晉州 姜氏 (晉陽 姜氏) |
|
관향 | 경상남도 진주시 |
원시조 | 강석년 (姜石年) |
비조 | 강상 (姜尙) |
시조 | 강이식 (姜以式) |
중시조 | 강계용 (姜啓庸), 강위용 (姜渭庸), 강원용 (姜遠庸), 강민첨 (姜民瞻), 강궁진 (姜弓珍) |
집성촌 | 경상남도 남해군, 진주시 경상북도 안동시, 영주시 전라남도 나주시 전라북도 순창군, 남원시, 김제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귀포시 |
평안북도 정주시 함경남도 북청군 |
|
인구 | 1,161,326명(2015년) | 국내 6위 |
1. 진주 강씨(晋州姜氏)는 본관이 경상남도 진주시[13]이다. 이는 강이식의 후손인 강진이 진양후에 봉해져서 관향을 진주로 삼은 데에서 기인한다. 현재 신라계 성씨나 고려계 성씨가 대부분인 한국의 다수인구 성씨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고구려계 성씨.
2. 강(姜)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176,84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6위이다. 본관은 문헌상으로 114본이 전하나, 현존하는 본관은 진주, 전주, 강릉, 평양(平壤), 나주 등 32본이며, 이 중에서 시조가 기록되어 있는 본관은 진주(晋州)·금천(衿川)·안동·배천(白川)·해미(海美)·동복(同福)·광주(光州) 7본이나, 대본은 진주강씨이다.
3. 진주 강씨(晋州 姜氏) 시조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 병마도원수이다. 강이식은 중국 수나라때 중국 천수강씨의 지파인 광동강씨(廣東姜氏)의 일족이다. 597년(고구려 영양왕 8년)에 수 문제가 무례한 국서를 보내오자 영양왕은 군신을 모아 놓고 이에 회답할 것을 논의할 때 강이식은 이와 같은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양왕이 이에 수긍하고 싸울 것을 명하자 군사 정병 5만을 이끌고 임유관(臨楡關)에서 수나라 군사 30만을 단번에 격퇴하고, 603년에 수 양제가 군사 100만으로 다시 침략할 때 중신회의에서 강화할 것을 논의했으나 이에 반대하고 싸울 것을 주장하여 을지문덕과 함께 요동성 살수(청천강) 등의 싸움에서 수군을 대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현재 중국 만주 심양현 원수림 역앞에 강이식 장군의 묘비가 있다. 강이식의 후손 중에 신라 헌강왕 때 판내이령 강진(姜縉)이 진양후에 봉해지며 본관을 진주(晋州)로 하였다고 한다.
현재 진주시 상봉서동 봉산사에 강이식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4. 진주강씨(晋州 姜氏)의 파는 박사공파, 인헌공파, 은열공파, 관서공파, 소감공파가 있다. 각 파를 보면,
① 강이식을 동일 시조로 하여 강계용(姜啓庸)을 중시조로 하는 박사공파(博士公派)가 있고,
② 강위용(姜渭庸)을 중시조로 하는 소감공파(少監公派), 강원용(姜遠庸)을 중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③ 강민첨(姜民瞻)을 중시조로 하는 은열공파(殷烈公派),
④ 강감찬(姜邯贊)의 아버지 강궁진(姜弓珍)을 중시조로 하는 인헌공파(仁憲公派)가 있다.
※박사공파는 어사공파(御使公派)라고도 하며,
※시중공파는 관서대장군파(關西大將軍派)라고도 한다.
※인헌공파는 강감찬의 출생지가 금천(衿川)이라고 하여 금천(서울 금천구)강씨라고도 한다.
1. 박사공파의 중시조는 강계용이다.
※그는 국자박사(國子博士)로 고려 원종 때 통신사서상관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박사공파는 강사첨의 자녀에 따라 통정공파와 통계공파로 나뉜다.
① 금천 강씨(衿川 姜氏)의 시조이자 강이식 대장군의 후손 강여청(姜餘淸)의 5대손인 강궁진(姜弓珍)은 금천(衿川)의 호족으로서 고려 통일에 협력한 공으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랐다. 강궁진의 아들인 강감찬(姜邯贊)이 983년(고려 성종 3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요나라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1030년(현종 21)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② 그의 손자 강사첨(姜師瞻)의 5세손 중 첫째 아들 강회백의 후손은 통정공파(通亭公派)를, 둘째 아들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은 통계공파(通溪公派)를 형성하고 있다.
통정공파의 파조 강회백은 고려 말에 대사헌을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에 올랐다. 그의 아들 강석덕(姜碩德)은 세종의 둘째 부인 영빈강씨의 아버지가 된다. 그는 개성유수와 지돈령부지사(知敦寧府事) 등을 지냈다.
강석덕의 아들 강희안(姜希顔)·강희맹(姜希孟) 형제는 통정공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강희안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직제학이 되어 정인지·성삼문 등과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뒤에 단종복위에 연루되었으나 성삼문의 변호로 화를 면하고 뒤에 호조참의를 지냈다. 그는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이라 불릴 정도로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낸 강구손(姜龜孫)은 강희안의 아들이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강맹경(姜孟卿)은 강희안의 4촌형이 된다. 강희안의 동생 강희맹은 문장가이자 서화가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世子賓客)이 되고 병조판서·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찬성에 올랐다.
강회중의 후손인 통계공파에서는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강사상(姜士尙)과 역시 선조 때 평난공신에 오르고 이조판서·병조판서를 거쳐 중추원판사를 지낸 진흥군(眞興君) 강신(姜紳)이 있으며, 왕자사부(王子師傅)를 거쳐 임진왜란 때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오르고, 진창군(晋昌君)에 봉해진 강인(姜絪) 형제가 있다. 또한 정묘호란의 주역으로 불리는 강홍립(姜弘立)도 강신의 아들이다. 특히 강인의 후손은 고종 때에 와서 강준흠(姜浚欽)·강시영(姜時永)·강문형(姜文馨)·강난형(姜蘭馨)·강우형(姜友馨)·강국형(國馨) 등 판서급 인물을 배출해서 명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밖에도 인조 때 화포술(火砲術)을 개발한 강홍중(姜弘重)도 통계공파의 사람이다.
2. 소감공파
박사공 강계용의 아우인 강위용은 고려 때 사도소감(司徒少監)을 지냈으며, 진주강씨 가문의 5대 파조로 소감공파의 파조이다. 그의 4대손 강태(姜泰)는 가선대부 대상(嘉善大夫 大相)으로 있으면서 오랑캐의 침입을 당했으나, 부친상을 당하여 엎드려 곡하면서 한사코 자리를 뜨지 않자 오랑캐도 감탄하여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전한다.
3. 관서공파
관서대장군(關西大將軍) 강원로(姜元老)를 파조로 하고 있다. 그의 조부는 고려 중기 판문하시중(判門下侍中)을 지낸 강원용이며, 보문각직제학을 역임한 강기문(姜起文)이 친부이다. 후손들에서 많은 문하시중이 배출되었는데, 그중 전객령 문하시중을 역임한 강윤보(姜允輔)는 포은 정몽주와 도의교(道義交)를 맺기도 했다. 그는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해버렸다. 또 9세손 강행(姜行)은 세조 때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기도 했다.
4. 은열공파
은열공파는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귀주대첩에서 거란을 물리친 은열공 강민첨을 중시조로 하는 파이다. 강민첨은 고려 광종 14년에 진주에서 태어났다. 현종 때 동여진(東女眞)이 영일과 청하로 쳐들어오자 도부서(都部署)의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 등과 함께 이를 격퇴하였다. 또 1018년에는 거란군이 고려를 침입하자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대파하였다. 패배한 소배압의 군사가 다시 개경으로 쳐들어오자 이를 추격하여 자주(慈州)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공으로 응양상장군이 되고 일등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이듬해 지중추사 병부상서가 되었다. 시호는 은열이다.
그의 후손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평론가로 유명한 강세황(姜世晃)이 있다. 그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시·서화에 열중하였고, 영조의 권유로 61세에 들어서 관직에 나가 병조참의와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그는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고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고, 풍속화·인물화를 유행시켰다. 그의 제자가 바로 김홍도이다.
그의 후손으로 강이오와 강이중은 혼천시계를 제작했으며, 강이오의 아들로 한성판윤을 지낸 강윤(姜潤)과 강건 형제는 휴대용 해시계(앙부일구)를 만들었다. 또한 그들 아들들도 앙부일구를 제작했다.
5. 인헌공파
인헌공파는 본래 금천 강씨(衿川 姜氏)이다. 삼한벽상공신 여후(三韓壁上功臣呂侯) 강궁진을 파조로 하고 있다. 강궁진은 고려를 건국할 때 태조 왕건으로부터 삼한벽상공신으로 봉해졌으며 여후(呂侯)로 있었다.
강궁진의 아들이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이다. 강감찬은 임헌복시(任軒覆試) 갑과에 장원급제하고 거란 10만 대군을 귀주에서 전멸시켰으며, 1030년(현종 21)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현종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인헌(仁憲)이다. 인헌공파의 인물로는 조선 인조 때 우의정 세자부(世子傅)를 지낸 문정공(文貞公) 강석기(姜碩期)가 있다. 그의 딸이 소현세자의 빈이 되는 민회빈 강씨이다. 소현세자가 독살을 당하고 그가 사약을 받게 되자 그의 아내와 친모, 4형제가 모두 사돈인 인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들들 또한 제주도로 귀양 보내져 생을 마감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 총독에게 수류탄을 던진 의사 강우규도 인헌공파의 후손이다.
- 박사공파(博士公派) 진원군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재(在) | 口회(會) 口흠(欽) |
영(永) 한(漢) 원(源) |
口수(秀) 口형(馨) 口원(元) |
희(熙) 창(昌) 대(大) |
口원(遠) 口중(中) 口신(信) |
성(聲) 호(鎬) 석(錫) |
口구(求) 口택(澤) 口순(淳) |
병(秉) 내(來) 모(模) |
口묵(默) 口준(焌) 口현(顯) |
교(敎) 배(培) 응(應) |
口탁(鐸) 口연(鍊) 口종(鍾) |
준(浚) 우(雨) 식(湜) |
口목(穆) 口영(榮) 口화(樺) |
휘(輝) 훈(薰) 형(炯) |
口규(奎) 口은(垠) 口철(喆) |
진(鎭) 갑(鉀) 옥(鈺) |
口철(澈) 口원(沅) 口제(濟) |
환(桓) 직(稷) 삼(杉) |
口열(烈) 口욱(煜) 口병(炳) |
※강씨(姜氏)가 세운 나라 (강성제국/姜姓帝國)
- 중국 염제국(炎帝國) - 5300년전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가 세운 나라. 이후, 염제신농씨의 후손들이 8대에 걸쳐 520년간 중국을 통치했다.
- 제나라(齊國) - 중국 춘추시대 강태공(姜太公)이 세운 나라. 강태공은 4만 5천의 군사로 상나라 72만 대군을 무찌르고 주나라를 세우며 중국을 천하통일을 한 공로로 제나라땅을 받고 제나라 1대 개국군주가 됨. 32대 800여년간 통치.
- 여국(呂國) - 강백이(姜伯夷)가 세운 나라. 강태공의 선조. 강성 여씨(姜姓呂氏)가 여기서 나왔다.
- 기국(紀國) - 강문후(姜文候)가 세운 왕국. 500여년간 38대에 이어 통치. 강성 기씨(姜姓紀氏)가 여기서 나왔다.
- 허국(許國) - 허 문숙(許 文叔) 강정(姜丁)이 세운 왕국. 600여년간 20대에 이어 통치. 강성 허씨(姜姓許氏)가 여기서 나왔다. 후손중에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저술한 허신(許愼)이 있다.
- 신국(申國) - 강좌(姜佐)가 세운 왕국. 17대에 이어 통치. 후손으로 중국 진군사씨 시조 강신백(사신백)이 있음. 강성 신씨(姜姓申氏)와 강성 사씨(姜姓謝氏)가 여기서 나왔다.
- 장국(鄣國) - 강태공의 증손자인 강호(姜虎)가 세운 왕국. 14대에 이어 통치. 장국의 후손들이 鄣의 우부방 阝을 떼고 장씨(章氏)를 성씨로 삼았다. 강성 장씨(姜姓章氏)가 여기서 나왔다.
- 습국(習國) - 염제신농씨의 후손인 강후(姜侯)가 세운 왕국. 강성 습씨(姜姓習氏)가 여기서 나왔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습근평)의 성씨이다.
- 북제(北齊)(남북조시대) - 강태공의 51세손 강성 고씨(姜姓高氏)이자 발해고씨인 '고양'이 세운 황제국. 북제 개국황제 고양을 이어 8대에 이어 통치.
- 북주(北周)(남북조시대) - 염제신농씨의 자손인 강성 우문씨(姜姓宇文氏)가 세운 황제국이다. 북주 개국황제 우문태를 이어 6대에 이어 통치.
- 후량(后凉) - 강태공의 후손 강성 여씨(姜姓呂氏) '여광'이 세운 나라.
- 후주(后周) - 강태공의 후손 강성 시씨(姜姓柴氏) 후주황제 '시영'이 세운 나라.
- 진나라(秦國/통치) - 강태공의 후손 강성 여씨(姜姓呂氏)인 여불위의 아들 진시황(여정)이 시황제가 되어 중국통일을 하며 다스린 나라.
- 명나라(大明) - 염제신농씨의 후손인 강성 주씨(姜姓朱氏) 명나라 개국황제 주원장이 세운 나라. 16대에 이어 280년간 통치. 주원장의 손자이자 명나라 2대 황제 주윤문은 늘 선조인 염제신농씨(주양)능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며 큰 주엽나무 한 그루를 손수 심었다.
- 베트남(건국) - 염제신농씨 3세손 제명의 후손인 낙룡군의 아들 웅왕이 베트남을 최초로 건국하고 2000년간 통치. 현재 베트남인 대다수는 바로 강씨(염제신농씨)의 자손이다.
- 베트남(쩐 왕조) - 염제신농씨의 후손인 강성 사씨(姜姓謝氏) 강신백의 후손인 '사승경(謝升卿)'은 안남(베트남)으로 이주하였고, 성을 진씨(陳氏)로 바꿨다. 그의 아들 '사경'(謝煚)/'진경'(陳煚)이 베트남 '쩐왕조'의 개국 황제(開國皇帝)가 되었다. 175년간 13대에 이어 통치.
- 베트남(딘 왕조) - 강태공의 장남이자 제나라 2대 임금인 '강급'의 자손 강성 정씨(姜姓丁氏)가 베트남에 세운 왕조.
- 태국(통치) - 태국 제31대 총리 탁신친나왓(강성 구씨(姜姓丘氏),구달신), 태국 37대 총리 잉락친나왓(탁신의 여동생,구영락)이 통치.
- 대한민국(통치) - 강태공의 후손 강성 노씨(姜姓盧氏)인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이 통치.
- 중화인민공화국(통치) - 염제신농씨 후손인 강성 습씨(姜姓習氏) 후손 습근평(시진핑)이 현 중국 국가주석이 되어 통치 중.
'나린푸실 이야기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Barangaroo, Sydney (0) | 2021.07.06 |
---|---|
입력하세요.♡♡ 미국과 함께 가는길 (0) | 2021.06.30 |
그때 꿈을 꾸었네 (0) | 2021.06.03 |
■ 언제쯤되면.... When will it be? (0) | 2021.04.05 |
달빛 물든 밤에..... (0) | 2021.02.27 |