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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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신학 이야기

비신화화와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

Narin Pusil 2022. 4. 9. 21:03

루돌프 칼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1884 ~ 1976)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이자 마르부르크 대학의 신약학 교수이다.

그는 20세기 초 성서 연구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저명한 비평가인 불트만은

신약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을 주장했습니다.

신약에 대한 그의 해석학적 접근은 그를 변증법 신학의 지지자로 이끌었습니다.

 

불트만은 초기 기독교 문헌이 특정 위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약성서의 역사적 분석이 무익하고 불필요하다는 믿음으로 유명합니다.

불트만은 중요한 것은 예수의 "무엇"이 아니라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즉, 예수가 존재했고, 설교했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해 죽으셨을 뿐이지,

그의 일생 동안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ㅡ마르틴 하이데거(독일어: Martin Heidegger, 1889년 9월 26일 ~ 1976년 5월 26일)는 메스키르히에서 출생한 독일의 철학자이다

 

Bultmann은 신약의 신화적 요소를 실존적으로 해석하는 접근 방식인 비신화화에 의존했습니다.

(불트만은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와 친했으며 스승처럼 존경했다. 

따라서 불트만의 신학이 하이데거의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특별한 사실이 아니라

신약의 케리그마(kerygma), 즉 선포에 대한 믿음만이 기독교 신앙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불트만의 신학

 

그는 기독교 신앙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할 수 있는 

교회의 케리그마(“선포”)에 대한 신앙이며(부활에 대한 불트만의 이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루돌프 불트만은 신약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Bultmann은 신약의 신화적 요소를 실존적으로 해석하는 접근 방식인 비신화화에 의존했습니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특별한 사실이 아니라 

신약의 케리그마(kerygma), 즉 선포에 대한 믿음만이 기독교 신앙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the famous textbook by Rudolf Bultmann 

 = History and Eschatology: The Presence of Eternity.

 

What is eschatology history?

종교의 역사에서 종말론이라는 용어는 

영혼의 불멸, 중생, 부활, 영혼의 이동, 시간의 종말과 같은 

마지막 것들에 대한 개념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개념은 또한 세속적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삶의 전환점과 죽음에 대한 이해에서 말입니다.

 

종말론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특히 카톨릭 신학에서 종말론은 전통적으로 

죽음, 심판, 천국, 지옥이라는 이른바 마지막 4가지와 관련된 것으로 정의되었습니다. 

(이 네 가지에 연옥과 몸의 부활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Bultmann의 기여...성경을 비신화화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약을 "비신화화(demythologize)"하기 위한 그의 프로그램, 즉 신화적 용어로 표현된 신약의 본질적 메시지를 실존주의 철학의 개념에 따라 해석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신화화의 정의타동사. 1: 신화적 형태의 배후에 있는 의미를 밝히기 위해 복음을 비신화화하는 것.  2 : 신화적 요소나 연상을 없애다.

 

 

 

비신화화와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 (Rudolf Karl Bultmann, 1884 ~ 1976) 서거 40주기

비신화화와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 (Rudolf Karl Bultmann, 1884 ~ 1976) 서거 […]

chedulife.com.au

 

 

루돌프 불트만 사상에서의 케리그마와 역사(게르트 뤼데만)

본 글은 2014년 가을, 이라는 주제로 모인 Westar Seminar의 포럼에 기고한 게르트 뤼데만의 글, "kêrygma and history in thought Rudolf Bultmann"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각주는 출처 표기만 하여 제자리에..

science-infuse.tistory.com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또는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간의 구별에 대해 혼동이 보이는 듯싶어, 기본 정의를 몇몇 인용해 놓겠습니다.(강경수)


"이렇게 예수 전승이 초대교회 안에서 발전 각색되었기에, 학자들은 복음서 안에 나오는 예수를 역사적 예수로 보지 않는다.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와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 또는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Kerygmatic Christ)를 구분한다.

역사적 예수는 짧은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먼지 나는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던 역사적 인간을 가리킨다. 신앙의 그리스도(또는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 전통과 경험의 주체로서 계속 신앙받고 있는 신적 존재를 가리킨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역사적 예수는 부활 체험 이전의 예수, 즉 지상적인 예수를 가리키고, 신앙의 그리스도는 부활 체험 이후의 예수, 즉 초절적 존재로서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송봉모 / 예수 세미나(The Jesus Seminar)의 역사적 예수 탐구와 이에 대한 비판 :
http://theologia.kr/zeroboard/zboard.php?id=intro&category=10&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826

 

 

  이게 정확한 구별입니다.
  마커스 보그의 표현으로 바꿔 보겠습니다 :


"예수라는 이름은 다음 두 가지를 가리킨다. 예수는 한편으로 과거의 인물(human figure of the past), 즉 1세기 갈릴리의 유대인이었던 나자렛 예수를 가리킨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라는 이름이 기독교 신학과 기도, 예배에서는 현재의 신적인 존재(divine figure of the present), 즉 부활하여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며 하느님과 한 분이신 분을 가리킨다...
전자는 흔히 '나자렛 예수' 혹은 '역사의 예수' 혹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라고 불려진다. 후자는 흔히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 혹은 '성서적 그리스도' 혹은 '정경(正經)의 예수'라고 불려진다.
내가 선호하는 용어는 '부활절 이전의 예수'(pre-Easter Jesus)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post-Easter Jesus)이다."

-- 마커스 보그 & N. 톰 라이트 공저, <예수의 의미>, 29쪽

 

 

그럼 위키백과의 "역사적 예수" 항목을 한번 볼까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역사적 방법론으로 바라본 나사렛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론(기독론)>이다... '교리적 그리스도'(케리그마(Kerygma)의 그리스도)가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등의 신경(信經, Creed) 또는 복음서 저자들의 신학으로 해석된 기독교 교리적 그리스도인 반면에, 역사적 예수는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던 인물로서 예수의 삶을 주목하여 바라본 예수를 말한다.

다시 말해,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역사적 인물로 실재했던 '예수'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려고 시도하는 연구이다."

-- 위키백과 / "역사적 예수" :
<http://ko.wikipedia.org/wiki/%EC%97%AD%EC%82%AC%EC%A0%81_%EC%98%88%EC%88%98>

 

  기본 취지에는 대체로 동의할 만합니다.
  다만 '역사적 예수' 개념은, 애초부터 그리스도론과 관계없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신학적 해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의 예수는, 그런 사람이 실존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리스도> 개념과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예수 연구가들은 이 땅에서 민중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했던 실재적 예수의 역사적 행태를 일컬어 일명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것은 적어도 기존의 주류 교회가 고백하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Jesus as Christ)가 나올 수 있었던 '본래의 <원 사건>(original event)으로서의 예수'로 봄으로써 구분한다.
이때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다른 표현으로는 <케리그마>(Kerygma)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자 일찍이 설교에서부터 이미 확립되고 전승되었던 예수상이며, 나중에 니케아 신조 등 교리적ㆍ신화적 예수로 발전되어 기독교 안에 굳건한 교회 전통으로서 자리하게 된다."

-- 정강길, ⑤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1)

 

  필자의 견해가 다소 들어간 내용입니다.
  특히, "이 땅에서 민중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했던 실재적 예수"는 필자의 <해석>일 뿐입니다. (다른 모델들도 상당한 논거들에 근거한 채, 수십 가지나 제시되어 있음.)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Kerygmatic Christ)' 사이에는 명백한 불연속성이 존재하며, 케리그마와 역사적 예수 사이의 연관성은 단지 케리그마 자체가 역사적 예수를 전제로 하여 성립되었다는 점으로 족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결단과 신념의 문제이며 역사적 확실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기독교 신앙의 토대를 역사적 예수의 실제 메시지에 두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사건만큼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상을 도출한 근거로서 하나의 상수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였고, 종말론적 사건인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인간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음을 역설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행위인 십자가 사건은 과거의 사실에 대한 역사적 탐구와 논증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케리그마를 통하여 현재화된다는 것이 불트만의 주장이었죠."

-- "heilmann님께 다시 질문 드립니다"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docId=48631439

 

  '역사적 예수'를 깊이 탐구하려는 사람은, 불트만의 회의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