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유혹》(그리스어: Ο τελευταίος πειρασμός, 영어: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은
1953년에 처음 출판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이다. 영문판은 1960년에 출간되었다.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보는 환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얻고 살아가는 모습 등을 보면서도 인류 전체의 대속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이스카리옷 유다의 행동을 과격한 독립주의자의 것으로 그리는 등, 독특한 해석을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을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면에서 조감하고 있다.이 소설 자체의 내용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더욱 강렬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 예수의 신성보다는 그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등 해석의 차이 때문에 보수적인 신학계에서는 이 책의 내용에 거부감을 보였다. 특히 동방정교회는 그가 죽는 날까지, 심지어 그 이후에도 비난하였는데, 그에 대해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반응하였다.
"신부님들은 저에게 저주를 내리셨지만, 저는 여러분들에게 축복을 기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양심이 저만큼 깨끗하고, 또한 저만큼 도덕적이고 종교적이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기술하고 있다. 이 소설은 주관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상당한 논의의 주제가 되어왔으며, 주기적으로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한다. 예수를 사람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국어판의 경우 안정효이 번역하였다.
최후의 유혹 1, 2
니코스 카잔차키스 / 열린책들 / 2018.6.27
바티칸이 금서로 지정하고, 마틴 스코시지가 영화로 만들어 또 한 번 논쟁이 되었던 소설.
인간을 구원하고자 했던 인간 ‘예수’를 그린 이 소설은 자유와 구원, 두려움과 희망의 삶을 산 인간
<예수>의 삶과 죽음을 담은 33장의 기록이다.
카잔차키스는 예수를 투쟁에 몸 바친 전형적 자유인으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예수까지도 초인의 한 본보기로 묘사함으로서 이단의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모두, 자유를 위한 투쟁은 두려움과 희망을 모두 배제하고 싸워야 한다는
니체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도를 완전히 교회로부터 끌어내고,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여 새로운 구세주를 만들어 내고,
그럼으로써 도덕적, 정신적 공백 상태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하려 했다.
예수가 겪는 갈등이 카잔차키스 자신이 겪었던 갈등이자,
우리 시대의 혼돈에 직면한 모든 민감한 사람들이 겪는 갈등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카잔차키스는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지닌
그리스도 전설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20세기의 관점에서 이해가 가능한 예수를 그려내었다.
‘열린책들’은 카잔차키스 사망 50주기를 맞아서 2008년 3월 30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전 30권을 완간했다.
이 전집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리스인 조르바’ 외에도 카잔차키스 문학의 사상적 토대가 된
초기작부터 후기의 걸작들, 그 외 서사시, 희곡, 여행기까지 모두 포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저자소개 :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자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1951년, 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다른 작품들로는 ‘오뒷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성 프란치스코’ ‘영혼의 자서전’ ‘동족 상잔’ 등이 있다.
– 역자 : 안정효(AHN, JUNG-HYO, 安正孝)
서울에서 출생해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 헤럴드] 문화부 기자, [코리아 타임즈] 문화체육부장을 역임했다. 『백 년 동안의 고독』 등 130여 권의 작품을 번역했고, 제1회 한국번역문학상 수상했다.
장편소설 『전쟁과 도시』(‘하얀 전쟁’으로 개제)로 문단에 등단하여 『하얀 전쟁』을 영문판 『White Badge』로
뉴욕의 SOHO 출판사에서 펴내, [뉴욕타임즈], [크리스천사이언스 모니터] 등에서 격찬을 받았다.
그 외에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미늘』, 『번역의 공격과 수비』 등 많은 저술이 있다.
이후 계속해서 『은마는 오지 않는다』, 『착각』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이 작품들은 영어, 독일어, 일어, 덴마크어 등으로 번역되며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2년 출간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영화에 대한 안정효의 특별한 안목과 지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하얀 전쟁』과 더불어 영화로 제작되어 작품의 가치와 작가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인정받기도 했다.
1992년에는 중편 「악부전」으로 제3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다.
번역은 안정효를 설명하는 또 다른 중요한 키워드다. 1975년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시작으로 전문 번역가의 길로 걷기 시작했고, 수많은 번역 경험을 바탕으로 터득한 영어 관련 지식을 담은 '안정효의 영어 길들이기 시리즈'는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활발한 번역 활동과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문학 작품의 번역을 강의하기도 했다. 우리말로 옮긴 작품으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 『오디세이아』, 『영혼의 자서전』, 『전쟁과 신부』,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버트런드 러셀의 『권력』,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펄 벅의 『대지』, 밀란 쿤데라의 『생은 다른 곳에』,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등이 있으며, 현재까지 38년 동안 150여 권의 책을 번역해 오고 있다. 1982년 제1회 한국번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안정효는 주말에 낚시를 즐기는 것 외에는 현재도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며 집필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 책 『안정효의 오역 사전』은 저자가 소설가로서 고집하는 문장관과 번역가로서 쌓아 온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다.
○ 출판사 서평
니코스 카잔차키스 사망 50주기를 기리는 최초의 한국어판 전집 열린책들은 2008년 3월 30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전 30권을 완간했다. 이번에 발간된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은 원고지 매수로 약 50,000매에 달하는 방대한 양으로 무엇보다 그의 전 문학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1974년 박석기와 이인웅에 의해 『희랍인 조르바』가 한국 최초로 번역된 이래, 몇몇 작품 정도는 안정효, 이윤기 등의 번역으로 읽히기도 했으나 그나마 절판되어 더 이상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카잔차키스 사망 50주기를 맞아 출간되는 열린책들의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리스인 조르바』 외에도 데뷔작 「뱀과 백합」, 카잔차키스 문학의 사상적 토대가 된 「신을 구하는 자」 등 초기 작품을 비롯하여 완숙한 작가적 경력을 보여 주는 『최후의 유혹』 등 후기의 걸작,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현대시라고 일컬어지는 서사시 『오디세이아』, 희곡,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학 전반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전집이라 할 수 있다.
왜 니코스 카잔차키스인가?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카뮈는 카잔차키스야말로 자신보다 백번은 더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며
그의 죽음으로 정말 위대한 예술가를 잃었다고 애통해 했다.
슈바이처는 자신에게 깊은 감동을 준 이는 카잔차키스밖에 없었다고 했다.
콜린 윌슨은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라고 했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존 스타인벡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로 카잔차키스를 꼽았다.
카잔차키스를 단숨에 읽었다는 마르탱 뒤 가르는
인간적이고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무엇 때문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소비에트 혁명과 공산주의 이념의 확산, 스페인 내전 등
굴곡 많은 20세기를 살아 낸 작가 카잔차키스. 그는 한 곳으로 편향된 시각이 아닌,
신과 인간, 정신과 육체, 삶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요소들을 절충하고 융합하는
영적 자유의 추구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인간상을 구현했다.
자유와 영적 구원을 위해 투쟁의 삶을 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학과 삶
카잔차키스의 작품 세계와 예술 세계의 경지는 놀랍기도 하지만,
그가 살았던 삶의 다양성과 이를 통해 도달한 정신적 경지는 더욱 놀랍다.
그는 니체와 베르그송과 러시아 문학에 관한 논문을 쓰고,
불교에 심취하고, 호메로스와 단테와 괴테를 현대 그리스어로 번역할 정도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과 평범한 사람들도 알고 사랑해서,
그가 항상 가장 깊은 애정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스스로 선택한 방랑 생활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세계의 대부분을 여행했다.
그러나 그의 참된 정신적인 고향은 언제나 그가 태어난 크레타였으며,
그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이야기들, 농부들, 어부들, 술집 주인들, 시골 흥행사들을
카잔차키스가 처음 알게 된 곳도 크레타였다.
낙소스 섬으로 피난 간 어린 카잔차키스는 프란체스코 수도자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처음 서양 사상을 접했다.
행동에 대한 욕구와 고행자적인 은둔 의식 사이에서 항상 갈등하던 카잔차키스가
지칠 줄 모르고 그의 참된 아버지, 참된 구세주, 그리고 그와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를 추구하게 된 데는
이런 유년기의 경험들이 큰 역할을 했다.
옛 수도원들이 많기도 하고, 여자들뿐 아니라 암소나 암탉 따위 모든 암컷을 배척하기로 이름난
아토스 산에서 청년 카잔차키스는 여섯 달 동안 영
혼과 육체의 수련을 통해 구세주와 직접 접촉하려 노력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잠시 니체와의 유대를 새롭게 하려 하다가 불교에 빠졌으며, 다음에는 불교에서 레닌으로,
그러고는 레닌에서 오디세우스로 옮겨 갔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에게로 귀착하게 된다.
과거의 모든 과정이 그리스도 안에 풍요롭게 열매 맺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운 격렬한 혁명의 유혹에 직면했고,
행동하는 삶에 대한 욕망에 이끌렸던 그는 행동과 명상 사이의 갈등을
가장 큰 주제로 다룬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불후의 작품을 남긴다.
이리하여 50이라는 나이에 그는 조이스처럼 그의 민족이 지닌, 창조하지 않은 의식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의 사제가 되려는, 스스로 유일한 의무라고 간주했던 사명에다 모든 정력을 바쳤다.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동양의 단순성과 감정의 짙은 표현력을 그대로 간직하는 한편,
세련된 서양의 사상을 맞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대서사시 『오디세이아』가 탄생한다.
얼마 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졌고, 또 그다음에 발발한 그리스 내전을 겪으며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 때문에 망명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프랑스에 정착한 뒤로는 모든 정력을 창작에 바쳤다.
이때 완성한 작품이『수난』, 『최후의 유혹』, 『성자 프란체스코』이다.
7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유럽 전역에 이름이 알려졌고, 그의 소설들은 3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1952년에는 한 표 차이로 노벨 문학상을 놓쳤다. 오디세우스와 마찬가지로 카잔차키스는
세상을 경험하려는, 불굴의 열정을 지닌 이 시대의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바울_예수를_만나_논쟁하다.
https://m.cafe.daum.net/bgtopia/MeRA/35?svc=cafe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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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 E. M. 포스터, 프로이트 전집에 이은 또 하나의 프로젝트!
1986년 러시아 문학을 소개하기 시작한 이래 세계 문학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해 온 문학 출판의 대표 브랜드 열린책들이 또 한 번 한국 독자들에게 마련한 선물 같은 문학 전집,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이 전집은 2000년 기획된 이래 9년여에 걸친 번역자와 편집자의 땀이 맺혀 있는 프로젝트다.
우선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하느냐 영어판을 중역하느냐를 결정해야 했다. 국내 그리스어 번역가의 층이 두텁지 않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 영어판 작품의 상당수가 그 정확성과 신뢰도를 인정받은 카잔차키스의 전문가들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점에 용기를 얻어 영어 판본의 중역을 선택할 수 있었다(영역자 가운데 『오디세이아』와 「신을 구하는 자」를 번역한 키먼 프라이어는 아예 6개월간 카잔차키스와 함께 작업했으며,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여럿 번역한 A. 덴 둘라르트와 테오도라 바실스, 피터 빈 역시 카잔차키스의 전문가로 명망이 높은 번역가들이다. 책의 말미에는 이들의 해설을 실어 카잔차키스의 심원한 문학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했다).
다음으로는 영역되어 있는 작품 목록을 작성하여 여기저기에 낱권으로 흩어져 있는 책들을 모았다. 이 전집 목록은 영역되지 않은 짧은 희곡 몇 편을 제외한 카잔차키스 문학 전체를 망라하는 것이며, 추가로 카잔차키스의 아내 엘레니 카잔차키가 남편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엮은 『카잔차키스의 편지』를 더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작가로서의 카잔차키스와 인간으로서의 카잔차키스의 모습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번역자 선정에 있어서도 원작의 가치를 최대한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좋은 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었음에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외하고는 모두 절판되어 빛을 보지 못했던 이윤기, 안정효 두 번역가의 원고 6종은 다시 한 번 검토를 거친 끝에 새로이 거듭났고, 나머지 15종 역시 국내 최정상의 번역가들의 손에서 카잔차키스의 숨결과 한국어의 맛을 동시에 살려낸 작품들로 태어났다. 이후 이 원고들은 5년에 걸친 꼼꼼한 원서 대조와 교정교열, 번역가와 편집자의 논의를 거쳐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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