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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푸실 이야기/역사(신화) 이야기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

Narin Pusil 2021. 6. 7. 11:49

 유럽에 로마가, 동아시아 중국에 한나라가 있다면, 중동에는 페르시아가 있다

https://youtu.be/E9rs9Ssma_4

 

 

고레스왕 이후에 페르시아에는 10명의 왕(샤한샤shâhân shâh,王中王) 연대표

샤(페르시아어: شاه, 영어: Shah)는 페르시아어로 왕이라는 뜻이다. 고대 페르시아어의 흐샤야시야(χšāyaθiya)에서 유래됐다. 원래 이란 계통 군주 칭호였지만, 이슬람교가 창시된 이후 이란과 이슬람 문화 영향을 받은 튀르크족 인명 등에 사용했다. 샤한샤(페르시아어: شاهنشاه)는 왕중왕(황제)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다른 말로 파디샤(Padishah)가 있다. 이란의 마지막 샤였던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는 제위 기간 동안 샤한샤라는 칭호를 썼다. 체스, 체크, 체크메이트라는 낱말이 샤에서 비롯됐다.

순서 이름 고대 페르시아어 재위기간
(BC)      
특이사항
초대 아케메네스 Haxāmaniš 680 ~ 655 왕조의 명칭이기도 한 창시자 아케메네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 에티오피아 공주 안드로메다의 아들로 제우스의 손자라고 한다
2대 테이스페스 Cišpiš 655 ~ 640 아케메네스의 아들
3대 키루스 1세 Kūruš 640 ~ 580 테이스페스의 왕자
4대 캄비세스 1세 Kambūǰiya 580 ~ 559 키루스 1세의 왕자
5대 키루스 2세 Kūruš 559 ~ 530 페르시아 제국의 건국자, 키루스 대왕, 
메디아는 기원전 550년, 리디아는 기원전 547년, 바빌론은 기원전 539년에 정복했다. 실질적인 초대 군주는 바로 이 키루스 대왕이다.

메시야 : 유대인들을 탄압하던 신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해방시켜 준 공로로 붙혀준 타이틀이다.

아케메네스 제국의 창건자.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 키루스 대제라는 호칭으로 유명하다. 본 문서는 대체로 헤로도토스의 히스토리에(역사)에 기초하고 있으며, 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와는 많이 다른 내용이다. 다만 키로파에디아가 히스토리에보다 민속적, 지적 가치는 크더라도, 사료적 가치는 낮다는 것이 정설이다.
6대 캄비세스 2세 Kambūjiya 530 ~ 522 기원전 525년 이집트를 정복했다. 이 시점부터 샤한샤가 파라오를 겸직한다.
부왕 키루스 대제가 이집트 원정을 준비한 것을 이어받아 즉위 4년에 대규모 원정군을 소집, 이집트 파라오 프삼티크 3세를 격파하고 이집트를 정복했다. 이로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샤한샤가 파라오를 겸하게 되었고 페르시아는 오리엔트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를 정복한 뒤 튀지니 지역, 나일 강 서역, 에티오피아 지역으로 군대를 3갈래로 나눠 진군시키고 자신은 에티오피아 지역으로 출병하나 3갈래 모두 패퇴한다.[1]

그리고 원정을 떠나기 전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친동생 바르디야를 죽였는데 캄비세스가 원정을 떠난 사이 바르디야를 추종하는 자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키루스 2세의 사위이자 5촌 당조카 다리우스 1세에게 진압되지만 이 과정에서 캄비세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불분명하다.
7대 다리우스 1세 Dārayava(h)uš 522 ~ 486 파르티아 총독 히스타스페스와 로도구네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젊었을 적부터 큰 야심을 가진 사내였다. 키루스 2세의 뒤를 이었던 캄비세스 2세가 조기에 사망하자 쿠데타를 일으켜 다음 계승자였던 바르디야를 죽여버리고 제위에 올랐다. 다리우스와 그 지지자들은 진짜 바르디야는 이미 죽었으며, 가우타마라는 자가 바르디야를 참칭하고 있다고 명분을 내세웠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의하면 이때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 간에서 페르시아의 정치체제를 놓고 전제정, 귀족정, 공화정 중에서 논란이 일었는데 다리우스가 닥치고 전제정!이라고 하여 결국 전제정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또한 누가 왕이 될 것인지를 두고 논쟁하다가 밤에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나가서 해가 뜰 무렵에 처음 말이 운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때 다리우스는 교묘한 방법을 사용했다. 하인이 암컷 말의 냄새를 미리 채취해서 해가 뜰 때 다리우스의 말이 냄새를 맡고 흥분해 울게 만든 것. 결국 다리우스는 왕으로 추대되었다. 아케메네스 왕조와는 혈연 관계가 캄비세스 2세의 6촌으로 매우 멀었으므로 그는 키루스 2세의 딸이자 캄비세스 2세의 여동생이었던 아토사와 결혼해서 정통성을 얻었다.

하지만 등극 과정이 이런 탓에 엄청난 반란을 겪어야 했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이 수많은 반란을 모조리 제압하는 과정에서 황권을 강화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얻었으니 좋게 마무리 되었다고 봐야겠지만...
8대 크세르크세스 1세 Xšayaṛša 486 ~ 465  제8대 샤한샤(왕중왕). [아하쉬웨로쉬][2] [/Aẖašwērōš/]아하스에로스(공동번역성경)

아버지가 그 유명한 
다리우스 대제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키루스 2세의 딸 아토사였으므로 결과적으로 키루스 2세의 외손자이다. 거대한 판도를 자랑하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을 맡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지방의 반란 세력을 토벌하고, 아버지가 못 이룬 그리스 원정 성공을 위해 3년간 원정을 준비했다. 그 규모는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170만이라는 괴물 같은 숫자지만[4][5] 현대 추정에 의하면 대폭 감소하여 20~5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여하간 그리스보단 훨씬 많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시대적으로도, 특히 도시국가 위주인 그리스 국가들에겐 상상조차 어려운 규모였다.
9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Artaxšaça 465 ~ 424
10대 크세르크세스 2세 Xšayaṛša     424
11대 소그디아누스 - 424 ~ 423
12대 다리우스 2세 Dārayava(h)uš 423 ~ 404 10대, 11대, 다리우스 2세 모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이며, 10대, 11대 두 왕 모두 암살되었다는 5세기 역사가 크테시아스의 저술이 있어 9대 왕 사후 권력투쟁을 거쳐 즉위했다고 보여진다.

히르카니아의 총독이였던 다리우스 2세는 크세르크세스 2세가 암살당하자 소그디아노스를 황제로 옹립시켯으나 얼마 안가 그를 죽이고 자립했다고 한다. 즉위 전 413년 다리우스 2세는 히르카니아와 메디아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이후 아테네 시칠리아 원정을 감행했으나 실패했고 기원전 448년 아나톨리아 탈환을 시도했다.

이복여동생 파리사티스와 결혼하고 사이에 13명의 아이를 두었다. 기원전 404년 임종을 맞이할 때, 아내 파리사티스가 즉위 후 처음으로 낳은 자식 둘째 아들 키루스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첫째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다리우스 2세가 죽은 후인 기원전 404년, 이집트가 독립하면서 파라오 겸임도 끊어졌는데, 기원전 525년부터 기원전 404년의 이 시기가 이집트 27왕조이며 페르시아의 1차 정복시대이다.
13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Artaxšaça 404 ~ 358
14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Artaxšaça 358 ~ 338 기원전 343년 이집트를 재정복했다. 그래서 기원전 343년부터 기원전 332년은 페르시아의 2차 정복시대로도 불리며, 이집트 31왕조로도 불린다. 그리고 이집트 32왕조가 바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인 셈이니 기원전 343년 시점에서 이미 이집트의 자주성은 사라져버린 셈이 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헬레니즘 - 로마(+비잔티움) - 아랍 - 투르크)
15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4세 아르세스 Artaxšaça Aršaka 338 ~ 336
16대 다리우스 3세 Dārayava(h)uš 336~ 330 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군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폐위되었고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했다.

https://namu.wiki/w/%EB%8B%A4%EB%A6%AC%EC%9A%B0%EC%8A%A4%203%EC%84%B8

- 베소스
330 ~ 329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비정통 군주. 다리우스 3세의 사촌으로 박트리아의 샤트라프(총독)였다.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패배한 다리우스 3세는 다시 병력을 모으기 위해 박트리아로 도망쳤지만, 베소스와 신하들은 다리우스 3세를 배신하고 감금시켜버렸다.

얼마 뒤에 마케도니아군이 추격해왔고, 여기서 패배한 베소스는 사륜마차 안에서 다리우스 3세를 창으로 찌르고 도주했다. 다리우스 3세는 부상이 악화되어 마케도니아군에게 물을 얻어먹고 감사를 표한 뒤 사망했다.

이후 스스로를 아르타크세르크세스 5세로 칭왕하며 페르시아의 왕으로 선포했지만, 얼마안가 기원전 329년 그의 족장 몇몇한테 붙잡혀서 마케도니아군에게 넘겨졌고 결국 처형당했다고 한다.


1. 고레스[키루스 2세](주전 539-530; 30년)
2. 캄비세스 2세(주전 529-522; 7년)
3. 바르디야(6개월), 고레스의 동생이자 캄비세스2세의 동생으로, 실질적으로는 가우마타가 통치함.

4. 다리우스 1세[대왕] 히스타페스(주전 521-486; 35년)
5.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 1세(주전 485-465; 20년), 유명한 에스더 왕비의 부군.
6. 아닥사스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주전 464-424; 40년)

7. 다리우스 2세(주전 423-405; 18년)
8.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므네몬(주전 404-359; 45년)
9.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오쿠스(주전 358-338; 20년)

10. 아르세스(주전 337-336; 1년)
11.  다리우스 3세(주전 335-331;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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