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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애굽 그리고 가나안 정착

6-4, 메르넵타-비문(碑文: BC1220)과 먼저 들어 온 히브리인 .. 이집트 주변형세(투투모세3세)

Narin Pusil 2020. 5. 26. 19:23

 

The  Nineteenth Dynasty of Egypt  (notated  Dynasty XIX , alternatively  19th Dynasty  or  Dynasty 19 ) is classified as the second Dynasty of the  Ancient Egyptian   New Kingdom  period, lasting from 1292 BC to 1189 BC.

6.4 메르넵타-비문(碑文: BC1220)과 이집트 주변형세

     이스라엘의 출현

 

1. 출애굽 연대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고고학적 자료가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은 황폐하여 뿌릴 씨앗 하나 남지 않았다.”  

 

1896년 Thebes에서 영국의 고고학자 페트리(Flinders Petrie)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최초로 언급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존재를 증명하는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BC1207년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비성서 고고학 자료인 메르넵타 석비(Merneptah-Victory-Stele)[1]다.

 

가나안을 초토화 시키고, 이스라엘을 멸절시켰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애굽의 람세스II세의 열한번째 아들

메르넵타(Pharaoh Merneptah, BC1213 -1203년 통치[2])

파라오가 된지 5년째 되는 해에 이룬

리비아 지역과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협공을 막아내어

승리했다는 기록도 있는 비문이다.

 

2. 아버지 람세스 2세때에 탈출하여 가나안에 들어간 히브리와

이집트에 영향권에서 선주(先住)하고 있던 도시국가들과의 불협화음을 보고받은

메르넵타가 이스라엘을 평정했다는 것이다.

선대 파라오부터 복종하던 도시국가들과 싸워가며

세를 불려가던 그의 노예와 같은 가나안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새로이 파라오로 등극한 메르넵타에게는 손톱의 가시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이집트의 국력에 비하면,

비록 너무나 미미하지만 제국의 노예들이 탈출해서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 만으로도 이집트의 파라오 메르넵타의 자존심을 긁어 놓고 있었던 것으로

이집트에 영향력하에 있던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의 당시 상황이

메르넵타에게는 자존심이 걸려있기도 한 정책과제 였을 것이다.

 

3. 또한 메르넵타 석비에 새겨진 마지막 두 줄의 내용은 이러하다.

 

“가나안의 노획물을 탈취하였다.

아슈켈론을 점령하고 게셀을 함락시켰으며

야노암은 철저히 파괴하였다.

이스라엘은 폐허로 만들어 그 씨를 말렸다.” 

 

가나안지역의 히브리인들을 평정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이스라엘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보다 먼저 들어온 히브리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4. 본문 내용은 리비아 인들과 그들의 동맹국에 대한

메르넵타의 승리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이지만,

28개 중 마지막 3 개는

이집트의 황실 소유의 일부인 가나안에서의 별도에 치리를 다루고 있다.

이 비석은 대다수의 학자들이 27 행의

"이스라엘"이라는 상형 문자 세트를 번역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스텔라"라고도 합니다.

 

메르넵타 석비는 이스라엘에 대한 최초의 원본 참고서이며

고대 이집트에서 유일하게 인용 된 것이다.

철기시대 4대자료중 하나인 이 석비는 현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5. 허셜 섕크스는

메르넵타 석비가 알려 주는 바는,

기원전 1212년에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실존해 있었으며

이집트의 파라오도 그들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승전한 일을 자랑거리로 삼을 만한 상대로 여겼다는 점이다.”이라 지적했고,[3]

 

애리조나 대학 근동 고고학 교수인 윌리엄 G. 데버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메르넵타 석비로 명백해진 사실은,

자신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던 민족이 가나안에 실존해 있었고

그 때문에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이집트인들이 성서를 옹호하려는 편향된 시각을 가졌을 리도 없고

자국의 선전 목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특이한 민족을

구체적으로 창안했을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다.”  [4]

 

 

Timeline of the 19th Dynasty

 

 

출처-http://www.bible.ca/archeology/bible-archeology-victory-stele-of-merneptah

 

 


[1]  JOURNAL ARTICLE, Israel in the Merneptah Stela, Michael G. Hasel,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No. 296 (Nov., 1994), pp. 45-61

[2] 기원전 1212년경에서 1202년경 사이, 고대 이스라엘의 사사 즉 판관 시대 후반부에 이집트를 통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 바룩 할퍼른, 고대이스라엘의 기원,   출애굽 사실인가 신화인가(한국신학연구소,2008)125

- 허셜 생크스, 고대이스라엘의 기원, p14)

[4] 윌리엄 G 데버,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김구원 역(CLC(기독교문서선교회, 2013년)원제 : A BIBLICAL HISTORY OF ISRAEL

 

 

 

 

 

투트모세 3(Thutmose III, ? ~ 기원전 1425년)는,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

(재위: 기원전 1479년 ~ 기원전 1425년)로, 투트모세 2세의 아들이다.

54년에 달하는 긴 재위기간 중 반에 가까운 21년을

계모 하트셉수트가 섭정이자 공동파라오로서 실권을 쥐고 있었다.

 

투트모세 3세는 시리아, 누비아를 필두로

대규모의 군사 정복을 통하여 이집트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그는 전생애에 걸쳐 17회의 원정을 했고,

그 결과 미타니, 히타이트, 아시리아,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우가리트, 비블로스, 야흐베, 누비아 등을 지배했다.[1]

그는 이집트 왕국을 유프라테스 까지 진출 시켰고,

시리아를 복속했다.

He extended the Egyptian empire to the Euphrates River and made Syria a part of the empire.[2]

 

 

이집트 서남아시아(팔레스타인, 가나안)연대표

3000,   (중왕국)    (1720,1663)   (1570,1532)   (1446-1274-1250)    메르넵타석비(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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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통합왕국     힉소스 칩입 과 멸망       출애굽  카데시전투             팔레스타인 정복 

                                                          가데스 바네아(kadsh barnea)

 

BC1207, Pharaoh Merneptah claims a victory over the people of Israel.   October 30 – Earliest known dateable solar eclipse.         기원전 1207년에 파라오 메르넵타 이스라엘에 승리를 선언하다.

 

[1] 송경근, 이집트 역사 100장면 (가람기획, 2001) 204

[2] Gerald Leinwand, Prologue: In Search of History. The Pageant of World History(Allyn & Bacon,198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