의 자리는 상석에 마련되었다. 소년이 옆에 앉아 시중을 들었고,

 선생님은 아버지와 함께 점토판 필기술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 그런 뒤 아버지는 선생님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며 식사를 하고난 다음,
“선생님에게 새 옷을 입히고, 선물을 주었으며, 그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 이에 선생은 제자를 찬란하게 격려했다.
“…… 너는 필경술의 최고점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완전하게 성취할 것이다. ……

  너는 학교생활을 잘해왔으므로, 이제 지식 있는 사람이 되었다.”  

3. 아버지와 아들-최초의 ‘청소년 문제’
‣ 이 에세이를 전해주는 17점의 점토판과 파편들은 3700년 전에 제작되었으나, 

  사실 원작이 만들어진 때는 몇백 년이 더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 이 작품은 어느 필경사와 그의 말썽꾸러기 아들에 관한 부자간의 친밀한 대화로 시작한다.
• 여기에서 아들은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한 후 거리를 쏘다니지 말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는 

  훈계를 듣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충고를 강조하기 위해 그의 말을 되풀이한다

4. 국제분쟁-최초의 ‘신경전’
‣ ‘엔메르카르와 아라타의 왕’이라고 불리는 수메르 영웅시에 기록된 정치적 사건.
• 이 수메르 영웅시는 거의 4000년 전에 가로 세로 9인치인 정사각형의 점토판에 새겨졌으며 

  600행 이상으로 이루어졌다.
• 그야말로 옛날 옛적에 우르크 통치자 엔메르카르라는 아주 유명한 수메르 영웅은 

  우르크 동쪽에 있는 도시국가 아라타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기로 결심하고,

  아라타의 지배자와 주민들을 상대로 ‘신경전’을 개시했다.
• 결국 그는 아라타가 독립을 포기하고, 우르크의 속국이 되는 정도까지 그들의 사기를 꺽는 데 성공했다.

5. 정부-최초의 양원제
‣ 인간의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정치적인 ‘의회’는 기원전 3000년경에 진지하게 열렸다.
• 그것은 우리의 의회와 흡사하게도 ‘양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장자들의 회합인 ‘상원’과, 전투에 임할 수 있는 남자 시민들의 회합인 ‘하원’이 그것이었다.
• 회합은 무조건적인 평화와 전쟁을 통한 독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보수적인 연장자들이 있는 ‘상원’은 평화를 선택했고, 왕은 그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문제를 ‘하원’으로 가져갔다. 이들은 전쟁과 자유를 선언했고, 왕은 이를 허락했다.
‣ 인류에게 알려진 이 최초의 ‘의회’는 서양이나 유럽이 아닌 근동으로 알려진 아시아에서 열렸다.
• 거기에서도 가장 오래된 정치적 회합이 소집되었다고 알려진 곳은 페르시아만 북쪽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고대에는 수메르로 알려진 땅이었다.

6. 수메르의 내전-최초의 역사가
‣ 수메르인들은 일반적인 의미로 보면 사료 편찬을 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 역사라고 불릴 만한 가장 흡사한 기록들은 조상, 기둥, 원추, 원주, 항아리 

  그리고 점토판 등에 새겨진 봉헌문들이다.
• 그것들 가운데 일부는 당시보다 더 먼저 일어난 상황과 사건들을 진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원전 2400년경의 세계문학에서는 필적할 상대가 없는 구체적인 역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 자료가 말해주는 것은 우르-난셰로부터 우르카기나에 이르는 시기의 정치사이고 

  그것은 익명의 ‘역사가들’에 의해 마련된 당시의 다양한 기록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 그것은 기원전 2600년경 수메르와 아카드의 지배자였던 메실림 때부터 시작된다.
• 메실림이 키시의 왕이었으며, 명목상으로는 수메르의 지배자였던 시절에 라가시와 움마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 두 도시국가의 공식적인 지배자인 메실림은 불만을 해결하는 신인 사타란의 신탁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두 도시의 경계를 정함으로써 분쟁을 중재하려 했다. 그 경계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 하지만 분쟁 당사자들은 메실림의 중재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움마보다 라가시에 유리한 결정으로 된 중재로, 오래지 않아 움마의 ‘우사쿠’인 우시는

  그 결정을 파기하고 메실림의 기둥을 파내고 곧바로 국경을 넘어 라가시에 속하는

  북쪽 끝에 속하는 영토인 구에딘나를 점령하였다.
• 이후 계속되는 움마-라가시의 세력다툼으로 점철된 역사적 사건들이 

  다양한 기록들을 통하여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7. 사회개혁-최초의 세금 감면
‣ 기원전 24세기, 도시국가인 라가시에서는 최초의 기록된 사회개혁이 있었다.
• 라가시 시민들이 정치적ㆍ경제적 자유를 빼앗긴 것은 비참한 정복전쟁과 그로 인한 비극적 여파의 와중에서였다. 군대를 일으키고 보급물자를 모으기 위해서 그들은 한계까지 세금을 거두고, 신전의 재산을 전용해야만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시민적 권리를 침해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국가의 모든 통제권이 일단 궁전의 패거리들 손에 떨어지자, 그들은 평화가 돌아와도 그것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권력은 엄청난 이익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 우리의 수메르 역사가에 따르면, 라가시가 정치적ㆍ사회적으로 최저점에 이르렀을 때, 신과 같은 위엄을 갖춘 새로운 지배자 우루카기나가 전면에 등장한다.
• 그는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시민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돌려준다. 득실거렸던 세리들과 기생충 같은 관리들을 내쫓은 것은 물론 부자들의 손에 자행되던 가난한 이에 대한 부정과 착취도 금했다. 또한 우루카기나는 고리대금업자, 도둑, 살인자들을 도시에서 일소했다.
• “어디에도 세리가 없었다,” 우르카기나 바로 그가 라가시 시민들의 “자유를 확립”했다. 전체 기록된 인류사에서 최초로 ‘자유(아마르기)’라는 단어가 나왔다.

8. 법전-최초의 ‘모세’ 우르-남무 법전 (기원전 2050년경)
‣ 1947년까지 가장 오래된 법전은기원전 1750년에 그의 지배를 시작한 유명한 셈족의 왕 함무라비에 의해 공포되었다고 알려졌다.
• 바빌로니아 어로 알려진 셈족의 언어가 쐐기문자로 씌어진 함무라비 법전은 자화자찬의 서문과 저주가 담긴 후기 사이에 300개에 가까운 법규가 검은 현무암 기둥에 실려 있다.
• 1947년 함무라비 법전보다 150년 이상 앞선 왕 리피트-이슈타르에 의해 공포된 법전이 나타났다.
‣ 리피트-이슈타르 법전이라 불리는 그것은 기둥이 아니라 햇볕에 구워진 점토판 위에 새겨져 있었다.
• 그러나 그것은 쐐기문자로 씌어져 있었으나, 셈족의 수메르 어는 아니었으며, 서문과 후기, 그리고 37개의 법규를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싣고 있다. 최초라는 지위는 오래 가지 못했다.
‣ 1952년 나는 우르-남무라는 수메르 왕에 의해 공포된 법전의 일부가 새겨진 점토판을 사본을 만들고 해석하게 되었다.
• 유명한 우르의 제3왕조를 세운 이 지배자는 아무리 늦어도 기원전 2050년경에 재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대왕보다 무려 약 300년이나 앞선 것이다.
• 점토판은 심하게 손상되어 오직 5개의 법규만이 어느 정도 복원될 수 있었다. 인간의 사회적ㆍ정신적 역사에서 주요성을 갖는 것은 3개의 법규이다.
• 왜냐하면 기원전 2000년 이전인 당시의 법이 이미 아주 먼 뒷날인 성경의 법규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으로부터 처벌이 벌금으로 대치되는, 훨씬 더 인간적인 접근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 법규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법규는 다음과 같다.

ㆍ만약 (일 대 일에서 어떤 …… 무기에 의해) 그의 발이 잘렸다면 은 10셰켈을 그는 지불해야 한다.
ㆍ만약 일 대 일에서 어떤 무기에 의해 그의 뼈가 ……하게 잘렸다면 은 1미나를 그는 지불해야 한다.
ㆍ만약 일 대 일에서 게슈푸에 의해 코(?)가 잘렸다면 은 2⁄3미나를 그는 지불해야 한다. 

9. 재판-최초의 판례
‣ 기원전 1850년경에 수메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 그 범죄는 수도인 이신에 있던 왕 우르-니루르타에게 알려졌고, 그는 사건을 당시에 재판소 역할을 하던 니푸르의 시민회의로 넘겼다.
• 이 회의에서 9명의 남자들이 피의자들을 기소했다. 그리고 그들은 세 명의 살인자들뿐만 아니라, 희생자의 아내도 처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범행사실을 안 뒤에도 침묵했기 때문에 사후종범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러자 회의에서 두 남자가 그녀를 변호했다. 그들은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부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침묵했다는 사실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 그들의 평결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처벌로 충분하다”는 진술로 끝난다. 따라서 니푸르 회의에서는 오직 세 남자들만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10. 의학-최초의 의학서
‣ 기원전 2000년대 말에 살았던 어느 익명의 수메르 의사는 그의 동료들과 학생들을 위해 그의 가치 있는 처방을 모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 그는 가장 좋아하는 12개 이상의 치료법을 쓰기 시작했다.
• 이 수메르 의사는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식물계, 동물계, 광물계를 찾아다녔다. 처방하는 요법은 외상에는 연고와 여과액이 쓰였고, 내상에는 물약이 쓰였다.
• 이 의학서에는 전체 원문을 통하여 단 하나의 신이나 악령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기원전 2000년대의 수메르에서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마법이나 굿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이 점토기록에 초자연적이고 불합리한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사의한 일로 남는다.

11. 농업-최초의 농업서
‣ 미국 발굴단에 의해 조그만 점토판 하나가 농업의 역사와 기술에 대하여 최고의 중요성을 갖는 3500년 이상 된 기록의 복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108행의 길이에 이르는 이 기록은 한 농부가 그의 아들에게 주는 일련의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 그 농부는 5월과 6월의 농지의 침수로 시작하여, 다음 해 4월과 5월의 새로 추수된 곡식을 탈곡하고 손질하는 것으로 끝나는 반복되는 농사 활동 전반을 아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 니푸르의 발견 이전에 두 편의 그와 비슷한 농민을 위한 ‘지침서’가 고대부터 전해진다. 버질의 저 유명하고 아주 시적인 <농경가>와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들>이 그것이다.
• 그런데 새로 복원된 수메르의 점토기록은 기원전 1700년경에 새겨졌고, 따라서 헤시오도스의 작품보다 대략 1000년을 앞선다.

12. 원예학- 최초의 나무그늘 원예술
‣ 수메르의 ‘이난다와 슈칼레튜다 : 원예사의 씻을 수 없는 죄’라고 붙인 고대신화 속에서 밝혀진 나무그늘 원예술의 기원.
• 거기에는 뜰에 나무그늘을 만들거나, 바람과 태양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 원예술이 수천 년 전에 알려져 있음이 진술돼 있다.
• 이 점토판은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3. 철학-인류 최초의 창조론과 우주론
‣ 수메르인들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체계적인 철학을 전개하는 데 실패했다.
• 그러나 그들은 자연, 특히 우주의 기원과 그 작용의 원리에 관하여 많은 사색을 했다.
• 기원전 2000년대에 우주에 대한 사색으로부터 떠오른 몇몇 의문들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구하는 일군의 수메르 사상가와 교사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아주 수준 높고 지적인 설득력을 가진 우주론과 신학을 발전시켰으며, 그들의 그런 학설들이 고대 근동의 기본적인 신념과 교리가 되었다고 추측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 우주의 기원에 관한 그들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① 최초에는 태고의 바다가 있었다.
② 태고의 바다는 하나로 결합된 하늘과 땅인 우주의 산을 낳았다.
③ 인간의 형상을 한 신들로 생각된 안(하늘)은 남성이었고, 키(땅)는 여성이었다. 그들의 결합으로 대기의 신 엔릴이 태어났다.
④ 대기의 신 엔릴은 하늘과 땅을 갈라났다. 그의 아버지 안이 하늘을 갖고, 그는 그의 어머니인 땅을 가졌다. 엔릴과 그의 어머니의 결합으로 땅은 인간, 동물, 식물의 창조와 문명의 성립 등 우주의 조직화를 위한 무대가 되었다.
• 해ㆍ달ㆍ행성ㆍ별들과 같은 발광체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직접적인 설명은 찾을 수 없다.
‣ 기원전 2000년대의 수메르에는 수백의 신들이 살고 있었다. 이런 수백의 신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신은 하늘의 신 안, 대기의 신 엔릴, 물의 신 엔키, 그리고 모성의 여신 닌흐르사그이다.
• 수메르 사상가들은 철학 체계를 공식화하지도 않았고, 도덕적 법칙과 이론들의 체계를 발전시키지도 않았으며, 윤리적으로 공식적인 약정도 만들지 않았다

14. 윤리학-최초의 도덕적 사고
‣ 1951년 니푸르에서 발굴된 점토판과 파편들의 수메르 기록에서 명확한 윤리적ㆍ도덕적 진술이 실려 있었다.
• 그것의 여신 난셰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부모 없는 아이를 아는 이. 미망인을 아는 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억압을 아는 이는 고아의 어머니.
난셰. 미망인을 돌보는 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구하는(?) 이.
피난민을 그녀의 무릎에 앉히는 여왕.
약한 사람들을 위해 안식처를 구한다.

• 수메르의 윤리적인 개념과 이상들은 인간이 신들을 섬기기 위해 흙에서 빚어졌다는 신념에 의해 지배되었다.
• 인간 창조에 대한 수메르 신화에서 인간은 비정상적이고 불완전한 유형으로 만들어졌다.
• 수메르 현자들은 인간의 불행은 그의 죄와 잘못된 행실의 결과라는 원칙을 믿고 가르쳤다. 그들은 부당하고 잘못되게 고통을 받는 인간의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언제나 비난받는 이들은 신이 아닌 인간들이었다.

15. 고난과 복종-최초의 ‘욥’
‣ 욥기가 편찬된 시점으로부터 1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수메르 에세이가 새겨진 점토판과 파편들이 해석되었다.
• 이 주제는 성경의 ‘욥기’에 의해 세계의 문학과 종교에 잘 알려진 것이다.
• 이 수메르 시는 그 이해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표현의 아름다움에서 성경의 욥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중요성은 그것이 인간의 고통이라는, 근원적이면서도 현대까지도 관통하는 문제를 다룬 인류 최초의 기록이라는 사실에 있다.
• 이 시가 말하고자 한 바는, 고난과 불운이 찾아왔을 때 그것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떠나서 피해자가 해야 할 오직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신이 그의 기도에 귀를 기울일 때까지 변함없이 찬양하고, 탄원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때의 신은 수난자의 개인적인 신이다. 그 신은 신들의 모임에서 그의 대표이자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

16. 지혜- 최초의 속담과 격언
‣ 기원전 18세기에 새겨진 점토판에서 상당한 분량의 수메르 속담과 격언이 확인되었다.
• 유태인의 속담집은 오랫동안 인류에 의해 씌어진 가장 오래된 격언과 속담의 모음집으로 알려졌다.
• 그러나 풀리지 않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발견과 함께 지난 150년간 이집트인들의 격언과 속담이 모습을 끌어냈고, 그것은 성경의 속담들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씌어졌음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가장 오래된 격언과 속담들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수메르의 속담 모음집이 이집트보다 적어도 수 세기 앞서기 때문이다. 
‣ 수메르의 속담들은 3500년보다 전에 수집되어 씌어졌으며, 그 이전의 오랜 세월 동안엔 의심의 여지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 그 속담과 격언의 예를 들어 보자.

ㆍ성교 없이 애를 배고, 먹지 않고 살찔 수 있는가!
ㆍ죽기로 작정했다면 낭비하라 : 오래 살려면 절약하라.
ㆍ가난한 자는 빚과 근심을 함께 얻는다.
ㆍ옷 잘 입는 사람은 모두가 좋아한다.

수메르인들에게 결혼이란 가벼운 짐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ㆍ아내나 자식을 부양하지 않은 자, 그의 코에는 끈이 매여져 있지 않다.

수메르인들은 우정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했다’.

ㆍ우정은 하루 동안 지속되고, 혈연은 영원히 계속된다.

흥미롭게도 개는 ‘인간에게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

ㆍ황소는 쟁기를 끌고, 개는 애써 파놓은 밭고랑을 망친다.
ㆍ개는 집을 모른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속담이 있다.

ㆍ쾌락을 위하여 : 결혼. 사색을 위하여 : 이혼.
ㆍ기쁨에 찬 마음 : 신부. 찢어질 듯한 마음 : 신랑.
ㆍ그는 여우를 잡기도 전에, 국을 끓이고 있다.
ㆍ네가 가서 적의 땅을 빼앗으면, 적도 와서 너의 땅을 빼앗는다.
ㆍ너는 지배자를 가질 수 있고, 왕도 모실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무서워해야 할 것은 세리다. 

17. ‘이솝우화’-최초의 동물설화
‣ 그리스와 로마 인들 사이에 동물설화를 문학적 장르로 시작한 이솝우화는 기원전 6세기에 소아시아에서 살았던 이솝에 의해서라고 알려졌다.
• 하지만 수메르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이솝우화’들은 이솝보다 무려 1000년 이상 앞선 것들이다.
• 동물들은 수메르 문학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는데, 거기에는 포유류, 조류에서부터 소위 하급생태계에 속하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약 64종의 동물이 등장한다. 그중 약 83개의 속담과 우화에 등장하는 개가 첫 번째 위치를 차지하며 다음으로는 가축과 당나귀가 있다. 그리고 여우, 돼지가 있고 그 뒤로는 양이 뒤따른다. 그에 이어 사자와 야생의 황소가 등장하고, 염소와 늑대 등등의 순서로 계속된다.

ㆍ당나귀가 강을 헤엄치고 있다. 그 위에 착 매달려 있는 개가 말한다. “땅에 오르기만 하면 잡아먹을 거야.”
ㆍ암캐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황갈색이든, 얼룩이든, 나는 내 새끼를 사랑한다.”
ㆍ여우는 야생 황소의 뿔을 달라고 엔릴에게 요구했고, (이에 따라) 야생 황소의 뿔이 그에게 붙여졌다. 그러나 비와 바람이 몰아치자 뿔이 입구에 걸려 굴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차가운 북풍과 폭풍우를 흠뻑 맞으며(?) 그는 말했다. “날이 밝는 대로 ……” (원문 파손. 우리는 여우가 뿔을 떼어줄 것을 애원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 수메르인들의 여우는 ‘신포도’ 등에 등장하는 이솝 우화의 몇몇 여우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먼 훗날 유럽의 민담에 등장하는 영리하고 교활한 짐승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 더불어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두 편의 수메르 우화에서 보이는 여우와 까마귀 혹은 수탉과의 연계는 후일 이솝 우화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하겠다.
•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가장 ‘청결하고 합법적인’ 동물의 하나가 돼지였다는 사실이다.

ㆍ살찐 돼지가 도살되는 순간에 말한다.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ㆍ돼지 푸주한은 돼지를 죽이며 말한다. “꼭 꽥꽥거려야 하겠냐? 이것은 네 아비와 할애비가 갔던 길이다. 그리고 이제 너도 그 길을 가려 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꽥꽥거리는구나!”


• 속담과 우화의 편집은 수메르의 지혜문학에서 단지 한 부문을 구성하고 있다.

18. 논쟁- 최초의 문학 논쟁
‣ 우리는 현재 7편의 문학적 논쟁을 담은 원문을 가지고 있다.
• 그 장르의 중요한 형식은 두 사람의 주인공이 여러 번에 걸쳐 번갈아 등장하며, 그 과정에서 각자가 자신의 중요성을 ‘치켜세우고’, 상대편을 ‘깍아내린다’.
• 이 모든 것은 시적인 형식으로 씌어져 있다. 수메르 지식인들은 그들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활동했던 문자를 몰랐던 음유시인들의 직계후손들이었고, 그들에게 시는 산문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 구성은 보통 주인공들의 창조가 이야기되는 특유의 신화론적 서론으로 시작하여, 수메르의 만신전의 지도적인 신들에 의해 적절히 정리되며 끝난다.

19. 낙원-최초의 성서
‣ 수메르인들에 의해 창조된 문학은 헤브루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수메르인들은 헤브루인들이 존재하기 오래 전에 사라졌다) 수메르인들은 헤브루 민족보다 그 땅에 먼저 살았고, 후일 팔레스타인으로 알려진 가나안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 수메르와 헤브루의 유사성은 ‘엔키와 닌후르사그’의 낙원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성경의 낙원 이야기는 수메르의 성스런 낙원 ‘딜문’이라는 곳에 기원을 두고 있다. 딜문은 페르시아의 남서부에 위치해 있었던 듯싶고, 수메르를 정복한 셈족인 바빌로니아인들이 그들의 신들이 사는 ‘생명의 땅’으로 여긴 곳이다.
• 에덴의 동쪽에 있고,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포함된 세계의 4대 강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땅으로 묘사되는 성경의 낙원은 수메르의 딜문과 원래 동일한 것이었다는 데는 충분한 징후가 발견된다.
‣ 다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어머니’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 왜 헤브루인들은 ‘생명을 만드는 여자’를 의미하는 이브라는 최초의 여성을 만들기 위해 다른 어떤 신체 부위보다 갈비뼈가 적당하다고 여겼는가?
• 성서의 낙원 설화에 선행하는 딜문의 시와 같은 수메르의 문헌을 보면 그 이유와 배경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 이 수메르 시에서 (물의 신) 엔키의 병든 신체 부위 중 하나는 갈비뼈이다. ‘갈비뼈’에 해당하는 수메르 단어는 ‘티’다. 그리고 갈비뼈를 치유하기 위 창조된 여신의 이름은 ‘닌-티’, 즉 ‘갈비뼈의 고귀한 여성’이다. 수메르 단어 ‘티’는 또한 “생명을 만드는”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닌-티’라는 이름은 ‘갈비뼈의 고귀한 여성’과 ‘생명을 만드는 고귀한 여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 이제 우리는 수메르의 ‘갈비뼈의 고귀한 여성’이, 말의 안개를 걷어내고 나면, ‘생명을 만드는 고귀한 여성’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 성경의 낙원 설화에까지 전해져 불멸의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이 가장 오래된 동음이의同音異義의 하나였던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그것은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수메르 어와 달리 헤브루 어에서 ‘갈비뼈’와 ‘생명을 만드는’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나 공통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20. 대홍수-최초의 ‘노아’
‣ 성서의 대홍수 이야기가 성경을 편집한 헤브루인들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 이는 영국 국립박물관의 조지 스미스에 의해 바빌로니아의 서사시 <길가메시>의 열한 번째 점토판이 발견되고 판독됨으로써 알려졌다.
• 그러나 바빌로니아의 대홍수 신화도 사실은 수메르에 기원을 두고 있다.
‣ 필라델피아 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니푸르 소장품 가운데 6개의 난을 가진 수메르 점토판의 아랫부분 3난에 실려 있는 파편의 내용 대부분은 대홍수에 관한 이야기였다.
• 거기에는 엄청난 홍수가 벌써 ‘대지’를 덮쳐 7일 밤낮을 휩쓸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후 태양 신 우투가 다시 나와 그의 고귀한 빛을 사방에 비춘다.

엄청나게 거센 모든 폭풍들이 하나가 되어 덮치고,
동시에 홍수는 의식의 중심지들을 휩쓸었다.

이레 밤낮으로
홍수는 대지를 휩쓸었고,
거대한 배는 엄청난 물 위에서 폭풍우에 흔들렸다.
그 후 우투가 나와 하늘과 땅에 빛을 뿌렸고,
지우수드라가 거대한 배의 창을 열자,
영웅 우투가 그 거대한 배로 그의 빛을 가져갔다. 

21. 저승-최초의 ‘부활’
22. 용의 살해- 최초의 ‘성 조지’
23. 길가메시의 설화-최초의 문학적 인용
24. 서사문학-인류 최초의 영웅시대
25. 왕족 신랑- 최초의 사랑노래
26. 도서관-최초의 도서목록
27. 세계평화와 조화-인류 최초의 황금시대
28. 현대적 불행의 고대적 닮은 꼴-최초의 ‘병든 사회’
29. 파괴와 구원-최초의 종교적 애도가
30. 이상적인 왕 –최초의 메시아
31. 우르의 슬기- 최초의 마라톤 우승자
32. 시-최초의 문학적 상상력
33. 신성한 결혼식- 최초의 성적 상징성
34. 눈물짓는 여신들-최초의 슬픔에 잠긴 성모 
35. 우-아아-우-아-최초의 자장가
36. 이상적인 어머니-그녀 최초의 문학적 초상
37. 세편의 장송곡-최초의 만가
38. 곡괭이와 쟁기-최초의 노동자 승리 

39. 물고기들의 집-최초의 수족관
‣ 낚시와 어업은 수메르의 주요한 식량원이었으며, 특히 수메르의 초기 역사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 수메르의 경제와 어휘에 관한 원문에서는 거의 백 종에 달하는 물고기가 언급된다.
• ‘물고기의 집’의 현존하는 원문에는 16종의 물고기가 간결하게 언급되고 묘사되며, 그중 약 6종은 정체가 확인되었다.

나의 물고기, 집……
나의 물고기여, 나는 너를 위해 집을 지었고, 나는 너를 위해 곡물 창고를 지었고,
집안의 특별한 뜰과 확장된 양 우리를, 나는 너를 위해 지었고,
그것의 중심을 나는 향으로 덮었고, 나는 마음을 기쁘게 하는 장소, 환희의 우물을 팠고(?).
(……)
너와 안면 있는 물고기들을 오도록 해라.
너의 사랑하는 물고기들을 오도록 해라.
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오도록 해라.
네 형의 아들과 동생의 아들을 오도록 해라.
너의 작은 물고기들과 큰 물고기들을 오도록 해라.
(……)

• 물고기 애호가는 ‘나의 물고기여, 모든 물고기가 너와 함께 들어올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수수께끼 같은 해설이 붙은 물고기 16종을 나열하는데 그중 확인된 종은 크고 작은 돌잉어, 잉어, 철갑상어, 메기, 뱀장어 정도이다.
•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나의 물고기여, 낮이 지나갔다. 나에게 오너라.
낮(?)이 지나갔다. 나에게 오너라.
어부의 여왕인 여신 난셰가 너와 함께 기뻐할 것이다. 

◎ 새뮤엘 노아 크레이머, 박성식 옮김,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가람기획,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