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야 믿고, 알게되면 못 믿는다.

성(聖賢)현님들의 가르침 말고, 종교는 구라고 사기다.

▪︎진리(Truth),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 '자유함'이고, '복'이다.

5. 교회사에서 본 성과 결혼과 가정

생육하고 번성해야할 여성의 역할의 의미가, 동정녀로 말미암아 상실되었다.

Narin Pusil 2021. 5. 6. 08:44

 《여성 위상(位相)의 변천사》 [1]

 

 

 "인간의 욕구 중 성욕처럼 극단적인 취급을 받는 것은 없다.” - 에케하르트 로터 

 번식능력의 축복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Gen. 1:28)

 

고대 중근동에서 행해지던,

이쉬타르 여신의 축제 혹은 숭배도,

’번성하라’는 창세기 기록대로     

야훼의 축복과 같이

‘다산과 풍요 그리고 사랑’이라는

인간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 

 – 그렇다면 창세초의 야훼도

바알(BAAL)등과 같은 생육과 번성과 풍요를 표방하던

중동의 신들중에 하나가 아니였을까?  –  

 

 

이 역시 ‘뿌려지고 생장하고 거두어진다’ 라는

순환적인 패턴이 침투된 그리스 문화(신화)처럼 

인간의 태어남, 자람, 죽음과 결합되어 이쉬타르 여신의 숭배를 인간의 삶과 연결시켰다.

이쉬타르 숭배는 성적 자유 축제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인의 관점일 뿐이지 그 사실적 내용을 알고 있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서구 기독교 사상적 시각으론 본 그런 성적 방종처럼 보이는 이 의식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일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앞서 말한

자연의 순환을 모방하여 행하였던 축제적 의식 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이런 이쉬타르 의식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자연의 순환보다는 그들의 시조 로물루스로 올라가는 자신들의 기원에 연결시켰다.  

 

그러다가 맞이한 콘스탄티누스의 313년의 로마제국은 더 이상 다신교의 제국이 아니었다. 

로마는 자신들이 박해하였던 그리스도교를 제국의 유일한 종교로 로마황제가 공인하였다. 

이것은 이전과 전혀 다른 종교정책으로 사회변혁을 의미하는 대사건이었다. 

그동안 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숭배하고 공경하였던 신이 바뀌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슈타르-아스다롯의 특성이 흡수된 그리고 이전의 그들에게

자연의 생식력을 민족의 기원인 비너스(‘아프로디테’) 신전의식은

중지될 수 없는 자연 순환을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만약 자연의 순환이 틀어지거나 중지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재앙이듯이  

인간 역시 자연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자신들의 의식을 중지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인재보다는 자연재해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레코-로망의 민족의 어머니로 추앙되던 비너스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류의 어머니가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 너희의 딸들이 음행을 하고너희의 며느리들이 간음을 한다

너희 남자들도 창녀들과 함께 음행을 하고창녀들과 함께 희생제사를 드리는데

너희 딸들이 음행을 한다고 벌하겠느냐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한다고 벌하겠느냐?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한다. ”  ―〈호세아서〉 4,13~14

 

호세아는 동족인 북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국가적 사회적 폭력을 행사하며

권력과 부를 누리는 북이스라엘 지배층에

노예화 되어 가난과 고통에 빠진 북이스라엘의 처절함에

복을 내려달라는 야훼에게 요구하는 민족적인 소망이 호세아의 외침이었다. 

부와 권력을 틀어 쥔 왕과 그의 신하들과 고위 사제들, 

예언자들만의 예전과 다른, 북 이스라엘의 국가적 행사로 바뀌어 버린 종교의례는

일반 백성들의 무질서한 그것과는 이미 구별되어 성전에서 각기 별개로 진행되었다.

 

야훼에 대한 소망의 민심을 보여준 호세아서의 그것들을 분리해서

보지 못한 오늘날 학자들에게서도 이 시기의 국가적 제례의식들속에서

히에로스 가모스(신성한 결혼의식)의 흔적을 읽어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호세아는 간음하는 백성을 말할 때  

머릿속에서 간음하는 여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따라서 우상과 간음하는 여성이 낳은 자식들은 백성이 되는 것이니

백성들은 결국 우상의 자식들로 죽어 마땅한 자들이 되며, 

그것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하는 그의 저주가 되어 버렸다. 

 

그것은 호세아를 이어, 훗날 남 유다의 지배자들의 부패를 통렬히 비판할

이사야, 미가등의 선지자들에 앞서 백성을 착취하는 북이스라엘의 왕과 귀족과

마땅히 국가적 폭력에 저항해야 할 이미 그들의 하수인이 된 왕궁에 있는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에 대한 호세아의 저주였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것을 히에로스 가모스 의식 속의 성행위 하는 백성으로 설명하다보니

엉뚱하게도 그 화살이 저들에게 당해왔던 백성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결국 백성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성행위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변질되어 가게 되었다.

 

이런 결과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 하나님의 바램과 같이

민중의 풍요에 대한 염원의 표현이었던 성행위를 ‘여성의 간음’이라는 부정적 상상력과 연결시켜

여성 자체를 성적 존재 혹은 간음하는 존재라는 혐오의 생각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따라서 태어난 모든 인간을 죄인이라고 보는 편견으로

제국의 기독교에 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그 때문에 로마제국의 비너스 신앙에서 예수를 낳은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승화시킬 때 그녀가 성행위 없이 예수를 낳았다는

 ‘동정녀-신앙’, 나아가 동정을 ‘죄 없음’으로 해석하여 원죄 없이 예수를 낳았다는

무염시태(無染始胎) 신앙으로 성모론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2]

 

마리아는 단 한번의 임신으로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를 낳았다. 

이것은  로마사회 문화에 충격적인 일이였을 뿐만 아니라 획기적인 일이기도 했다.  

이것은 그동안 고대 세계를 지배했던 다산과 풍요, 민족의 번성과 관련된

여성의 성적인 요소를 단 한번에 그것도 일거에 사라지게 하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단 한번의 행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를 이 세상에 보냈다면

더 이상 여성의 생식행위는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교는 고대세계의 자유분방했던 여성의 성적 요소를 확실하게 제거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내일 오실 신랑을 기다려야 하는 종말론이 대두되었고 그 사상은 로마사회 곳곳에 그 영향도 컷다.

 

 

 

[1] 에케하르트 로터, “비너스마리아파티마”, (울력, 서울,  2001년)

[2]   김진호(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하늘뜻-히에로스 가모스” http://hanbaik.synology.me:8080/xe/?document_srl=88469&mid=skyboard&listStyle=viewer&page=1  

 

 

 

 

‘성은 악마의 유혹일까’기독교·이슬람 억압사

김중식기자 uyou@kyunghyang.com

 

"성·쾌락·다산·풍요·상생을 뜻하는 ‘여신=여성성’의 박멸이야말로

문명충돌이라는 폭력의 씨앗이 아닐까....."

 

독일 훔볼트대 게르노트 로터 교수(동양학)와 에케하르트 로터(중세사학자) 형제가 함께 쓴

‘비너스·마리아·파티마’(신철식 옮김, 울력)는 이렇게 진단하는 듯하다.

 

자유로웠던 성(생활)이 유일신의 기독교·이슬람교에 의해

악마적 대상으로 변하는 과정을 다루면서 두 문명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의 신보수주의를 경계한다.

책에 따르면 이란은 1980년대부터 또다시 여성에게 베일(차도르)을 강요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음탕한 여성’에 대한 사형집행이 느는 추세다.

이슬람 청소년들은 서양과 비교해서 정신이상과 동성애로의 도피가 심하다.

 

90년대 이후 미국·유럽·러시아에서는 청교도주의와 보수주의가 퍼지고 있다.

혼전순결을 서약하는 미 청소년, 마리아를 열광적으로 숭배하는 러시아 청소년,

이혼전문변호사의 급증 등이 서구사회의 성 신보수주의의 징후라고 본다.

 

저자들은 이런 징후들이 옛날에 그랬듯이

성에 악마의 굴레를 씌우려는 사회분위기 탓인지 의심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욕구·필요에 따른 선택과 결정이 아니라면 다소 위험한 흐름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쾌락을 규제한 기독교·회교가 육체와 영혼의 대결이라는

개개인의 딜레마를 치유하기는커녕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책은 두 종교·문명의 여성에 대한 억압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고 본다.

현재 서구와 이슬람은 각각 일부다처제와 한술 더 뜬 섹스자본주의, 차도르와 성 상품화를 (서로)경멸한다.

결국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에서 비슷하게 진행됐던 성 억압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서로를 나무란다는 해석이다.

 

책에 따르면 고대 문화의 중심지(이집트·메소포타미아·시리아 등)에서는

가부장적 창조주를 믿는 일신교(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에 의해 지배받기 전까지는

여신들도 숭배를 받았다.

특히 남성 요일명 사이의 홍일점인 금요일(=비너스=금성=샛별)의 수난사는 책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비너스는 신격화된 에로티시즘의 화신.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도 행성 비너스에 비유됐다.

그 이슈타르는 “120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어도 지치지 않았다”.

그만큼 금요일은 성과 풍요의 날이었다.

이슬람교 이전의 메카에서도 금요일은 ‘아루바의 날’.

아루바는 자신의 질로 남편을 기만하는 타락한 여자였다.

하지만 성을 억압하면서 금요일은 악마의 날이 됐다.

중세교회는 아담이 악마에게 굴복하고,

예수가 14일간의 단식 후 악마의 유혹을 받았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 죄다 금요일이라고 해석했다.

 

아이를 안은 마리아도

원래는 에로스를 안은 아프로디테, 또는 호루스를 안은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모습의 연장이다.

하지만 기독교 이후 마리아는 성적 기능이 제거된 비너스가 됐다.

신들의 어머니에서 신의 어머니로, 그것도 동정녀로 바뀐 것이다.

책제목의 ‘파티마’는 이슬람의 마리아.

(혹은)파티마를 남자로 해석하거나 여자를 악마로 보는 ‘이단 종파’의 세력도 만만치 않다.

 

 

 

 

 

 

ㅡ ◎게르노트 로터(Germot Rotter): 훔볼트 대학 동양학과 교수로 있는 그는 현재 독일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동양학자 중 한 사람이다. ◎에케하르트 로터(Ekkehart Rotter): 게르노트 로터의 동생으로 중세사가이다. 마인츠 학술원의 회원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역사 세미나를 강의하고 있다. ◎신철식 역자 ;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베를린 공대에서 수학하였고, 2000년 외교통상부에 들어가 현재 주독 한국대사관에서 근무중이다. 옮긴 책으로 『비너스, 마리아, 파티카 : 쾌락은 어떻게 악마적인 것이 되었는가』가 있다.

 

 


에케하르트 로터, “비너스. 마리아. 파티마”, (울력, 서울,  2001년)

 

신화시대의 자유로운 성이 종교에 의해 악마적인 것이 되기까지.........

 

1.  아이를 안고 있는 '성녀' 마리아의 모습은 간혹,

어린 에로스를 안고 있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혹은,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결국 앞선 모든 이교도 여신들을 단편적으로 모아 놓은 집합체란 셈인데...

2.  이 책은 인간 욕구중 가장 극단적인 취급을 받아온 '성(性)'이

이슬람과 기독교 가운데 어떻게 통제되고 규제되어 왔는지,

그리고 해소될 수 없는 쾌락에 대한 인간의 욕구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려 했는지 여러가지 실례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목차

 

서문 : 부담이 따르는 쾌락

1. 찬미의 대상에서 비난의 대상으로


①황소 바알. 그리고 암소 에우로페
②미혼으로 남았던 야훼
③아프로디테. 신격화된 쾌락
④자태를 드러낸 사랑의 여신 비너스
⑤기독교로의 전환 : 쾌락이 저주의 대상이 되다
⑥모하메트가 여신을 참살시키다
⑦성적 기능이 제거된 비너스 : 동정녀 마리아
⑧찬연히 빛나는 비너스이자 가장 위대한 파티마

 


2. 충동과 광기 사이에서 환희에 가득 찬 쾌락. 악마적인 유혹과 잔악한 형벌


금요일의 쾌락
루시퍼의 종 그리고 육욕의 노예
잊혀진 위대한 여신
마리아의 관능화와 그 심리적 결함들
천상. 하렘. 지옥
색마 그리고 마녀에 대한 광기

에필로그 : 부담없는 쾌락?

 

 

 

 

 

 

류혜숙 ruru100@yes24.com

 

절대적으로 혼전 순결을 강요하건,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관계까지는 허용하건,

아니면 친구, 배우자, 혹은 낯선 사람이든 상관없이

쾌적하고 가볍고 복잡하지 않은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라고 주장하건

한 시대를 관통하는 성관념 속에서는 그 시대를 움직이는 지배적 힘의 논리를 읽을 수 있다.

단연코 개인의 성관념은 스스로의 판단이나 필요로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중세 후기, 매춘부가 사제를 방문하도록 은근히 부추기던 사회 분위기 속에는

사제의 독신 폐지 소청을 누그러뜨리려던 카톨릭 지배 세력의 속셈이 숨겨져 있었고,

에이즈의 위험을 경고하는 오늘날의 성교육은 일부일처제를 행복한 시스템으로 믿는 다수의 젊은이를 양산했다.

그렇다면 한 사회의 보편적인 성개념을 형성시키는 지배적 힘은 어디서부터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비너스·마리아·파티마 : 쾌락은 어떻게 악마적인 것이 되었는가』는 종교로부터 해답을 찾아나선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비너스로 불리는 사랑과 성의 여신에 대한 찬사가

종교라는 규범 속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왜곡되었고,

쾌락의 대상이던 성이 어떤 식으로 죄악시되어 왔는지,

독일 학자 레르토트 로터와 에케하르트 로터 형제가 살펴나간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지니는 성에 대한 이중성 혹은 딜레마의 뿌리를

기독교, 더 나아가 종교의 도덕적 가르침에서 찾는 두 형제는

성의 사회적 역할과, 성에 대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고의 밑바닥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파헤치고 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지역의 역사로부터 현재까지를 연구 영역에 두고 있는 이 책에서

두 형제가 특히 주목하는 내용은 태고적부터 사랑과 성을 담당해 온 여신들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고,

더 나아가 여성과 여성성이 어떤 식으로 취급되었는지 살펴봄에 따라 드러나는 성의 통제화 과정이다.

태초의 문명지에 존재하던 `위대한 여신'은 인간에게 성과 쾌락을 내리는 찬미의 대상이었고,

이 여신은 상이한 지역에서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숭배받고 있었다.

이 `위대한 여신'의 영향하에 탄생한 그리스의 아프로디테나 로마의 비너스가

성과 사랑의 여신으로 신격화되는 동안에는 사람들도 성적 쾌락을 신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자유롭게 즐겼다.

오늘날 우리가 고대 그리스의 그릇이나 유물에 그려진 노골적인 성행위를 보고,

`방탕하다', `문란하다'고 느끼는 것은 잠재적인 성적 규제를 받고 있는 오늘날의 관점을 대변하는 것이다.

신격화된 쾌락은 차츰 통제를 받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성을 여성에게 부담지운 뒤 여성적인 것을 평가절하하는 태도와

신성을 남성적인 신으로 축소시키는 행위에 뒤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작업을 수행하는 데 앞장서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두 종교, 기독교와 이슬람교이다.

물론 가부장적 성격을 띤 이 종교들도 `위대한 여신'의 흔적을 완전히 거두어내진 못하는데

기독교의 마리아와 이슬람교의 파티마에서 변형된 형태의 `여성적 신성'을 찾아볼 수 있다.

 

책의 논지를 따라 가다 보면

허용된 성과 금지된 성, 쾌락과 죄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딜레마가

어떤 식으로 연관을 맺게 되었는지, 구체적 윤곽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지금까지 성이 규제되어 온 과정을 통해, 성적 쾌락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억압과 규율을 통해서는 해소될 수 없었다는 것,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모순,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성적 잣대,

안팎에서 다르게 보여지는 이중적 성행위 등을 낳으면서 오늘날까지 딜레마를 남겼음을 확인시켜 준다.

 

저자들은 모든 세기를 통해 창조와 파괴의 양면적 힘을 발산해 온

성의 딜레마를 푸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성의 통제화 과정을 살피는 속에서

성에 대한 오해를 먼저 풀자고 말한다.

물론, 인간의 솔직한 욕망의 표출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수록 성의 이중적 간격이 좁아짐을 전제한다.

 

 

책 속으로

 

1.  이미 아우구스티누스가 매춘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를 했던 것처럼,

교회를 관리하는 기관에서는,

-사제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폐지하라는 계속되는 소청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매춘부가 사제를 방문하는 것은 매우 추천할 만한 해결방법이고,

사소한 죄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

1414년에서 1418년 사이에 콘스탄츠 공의회에는 수백 명의 창녀들이 찾아왔고,

1431년 바젤 공의회에는 800명의 창녀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성직자들이 그곳에서 매춘부와 가진 수많은 은밀한 성관계로 인해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아무런 스캔들 없이 사정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제들은 정액을 방출하는 것이 자연적일 뿐만 아니라, 결국은 건강에도 좋은 것이며,

심리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확신했다..........

 


2. 매춘부와 관계를 가진 남자를 두둔하며 내놓을 수 있었던

그의 가장 편리한 변명거리 중의 하나는, 여자에게 있다고 인정된 천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 천성은 육욕, 호색, 그리고 만족을 모르는 성정이 혼합된 것이라 한다.

여자들이 더 아름답게  -그러니까 더 죄스럽게-  보일수록,

그것은 그녀에게 홀린 남자에게 더 많은 변명의 여지를 주는 꼴이 되었다.

 

세련된 스콜라 철학을 도구로 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남자들이 저지른 성범죄의 경중은 여성의 도덕적 가치에 의해 판단된다는 결론을 애써 끌어냈다.

즉 도덕과 예의에 있어 신에 매우 근접한 여성과 저지른 범죄는 가장 무거운 것이었고,

도덕성이 없고 신과 동떨어진 창녀와 관계를 가진 남자에게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가 부과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잘 알고 있듯이, 오늘날의 남성 사회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받아들여지고 있는 '도덕'이다.

--- pp 267~268

 

 

3. 마리아가 코란에 등장하고 회교도들이 마리아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카톨릭 교회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교를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교도들에게 마리아를 쉽게 이해히시키기 위해

그들이 믿는 여신, 아르테미스와 이시스 여신을 이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마리아의 형상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마리아 숭배자 게오르크 죌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초기 교회는 이교와 기독교 사이의 연결고리를 이용함으로써

이교에서 기독교로 넘어가는 과정이 심리적으로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곧 간파하게 되었다.

초기 교회는 이로써 선교를 할 때 다른 종교의 관념과 신앙 형태를 이용하거나

그에 대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제 거꾸로 - 처녀의 몸으로 신을 출산했다는 주장은

도외시하더라도 -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던 마리아는

곧 민간 신앙에서 이교도 여신들과 혼동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비로소 이교도 여신들과 유사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이 이교도들로 하여금 이 새로운 신앙에 동화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만든 것이다.

--- pp 179

 

 

4. 기독교가 서양에서 그 세력을 넓혀나가면서,

쾌락과 성은 악마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금욕을 계율로 정하고 유혹의 원인이 되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시작되었다.

그와 더불어 쾌락의 상징이었던 동방의 여신들도 동시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기독교에도 이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바로 마리아의 모습이다.

아이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어린 에로스를 안고 잇는 아프로디테의 모습이나,

호루스를 품에 안고 있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모습과 차이가 없다.

또한 마리아를 상징하는 초승달과 별 또한 고대 이교에서 사용되던 것을 변형해서 차용한 것이다.

마리아는 앞선 모든 이교도 여신들을 단편적 모아놓은 집합체인 것이다.

 


5.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이러한 억압 과정은 유사하게 진행되었다.

모하메트는 온힘을 다해 '위대한 여신'에 대한 기억을 말살하려 하였다.

메카 사람들이 믿고 있던 여신 알 라트, 마나트, 알 우자를 가부장적인 일신교를 위해 말살시켰다.

이 여신들은 동방의 여신들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아라비아의 이교도들은 금요일을 '위대한 아루바의 날'이라고 했는데,

아루바는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고 그에게 복종하며, 또한 남편에게 반항하고

자신의 질로 그를 기만하는 완전히 타락한 여자'였다.

그런데 이 아루바는 다분히 에우로페와 연관이 있으며, 따라서 비너스와도 연관이 있다.

 

 

 

출판사 리뷰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종교에 의해 규율된 성'이다.

저자인 게르노트 로터와 에케하르트 로터 형제는 태고적 신화 시대의 자유로운 성이

어떤 식으로 종교(기독교와 이슬람교)에 의해 악마적인 것으로 규정되었는지를 통사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우리에게 낯선 근동 지역의 여신들을 통해 태곳적 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있다.

그 당시 동방에서는 성과 쾌락을 '위대한 여신'의 하사품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이 여신은 상이한 지역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숭배 받고 있었다.

 

또한 이들 여신을 숭배하는 행위는 여신에 대한 봉사의 일환으로

사원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몸을 바치는

'예배적 매춘'이라는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들 여신 중 시리아의 여신은 금성에 의해 그 특징이 부여됨으로써 서양의 비너스와도 연관되었다.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와 로마의 비너스는

바로 동방의 '위대한 여신'의 영향력 하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또한 유럽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에우로페란 이름도 고대 동방의 여신과 관계가 있다.

문화권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살펴보면, 겉으로 보기에 상이한 기독교와 이슬람교,

이 두 종교 사이에 놀랄 정도로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이러한 유사점은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와

시아파 이슬람교에서 나오는 모하메트의 딸 파티마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두 여성은 '위대한 여신'을 이어받아 여성적인 신성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 신성을 가부장적 성격을 띤 종교들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히에로스 가모스(그리스어: ἱερὸς γάμος) 

또는 히에로가미(그리스어: ἱερογαμία)는,

남신과 여신의 성교를 흉내내는 종교 의식이다.

 

김진호(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하늘뜻-히에로스 가모스”

 

 

...너희의 딸들이 음행을 하고, 너희의 며느리들이 간음을 한다.

    너희 남자들도 창녀들과 함께 음행을 하고, 창녀들과 함께 희생제사를 드리는데,

너희 딸들이 음행을 한다고 벌하겠느냐?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한다고 벌하겠느냐?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한다.  ―〈호세아서〉 4,13~14

 

 

 

유다국 서기관들은 요시야 대왕의 명에 따라 예언자들의 신탁들을 수집하여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대왕께서 예언자들의 신탁서 편찬을 바랐던 것입니다. 

과거의 예언자들이 대왕의 나라를, 그 나라에 둔 야훼의 뜻을

미리 예언하였음을 만백성에게 선포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예언자들의 신탁들을 두루 살피던 중 서기관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던 한 사람, 

그이는 호세야라는 백년 쯤 전 이스라엘국에서 활약했다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이 대목,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한다.”는 말이야말로

대왕께서 기뻐하실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 이스라엘국은 그래서 망한 거야’, 

서기관들은 호세아의 예언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바로 여자들과 남자들이 하느님의 성전에서 마구 성교를 해댄 행위, 

그것을 제어하지 못한 체제, 그것이 결국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백년 전, 이스라엘국은 국가의 발전이 절정에 달했었지요. 

당시 유다국은 국가라고 하기엔 민망할 만큼 작고 가난했었습니다. 

살길이 막막했던 수많은 유다의 백성들이

부유한 이스라엘국으로 이주하여 밑바닥 노동자로 일하곤 했었지요.

 

말할 것도 없이 왕은 이스라엘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땅들이 왕의 소유지였고 많은 농민들이 왕의 소작농이었습니다. 

또한 왕의 관료들도 굉장한 부자들이었습니다. 

나라 곳곳, 마을 마을마다 그들 소유의 땅이 있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땅을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유다국 등 여러 나라의 이주민들은 거의 노예와 다름없었지요.

 

국제무역도 활발했습니다. 

멀리 아라비아와 아프리카, 심지어 페르시아와 인도에서 상아와 귀금속, 값진 옷감들, 카펫 등이 수입되었습니다. 

왕과 귀족들은 상아로 침대와 가구를 만들고, 백향목으로 거대한 집을 만들며, 

귀금속으로 치장하고 화려한 채색옷을 입고 카펫으로 덮인 거실에서 연일 잔치를 벌였습니다.

 

한데 그럴수록 백성들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갑니다. 

소농들은 고리의 부채로 시달렸고, 

땅을 빼앗기고 가족들을 하나씩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굶어죽거나 가족이 동반자살 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었지요.

 

예전엔 이럴 때 의로운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나타나

왕을 비판하고 반정을 일으키기도 했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기적을 일으키며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이들을 치유했다고 전해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인들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권력과 돈에 눈이 멀어 있었지요.

 

바로 그때 호세아 예언자가 나타나서

그런 세상을 개탄하며 왕과 귀족들을 향해 독설을 퍼붓습니다. 

또한 호세아가 힘주어 비판해마지 않았던 것이 바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고, 

그들이 주도한 제사의례였습니다.

제사의례는 왕과 귀족들의 혹독한 착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국가의 통치에 백성을 순응하게 하는 장치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의는 국가화되었고, 그럼으로써 권력과 부를 차지한 고위직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의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즉 종교의 국가화와 상업화, 그것이 호세아가 본 당대 이스라엘의 종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제의만 비판한 게 아니라 백성을 비판하기에 이릅니다. 

백성이 잘못된 종교에 빠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잘못된 종교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적인 난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적인 난행이라고 그가 본 것의 실재는 그리스 말로 ‘헤에로스 가모스’(신성한 결혼)라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중해 지역에 널리 퍼진 대중종교적 관행이었습니다. 

 

이 넓은 지역 곳곳에서 이슈타르, 이난나, 이시스, 비너스, 루시퍼 등으로 알려진 여신들에 대한 숭배신앙이었습니다. 

이 신들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했던 관능의 신이었습니다. 

하여 신전에선 그 신들이 사제들인 여자들과 남자들이 백성들과 성관계를 하는 의식을 수행했지요. 

그것이 히에로스 가모스입니다.

 

그 제의는 소란스러운 난장처럼 진행되었습니다. 

악기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춤을 추며 환호합니다. 

그 속에서 많은 남녀 사제들과 백성들이 성관계 의식을 벌였고, 

다른 이들은 축복을 갈구하며 고함치고 자해까지 하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데 이 모든 것은 가난과 고통에 빠진 비루한 삶들에게 축복을 내려달라는 대중적 갈망에 초점이 있었지요.

 

사실 고위 사제들, 예언자들의 국가화된 종교의례는

백성들의 이런 난장 같은 종교의례와 별로 섞이지 않았습니다. 

성전에서 그것들은 각기 별개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해서 오늘날 학자들은 이 시기의 국가제의들 속에서 히에로스 가모스의 흔적을 읽어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것은 대중의 신심이었던 것입니다.

한데 호세아는 그것들을 분리해서 보지 못했습니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를 누구보다 탁월하게 읽어낼 만큼의 고고한 지식인이었던 그의 눈에

대중의 축복신앙과 국가화된 예언자와 제사장들의 왕-귀족 중심의 축복의 신앙은 하나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는 국가화된 제의를 우상숭배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히에로스 가모스, 즉 남녀제사장들과 백성의 성관계를 우상과 간음하는 행위와 동일시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패러디입니다. 

그가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국가화된 제의인데, 그것을 히에로스 가모스, 

즉 성전의 남녀사제들과 성관계 의례를 수행하는 백성을

우상과 간음하는 이스라엘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극언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런데 간음하는 백성을 말할 때 호세아는 머릿속에서 간음하는 여성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상과 간음하는 여성이 낳은 자식들은 백성이 되는 것이고, 

하여 백성들은 결국 우상의 자식들이니 죽어 마땅한 자들이 되며, 

그것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하는 그의 저주와 이어지는 것이지요.

 

여기서 그의 말은 꼬입니다. 

그가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백성을 착취하는 왕과 귀족이며,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그럼으로써 권력과 부를 거머쥔 고위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었습니다. 

한데 그는 이것을 히에로스 가모스 의식 속의 성행위하는 백성으로 패러디하다보니

엉뚱하게도 그 화살이 저들에게 당해왔던 백성에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백성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 생각은 성행위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뒤섞여 버립니다.

 

호세아의 엇나간 비난을 간파하지 못한 유다국 서기관들은

이것을 히에로스 가모스 같은 난장 의례를 추방한 요시야 대왕의 종교제의야말로 

‘영원한 제국’의 신학적 알리바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민중의 복지에 관한 신기원이 된 저 위대한 요시야 식의 야훼종교에서

바로 이 지점은 ‘파열된 아킬레스건’이었음을 유다국 서기관들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 파열된 아킬레스건은 유다국 왕조신학에서 유대주의 신학으로,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학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하여 야훼종교의 성차별적 가부정주의는 종교의 내재적 요소처럼 견고히 자리잡아 버린 것입니다.

 

 

민중의 풍요에 대한 염원의 표현이었던 성행위를 

‘여성의 간음’이라는 부정적 상상력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상념을 낳았습니다. 

나아가 그것은 여성 자체를 성적 존재 혹은 간음하는 존재라는 혐오의 시선에서 보게 했고, 

렇게 해서 태어난 모든 인간을 죄인이라고 보는 편견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여 예수를 낳은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승화시킬 때

그녀가 성행위 없이 예수를 낳았다는 동정녀 신앙, 

나아가 동정을 ‘죄 없음’으로 해석하여

원죄 없이 예수를 낳았다는 무염시태(無染始胎) 신앙으로 성모론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런 신앙은 비단 가톨릭만의 신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동정을 무죄함으로 보면서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신앙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개신교도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신앙의 형성사에는 모든 여성이 성적 존재, 

아니 간음하는 존재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까지도 이 계보에 있는 종교들을 가운데 가장 마초적인 종교의 하나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대중을 착취했던 권력에 대항한 위대한 예언자 호세아, 

그러나 그의 날카로운 비판의 말들 가운데 하나, 

히에로스 가모스 속의 대중의 갈망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 못한 채 던져버린 빗나간 신학적 해석 하나, 

그것은 이후 긴 역사 속에서 야훼 신앙의 파열된 아킬레스건이 되어야 했습니다. 

잘못 던진 패러디 하나가, 그것을 기억하고 전승한 이들이 무심코 반복한 그 패러디 하나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잘못된 편견과 관행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사회에서 돌아다니는 빗나간, 성찰하지 않는 말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hanbaik.synology.me:8080/xe/?document_srl=88469&mid=skyboard&listStyle=viewer&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