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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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in Pusil 2021. 6. 10. 23:20





♧♧♧ 예수의 꿈 ...
그의 평화로운 세계로 .... ♧♧♧

♧ 예수의 꿈은 사라지고 ....
(인본주의를 제대로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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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이스-로마의 기독교 건축예술들을 보면, 콘스탄티누스 이후로 '예수의 꿈'은 없애어져 바울이 만든, 아우구스투스가 만든 그리고 많은 개신교 종파중에 루터가 칼빈 등등이 만든 동방-서방등등의 기독교들 중에 유일한 칭의 기독교(개-신교)가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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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로마제국의 공인된 종교가 된 그때부터 그노무 인간이 만든 '하이어라키'와 일심동체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도 먹거리-터 쟁취-부흥에 매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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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본주의를 내려보고 벽안시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요? ... 그에대해 공부 해본적이 없는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념의 핵심인 Humanity 를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오늘날의 기독교인보다 휴머니티의 화신인 예수와 같은 분들입니다. 인간애- 인본주의를 말하는 누가의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인문학적 사고를 하게 만드는 예수 가르침이라 여기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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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구문화와 삶의 근간이 되어었던 종교, 기독교는 겉으로 사랑과 평화를 내세우지만 예수가 말하는 휴머니티(Humanity)라는 인간애는 사라지고 그들의 하이라키(hierarchy)의 쟁취를 위한 차별(discrimination, racism)의 Bloody History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사=세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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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와 야훼라는 하나님은 그들의 하이어라키를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수단일 뿐이다. 교회(건물)는 그들의 생활의 터전인 먹거리터요, 정작 `신이된 인간`은 그들의 비지니스 브랜드인 퍼펫으로 도용되어 마켓팅 브랜드로 지금까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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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옛날옛적부터 그들은 그들의 `하이라키(hierarchy)`를 위해 `신의 영광`을 부르짖었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아부지영광 같은 것이다. 실체가 없는 그 추상적 표현을 객관화 시키려하니 계약과 법을 동원하여 그들은 하이라키 체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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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예수는 민중의 맘에 `하나님의 나라`, 그 평화의 지분을 가지고 살기를 바랬다. 그게 그분의 전부다 ….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할때부터 죽음에 이를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다. 나 자신에게 있다고 ... 마음먹기에 달린것이 아닐까 ...

5. The reason why Jesus came in this very small dot (planet) in very huge universe because He did to show the His peaceful Land(<- the kingdom of God) for us than to die for us.

엄청나게 커다란 우주에서 쬐끄마한 점과 같은 행성(지구)에 오셨던 까닭은 십자가에 달리시려 오셨다기 보다 그분의 평화를 우리에게 보여주려 오셨던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 그것을 얻기만 하면 톨스토이가 말하지 안해도 모든것은 그분이 보여준 평화속에 있게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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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연 '하이어라키'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냐? .. '예수의 휴머니티'를 추구하는 '그의 평화의 나라'냐? .. 이미 지났지만, 이제라도 결단을 내릴때가 되었다


[하늘의 영광이냐? 하나님의 나라냐? ` ==> 학술탐사 후기]

1. 종교개혁자들이 활약했던 14세기 15세기의 종교개혁의 여파로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신·구 양교파의 대립이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전쟁은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30년전쟁 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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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결과 네델란드, 스위스등이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로 부터 독립한다. 그리고 루터교회 뿐만 아니라 개혁교회(Reformed Church)도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종교전쟁은 많은 정치사상을 낳았는데 이것들은 왕권을 재주장하는 데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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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히 장 칼뱅의 사상에는 세속적 권위에 대한 수동적 복종이 강조되었는데,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사건 이후 위그노교도들은 이것을 지지할 수 없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이후 일단의 가톨릭 집단이 위그노교도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며 교황지상주의자들과 위그노교도들을 모두 제압하기 위해 강력한 군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로써 왕권신수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모든것을 잠 재우기 전까지는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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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종교개혁의 의의를 실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나 민족 혹은 종파들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었다는 것에 씁슬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를 느끼고 싶고 그 체취를 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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