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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프랑스어: Oscar-Claude Monet, 1840년 11월 14일 - 1926년 12월 5일)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 인상파의 개척자이며 지도자다.
청소년기에는 풍자만화가였다.
고향인 르 아브르에서 풍자화를 그려가며 돈을 벌었는데
당시 모네가 그린 풍자화 한 점의 가격대는 10프랑~20프랑이었다고 한다.
당시 노동자의 일당이 5프랑이었던 걸 감안하면 청소년이 그린 그림이 그림값을 넉넉하게 받은 셈이다.
이대로 풍자만화가로 살았을 모네였지만 어느 날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긴다.
모네의 풍자화를 본 화가 외젠 보댕이 모네를 제자로 삼고 싶다고 한 것이다.
모네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모네의 가능성을 높이 사고 용기를 준 보댕을 스승으로 받아들인다.
보댕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는데
보댕을 사사한 후의 모네가 그린 그림을 보면 오랜 관찰을 통한 섬세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아카데미에 들어가라고 권유했지만
보댕을 떠난 모네는 한 화실로 들어간다. 그 화실에는 후에 인상파로 불릴 그의 동료들이 있었다.
그는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을 르아브르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부댕의 문하생이 되어 정식 미술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후 1859년 파리로 나가 피사로·시슬레·르누아르·바지유 등과 사귀게 되었다.
마네의 밝은 화풍에 끌려 밝은 야외 광선 묘사에 주력하였다.
마네를 중심으로 르누아르 및 피사로·드가·세잔 등과 함께 신예술 창조에 전력하였다.
1871년, 보불전쟁 중에는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터너 등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더욱 밝은 색조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귀국 후, 1874년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제1회 인상파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출품된 작품이 물체 본래의 색깔을 쓰지 않고,
신선하고 밝은 색채로만 그려진 데 대해 비난과 공격이 쏟아졌다.
특히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가장 심한 비난을 받았는데,
'인상파'라는 말은 이때 모네의 작품을 야유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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