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으로 남긴, 플라톤과 바울(예수 제자들), 그리고,
■ 가르치기만 했던, 소크라테스(싯탈타, 조르바)와 예수
기독교 신학자들이 말하는 복음서란, 예수를 필요로 했던, 추종자들과
그보다 후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회상(回想)된 예수(Jesus in reminiscence)" 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글도 몰랐다던 소크라테스를, 그의 제자 크세노폰이나,
소크라테스 학파들 (견유학파, 키레네 학파, 메가라 학파, 엘리스 학파)의 시각이 아닌,
소크라테스와 가장 가깝게 지냈고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들을 책으로 소개했던
플라톤이라는 제자의 시각의 소크라테스로 지금까지 각인되어 있고....
또 보리수 나무 아래서 무상(無常)의 깨달음을 얻은 싯탈타의 가르침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반야심경등의 불경(佛經, Buddhist texts)으로
고승들의 어려운 글귀로 변화 되었고,
그것은 그리스인 조르바와 함께했던 오르탕스, 소멜리나 등의 과부들이나
조르바와 함께 하루를 즐기던 사람들의 시각이 아닌,
화자(話者)인 카잔차키스가 꿈꾸어 왔던 자유로운 생의 삶의 대상을 조르바로 각색한 것과 같지 않을까 한다.
그처럼 소크라테스, 싯타르타, 조르바 처럼, 예수도 마찬가지 아닐까.....
특히, 예수의 제자라는 12명을 비롯하여 바울과 같은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가르침 이라며 활동하던 "예수제자백가 시대"에 그들이 본 예수 .....
그중에 바울이 필요로 하던 예수, 그의 주장을 따른다는 지금까지의 신학자들의 예수를,
21세기 오늘날 이 시간에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 ARETE : Virtus를 포함한 기능 혹은 목적을 이루는 최고(탁월)의 본성,
《플라톤》
▪정욕(sophrosyne) <== 절제
▪기개(andreia) <== 용기
▪이성(sophia) <== 지혜
°°°° Knowledge is not Perception? °°°°
지식은 지각이 아니다.
• 아는것 만큼 보이는것 아닌가?
- 언어의 발전만큼 지각의 범위도 확대된다.
- 시대마다 그 시대의 패러다임의 시대적 한계에 제약된다.
• 동굴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 태평양 군도에서 항복하지 않고 살아온 일본병사... 그들은?
• 지식도 없이 깊은 지각을 touch 할 수 있을까?
■카잔차키스(kazanchakis)가 아니었으면... 조르바(zorba)는 없다.
뼛속까지 기독교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유럽 대륙....
당시 동방기독교 그리이스 정교의 교리가 세상을 두렵게 했고,
그런 교회 제약속에서 살아가던 시대에
종교로부터의 해방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는 시대적 반항아처럼 충동적인 삶의 꿈을 꾸던 차에,
행동이 비교적 자유롭고, 사람과 화평하고, 금욕을 벽안시 하며,
삶의 여유가 있어 보이는 <조르바>를 만난다.
'카잔차키스'가 평소에 꿈꾸었던 인간의 삶의 이상향을 생각해 낼 수 있었던
일종의 유토피아가 바로 <조르바>였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기독교의 창시자, <식객 바울>을 대접했던 식주인들에게서
바울이 느꼈던 여유롭고 풍성한 모습처럼 말이다.
조르바 역시 인간이다.
인간은 어떠한 자라도 두려움과 충동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다만 타고난 품성에 수련을 통해서 순간 순간을 제어해 나가는 것 뿐....
생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모습이다.
동식물과 다른 것은 사람은 사회규범과 수련을 통해 인위적으로 자기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품성을 지닌 조르바를 보고,
'카잔차키스' 자신이 꿈꾸었던 인간의 모습을 조르바에게 투영했을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조르바는 보스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과 접촉했고,
특히 늙은 과부와 진하게 지냈고, 젊은 과부를 보듬어 주라고 보스에게까지 조언한다...
그런 여러 다른이들이 보는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와 또 다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2. 플라톤(Plato)이 아니었으면 ...소크라테스( Socrates)는 없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이 플라톤에서 나온 것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수십편의 "Dialogue대화"를 썼다.
하지만 그 기록이 소크라테스의 직접적인 언행이라고 믿는 학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꾸었던 유토피아를 위한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았다.
앞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마치 인문대학 교수와 같이
내용적으로 논리 정연하고, 체계적이고 철학적이며 진지하기까지 하다.
장터 아고라 어느곳에서 아무 소피스트나 붙잡고
토론하기를 즐겨했던 소크라테스 인데 말이다.
말하자면, 플라톤에 의해 그런 소크라테스는 치장되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글을 몰랐던 것은 아닐까....)
최고의 교육과정을 밟았던 내노라하는 귀족 가문의 플라톤,
크세노폰, 파이돈 등을 소크라테스가 가르쳤다기 보다는,
위의 <대화>라는 책에서 처럼 그들과 토론하는 가운데
그래서 그들에게 공감이 가는 하고픈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보잘것 없는 집안 출신으로 베테랑이 되고자
펠로폰네소스 전쟁터를 3번을 누비고 와서
40대 중반에 깨달음의 길에 들어섰던 소크라테스 ....
그동안 그들에게 개인과 공동체의 벽을 시원하게 뚫어주어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줬던
만년의 소크라테스를 그들이 높이 평가 해 주었던것은 아닐까...
(특히, 상류층 철학자중에서 <크세노폰이 본 소크라테스>는
미국의 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되어지고 있는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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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Y
■3. Greek myth & Homer
호머(Homer)가 아니었으면....그리이스 신들은 .... 사라질뻔했다.
훗날,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영을 받고,
헤시오도스가 '신들의 계보' <Theogony 신통기,神統記>를 쓰지만, 호머를 참조했다.
크레타 문명을 지나-미케네 문명, 그리고 도리아인의 지배로 인한
400년간의 소위 그리이스 암흑기를 통해 전승되어 오던,
대부분이 문맹자였던 시대에 그들 앞에서 퍼포먼스(Performance)를 위해 쓰여졌던
마치 <조선의 판소리>의 운율과 맥락을 같이하는, 그리스 지역과 로마의 건국 신화인,
《서사시》, <호머의 일리아스, 오딧세이>....
호머가 아니었으면, 장대하고 흥미로운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접할수 있었을까...
거의 모든이들이 문맹자였던 시대였던, 그리이스-로마의 문학(특히, 비극)들은
그들에게 보여줄 퍼포먼스를 위한 드라마(Drama)가 시대의 트랜드가 되었섰고,
2-3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방송드라마, 영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이스 여행중, 멧테오라에서 델피 가는 도중에 Drama라는 마을이 있었고,
빌립보에서 불가리아 가는 도중에 Drama라는 도시가 엄연히 있었다.
아마도 이곳 저곳에 드라마가 쓰여졌던 DRAMA라는 장소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 바울(Paul) 아니었으면 ... 지금의 예수(Jesus)는 없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처럼,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예수는 그의 형제 야고보도 아니고, 12사도라는 예수의 제자들
특히 베드로의 예수가 아니고, 바로 바울의 예수이다.
예수에 대한 기록물중 바울의 편지가 가장 먼저 쓰여졌고
십자가와 부활의 <신적-예수 divine God jesus>를 변증한 글이다.
예수와 함께 밥먹기도 또 질문과 대답을 나누었던 사람들을 제치고 ...
예수와 이야기 단 한번도 못해본 바울,
그는 그가 만든 <이방인을 위한 종교>를 확산시키는 가운데,
태어나고 자라면서민중들과의 교류가 있었던 예수가 아닌,
십자가에서 죽어 부활했고(그런 예수를 만났다는 바울),
그리고 재림의 헬라적 사상이 물들어 있는 그의 신적-예수에 대한 기록이 나오기 전까지는
예수가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다.
그전에 유대교의 개혁운동을 하던 야고보나 예수의 개혁유대교는
예루살렘에 있었던 헤롯성전이 티투스의 로마군단에 의해 파괴될때 함께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방인을 위한 종교를 만들었던 바울의 크리스트교는 결국
로마제국의 종교로 되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아이러니하고 스마트한 바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교회사다.
조직신학의 근간이된 바울의 신적예수에 대한 <바울의 변증> 이 나왔기에,
훗날에(1세기 전후) 그동안의 소위 초대교회에서 선포된 케리그마들과 목격자들
그리고 그에 대한 전승들을 규합한,
Son of Man(= 당시 상대방에게 말할때, '나 이사람' .. 보통사람입니다..라는 화법과 같은 뜻)
즉, <인간예수>에 대한 마가를 필두로한 성서신학적 변증서 (복음서)들이 편집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시대적 트랜드였던 비극과 같은 서사시적 그리고 헬라사상적 수사기법이 적용되어,
거의 대부분이 문맹자인 서구사회에 Drama로 만들어져
그 허다한 무리(오클로스 : οχλος a multitude 민중, 대중, 평민, 가난한 사람들=ochlos)들에게
아고라(Ἀγορά / Agora : 집결지, 시장, 운동시합장 ....)등지에서
퍼포먼스(Performance)로 보여주기 시작했던것으로 보인다.
기록된 사실의 팩트를 떠나 당시에는 (Drama로 그것의 Performance로 이어져 내려오는)
그 전승들을 믿고 싶었고, 해서 그렇게 기록했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도 그러하다.
당시 연극과 같은 것으로 내려오는, 눈으로 목격하지 못한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상고시대 상(商)나라, 서주시대 주(周)나라 - 동주시대 서주(西周) | 동주(東周),
춘추오패(春秋五覇), 전국칠웅(戰國七雄), 그리고 진(秦)나라, 초한쟁패기등의
옛 전승들을 팩트화 시켜 기록에 올렸듯이 말이다.
■《Socrates drinks hemlock, Antonio Zucci》 (1726-1796)
■ 비록 시민과 노예라는 사회였지만 소크라테스처럼 민중의 시각과 함께하는 철학,
하지만 스파르타적, 귀족적 사고를 지닌 플라톤은 민중의 시각을 배제했다.
(시민민주주의 미국과 귀족 민주주의 영국, 민주주의의 출발이 다른것처럼 ....)
■ <플라톤과 바울과 카잔차키스>가 ...
<소크라테스-예수-조르바>에 저자 자신들을 투영한 것과 같다고 본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 보자.......
<플라톤-소크라테스>, <바울-예수>, <카잔차키스-조르바> .... 등등 ... 같은 맥락은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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