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역사(신화) 이야기

네르바-안토니우스, 5현제( 五賢帝)시대

Narin Pusil 2021. 4. 7. 21:27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1. 《#로마제국멸망사》의 저자인 #에드워드_기본 (Gibbon)에 의해서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대'였다는 #PAX_ROMANA ....

2.  그러나 네르바-안토니우스 왕조의 5현제때의 로마의 평화 시기에는 황제들은 로마궁전에서 파티를 즐기고 별장에서 자연을 즐기며 살다 간것이 아니라, 로마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변방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어갔다.

3.  "그런고로 그들을 보호해 줄 친위대나 군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그들의 올바른 삶, 백성들에 대한 사랑, 원로원의 지지를 바탕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다." - 마키아벨리

4. 그야말로 황제와 그의 로마군단에 의해 로마 원로원 귀족과 시민들은 부와 환락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이며, 로마 제국 사상 최악의 황제 중 하나인 제17대 황제인 콤모두스(Commodus)이후 로마는 황제 난립기와 세베루스 왕조, 외세의 침입 등 소위 '위기의 3세기'라고 불리는 혼란기를 거치며 서서히 기울어간다.

5. #네르바_안토니누스 왕조
     五賢帝 | Five good emperors

 

  *전 황제의 양자(입양)로 들어와서 황제가 됐다.

  *네르바를 제외하면 자신의 통치철학을 실천할 충분한 기간을 가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제외하면 아들이 없다.
   (바로 전 왕조는,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의 플라비우스 왕조)

12대  네르바▪Marcus Cocceius Nerva, 96년 - 98년
13대  트라이아누스▪Marcus Ulpius Nerva Traianus, 98년 - 117년
14대  하드리아누스 ▪Publius Aelius Traianus Hadrianus, 117년 - 138년

            당대 로마인들과 후대 로마제국 사람들에게는 전쟁보다는 교양과 예술에 뛰어난 황제로 인식됐다. 하지만 오늘날 금석문, 기록 등을 통해 가능한 전쟁을 피하고 제국의 내정 개선에 힘을 기울인 실용적인 명군으로 평가되며, 트라야누스가 최대로 확장한 로마 제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반석 위에 올려놓은 황제였다.

           그는 그리스 문화에 열렬히 심취해 있었고, 양성애자였으며, 까탈스럽고 뛰어난 미적 감각으로도 유명했다. 사생활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트라야누스에 비해 하드리아누스는 한 인간으로서도 흥미로운 면모들을 많이 갖고 있었고, 이 때문에 그는 늘 후세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15대  안토니누스 피우스 ▪Titus Aurelius Fulvius Boionius Arrius Antoninus Pius, 138년 - 161년
16대  루키우스 베루스 ▪Lucius Verus, 161년 - 169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생이자 공동 황제
      
17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Antoninus, 161년 - 180년)

                뛰어난 역량과 업적뿐 아니라

                제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스스로를 소진시키듯 국정에 헌신한 것으로도 칭송받는 황제


                 》아들로 계승《
18대 콤모두스 ▪Marcus Aurelius Commodus Antoninus, 180년 - 193년)

 

    " 콤모두스의 치세는 한마디로 로마 제국의 재앙이었다.

      지금 우리의 역사는 당시의 로마인들과 마찬가지로,

      금의 왕국에서 철과 녹의 왕국으로 전락하고 있다. "

      - 디오 카시우스(Lucius Cassius Dio 155~235 그는 콤모두스의 치세에 20대~30대를 보낸 인물이다.

                     게다가 서기 180년부터 원로원 의원이었던 아버지의 자리를 계승해, 실제로 콤모두스를 접견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