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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푸실 이야기/신학 이야기

[박영식 교수 글을 읽고], ■ 교회와 신학은 서로를 불신하고, 외면하고 거기에 시대적 변환이 없다.

Narin Pusil 2021. 7. 12. 18:39

 

ㅡ서울신학대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 독일 빌레펠트의 베텔 신학대학 졸업(Dr. theol.) (현) 서울신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교회와 신학 - 박영식 교수


1. ‘신학은 교회의 기능이다.’

19세기 슐라이어마허 이후 현대신학에서 누구나 긍정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학의 역할이 교회를 섬기는 일에만 국한될 수는 없지만,

일차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신학은 교회의 학문이고, 교회를 위한 학문이어야 합니다.

 


2.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현실과

신학과가 정원을 못 채우고 힘들어하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교회와 신학은

서로를 외면하고만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목회와 신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점차 줄고 있는 것은

신학교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위기입니다.

교회는 신학을 불신하고, 신학은 교회를 외면할수록

이런 현상은 점점 더 깊어지며 결국 양측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3. 독일에서는 ’교회의 날’이란 행사를 통해

목회자와 일반 성도들이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다양한 측면에서 듣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예전에 하노버에서 4박5일 정도 기간동안 열린 행사에 저도 독일교회 교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1일 코스로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총리였던 슈뢰더도 참여한 것으로 기억납니다.

 


4. 전통예배와 현대적인 열린예배, 신앙의 기초적인 질문들에서

과학과 신학의 관계, 기후변화의 문제 등 3000여 개의 강연과 행사가 열렸고,

10만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압니다. 그 규모도 엄청나지만,

오늘날 교회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독일의 그리스도인과 일반 사람들이 함께 듣고 고민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척 부럽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기억에 또렷이 남는 장면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제 친구 전도사가 그 교회 담임목사에게 자신이 들었던 강의를 다시 강의해 주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하극상(?)이 가능이나 할까요?)

 


5. 오늘날 우리에겐 교회와 신학교의 만남이 없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신학대학은 교회와 가까와져야 합니다. 교회도 오늘날의 신학에 귀를 기울여 합니다.

서로 생각이 좀 다를 수 있지만,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대화의 장이며,

현재와 미래가, 이론과 실제가 조우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름이나 겨울 방학 때 교단은 신학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을 각 지역에 마련하고,

신학대학 교수들은 각 지역의 교회를 방문하여 양질의 강의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습니다.

 


6. 한편에선 목회자들이나 임직자들, 또는 일반성도들이나 청년들이 듣고 싶은

신학적 주제들을 열거하고, 다른 한편에선 신학대학 교수들이 제공할 수 있는

주제들을 열거해서 매칭이 되는 주제들을 우선으로

매 학기마다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면,

교회와 신학대학이 함께 교학상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7. 신학대학에서는 뭐 엉뚱한 것들을 가르치지 않은지 의심스러운 눈길로 보시는 목회자들이 있는데,

이런 때 직접 듣고 조언도 해 주시면 신학대학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목회현장의 고민을 이해하고 경청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8. 물론 개인적으로 교회의 초대를 받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연속 강좌로, 그리고 지역목회자나 교인들이 함께 참여한다면

공동체적 정체성과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대화가 발전되어 언젠가는 교단을 초월해서

우리도 독일의 ‘교회의 날’ 같은 교회와 신학이 어우러진 축제의 장이 열리기를 꿈꾸어 봅니다.

 

 


■제임스강

 

1. 주권이 신(God)에게 있던, 인샬라(Inshallah.. Insh-El)의 신정시대 (Theocracy) 교회,

그때의 신학적사고 ...
2. 주권이 왕(King), 1인에게 있는 킹덤(Kingdom)의  왕정시대(Monarchy) 교회,

   그 당시, 루터나 칼빈등의 서구의 사고는,

대서양 바다물이 서쪽 끝 낭떠러지로 떨어져 지하세계의 어두움의 신,

   하데스 (Hades, Puluto)가 있는 곳으로 물이 흘러 들어 간다고 믿고 있던

신화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대였다.
   그런 그때의 신학적 사고 ........

3. 21세기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어, 주권의 힘이 시민으로 부터 나오는,

시민주권국가 시대 말하자면,

   국가 구성원이 Civil Democracy Sovereign State 를 누리는 나라.

이런 나라가 소위 선진국이다.

 


4. 그리고 우주의 팽창과 다중-우주-구조론을 설명해주는 양자역학으로

우주의 구성을 증명해 가고 있는데

        ( 다중 우주론(多重宇宙論) 또는 멀티버스(multiverse)은

우주가 여러 가지 일어나는 일들과 조건에 의해

          통상적으로 시간과 공간에서 갈래가 나뉘어,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 여러개의 다중 우주(multiverse)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무한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나 자신이 이 지구에서 없어지면 다른 우주에서 나타난다....??)

 

    그에대한 지금의 신학적 사고 (Theological thinking)는?
    과연 각각의 시대적 세계관과 가치에 따른,

    교회와 그에 대한 신학적 사고는 변함이 없어야만 하는가 .....   신학의 동일성 ..??????

 

 교회는 신학을 불신하고, 신학은 교회를 외면하면서 시대적 변환이 없다.

 


박영식

 

  산발적이면서도 지속적인 대화와 만남이 시대와 연동하고 새로운 사고를 추동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대와 사고는 변할 수 밖에 없고 변해야만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임스강


1. 모든 만물의 무상(無常)함에서 시작되는 동양의 논리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서구적(특히, 기독교 신학적) 논리... 그런 사고로는 동일성(identity,常)을 견지하여야 하기에 ...

시대적 세계관은 물론 가치관 역시 신학적 사고를 할때는 어떤 명제에 있어 변함이 없어야 하는건지....

 

2.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유대땅 먼 옛날에도 갈릴리 사람 예수의 십계명에 대한 파격이나,

바리새파 바울의 무할례라는 율법의 파격도 있었기 때문이다.

2. 어거스틴 때도 극소수가 주장하여 이단으로 낙인 받았지만 ..

불트만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던,  신화적 사고(神話的思考, mythical think)....   

21세기에서는 그런 유치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

 

 

 

 

https://m.blog.daum.net/james_kang_2019/112?category=1991046 

 

 

11. 신학이 변해야 교회가 그리고 사회가 산다 / 필립 클레이튼 (Philip Clayton)

http://blog.daum.net/james_kang_2019/79 신학이 변해야 교회가 그리고 사회가 산다. 주석과 해석이, 시대적 요구에 따른 시대적 방편이 되어야 한다.   =  ”교회를 포기 하지마라!”, 교회가 교회답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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