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나의 이야기

▦외로움, 그리움은 일생을 나와 함께 해야할 동무같은 존재다

Narin Pusil 2021. 8. 9. 07:53

다음은 2015년 7월초에 "기독교 영성은 그리움에 있다"라는 주제로
시드니 던다스 벨리에서 이틀간 열렸던 이화여대 손운산 교수의 기독교 상담학 강좌를 듣고
feedback 차원에서 보내 드렸던 글입니다.  (Shalom1118@daum.net)
 

 

종교는 외로움 가운데서

작가적 상상(Writer's Imagination)에 의해 나타나게 된다.

 

▦외로움, 그리움은 일생을 나와 함께 해야할 동무같은 존재다

■다음은 2015년 7월초에 기독교 영성은 그리움에 있다 라는 주제로 '시드니 던다스 벨리'에서 이틀간 열렸던 이화여대 손운산 교수의 기독교 상담학 강좌를 듣고 feedback 차원에서 보내 드렸던 글

cafe.daum.net



손운산 교수님,
[기독교 영성은 그리움에 있다.] 강좌를 들었던 제임스강 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제 느낌대로의 글을 적어봤습니다.


외로움, 그리움은 일생을 나와 함께 해야 할 동무같은 존재다.

《인생과 신앙》

"외로움"에 생겨나는 ‘무엇에 대한 그리움' .. 그를 채워 줄 수 있는 그 무엇 ... 하나님 혹은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뿐만이겠는가…..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은 일생을 나와 함께 해야할 동무같은 존재다.

1) 삼라만상, 지구촌 그 자연속에 들어가면 아름답고 신비한 어떤 위대한 힘을 지닌 존재, 즉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느끼게 되지만 .. 인간들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전쟁, 잔혹, 참상, 배고픔, 태생적아픔 등등... 무엇보다도 그것들로 사람들에 의해 생겨나는 차별행위(discrimination,racism)들 속에서는 신의 부존재에 직면하게 됩니다.

신학개론(조직신학)에서 하나님은 우연히 창조사역을 하셨다고 배웠읍니다. 삼위가 서로함께 계서 충만함으로 인해 담담히 우연히 창조 하셨을 것이지만, 홀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창조사역의 대상인 피조물, 그리워하던 그 창조물들을 보시고 기뻐하셨을 것이고 귀하다는 말씀을 하셨을 것으로 보아 하나님도 외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외로움, 그것으로부터 학문, 사상은 물론 종교를 비롯한 모든것이 나왔다고 생각됩니다. 외로움은 일생을 통하여 함께하고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더욱 더해짐을 느낍니다. 그 외로움은 일시로는 채워지나 안으로 들어와 비집고 밖으로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마침내 외로움의 종국이 자신에게 찾아 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2) 만일 외로움이 없다면, 나와 이 세상은 무슨 어떤 필요를 느끼겠습니까?.......
학문과 사상 … 종교가 필요 할까요 …..

다른이를 위해 내 공간을 내어 준다는 죽음, 그에 대한 생각을 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죽는다는 허망한 그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외로움이 더욱 절실하지는 않을까요 .... 자살하는 이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읍니다. 그런 외로움 때문에 알지도 알수도 없는 단지 어쩌다 그 존재의 옷깃을 스친것에 감동과 희열을 느끼고 알지도 알수도 없는 그 존재를 손아귀에 넣은듯 저마다의 색깔로 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상실감을 채워주는 도구로 마치 우상처럼 찾는것을 봅니다.

60여년간 살아온 바에 의하면 욕심 걱정 근심과 더불어 여태 붇들려져온 외로움 .. 그것을 자신과 함께 그 외로움 자체를 종국을 맞이할 때까지 함께해 즐겨 나갈 수 있게 해야 하리라 봅니다..



3) 뽕나무에 올라있던 삭개오와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휴머니티의 예수 .. 그리고 그에 집에서 저녁을 함께 나눈다.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 아마 살아오며 그와 청년예수가 부대끼던 여러 삶의 만행에 대한 인간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신은 각자에게 있다고 하셨는데 ....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난 결핍, 살아가며 생기는 손상 ... 결핍은 욕망으로 채워지나 다시 결핍으로 나타나고 손상된 몸과 마음의 손상은 .. 경각심으로 생활에 적용되며 살아 가는 반면에 트라우마에 의해 나타나는 자괴감 ... 그 상실감…..

예수 가르침에 힘써 살거나 그에대한 수련속에서 그 상실감이 채워졌다면, 그리움의 상실에서 오는 삭개오와 같은 이웃들의 공허함, 불안, 덧없음, 허망등을 대처하게 도와야 한다.


4) 언제나 다 풀어내지 못한 외로움, 결국 이루지 못한 그 그리움과 함께 또 하나의 외로움 타는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곧 또 하나의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평생을 그리워 하며 그래서 외로운 계절과 그로인한 그리움속에서 그렇게 보낸 세월들.... 그때문에 사람은 늙고 쇠하여 가나 봅니다. 노을과 낙옆들이 유난히 슬프게 보여졌던 올해의 가을과 겨울 ... 상실의 빈자리는 외로움으로 나타나는데 ... 하나님만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의 기독교 영성"만이 외로움을 채울 수 있을까요?

바울(어거스틴,루터,칼벵…)은 예수의 오로지 십자가만이 십자가 보혈 만으로 구원 (창조=구원=평화=영생=부활=보좌옆= ....)을 받는다 했으나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속에 들어가야 한다하며 그곳으로 들어가는 법을 가르치셨읍니다.

외로움에 그리운 마음을 갖을수 있다는 것은 나의 늙어가는 감성이 나의 내면 어느 한구석에 외로움과 그리움을 태울수 있는 불꽃의 불씨가 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 하며 다독여 가며 살맞는 이웃(들)과 하나님 나라속으로 들어가는 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픔에 저는 오늘도 설레임이 있습니다.

                                                               
 
 


 

진솔한 마음과 생각을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강의를 들으시고 생각을 이어주셨다고 생각하니 제 마음도 뿌듯해집니다.

많이 공감합니다. 외로움과 슬픔은 그림자처럼 다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신나게 정신없이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외로움과 슬픔은 곁에서 지켜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럴 때는 그 외로움과 슬픔의 동무와 함께 길을 걷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동무는 저를 저되게, 저를 저 이외의 다른 대상과 좀더 진정성있게 대하도록 도와주곤합니다. 참 고맙고 좋은 친구들이죠.

제 강의에 동참하여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를 기원드립니다.

손운산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