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나린푸실 이야기/여행 이야기

그리이스- 터키- 한국

Narin Pusil 2019. 12. 12. 20:59

 

《■1. 그리이스》

▪︎1. 나는 오늘 그리이스 철학자들과 현대작가 한 사람을 만났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을 그리고 먼저 도착했던 크레테에서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다메섹에서 바울이 예수를 만났던 것처럼 말이다.


▪︎2. 아테네 학파, 그들의 사상적 배경 역시 그리스 신화적 분위기가 기저를 이루었고, 카잔차키스는 당시 종교의 억압된 사회적 분위기에서 해방되고자 애를 썼으나, 종교권력이라는 하이라키에서 자유만을 갈망 할 뿐 ... 결국, 죽어서도 그것에 대한 외침을 묘비명에다 새겨 놓았을뿐이다.

   " 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사 자유를 얻었으므로...."


▪︎3. 조르바의 로망을 꿈꾸었던 카잔자키스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예수의 자유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진 왼쪽에 플라톤이, 오른쪽에 소크라테스가 보인다.

 


    ***《자유인 예수》
           Grand Freeman Jesus

      ■자유와 평화를 꿈꾸었던, 예수
           Jesus dreamed of freedom and peace

(1) 예수를 영원 불멸의 진리로 만들어서 예수 측근의 하이라키를 만든 인간들에 의해, 살아 숨쉬던 예수를 종교속으로 집어넣고, 누구도 그 신성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는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2) 따라서 교회 모든곳은 역시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 평화를 우리와 나누던 살아 숨쉬던 예수가 아닌, 그저 십자가에 죽임당해 부활한 예수를 교주로 삼는 종교가 되었다는 말이다.

(3) 당신은 신약의 인물들 중에서 <갈릴리 사람 예수>보다 자유로운 사람을 보았는가? ... 복음서에 기록된대로 각층의 사람들로 부터 특히 여인들로 부터 사랑을 받았고 또 주었다.

(4) 또한, 세례요한처럼 유대땅 사해 북쪽의 요단강 부근에 국한 된것이 아니라, 이 갈릴리 사람은 레판트-Cresent 땅의 비옥한 토지 끝자락의 잇사갈-즈블론-납달리의 갈릴리는 물론이고, 유대를 벗어나 온 중동땅을 돌아 다녔고, 그러면서 세례요한 처럼 금식하고 고독을 즐긴 것이 아니라, 소위 죄인이라 불리우는 불가촉 천민들 - 곧 세리, 창녀들과 술과 식사를 즐겼다. (당시 유대의 죄인은 조상의 죄로 인한 가난한 사람들을 지칭했다.)

(5) 성적관계가 배제된다면, 그리이스인 조르바 보다 더 멋진 삶을 즐기지 아니했는가 말이다.
그러나,  삼십(三十)에 이립(而立)한 젊음의 예수를 본능을 지닌 인간으로 본다해도, 조르바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자유인(Grand free man)이 바로 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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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엘렉시온 신전, 파르테논 신전등이 있는 아테네의 아크로 폴리스

    

   그곳이 올려다 보이는 한 카페에서 그곳에 가지 않고 남아 있겠다고한 최창식 선생님 내외분 옆에 (더워서 쉴겸) 앉아서 멋진 경치와 함께 이 생각 저 고민 좀 하려 했더니, 임운규 선생님이 가서 보는게 남는거라고 해서 따라 올라가 다시 보았다.
  

    (지금 생각하니, 차한잔 더 하면서 아테네 정취를 여유를 가지고 조망할껄 하는 후회가 들었다. 3년전에 통영의 외도-장사도에서 사람구경하다, 한적한 연대도에 단하나의 카페 옥상에서 2시간 가량 바다와 함께 했던 시간처럼 말이다..^^)


▪︎5. 지진에 의해 무너진 올림피아는,

     그리이스 보다는 로마제국에 의해 보강된 모습이다.

 

    올림피아 제우스의 아크로폴리스의 헤라 신전에 있었다는 프리지아의 여신 <키멜레> 신상을 보면서, 로마 <클라디우스> 황제시대 시대 키멜레의 아들이며, 예수의 신화의 모델이 되었다는 <Attis> 신을 왜? 수입하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점점 자라나는 기독교에 대하여 로마의 신을 보강하여 로마종교를 강화 시키려 했다는 것을 말이다.


♤멧테오라

▪︎누가및 바울의 측근 대부분은 그리스 정교회 근간이 되었다.
▪︎터키 4백여년간 지배하에 정교회는 그리스 말을 가르쳤기에 오늘날까지 그리스어를 이어올 수 있었다. - 아이세이도니 수녀원

▪︎ 비잔틴제국 멸망직전, 수도이전 미스트라(Mystras)
▪︎ 아폴로니아(큰 호수2) - (뉴)암피 폴리스 (Drama - 불가리아 Sifia - 네아폴리스

▪ 드라마 마을(Drama Village)

  3년전 그리이스 여행때 멧테오라에서 델피신전 가는 도중에 가이드 선생님이 왼쪽을 가리키면서 저쪽으로 넘어가면 그 마을이 있었다고 말하자, Drama라고 쓰인 싸인보드가 보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테살로니카 위쪽에 빌립보(Phillipos)와 불가리아 국경 중간에 Drama City라는 이정표를 보았다. 아마도 그때 그리이스 이곳 저곳에서 드라마 대본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일리아스-오딧세이의 '호머', <안티고네>-<오디이프스-<엘렉트라>의 '소포클레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에우리 피데스' 등등의 작품은 하나같이 드라마 형식으로 쓰여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호머 이후 거의 2천여년 간은 사람들 거의가 문맹자였기에, 드라마를 대본으로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소통 하였을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태' '마가'등의 복음서, '뱀으로 변한 모세지팡이'가 나오는 모세오경의 이야기등 .... 역시 드라마 형식으로 쓰여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팩트'를 떠나, 당시에는 사람들은 그렇게 알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마천의 사기도 그러하다. 드라마 퍼포먼스로 글을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 중국특유의 연극인 "경극"이라는 것을 통하여 지난날의 사실을 알리고자 했던것처럼 그리고 중국인들은 그 사건들을 역사적인 진실로 믿고 싶었고 받아들였다.    



《■2. 터키》
   ▪︎살로몬(라틴) 솔로몬 => 슐레이만

■ 갈리폴리에서 ......데살로니카 태생의 무스타파+ 똑똑한 뜻의 케말 이라는 이름을 수학선생님으로 부터 받고 훗날 갤리볼리 전투에서 승리를 얻자 오스만 술탄은 그에게 파샤(장군)로 전격 승진시킴,
....... 집안일(소 키우는것 포함)- 여자들이 했다.

■ 아이볼리

■ 부르사- 오스만 투루크 수도, 스키장

■ 셀주크 성을 지나가면서 보았다. 한때 아나톨리아는 물론 흑해연안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을 지배했던 투르크의 일족이었던 셀주크 족이 정교하게 만든 성이였는데, 징기스칸의 바투의 칩입이 없어서 그런지 오스만 제국때에 다시 보강되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 이즈밋- 카페트

■ 이즈미르(버가모) - 산업단지, 지진
= 스미르나(=딸을 얻음- 공주,아프로디테 축제, 아버지를 사랑함, 몰약나무,써머나)와 아레스 이야기

■ 에페수스 - 헤라클레이토스 고향,
안드레폴리스 = 맷돼지 물고기 불을 신성시했다.

    • 셀수스 4기둥
       - 에피스테(지식), 이노니아(지성), 아레테(德) 소피아(지혜)


■ 밀레투스 - 스콜라, 슐레, 스쿨 ... 여유로움

==> 위의 2도시에 있는 Theater등의 건축물들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그것보다 수백년전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규모에 있어 뒤지지 않게 보였다. 그리이스 문명이 서구 효시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밀레투스 DiDydo에 있는 아폴론 신전 역시 델피의 그것만큼이나 웅장함을 느꼈다.
그걸보면서, 지금은 지진에 의해 완전히 무너진 제1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규모는 어떠했을까... 를 상상하게끔 한다.

 

 

 

■ 파묵칼레(목화의 성) - 히에라폴리스(로마, 신성한 도시) - 싸이프러스(부활)나무가 경계 - 네크로 폴리스(죽은자의 도시), 아르테미스, 아폴론, 포세이돈을 섬기던 이곳에서 선교하던 빌립이 순교했다는 곳으로 기념교회가 있었으나 역시 지진으로 무너졌다.
       = 크레오파트라7세와 안토니우스가 방문했던곳

■ Konya - 셀주크 튀르크 수도, 터키 7번째 도시, 실크로드 교차점, 카이세리 스키장
▪︎네브세히르
■ 카이세르(Airport)

 

 

갑바도기아

 

 

☆☆☆ 데린구유,
   = 힛타이트 시대때 첫층이 완성되었다고 본다. 힛타이트 제국이 멸망할때 그곳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했다.

   = 카타콤이 연상되는 데린구유를 예수 가르침과 별개의 하나로 보면 안된다. 당시에는 그것이 그들의 최선이라 생각했겠지만, 2천년이 지난 21세기에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예수 가르침과는 다른, 무지의 실천행위라 나는 생각한다. 예수도 그렇게 살라고 하지 않았고, 더구나 유대주의자들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

 

 

 

 

 

 

●괴레메 계곡

▪︎파노라마
▪︎장군계곡 파샤바그라리Pasabaglari
스머프 가가멜
▪︎동굴식당에서 소고기 민스구이 먹고 카이세르 공항에서 페가수스 항공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날아감. 도착

Istanbul University - 1453년에 개교
토카프성벽

 

 

☆☆☆이스탄불

 

● 술탄 접견, 재무부, coast yard, halem, 술탄방,
●소피아 사원,
   - 밀레투스 아르테미스 신전 기둥 6개 뽑아 건축에 사용,

   - 알라, 무하마드, 4 칼리프, (4번째 칼리프, 알리의 두 아들)핫산과 후세인의 8문장...

           (시아파의 수장이 되는 후세인을 인정하는 순니파를 소피아 사원에서 보게 되었다.)

 

이스탄불 마켓

 

《■3. 한국》

■강진,

허균과 그리고 150여년간 묻혀있던, 다산 정약용을 발굴한, 위당 정인보,

      (일제침략이 없었더라면 이순신 장군과 정약용 선생 같은 분들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

■ 김상헌의 후손 안동 김씨 한양 장동에 거쳐하며 세도정치를 누림

 

 

1. 플라톤과 2천년후, 문예부흥때 조명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그때 퇴계와 기대승(율곡)의 이와 기의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민중과는 괴리된채로 소위 당시 엘리트 문반의 사회속의 사상을 만들어 갔다.

2. 하지만 성호 이익의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과 유배지 강진에서 18년간 민중들과 삶을 같이했던 ... 해서 나온, 민중들과 함께하는  그분의 저술, 그중에서 목민심서에 펼쳐진 그의 사상이 민중을 생각하는 다산사상, 바로 그것이다.

 

 

강진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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