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삭풍 속에서 월출산 누릿재를 넘어 강진 땅에 들어섰다. 18년 동안의 기나긴 유배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누릿재를 넘을 때의 소회를 다산(茶山)은 ‘탐진촌요(耽津村謠)’라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빗속을 뚫고 강진으로 가며.....) ‘탐진’(耽津)은 강진의 옛 이름이다. "산봉우리 바위가 우뚝우뚝 솟은 누리령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는듯 하네 "월남리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말아야 ..... "봉우리 봉우리가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 같은지 .... 마침내 도암면 귤동마을에 위치한, 해남 윤씨의 산정(山亭)이었던 다산(茶山)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귀양을 온 지 8년째 되던 1808년 봄의 일이었다. 다산(茶山)정약용에 대하여 https://www.nyj.go.kr/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