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신학 이야기

■1세기 팔레스타인(유대) 언어적 상황

Narin Pusil 2023. 5. 19. 15:28

 

 

(이상일 박사 논문중에서)


※1.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도입형 avmh,n 어법에서 어떤 학자들은 예수에게서 그 기원을 찾는다.
※2. 다른 학자들은 그 어법이 칠십인 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헬라어를 사용하던 기독교 공동체에서 만들었으며 "예수에게서 기원한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그룹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람어 음역(avmh,n)전승들이 헬라어 번역(avlhqw/j, evn avlhq ei,a|, evpV avlhqei,aj) 전승들 보다도
이른 전승이며, 보다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전승이라고 전제한다.
] ▪︎이러한 주장들은 주후 일세기 유대 -팔레스타인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의 언어 상황을 단일 언어 모델과 단일 언어 방향성로 전제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적인 자료들은 로마 시대의 유대-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근동 아시아의 언어적 상황이중언어였음을 보여준다.
 

《이중언어적 환경을 고려해볼 때》 

   ▪︎예수는 자신의 주장이 신적인 권위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칠십인경의 h= mh,n을 통사론적-의미론적으로 차용하여 예수 자신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수의 아람어 음역인 avmh, n 전승은, 헬라어 번역 상당어들인 avlhqw/j, evn avlhqei,a|, evpV avlhqei,aj 전승으로 예수의 가르침 후에 거의 동시에 갈릴리에서 번역되었다. 게다가, 그 헬라어 번역 전승들은, 다시 아람어 음역 전승으로 갈릴리에서 재번역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람어 전승이 원래 예수의 아람어 전승인지 아니면 헬라어에서 재번역된 아람어 전승인지 우리는 구별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모든 아람어 음역 전승이 헬라어 번역 전승보다 초기 전승인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아람어 음역 전승을 보다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전승으로 간주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전승의 전달과 관련하여 주전후 1세기의 근동 아시아의 이중언어적인 환경을 고려할 때 셈어적 특징(Semitism)을 예수연구에서 예수 말씀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



ㅡ소감과 질문이 있습니다.
 

■소감-1

잘 알다시피 그때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이 글을 읽고 쓸줄 모르는 문맹자들의 시대인지라, 모든 언어는 들어서 배워가는 (헬라어 혹은 라틴어나,  아람어 혹은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구어체 중심시대 인고로,  위의 강의에서 훌륭하신 학자들중에는 이중 언어시대로 보지만 .. 필자가 유추해 보건데, 거의 대부분의 문맹자들은 시대적 정황상 모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또 그 당시 만국공통어인 K-헬라어 소통시대로 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이 아람어를 사용했다는, 그런 이중언어자라기 보단, 지나간 그 상황을 유추하여 애족애향심이 가득찬 아람어 습득 기록자에 의해 아람어로 쓰여진 것은 아니었겠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소크라테스 처럼 역시
문맹자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맞다면 .. 말입니다.)

■소감-2

바울을 기독교 창시자로 보는 학자들의 주장이 달갑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헬라문화접점에 있던 안디옥교회는 헬라기독교가 맞으나, 소위 야고보 예루살렘교회가 유대기독교라고 하는데 기독교가 아니라 굳이 말한다면 개혁유대교입니다.
 
갈릴리 동포들의 <일용할 양식 구하기>가 하루전부이다 시피했었던 갈릴리 참상을 보고 분노하셨던, 예수님 역시
민중을 착취하는 비리와 교만의 유대교를 개혁하고자 한것과 특히 예루살렘에 입성후에 분노가 폭팔하면서 질러대시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티투스 로마군단의 지성소를 포함한 헤롯성전을 파괴함과 동시에 소위 '성전권력의 유대교'는 사라집니다. 동시에 예루살렘 야고보의 '개혁유대교' 역시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명분 역시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세번째로, 강의하신 교수님의 엣세이를 보면,  

 

헹엘(M. Hengel)을 중심으로 한 새 종교사학파는 AD1세기 초기 기독론의 중요한 발전이 안디옥이 아니라 유대-팔레스타인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기독교 신학이 오리겐 필론등의 알렉산드리아파에게 빼앗기고 발전하지 못했는지 그게 의문입니다. AD1세기면, 프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에 의해 BC 3세기 중엽에 헬라어로 번역된 셉투아진트가 만들어 졌으므로, 대략 300년이 지난 후인지라, 당연히 만국 공용어인 (코이네) K-헬라어(+라틴어)시대가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문맹의 시대>에 .... 극소수의 헬라어를 읽고 쓸줄아는 지식인층 거기에 특별히 히브리어 아람어를 해독할 수 있는 특수 지식층에서나 가능한 그런 작업이었을 터인데 ... 굳이 사멸해가는 언어로 발전시키려 했던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후기독교의 발전이 팔레스타인에서 이루어졌다고 써있는데, (히브리경전, 타나크Tanakh : תנ"ך의 발전...?)그 견해가 맞다 할지라도 1세기 그 작업 역시 사멸하고, 대략 100여년 후 부터 오리겐, 필론등의 알렉산드리아 교부철학자들에 의해 신학적 논리가 시작되었고, 유대인들이 밀집해서 부를 축적하며 살던 그곳 알렉산드리아 지역이 신학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교회사적인 사건인데 말입니다.
 

■네번째, *예수가 자기주장을 신적 권위로 내세웠다"는 것을 사실로 인식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자케오와의 만남에서 하룻밤 그의 집에서 유숙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저녁식탁에서 그들은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요? 내가 신적 권위를 가지는 하느님 대리자, 아니 하나님이라고 자케오에게 가스라이팅을 했을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21세기 오늘날도 그러하지만, 두사람 각자의 만행에 대한 이야기며, 갈릴리의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현실 정치적 이야기를 나누지는 아니했을까요?  예수의 신적권위를 강조하는 까닭은, 민중과 분리된, 야훼 혹은 예수 최측근 하이어라키를 우선시하는, 종교권력들, 즉, 소수특권층의 이데올로기적인 전유물이자 전통적 속성에 끄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아람어•히브리어 = 셈어족(=가나안어)



■해석학

 
※1. (저자의 의도를)기술적 방법론의 객관주의재구성한 해석학  (슐라이 에르마허, 딜타이..)
※2. 진리물음의 실존주의 철학적 해석학 (하이데커, 가다머)  언어를 통해, 존재론적  탐구의 가능조건을 마무리 짓는 작업


    불트만
구체적인 삶의 질문들과 함께 번개가 귀신의 장난 혹은 하느님의 진노라고 하듯, 3층천의 원시 과학적(?)인 신화적 세계관을 일원론적 과학적 세계관으로 종교적 진리를 구별해야 한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1884-1976)은 독일 고백교회 구성원이었으며, 국가사회주의를 비판한 루터파 교회 신자이다. 마르부르크대학교의 신약신학 교수로 재직했다.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의 비신화화를 시도한 신학자이다. 양식비평 이론을 성경해석에 적용하여 역사적 예수 연구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이정표를 제시했다.


 
 

■불트만 시각에 기대어 .... (JK)

▪︎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인식한, 신화적 세계관에 원시과학적 배경지식을 지녔던 고대인의 신앙적 고백들을
언어로 남긴, 내용을 텍스트로 삼아 시대적 그 문화에 맞게 해석한다는 것..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자신의 삶의 정황속에서 인간에 의해 존재화 된 신이라는 부존재 앞에 고독하게 서 봐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