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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푸실 이야기/철학 이야기

이황, 이이 그리고 양명학

Narin Pusil 2022. 5. 27. 21:40

 

 

 

 

 

 

 

 

 

 

 

 

 

 



조선에서의 양명학 전래는 왕수인(王守仁)의 생전인 1522년이다.

 

그러므로 조선 양명학은 중국에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체계적인 양명학 수용은 양명학 전래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뒤,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의 출현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정제두는 그의 만년, 강화도에 은거했기 때문에 정제두에서 시작하는 학통을 강화학파(江華學派)라 하고, 정제두의 학설은 그의 호를 따라 하곡학(霞谷學)이라고 칭한다.

 

강화학파는 혈통과 학통이 결합된 형태로 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연면하게 존속하였다. 조선의 양명학 수용 문제를 고찰함에 있어 강화학파는 피해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강화학파의 양명학이나 하곡학 수용의 실태는 여전히 연구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서장, 제1부(1장~8장), 제2부(9장~13장), 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장은 조선 양명학의 여러 특징을 포괄적으로 개관했다.

 

제1부는 정제두 및 초기 강화학파 중에서 중요한 인물, 정제두의 후예를 들어 각 인물의 기본적인 사적을 정리함과 동시에, 그의 양명학·하곡학의 수용 혹은 비수용의 실태를 검증했다.

제2부는 초기 강화학파를 둘러싼 시대상황의 제 양상을 문화·사회·사상·정치 등의 각 방면에 걸쳐 검증했다.

 

종장은 초기 강화학파의 양명학 수용의 특질과도 관계되는 주왕양가(朱王兩可)의 문제를

    중국 근세 사상사의 동향을 시야에 넣어가면서 고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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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넷

(3) 조선양명학의 전개  과연 17세기 조선성리학이 집대성되는 과정 속에서 조선양명학은 어떻게 진전되어 갔을까. 17세기에 들어서면 율곡계통을 잇는 김장생·송시열·송준길·이유태·유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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