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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애굽 그리고 가나안 정착

1. 이스라엘의 기원”(Israel’s Beginings)의 Back_Ground

Narin Pusil 2020. 4. 3. 17:59

◙ 들어가며

 

  이글은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Essey다.

 

주제 : "라합Rahab은 여리고 족속이 아니라, 여호수아(모세)와 같은 동족"이다.

                                                     (결국. 살몬(Salmon)을 만나 가정을 이룬다.)

 

 

ㅡ 우^^ 헤헤헤헤 ~ ~

 

(Salmon), 라합(Rahab)을 만나다.

 

<살몬>은, 무리의 대장, '여호수아'의 장수(general)다.

 

<라합'>은 이전에 18왕조 아(흐)모세'의 원-이집트에 쫒겨난 힉소스와 함께,

가나안(여리고)에 정착했던 살몬과 같은 히브리족 후손이다.

기존 학설에는 기생, 聖창녀로 주장하지만,

               여리고에 살며, 고센으로 부터 탈출헤 온 동족을 도와

여리고성을 점령케 했던 여리고족이 아닌, 히브리인이다.

 

       

 

 

 

■<'파라오'형제>에서, <'파라오' 노예>로

(From "Pharaoh Brothership" to "Pharaoh's Slave")    

 

* 그리고, 이집트 비옥한 고센(Goshen, 알렉산드리아) 땅에서, 선조들의 땅 가나안(Canaan)으로 ....

 
 

 

ㅡ 가나안의 도시국가들 .... [민족] 페니키아 도시 국가 -페니키아인, 필리스티아, 히브리인; 모압; 암몬 톄케르, 게슈르, 에돔 ..... [언어] 페니키아어, 암몬어, 모압어, 히브리어, 에돔어
 
 
 

가나안족인 "힉소스", BC 17세기 경에 이집트를 칩입하여,

 
    '룩소르(Luxor, 헬라어 '테베Thebe')' 밑 남쪽으로, 원(실)-이집트를 밀어내고,
    그들의 수도 멤피스를 점령하고, 다시 고센 남쪽 '아마르나'를 수도로 하-이집트 15-16왕조의 파라오가 되었다.
 
    ( 파라오의 농경민족과 달리, 함께 칩입했던 야곱족속은 유목민족이라
        수도를 벗어나 나일 하구 지역 고센땅 북쪽에 정착했다.
        고센북쪽은 나일 하구와 접해 있어 비옥한 토지여서 농경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삶을 영원히 누리고 싶었던 땅이었기에, 출애굽때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
 
남쪽에 있던 17왕조가 중흥하던 마지막 파라오 카모세는, 다시 북쪽의 하이집트까지 처들어 갔고,
    그의 동생, 아(흐)모세(재위: BC 1290 ~ 1223)가 세운18욍조때,
    아마르나 파라오의 '힉소스족'을 이집트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아(흐)모세는 힉소스를 정복하고, 고센의 셈족 유목민들을 노예로 만든 이후
   치세 동안 이집트 전체에 대한 테베의 지배권을 회복시켰고, 누비아를 제압했으며,
   재위 22년차에는 시리아 원정을 떠나 레반트 지역을 포함해 유프라테스 강까지 진출하였다.
 
After conquering the Hyksos and enslaving the Semitic nomads of Goshen, Ahmose restored Thebes' control over all of Egypt during his reign. who are the Semitic nomads?
 
 
 
※고대 이집트의 맥락에서 "셈족 유목민"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셈족 출신이고 유목민 또는 반유목민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합니다. 
 
힉소스와 아모스(아모세) 1세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이들 셈족 유목민은 고센 땅을 포함하는 나일강 삼각주 동부 지역의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고센의 셈족 유목민"은 구체적으로 고센으로 알려진 동부 나일강 삼각주 지역의 인구를 가리킵니다. 
     이 지역은 고대 셈족의 맥락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하며 성경 본문에서도
     출애굽 이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언급됩니다.

따라서 문제의 셈족 유목민은 힉소스 시대에 동부 삼각주 지역에 거주했다가 
    나중에 이집트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 주장하는 아모스 1세의 캠페인으로 인해 정복되거나
    이주된 다양한 셈족 부족 또는 집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셈족인 힉소스족은 제2중간기 동안 약 기원전 1650년부터 1550년까지 
    나일 강 삼각주를 포함한 이집트 일부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제18왕조의 창시자이자 원주민 이집트 통치를 회복한 아모스 1세에 의해 추방되었습니다.

 

The term "Semitic nomads" in the context of ancient Egypt typically refers to a group of people who were of Semitic origin and lived as nomads or semi-nomads. In the specific historical context you mentioned, relating to the Hyksos and Ahmose I, these Semitic nomads would likely be the people of the eastern Nile Delta region, which includes the land of Goshen.

The Hyksos, who were a Semitic people, ruled over parts of Egypt, including the Nile Delta, from approximately 1650 to 1550 BCE during the Second Intermediate Period. They were eventually expelled by Ahmose I, who was the founder of the Eighteenth Dynasty and restored native Egyptian rule.

The "Semitic nomads of Goshen" specifically refer to the population in the eastern Nile Delta region known as Goshen. This area is historically significant in the context of ancient Semitic peoples and is also referenced in biblical texts as the region where the Israelites lived before the Exodus.

Therefore, the Semitic nomads in question are likely to be various Semitic tribes or groups who inhabited the eastern Delta region during the time of the Hyksos and were subsequently subjugated or displaced by the campaigns of Ahmose I as he reasserted control over Egypt.

 
 
 
 
18왕조에 쫓겨나자, 해안길 북쪽을 따라 이동하려 했던 힉소스 가나안족은,
    팔레스타인과 아나톨리아 남쪽에 걸쳐있던 강력한 미탄니 왕국에 가로막혀
    다시 동쪽으로 틀어 가나안으로 향해 이동했고 결국 그곳에 정착했다.
 
세기가 훨씬 지난 후, (가나안으로 쫓겨간 힉소스와 달리), 이집트에 남아
    아모세때 고센의 셈족 유목민들을 노예로 만든 이후 제19왕조의 제3대 파라오때도
    여전히 노예생활을 하던 고센땅의 야곱의 히브리족은,
    원-이집트 람세스 2세(재위: BC1290 ~ 1223년) 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모세라는 인물에 의해 애굽을 떠나, 남쪽의 이집트 파라오 군대와 북쪽의 히타이트 군대를 피해
    북쪽의 평탄한 지중해 해안 평야길로 가지 못하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돌뿌리가 채이는 시나이 남단의 광야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가나안으로 향했다.

 

 

  갈대아(왕국) 우르(Ur of Chaldees)

 

 

 

1. 가나안 땅 이라는 곳은,

 

유프라데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걸쳐 있는 주변의 비옥한 땅인,

우르크, 우르, 하란, 아수르, 니느웨, 바빌론등의 비옥한 초승달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남쪽 끝에 걸쳐있는 변두리 땅이었고,

그곳도 여러 부족들이 도시국가를 형성하여 외세를 견제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곳이다. 

 

 

2. 이집트에서 살던 이스라엘 부족의 출애급의 큰 무리가 정착할 수 없는

시나이 광야를 지나 40년 유랑생활 끝에 팔레스타인(가나안)의 여러 지역을 분산하여

그곳에 정착한 것 뿐이지 그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통치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가나안 도시국가들의 하층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3. 말하자면, 기존에 산재해 있던 근동지방의 도시국가들 틈바구니 그 여백을 채웠을 뿐이었고

12지역으로 분산된 지파 스스로를 대변하는 일종의 씨족및 부족의 형태의 무리들이었다.

정착후에도 원주민과의 계속되는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바이블 기록이 그것을 말해준다.

 

 

4. 유대경전에는 전쟁이나 지파간의 갈등에 따른 재판을 위해 12지파 종교연합체에서 지도자를 세워 다스렸다고 전한다.

200년후 이스라엘이 시작되는 왕정정치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 부족연맹체의 과도기적 신정정치의 무정부 상태로는

히브리족은 강력한 원주민들의 지역 도시국가들과 투쟁하는데는 항상 벅차기만 했다.

 

 

 

Cities of the Ancient Middle East

 

 

5. 위와 같은 거의 2,000년 전까지 유대인들이 그 땅의 일부를 차지하며 살아오고 있었는데,

시리아(셀류쿠스: Seleucid Empire)에 복속되고 또 이를 밀어내고 점령한 로마에 의해

유대왕국의 예루살렘에 있던 헤롯성전(지성소)이 파괴되고, 그런 와중에 야훼의 침묵

어이상실한 유대인들 … 그때 부활신앙이 발생하고 복음이라는 것이 나오게 되었는데 ..

결국, 신흥종교, 새로운 유대교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6.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대땅에서 살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다시피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오는 동안,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후손인 아랍인들이 2,000여년에 걸쳐

그 땅에 자리를 잡아 살고 있었다.결국 원주민인들인 그들 역시 유대인이라 자처하는 이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영국 프랑스 등의 강대국에 의해  2천년후에 그 땅을 차지한 유대인들에게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를 물려 받고 지금 살아가고 있다.

쫓겨난 그들도 앞으로 2천년후에는 그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을런지 ........

 

 

7.  그 이전에 2번 감행된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의 배경을 통하여 참 재미있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특히 <민중봉기설>에 대해 처음엔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정착 - 민중봉기 - 정복 이라는 과정을 통해

가나안땅 전부가 아니라 가나안 땅의 일부분을 히브리족이 차지했다는 생각을 끌어 낼 수 있었고,

 

8. 그것은 힉소스 파라오가, 하이집트 원주민 파라오에 축출된 후, 동쪽으로 무리를 몰아

    가나안에 다시 정착한 히브리족은, 같은 동족인, 이집트 남겨진 고센(알렉산드리아) 히브리족속과는

    서로의 상황을 주고 받고 있었던지라(역사적 기록), 가나안에 이미 들어와 정착한 동족이 있는 곳에

    여호수아 무리들은 가나안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문에, 라합과 살몬(유다지파 부대장)

    역시 같은 동족으로 다윗과 예수의 중시조가 되었다는 사실 등등의 생각들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