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The Crusades, Expeditio Sacra성전?)
1095년부터 1291년까지 간헐적으로 일어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레반트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일어난 2백년간의 전쟁이다.
“마라 (이슬람 도시)에서 우리들은
이교도 (이슬람교도) 어른들을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았다.
또 그들의 아이들을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웠다."
이것은 십자군이라는 미명하에 이슬람의 땅을 칩입했던 프랑크 군대의 연대기 저자인 라울 드 카엥의 고백이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이름도 서방 세계에서 보는 관점일 뿐 이슬람에게 이 전쟁은 침략 전쟁이었다.
130여 년 동안 일곱 번의 침략을 받으면서
이슬람의 유명한 도시와 제국들은 차례로 무너져가고, 그 도시의 주인은 바뀌었다.
일곱 번이라고는 하지만 서방의 점령자들은 200여 년간
아랍 세계의 일부를 소유하고 통치하면서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레반트 지역
: 기본적으로 제1차 십자군 원정의 결과 세워진 이 4개국을 십자군 국가라 부른다.
①에데사 백(작)국: 훗날 예루살렘 왕국의 첫 왕으로 즉위하게 되는 보두앵 1세가
에데사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통치자 토로스(Thoros)의 후계자로 낙점되면서 건설되었다.
②트리폴리 백국: 1차 십자군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자 남프랑스의 대귀족인 레몽 드 생질 백작이 건설했다.
③안티오키아 공국: 1차 십자군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자 남이탈리아의 노르만 귀족인 보에몽이 건설했다.
④*예루살렘 왕국: 예루살렘 공략 이후 하(下) 로렌의 공작인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사실상의 왕위인 성묘의 수호자 자리에 앉으면서 건설되었다.
*예루살렘 왕국 속령
갈릴리 공국: 보에몽의 조카인 탕크레드가 불과 수십 기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던 이 지역을 점령하여 건설했다.
자파와 아스칼론 주
트란스 요르단 영지
시돈 영지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 현재 터키 남부의 킬리키아 지방에 아르메니아인들을 중심으로 건국된 왕국이다.
안티오키아 공국 등 십자군 국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키프로스 왕국: 원래 키프로스는 동로마 제국령이었으나, 3차 십자군 전쟁기에
키프로스에서 반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한 이사키오스 콤니노스가
리처드 1세를 공격하다 역공당해 제압당한 이후 일시적으로 잉글랜드 왕국령이 되었다.
리처드가 예루살렘 왕위를 빼앗긴 뤼지냥의 기에게 키프로스의 지배권을 보상으로 내주게 되면서 십자군 왕국이 세워졌다.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에게 1489년에 합병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발칸 반도: 4차 십자군으로 인해 동로마 제국 권역에 세워진 십자군 국가다.
라틴 제국
테살로니카 왕국
모레아 공국
아테네 공국
낙소스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령: 크레타, 에우보이아 등.
발트 해 지역
튜튼 기사단 · 리보니아 연맹:
튜튼 기사단과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의 정복 활동으로 기사단령과 여러 주교령이 형성되었다.
튜튼 기사단은 1237년에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을 합병하였고,
1241년에 러시아로 진출하였으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에게 패배하여 실패하였다.
이후 발트 해 지역의 무역을 독점하여 큰 돈을 벌었고, 한때 발트 해의 강국으로 부상하였으나,
1410년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기사단이 폴란드-리투아니아에게 패배한 후 몰락하였다.
1525년에 튜튼 기사단이 프로이센 공국으로 세속화하자,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은 리보니아 지방의 여러 세력들과 '리보니아 연맹'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도 1561년에 이르러 쿠를란트-젬갈렌 공국으로 세속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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